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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4

     덜커덩, 덜커덩.

     합스베르크가 타고 왔다고 하는 마도자동선은 오로솔 아카데미와 지브롤터 협곡 사이를 누비는 정기선이 되었다.

     정확히는 지브롤터의 전용선. 

     그레이 지브롤터 개인에게 주는 것이 아닌 ‘크림슨 지브롤터 변경백’에 대한 제국 황태자의 선물이 되었고, 황태자는 내게 그 선물을 직접 타서 시운전을 해보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아버지께 보고할 것을 제안했다.

     물론 그런 말을 직접 한 건 아니고, 그러한 의도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그레이 개인에게 주면 또 무능한 미친놈이 탐이 나서 빼앗으러 올 수 있으나, 크림슨 지브롤터에게로 가는 선물이라고 하면 차마 건드리지 못할 테니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세인트 지오는 더 이상 마도자동선을 가지고 시비를 걸지는 않을 것이다.

     제국 황태자의 비호.

     라이오넬 바르셀의 실종.

     윈체스터 대공과 모르가니아 첩보부대의 움직임.

     암살하려고 상급 기사를 보냈는데, 그레이 지브롤터가 멀쩡히 살아있다는 점.

     

     이 모든 것이 암살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의미하고, 무능왕은 그 배후가 자신이라는 점을 어떻게든 숨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을 것이다.

     혹은 암살자를 보낸 배후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휘하에 있는 다른 이를 대신 내밀려고 발버둥을 치거나.

     ‘제로스 바르셀이 나서려나?’

     

     왕실 제1기사단의 단장이자 충성병자 중 한 명, 제로스 바르셀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세인트 지오가 ‘그레이에게 암살자를 보낸 건 그대다!’라고 명령을 내린다면, 제로스 바르셀은 군말 없이 그 명령을 따를 인간이다.

     ‘세인트런을 보기 전까지는 왕국에 충성하는 인간이었지.’

     세인트런.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나리아에게 왕도 수비를 맡기고, 자신은 왕도에서 도망치고 후방인 모르가니아 공작성으로 피신하다.

     왕도의 백성들을 버리고 홀로 도망친 모습을 보고 나서야 맹목적인 충성이 꺾이게 된 이들은 한둘이 아니었고, 황금여명의 기사단장 제로스 바르셀도 마찬가지였다.

     ‘근데 지금은 무능왕에게 신경을 쓸 때가 아니게 되어버렸네.’

     나를 향한 암살 시도는 그냥 해프닝으로 끝나버릴 만큼 심각한 상황이 발생했다.

     다름 아닌-

     “황제가 죽은 것 같습니다, 공주님.”

     “…….”

     황제 사망.

     나름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아스타시아는 마도자동선에 오르자마자 내가 던진 화두에 표정이 굳었다.

     “제국신문 어디에도 황제가 쓰러졌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없었지만, 반대로 황제가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도 제법 시간이 지났죠.”

     “황제 폐하가….”

     “합스베르크 황태자는 그걸 넌지시 알려주고 떠났습니다. 공주님을 황손녀가 아닌, 황녀라고 부르는 걸로.”

     “…황제를 암살하려고 한 걸까요?”

     아스타시아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남들 몰래 황제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기에, 이제 황제가 되려는 생각…?”

     “암살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친아버지이기 이전에, 암살을 시도했다가 걸렸을 때의 정치적 부담감이 상당하니까요.”

     패륜황제.

     그런 소리는 듣고 싶지 않을 것이다.

     만일 패륜을 통한 황위 계승을 생각했다면, 최소한 3년도 전에 아스타시아는 황손녀에서 황녀가 되었을 것이다.

     “제 생각에는 노환으로 쓰러진 것 같습니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정정하신 분이었는데.”

     “그러면 누군가가 독약으로 쓰러지게 했다거나. 조사는 해봐야겠습니다만, 어쩌면 정말 우연찮게 쓰러진 걸 수도 있습니다.”

     약간 비약을 좀 섞자면.

     “아마도 지금쯤 반역자로 목이 뎅겅 날아갔을 이사벨라 황태자비와 불륜을 저지르다가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불륜을 저지르다가 잘못…아앗?!”

     “이쪽에서 모든 유통망을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캐롤라인의 주 고객 중 한 명이 황제였거든요.”

     황제에게 아부하려던 자가 진상하기도 했고, 알음알음 제국 그림자들이 자양강장제 캐롤라인을 비싼 값에 사들이고는 했다.

     “황제가 부작용을 노리다가 그 부작용에 가버렸다거나, 심혈관질환이나 뇌출혈 등으로 쓰러졌다거나. 어느 쪽이든 거동이 불편하여, 더 이상 황제 노릇을 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합니다.”

     회귀 이전.

     황제는 정정했다.

     내가 졸업하는 시기가 되어서야 황제가 나이가 들어 노환으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합스베르크 입장에서는 그게 최후의 효도 아니었을까.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인간, 사랑 없이 결혼했다고는 하지만 합스베르크는 황태자비와 몰래 불륜을 저지르는 아버지가 늙어서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

     덕분에 그가 황제 작위를 물려받았을 때, 제국 내외적으로 그 어떤 잡음도 없었다고 하더라.

     물론 아이페리아 인더스트리를 전부 집어삼키거나 엘프의 숲을 제국민들 몰래 점령했던 일이라거나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합스베르크 황제를 향한 국민들의 지지는 고공행진을 이어 나갔다.

     특히 지브롤터를 회유하고, 노스트럼 왕국을 점령하여 기어이 통일제국을 달성했을 때는 지지율이 99%에 이른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그랬다.

     “일단 방학이 끝날 때까지는 기다려달라고 부탁은 했습니다만, 아마도 어려울 것 같기는 하네요.”

     “황태자가 그레이의 제안을 거절할 거라는 말인가요?”

     “아니요. 본인은 아마 최대한 들어주려고 할 겁니다. 하지만 외부 요인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일정을 당길지도 모르겠군요.”

     제국에는 이런저런 행사가 있고, 황제가 직접 국민의 앞에 나서서 연설을 하는 공식 행사도 있다.

     그런데 황제가 나타나지 않는다?

     한 번은 그러려니 하겠지만, 두 번 세 번 반복되기 시작하면 하나둘 의심하기 시작한다.

     황제가 어떻게 된 거 아니냐고.

     실제로 이미 뻗어있겠지만.

     “조금, 안타깝네요.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었는데.”

     “아스타시아. 황제와 제법 친했던 거 아닙니까?”

     “…오히려 합스베르크 전하와 더 친하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이겠죠? 황제는 저를 탐탁잖아하셨어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인간이었군요. 아스타시아를 탐탁잖아하다니.”

     2년 반 정도 일찍 죽은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어차피 늙으면 갈 때 되어 가는 게 인간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잘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지금의 황제는 왕국과의 평화 분위기에 그다지 좋은 사람은 아니니까요.”

     노스트럼 왕국을 대상으로 평화 협상을 주도하고 이에 관한 전권을 가지고 업적을 세운 건 황태자였다.

     “황제 입장에서는 무조건 전쟁으로 해결하려고 했을 겁니다. 지금의 황제는 정복군주였고, 적을 지배하여 복종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고 빠른 길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이었으니까.”

     황제는 황태자의 행동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못하고 뒤에서 견제했으나, 그 견제는 늙은 권력자가 벌인 추한 발악에 불과했다.

     “이사벨라 황태자비의 부정에 관한 이야기가 제국신문에 실렸죠. 아마 그때부터 황제 지우기 작업에 들어갔던 모양입니다.”

     “제가 아카데미에 있는 동안, 황궁에서 많은 일이 있었나 보네요.”

     “예.”

     이전에도 그랬지만, 아스타시아는 황궁에서-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합스베르크가 직접 왕국까지 와서 저만 보고 떠난 이유가 있다면, 제게는 제국에서의 상황을 직접 알려주려고 했기 때문이겠죠.”

     “…….”

     “이걸 고맙다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달라질 건 없습니다.”

     합스베르크가 아닌 다른 이가 제위에 올랐다면 조금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사벨라 황태자비와 황실 제3 기사단의 반역은 실패로 끝났고, 합스베르크 황태자는 국지적으로 일어나는 반란을 아주 손쉽게 제어하고 있습니다. 제국신문이 ‘반란’이라는 단어조차 나오지 않게끔, 언론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죠.”

     기자 중에 누구 하나는 종군기자로서 반역자를 소탕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신문에 찍어내기 마련인데, 그런 것도 없다.

     “아스타시아. 한 가지, 마음에 상처가 될 수 있는 추측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괜찮아요. 얼마든지 말씀해 주세요.”

     “에르윈 회장이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황태자와 손을 잡을 모양입니다.”

     “…….”

     언론은 황태자의 주력 영역이지만, 윤전기에 올라갈 문구와 내용을 정하는 건 에르윈 회장이다.

     “어쩌면 그녀가 세이레네 영지에 왔던 것도 그러한 동맹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후 관계는 어떻게 된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것 하나는 분명합니다.”

     에르윈 회장이 이전부터 황태자와 다시 손을 잡기로 했든.

     아니면 이번 만남을 통해 황태자에게 힘을 싣기로 했든.

     “그녀가 황태자비-를 넘어, 황후의 자리가 탐이 나서 합스베르크의 편이 되기로 한 게 아니라는 것.”

     “…….”

     “아스타시아, 당신을 황녀로 만들고 당신을 지키기 위해 합스베르크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싸우기 위해 황후가 되기로 결정한 겁니다.”

     에르윈 회장은 여인이 아닌, 어머니로서 선택을 내렸다.

     “그 결정을 존중하고, 응원하도록 하죠. 그 대신….”

     “그 대신?”

     “만일 합스베르크 황제가 황후를 내치려고 하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그때는 즉시 움직일 수 있게 조치를 취할 겁니다.”

     나는 대로를 달리는 지브롤터 마도자동선의 갑판을 가볍게 두드렸다.

     “합스베르크가 무슨 생각으로 이걸 보내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배가 한 척 생겼으니 이걸로 장난질을 해둬야죠. 다행히….”

     정말로,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여기에는 그 어떤 도청 장치도 도촬마석도 없으니.”

     위치추적 기능을 제외하면, 딱히 뭔가 문제가 있는 부분은 크게 없었다.

     * * *

     그 시각, 테르시안 제국 황궁.

     넓은 방.

     한때는 누군가의 집무실이었던 공간에 기온 유지 마법이라도 펼쳐진 것처럼 한기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그 가운데 넓은 유리관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 가운데, 인자한 얼굴의 대머리 노인이 반듯한 자세로 누워있다.

     죽기 전에는 이런 자세가 아니었겠지만,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유리관인 만큼 사후의 예우를 갖춰 자세를 잡았다.

     “아버지.”

     

     유리관에 조용히 손을 올리는 합스베르크 황태자의 표정은 무덤덤하기 그지없었다.

     “이사벨라를 달라고 했으면 줬을 겁니다. 자기 아내를 아버지에게 바치는 머저리 같은 아들이 되어달라고 말했다면, 최소한의 양보이자 효도로서 그리했을 겁니다.”

     죽은 자에게 하는 말이지만, 그 누구도 듣지 못한다.

     “그러나, 황위는 아니지요.”

     합스베르크의 눈이 형형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저를 죽이고, 이사벨라에게서 새 아들을 보아, 그 아이를 제 아들인 것처럼 위장하여 황태손으로 세우려고 하셨습니까? 이사벨라로부터 낳은 자식 중 하나를 임시 황제로 내세워, 당신의 아들이 제위에 오를 때까지 수렴청정시키실 생각이었습니까?”

     질문이다.

     “그렇게 하여 제게서 황위를 빼앗은 뒤, 노스트럼을 향해 제국의 모든 전력을 들이받으려고 했던 겁니까? 당신이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정복하지 못했던 단 하나의 국가를 지배하기 위해?”

     하지만 이는 사실상 99%에 가까운 추측이다.

     “유감입니다, 폐하. 그 모든 것을 덮는 것이 제 마지막 효도라는 것을 이해해 주시길.”

     

     끼이익.

     영안실의 문이 열리며, 한 여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오셨소, 황후.”

     “아직 황후가 된 건 아닐 텐데요.”

     에르윈 회장-이제는 황태자비라고 불러야 할 여인이 익숙하지 않은 듯 드레스 차림으로 나타났다.

     “황제 폐하는….”

     “그대에게도 좋은 시아버지는 아니었잖소?”

     “애초에 시아버지였던 적도 없지만, 회사 운영하기에 썩 나쁜 황제는 아니었죠.”

     “돈 내놓으라고 매번 불러댔는데?”

     “그 아드님도 똑같이 할 거 아닌가요?”

     “흠, 글쎄.”

     합스베르크 황태자는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키득거렸다.

     “일단 선황폐하께서 얼마나 예산을 횡령했는지, 국고가 얼마나 비어있는지 보고 판단을 내려야지.”

     “…….”

     “돈은…그래. 어디든 나올 구석이 있지. 비록 이사벨라 그 미친 인간이 쓸데없는 곳에 돈을 갖다버렸지만, 제국에는 돈 나올 구석이 제법 많으니.”

     “제국 시민들 코 묻은 돈이라도 갈취하시게요?”

     “그레이 지브롤터가 그러더군. 경룡장을 열 생각 없냐고.”

     “…….”

     “에르윈 회장께서는 도박으로 돈을 번다는 것에 어떤 생각이 드시나?”

     “뭐…. 국고 채우기에는 부족하겠지만, 황제 폐하의 뒷주머니 챙기기에는 충분하다?”

     “그대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합스베르크 황태자는 잠시 눈을 감은 뒤.

     “단기채권을 하나 만들어놔야겠군.”

     “단기채권…?”

     “말이 단기채권이라는 거지. 즉위 기념으로 기념우표라도 하나 만들어서 팔아치워야 하나? 아니야. 복권이라도 하나 만들어서 뿌려야겠어. 오직 단 한 명만 당첨되는 복권을.”

     아이가 못된 장난을 꾸민 것처럼, 키득거리며 옅게 웃었다.

     “당첨자는 정해져 있지만.”

     “누구요. 당신?”

     “아니.”

     합스베르크 황태자가 가볍게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나를 가장 먼저 황제라고 불러준 사람에게.”

     “…….”

     “지금까지 나는 황제가 아니었지. 하지만.”

     합스베르크는 자신의 손을 가슴에 올리며 옅게 웃었다.

     “그가 나를 황제라고 불러준 순간부터, 비로소 나는 황제가 된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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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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