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164

       기억력의 문제는 아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진리에 닿은 그녀의 오성(悟性)이 고작 이름 몇 자 기억해내지 못할 정도로 뒤떨어졌을리는 없으니까.

         

       올리비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망각한 것이라면 이 세계의 떨어졌던 시점의 기억을 되새기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왜……그동안 14번째 회귀자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고 착각한거지?’

         

       그 위화감을 이제서야 알아챈 것이 진짜 문제였다.

         

       아우렐리아를 제압하고 14번째 단서를 얻으려고 결심한 순간에서야 그 위화감을 인지했다.

         

       진리에 달한 올리비아를 속여넘기려면, 그 상대도 최소한 진리에 달한 정신계통 술사기 마련.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화면 너머로 세계를 관찰하던 때의 기억까지 건드릴 수는 없을 텐데.

         

       올리비아가 마지막으로 죽였던 회귀자는 아리아 황녀가 맞다.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기억나지 않는 [14번째]가 수작질을 부려놓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일텐데……그렇다기엔 이상한 점이 많다.

         

       올리비아가 회귀자 열 다섯명의 신상을 전부 기억하고 있다고 ‘착각’한 시점은 이 세계에 떨어진 그 순간부터였다.

         

       그렇다면 [14번째]는 그 순간에 맞춰 수작을 부렸다는 뜻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된단 말이지.’

         

       애초에 정신 계통 술식은 그 발동 조건부터 매우 까다롭다. 이 정도로 흔적이 없으려면 접촉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시야 내에 들어와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북부에서 다른 누군가와 만났던 것 같지는 않다.

         

       올리비아는 생각을 멈추고 굳어진 표정을 풀었다. 산 중턱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인기척 때문이었다.

         

       이 일은 다음에 생각해도 된다. 어쩌면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 심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14번째]가 수작을 부렸다는 건 말이 안되는 가정이었다.

         

       무언가 놓치고 있다. 지금은 그걸 알아낸 것으로 족하다.

         

       지금은, 멜리나를 마주하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올리비아는 나뭇에서 내려와 바닥에 착지했다. 항상 즐겨 입었던 로브 한쪽 가슴켠에는, 어느새 금탑의 일원임을 상징하는 브로치가 달려 있었다.

         

       무성한 숲길을 지나쳐.

         

       올리비아의 걸음이 멈췄다.

         

       “아…….”

         

       다시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멜리나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히 극적인 감정 변화를 보여줄 자신이 없었다. 멜리나가 기다려온 5년이, 자신에게는 열흘 남짓한 시간에 불과했으니까.

         

       고작 열흘 만에 만나는 건데, 눈물을 보일리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믿고 있었다.

         

       “멜리, 나.”

         

       멜리나가 그곳에 있었다.

         

       답지 않게 눈물을 잔뜩 머금고서.

         

       떨어지지 않는 입을 달싹거리며, 숲길 한복판에 서 있었다.

         

       아득한 세월동안 마탑을 지켜왔던 마법사는, 기억하던 것과 조금 달라져 있었다.

         

       여전히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올리비아는 그 미세한 변화를 인지할 수 있었다. 누구보다 그녀와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이다.

         

       이마에는 옅은 주름이 생겼다. 눈동자의 빛은 약간 흐려져 있었다. 항상 찬란히 빛나던 머리는, 조금이지만 하얗게 세어 있었다.

         

       이곳까지 달려오며 몇 번 눈물을 흘렸던 모양인지, 희미하게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어찌나 급하게 달려왔는지, 무릎이 까져 있었다. 산발이 된 머리카락에는 나뭇잎이 붙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여러 감정이 뒤섞인다. 죄책감, 슬픔, 기쁨, 안도…….

         

       올리비아는 웃으려고 노력했다.

         

       “죄송해요. 저…….”

         

       잘 되지 않았다.

         

       말문이 막힌다. 숨이 먹먹해져, 도무지 단어를 내뱉을 수가 없다.

         

       “제, 제가 너무…….”

         

       낯선 감정이 밀려든다. 눈물샘에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 없었다. 그녀의 정신은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육체는 오롯이 5년의 시간을 느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일 것이다.

         

       그조차도 아니라면, 마신의 잔재의 영향을 받은 탓일 것이다. 슬픔도, 결국 가슴 속에 있는 날 것의 감정을 토해내게 한다는 점에서 분노와 상통하니까.

         

       그래야만 했다.

         

       올리비아는 살짝 시선을 피했다. 잠시 마음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곳은 그녀의 세계가 아니다. 만약 이 자리에서 눈물을 쏟아낸다면, 그만큼 추한 일도 없을 것이다. 눈물을 흘릴 자격은 관조자였던 자신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겠다고 굳게 다짐하지 않았던가? 마신을 죽이고, 엔딩을 본 다음 미련 없이 이 세계를 떠나기로 결심하지 않았었나?

         

       웃어야 한다.

         

       이 세계를 한 줌 미련 없이 떠나기 위해서는, 눈물 따위 떨궈서는 안됐다.

         

       그런데 왜.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걸까.

         

       대체 왜?

         

       올리비아는 주먹을 달싹거렸다. 손을 얼굴로 가져가고 싶지 않다. 고개를 돌리고 싶지 않다. 멜리나가 눈치껏 시선을 피해줬으면 했다. 손등으로 눈가를 비빌 시간을 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밀려드는 감정이 각막 위로 솟구쳐 오르는 것을 견뎌내는 수밖에 없다.

         

       “제가……너무 늦었죠?”

         

       떨리는 목소리를 들키지 않으려, 입술을 최대한 뒤틀어본다.

         

       “최대한 빨리 와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아니었나봐요.”

         

       목소리도 흔들리지 않았다. 울지……않았다. 그거면 됐다.

         

       멜리나가 힘없이 웃으며 올리비아를 쳐다보았다.

         

       뭐가 그렇게 슬플까.

         

       죽은 줄만 알았던 제자와 극적인 재회를 앞에 두고 있음에도, 멜리나는 입을 닫고 침묵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붉게 충혈된 눈동자, 눈물을 참으려 애쓰는 듯한 얼굴.

         

       올리비아가 어떤 마음일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리비야.”

         

       올리비아의 호흡이 가라앉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한 번만 안아봐도 되겠니?”

         

       한치의 의심조차 없는, 순수한 자애(慈愛).

         

       “……아.”

         

       그것을 마주한 순간, 올리비아는 다시 한 번 숨을 삼켰다.

         

       도무지 저 눈동자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머리가 아팠다. 입안에서 아릿한 맛이 느껴졌다. 심장은 죄책감의 냄새를 맡고 쿵쿵거리며 뛰었다. 몸이 심장의 진동을 이겨내지 못하고 덜덜거렸다.

         

       나는, 나는……당신이 말하는 그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저…….

         

       “자, 자……이제 다 괜찮다. 다 괜찮아.”

         

       올리비아는 흠칫 놀라서 어깨를 움츠렸다. 어느새 그녀는 멜리나의 품 안에 안겨 있었다.

         

       멜리나는 올리비아를 살포시 껴안았다. 그녀는 올리비아의 등을 토닥이면서,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다 괜찮단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올리비아는 더 이상 견뎌내지 못했다. 쏟아지는 감정의 격류에, 더는 저항하지 못했다.

       

        “아……아아아……!”

         

       나는 당신을 속였다.

         

       기만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이용했다.

         

       그런 자책들이 입 안을 맴돌았다. 끝끝내 내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할 수 있을 것 마냥 입을 달싹거리는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결국.

         

       “죄송……해요. 제가……제가…….”

         

       그런 형식적인 용서를 구할 수 밖에 없었다.

         

       멜리나는 그런 제자의 등을 쓸어내렸다.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토닥였다. 분명 또 무언가를 자책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

         

       그 이유가 무엇인지, 멜리나는 짐작할 수 없었다. 올리비아가 무엇을 더 숨기고 있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멜리나는 올리비아를 추궁할 생각이 없었다.

         

       멜리나는 침묵으로서 배려했다. 올리비아가 진정할 수 있을 때까지, 일련의 행위만을 반복했다.

         

       토닥, 토닥.

         

       잠시 동안 눈물을 쏟던 올리비아가 옷소매로 눈물을 닦아냈다.

         

       “……완전 퉁퉁 불었네.”

       

       올리비아는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멜리나의 얼굴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네가 이렇게 울보인 줄은 처음 알았구나.”

       “……멜리나 님이 먼저 우셨잖아요. 슬쩍 떠넘기지 마세요.”

       “…….”

       “그래도, 5년 동안 잘 지내셨나 보네요. 솔직히 저는 아직 잘 모르겠거든요. 며칠 지난 것 같지도 않은데, 깨고 보니 5년이 지나있더라고요.”

         

       올리비아는 투덜거리면서 몸을 돌렸다. 멜리나가 마음의 울타리 안으로 완전히 들어와버렸다는 사실을, 올리비아는 이제 받아들이기로 했다.

         

       “리비야.”

         

       멜리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내 몸에 저주는 없단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더 이상 모르는 척 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란다. 이제 내가 너를 상처 입힐 일은 없으니 안심하렴.”

       “무슨 말을 하시는지, 음. 저는 전혀 모르겠는데요?”

         

       멜리나는 피식 웃으며 올리비아의 뺨을 손가락으로 잡아 흔들었다.

         

       “인석아, 방금 울면서 스승님이라고 부른 건 뭐고?”

       “…….”

         

       올리비아의 눈동자가 사시나무처럼 흔들렸다.

         

       그랬나? 아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랬던 적은…….

         

       멜리나는 후후 웃으면서, 뺨을 만지던 손을 떼어냈다.

         

       “걸렸구나.”

       “……아.”

         

       입을 벌리는 올리비아를 보며, 멜리나가 미소지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눈물이….많아진다….메모…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