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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4

        

         “…….”

         

         손부채 같은 액세서리가 있었다면 탁! 하고 접을 기세로.

         이 사교회의 주최자(Host)인 그녀, 카사네 아마기는 우리 쪽을 향해 그 몸을 돌렸다.

         

         초조하게 손안에 있는 잔을 어루만지는 손가락은 늘씬했고, 길게 내려앉은 속눈썹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얼핏 가련하고 무력한 여성이라는 선입견을 품게 할 법도 했으나… 노려보기는커녕 그냥 바라보는 와중에도 치켜 떠진 것처럼 보이는 날카로운 눈이 모든 걸 잡아먹었다.

         

         결국 남은 건 전체적으로 표독스러운 인상. 그리고 그에 걸맞게 세련된 복식.

         가슴골이 깊게 파여 있어서 시선을 확 사로잡는 할터 드레스에, 빈 부분을 보완하듯 착용된 유려한 벨벳 장갑은 여배우스러운 분위기를 물씬 풍긴 데다가.

         

         여기저기 끼워진 링과 금줄 등의 액세서리는 그냥 중력에 따라 늘어진 게 아니라, 전자기적 수단을 써서 고정했는지 살짝 부유하듯 나풀거리고 있었으니.

         

         ……아니다, 착각했다.

         이건 내 기준에서나 너무나 세련된 모습이지, 이들에게는 오히려 굉장히 차분하고 절제된 패션이리라.

         

         바깥이 23세기의 온갖 네온 불빛과 합성 플라스틱에 파묻힌 채 미래로 나아가며, 전자화와 기계화가 혼재된 풍조가 주류가 될수록.

         반대로 상류층은 예스러움(Antique)을 추구하며 대중과 차별점을 두는 거겠지.

         

         ‘…어라?’

         

         그렇게 따지니까 좀 이상한데.

         그럼 쇼우 요 녀석은 무슨 생각으로 옷 배정을 이따구로 한 거야?

         지도 에나마 로고가 박힌 커프 링크스(Cuff links; 장식 단추)나 화려한 장식이 잔뜩 들어간 옷깃(Lapel)을 자랑하는 서구식 정장을 입었으면서 왜 나한테는 화복 같은 걸…?

         

         나를 무슨 패션 리더 같은 걸로 만들 속셈이었나?

         야, 시선 끌기는 네 담당이고. 나는 숨어 들어가서 체크메이트를 찍는 역할을 맡았다니까 이게 대체 무슨 짓이니…!

         

         속으로 제멋대로인 현재 상사 겸 파트너를 씹어대는 사이, 거리가 충분히 줄어들자 손님을 환대…는 안 하더라도 적어도 맞이할 책임이 있는 카사네가 먼저 입을 뗐다.

         

         “…오랜만이네, 우리 막내. 아니면 깍듯하게 이사님이라고 불러줘야 하나? 몇 달 전에도 더럽고 치사한 세무 조사를 성실히 받은 것 같은데 말이지.”

         

         그녀의 상체가 삐딱하게 기울어진다.

         호칭은 친근했으나 태도는 정반대. 피우던 담배가 있었다면 틀림없이 한껏 들이마신 연기를 쇼우의 얼굴에 뿜었으리라 장담할 수 있으리만치 불성실한 자세였다.

         

         사정을 모르는 다른 사람이 중간에 끼었다면 어떤 스탠스로 이 대치 상황을 풀어나가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하지만 나야 아마기 형제자매들 간에 우애와 신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아니까, 그냥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하는 각오로 자리만 지키면 그만.

         

         실제로 쇼우도 딱히 떳떳한 건 없는지 그러려니 하는 태도로 톡 쏘는 인사말을 받아넘겼다.

         

         “임원들의 재량에 따라 사업체를 운영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그게 에나마 전체의 발전을 저하하는 요소로 작용한다면… 저도 맡은 바를 다할 수밖에 없군요.”

         

         음… 받아넘긴 걸 넘어서 냅다 뺨을 후렸네. 하여간 성질머리 하고는.

         

         활짝 웃는 얼굴로.

         ‘댁이 잘했으면 나도 좆같게 안 굴었겠지?’ 하는 우아한 대답을 수령한 카사네가 대놓고 혀를 찼다. 혹은… 침을 뱉으려다가 간신히 참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솟구친 감정을 억누른 그녀는 분노를 짜증으로.

         짜증을 신경질 수준까지 어찌저찌 억제하고는 한심하다는 듯 푸념을 늘어놓았다.

         

         “하… 너도 슬슬 그 늙은이의 수발 드는 건 멈추지 않겠니? 적당히 따르는 척만 해도 되잖아?? 심어 놓은 끄나풀들을 죽어라 잘라내도 모자랄 판에, 그렇게 계속 힘을 실어주면… 이 언니 오빠들이 너어어어무 피곤해져요. …혁신을 입에 달고 살던 인간이 정작 자기는 세대 교체도 못 이루어지게 방해하는 추한 꼴은 참….”

         

         “…….”

         

         ‘세대 교체’라는 묘한 울림을 담은 단어를 들은 쇼우의 눈이 섬뜩해졌다.

         자칫 보여주기 식으로 띄우고 있던 미소마저 일순간 일그러질 수준.

         

         뭐, 짐작 가는 바가 없는 건 아니다.

         파라다이스의 무한 경쟁 시스템이 ‘잘난 인간이 더 높은 곳에 서야 한다.’에 기조 했다면, 에나마의 파벌 구도는 그저 끔찍한 골육 상잔이자 왕위 경쟁.

         

         순수 과학과 응용 공학에 대한 연구와 재투자, 그리고 회장이 완성한 직원 관리 시스템이 건실하지 않았다면 기업의 위신이 상했을 수도 있는 싸움이랄까….

         

         거기에 같은 후대의 인간들끼리 치고 박기도 바빠 죽겠는데, 정작 왕관을 내려놓아야 할 괴물딱지인 에나마 회장이 무대 뒤에서 음흉하게 쳐다보고 있다?

         심지어 회장 편을 들고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자빠진 쇼우를 보면 속이 터질 것처럼 답답한 것도 이해는 간다.

         

         ……그런데 이거 어쩌나? 내가 나중에 주인공을 기업 합병 루트로 이끌면, 어차피 이 미친 개가 다 물어뜯고 이겨 먹을 예정인데! 에베베벱.

         

         ‘흐흠…! 나처럼 확실한 동아줄을 여러 개 붙잡았어야지.’

         

         물론 한 개가 조금 지나치게 튼튼하고 배배 꼬여서 손목을 빼기가 좀 힘들 것도 같지만… 그건 뒷일이고.

         권세를 빌리는 흉내는 내지 않는다고 했으나, 차마 이런 아이러니를 웃지 않고 넘기기엔 아쉬워서 속으로만 빙글거리고 있었는데.

         

         흥에 취해서 실수로 티를 냈나? 아니면 당사자들의 신경전이 끝난만큼 새로운 주제나 험담거리가 필요한 때에 재수없게 알짱거리는 치를 담당한 게 문제였나?

         

         한 방씩, 사이좋게 견제구를 주고받은 두 에나마 임원은 다른 손님들이 그랬듯 주제를 돌리기 위해 개인 신상과 주변인 얘기로 넘어가버렸으니.

         

         씨익.

         좋은 먹이감, 혹은 걸고 넘어질 건수를 발견했다는 것처럼 카사네의 얼굴이 비틀린다. 설명은 어려운데 왠지 고양이과의 맹수가 떠오른다.

         

         거 아닙니다. 어떤 나쁜 아이디어를 떠올렸는진 몰라도 저는 관계없어요. 무해한 생물이니까 관심 같은 건 굳이 안 주셔도 됩니다…!

         

         “…과분하게도 동행을 허락받은 연구원, 아나스타샤 마카로비치라고 합니다.”

         

         상대방이 궁금해할 부분만 간결하게. 일절의 무례함 없이.

         이름과 신분을 꺼내지 않는 것도 고려했지만, 괜히 뒤에서 따로 조사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별 것 아닌 듯 담담하게 밝히는 쪽을 골랐다.

         

         오랜만에 외출한 상임 이사가 친히 손질한 관상용 화초, 그게 지금의 나일진대 제 발 저린 응대를 돌려줄 이유 따위 없었다.

         

         아무리 식물이 예쁘게 정리되어 있다해도, 꽃 그 자체에 관심을 줄만큼 계열사 사장이 한가한 자리는 아니지 않나? 그걸 가꾼 정원사라면 몰라도.

         

         “흐응…? 평생 여자랑은 안 붙어먹을 것처럼 궁상떨길래, 쌓인 건 어디서 몰래 해소하나 했더니… 그냥 여태까지는 마음에 드는 매물이 없었나 보네?”

         

         “네…… 예?”

         

         얼떨떨한 대답을 해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고개는 여전히 경계 대상인 쇼우에게 향해 있었으나, 그녀의 몸은 살짝 내게 다가왔다.

         

         아, 말을 거는 게 아니라 품평 정도는 당할 수 있지 참….

         

         “그것도… 이렇게 흑발에, 예쁜 눈을 가진 아가로 말이야.”

         

         카사네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진다.

         뻗어진 그녀의 손가락이 내 턱 끝을 지렛대삼아 얼굴을 들어올렸다.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겠다는 것처럼, 교태로운 시선이 이쪽을 내려다보았다.

         

         “어… 칭찬, 감사합니다…?”

         

         까딱 성적인 권유로 느껴질 수 있는 제스쳐도.

         

         물건, 일개 하급자에게 건네는 의례적인 인사라 생각하니. 그 주체가 고혹적인 미녀여도 별로 이상한 해석이 끼어들 여지도 없었다. 아니면 이것도 그냥 쇼우가 대답할 때까지 그냥 다물고 있는 게 정답이었으려나…아아앗!?

         

         “읏…!?”

         

         훽! 하고. 몸이 강제로 이동 당했다.

         가볍게 어깨를 짚고 있던 쇼우의 손이 허락도 없이 허리춤으로 이동하더니, 자신의 뒤를 향해 마구잡이로 끌어당겼다. …감히 쳐다보지도 말라는 것처럼.

         

         “…그렇게 함부로. 손대려 들지 말아 주시겠습니까?”

         

         “어머, 야박하기는.”

         

         역린逆鱗을 건드려진 것처럼 날 선 반응을 돌려주는 그가 기꺼운 듯이 카사네가 웃음기 가득한 톤으로 흥얼거렸다.

         

         파트너에게 관심 좀 보였다고 발작하는 참석자, 손님을 상대로 어딜 어슬렁어슬렁 왔냐고 타박하는 주최자.

         음… 제 기준으로는 누가 더 잘못했는지 모르겠네요. 둘 다 너무 문제가 많아 보여서!

         

         오랜만에 신기한, 재밌는 구경을 했다는 것처럼 그녀가 웃었다.

         

         뭐, 그냥저냥 서로의 심기는 건드렸어도. 결과적으로 의심받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면 우리가 이득이다. 일이 끝나고 나면 안타깝지만 카사네의 손에 남은 실권은 거의 없을 테니까 더 견제할 것도 없겠지.

         

         “하, 뭐. 꼴 보기 싫은 애새끼라도, 누나된 도리로 술 몇 잔 내주지 못할 것도 없으니. 적당히 놀다가 알아서…….”

         

         …허나 담소가 끝나가는 분위기에 취한 게 나빴을까? 이만 가보라며 축객령을 내리려던 그녀의 입이 돌연 닫혔다.

         

         “…….”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고, 느슨해졌던 시선이 다시금 날카롭게 회장을 훑었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

         허면 용건 없이는 왕래도 없던 녀석이, 딱히 여자가 생긴 걸 자랑하러 온 것도 아니라면 왜 갑자기 찾아온 걸까.

         

         그냥 심심해서? 그럴 리가. 단순히 시비라도 걸러? 그건 너무 영양가 없지 않나?

         그리고 아까까지 미니 바 근처에 있던 헤이롱 중장 일행은 어디로 갔지? 화장실에라도 갔나?

         

         본격적인 개회 인사도 아직, 또한 거래까지 시간도 좀 남은만큼 그들이 자기 시야 안에 붙어있을 이유는 없었다. 그래, 논리적으로 없기는 한데….

         

         내가 아까 그녀를 짐승에 비유했던가?

         거의 동물적인 직감으로. 카사네는 수풀에 깔린 사냥 덫을 밟기 직전에 가까스로 다리를 멈추고는 쇼우를 직시했다.

         

         “…이 귀여운 구석이라곤 전혀 없는 성악性惡 막둥이가, 대체 그럼 여긴 뭐하러 온 거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김치로 따귀를 때려(소곤).

    익명을 희망하시는 독자님의 2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이번 달에 무단 휴재가 너무 잦아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조금 더 노력하겠습니다. 에어컨이 정말 간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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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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