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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4

       

       

       

       

       스튜디오엔믹스.

         

       어느 날, 혜성처럼 등장한 한 작가를 필두로 순식간에 국내 영상 제작사의 톱으로 거듭나게 된 곳.

         

       그런 스튜디오엔믹스에는 전속으로 계약된 두 명의 작가(각본가)가 있었다.

         

       참고로 현재 스튜디오엔믹스는 이 두 명의 작가를 제외하고 각본 쪽으로 따로 외주를 받지는 않는 상태였다.

         

       어찌 보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작가 두 명에게 부담을 줄 수 있는 비효율적인 운영 방식.

         

       비효율적이지만 동시에 그만큼 두 작가를 전력으로 믿고 지원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흔히 양보다는 질, 우리들은 틀리지 않았다라는 표현을 빌려 쓸 수 있었으며, 실제로 이 방식으로 톱의 자리를 계속 유지하고 있으니 딱히 태클을 걸 여지가 없었다.

         

       다만, 굳이 두 명까지도 필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927 작가, 단순히 이 한 명의 작가만으로도 스튜디오엔믹스는 계속 최정상의 반열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한 명의 작가는 927 작가의 공백기를 메꿔주는 보조 역할에 불과하다─

         

         

       “라는 게 세간의 평가겠지. 근데 뭐 어쩌라고?”

         

       

       스튜디오엔믹스의 두 번째 전속 작가, 강예린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물론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말과는 다르게 속으로는 그 사실을 엄청 의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강예린을 포함한 다른 작가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하는 사항이었다.

         

       오죽하면 업계에서도 927 작가의 독주가 과연 언제 멈출지 짐작조차 못 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전속 작가로 데뷔 이후, 연달아 두 작품을 흥행시킨 강예린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성적에 목이 메말라 있었다.

         

       그야 떡 하니 같이 일하는 빌어먹을 놈이… 아니라 작가가 세계 최고라고 불리는 놈인데 강예린의 입장에선 더 분발해야 하는 것이 맞았다.

         

       때문에 이번 강예린의 작품은 앞선 두 작품보다 훨씬 칼을 갈아가면서 만든, 말 그대로 야심 찬 차기작이었다.

         

       스튜디오엔믹스 측도 그런 강예린의 차기작 대본을 받고 1차 미팅부터 곧바로 제작 확정의 결심에 섰으니……

         

         

       “가히 내년 최고의 기대작이라고 불리기에 충분하겠지?”

         

         

       강예린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여인을 향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에 아까부터 그녀가 건네준 대본을 유심히 읽고 있던 여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 그럼 네 남편인 927 작가가 만든 대본과 비교하면 어떤데?”

         

         

       상대방으로부터 제법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자 강예린이 혹시 몰라 질문해 보았다.

         

       강예린이 알고 있는 범주에서 누구보다 927 작가라는 사람 자체를 잘 꿰뚫고 있으며, 그가 만든 대본을 가장 많이 읽어본 사람이 바로 눈앞에 앉아 있는 여인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그 부분은 잘 모르겠어요. 선배님.”

         

         

       여인의 입에서 즉답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녀가 쓰고 있던 검은 선글라스의 밑으로 옅은 눈웃음을 발견한 강예린은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만약 여인과 알고 지낸 세월이 그리 길지 않았거나, 생판 모르는 남이었다면 그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예린은 저것이 ‘연기’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저 여인에게 있어서 숨 쉬듯 간단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바로 연기였으니까.

       

       반대로 이 상황에서 귀찮게 굳이 연기까지 펼친다는 것은 자신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회피하고 있는 것으로 봐도 무방했다.

         

       즉, 여인의 안에서 저울이 여전히 기울어져 있었다.

         

       ……자신이 아닌 927 작가 쪽으로 말이다.

         

         

       “명색이 최고의 인기 여배우라고 불리는 설소영이 너무 티 나게 연기하는 거 아니야?”

       “죄송해요. 선배도 아시다시피 어차피 제 대답은 정해져 있으니까요.”

       “쯧. 어쨌든 그거 쓸데없는 배려야. 나는 직설적으로 말해주는 편이 훨씬 타격이 덜 온다고. 후… 이런 부분은 어째 그놈이랑 더 닮아가는 것 같냐.”

       “어머, 그 말은 저한테 있어서 최고의 칭찬인데요? 예린 선배.”

       “그래그래. 너희 사이좋은 거 세상 사람 모두가 다 알거든? 그러니까 얼른 본론으로 넘어가자고.”

         

         

       눈앞의 여인… 정확하게는 설소영의 말을 되받아치며 강예린이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어쨌거나 오늘 강예린이 설소영을 스튜디오엔믹스 본사까지 부른 이유는 단순하게 자신의 작품의 여주인공 역으로 캐스팅하기 위해서였다.

         

       참고로 캐스팅 과정에서 여주인공 역과 여주인공의 아역 역은 일종의 세트라고도 볼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어떠한 배역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는 것이 바로 아역 배우였기에 가능한 둘 사이의 위화감이 적어야만 했다.

         

       그래야 작중에서 어색한 느낌이 덜 나며, 그로 인해 몰입의 방해요소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

         

       뭐… 솔직히 캐스팅이 더 어려운 쪽은 자원이 현저히 더 적은 아역 배우 쪽이지만, 강예린은 먼저 여주인공 역부터 캐스팅을 확정해 큰 틀부터 잡고 싶었다.

         

       추가로 그 부분에서 욕심도 조금 냈다.

         

       강예린이 생각했을 때, 여배우 쪽에서 가장 뛰어난 연기 실력과 화제성을 가지고 있는 배우를 한 명 정도 캐스팅하는 것.

         

       그 배우가 바로 설소영이었고, 그녀를 직접 캐스팅하기 위해 오랜만에 대면까지 했건만…….

         

         

       ‘거기서 더 예뻐졌네.’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5분 전, 강예린이 설소영과 처음 마주했을 때 느낀 점이었다.

         

       솔직히 학생 시절 때부터 외모로 워낙 유명했으니 그렇게 큰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건 강예린의 큰 오산이었던 모양.

         

       그리고 외모보다 좀 더 눈에 띄는 것은 분위기였다.

         

       뭔가 좀 더 여유가 느껴지고, 어른스러워졌다고 해야 하나?

         

       뭐… 현재 나이로만 따져봐도 자신보다 한 살 어린 27살이었기에 충분히 납득이 가능한 영역이긴 하다.

         

       근데 거기서 딸 아이를 한 명 낳고, 그 아이의 나이가 올해 7살이라고 생각해 보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이 부분은 서은우에게서 대충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휴식기 때 동안 지독하게 몸 관리를 했다고 한다.

         

       후에 육아 부분에서 안정기가 찾아오게 된다면 곧바로 활동을 재개하기 위함이겠지.

         

       또한, 앞서 말했다시피 이다혜와 설소영은 지난 몇 년 동안 긴 휴식기를 가졌다. 그것도 인생에서 가장 꽃다운 시기일지도 모르는 20대 초반에 말이다.

         

       아직 독신인 강예린의 입장에서 그것이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강예린이 중요한 캐스팅을 바로 눈앞에 두고 이 생각을 그대로 전할 리가 없었다.

         

       애초에 딱히 오지랖을 부릴 상대들도 아니고, 볼 때마다 행복한 얼굴로 사는 사람들인데 굳이?

         

       어쨌거나 강예린은 잡생각을 지우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

         

         

       “이다혜도 작년 말부터 가수로서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잖아. 그러니 이제 너도 슬슬 복귀 각을 잡아야 하지 않겠어?”

       “뭐… 어느 정도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그래? 그럼 그 시작을 내 작품으로 하면 어떨지에 대해 조심스럽게 의사를 물어보고 싶은데.”

       “…….”

       “뭐야 그 침묵은? 설마 천하의 설소영이 휴식기 때문에 연기력이 죽었다는 말을 할 생각은 아니지? 아, 누구 눈치 때문에 과한 스킨십이 들어갈 장면은 아예 뺄 거니까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말고.”

       “조금만 고민해볼게요.”

       “그래. 이왕이면 대본도 가져가서 실컷 더 읽어보고, 고민한 다음 신중하게 판단을 내려줘. 이 부분은 작가인 내가 강요할 입장은 못 되니까.”

         

         

       강예린의 말에 설소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으로 미팅 일정이 모두 끝나게 되었으며, 나영진 PD가 직접 차로 설소영을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기로 하였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었나…….”

       “네? 아직 점심인데요?”

       “아, 혼잣말이었어요. 그냥 요즘 들어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아서요. 특히 아이들을 볼 때마다 더 그런 거 같아요.”

         

         

       설소영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영진은 백미러를 통해 슬쩍 뒷자리에 앉아 있던 설소영의 표정을 살펴봤다.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며 싱긋 웃고 있었고, 나영진 역시 이제는 저 미소에 거짓 따위가 담겨 있지 않다는 것 정도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설소영과 알고 지낸 사이가 제법 길어서 그렇게 느낀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은우 군, 요즘 들어 부쩍 자주 웃는 것 같군요.

       ─그래요?

       ─예. 휴대폰을 볼 때마다 대놓고 흐뭇하게 미소 짓고 계시던데.

       ─음… 보여 드려요?

         

         

       자신의 휴대폰에 저장되어있는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서은우가 짓고 있던 순수한 미소. 그것과 닮아서 더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나영진 역시 설소영의 말에 공감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때로부터 벌써 12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났지 않는가?

         

       회사의 위기 속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공모전을 열었고, 그 과정에서 나영진과 스튜디오엔믹스는 한 천재와 인연을 쌓게 되었다.

         

       물론 그때부터 온갖 사건과 사고에는 다 휘말리면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긴 했지만.

         

       다만, 나영진은 그와 보냈던 세월이 그리 길지만은 않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원래 행복한 순간일수록 빨리 지나가는 법이죠. 그러니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것은 분명 좋은 현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좋은 말이네요. 그럼 나 PD님은 어떤 것 같으세요?”

       “저도 소영 양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하긴 하는데… 어떤 대단한 분의 작품을 제작하는 순간만큼은 시간이 참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만.”

         

         

       약간의 하소연이 담긴 나영진의 말에 설소영은 피식 웃었다.

         

       서은우의 첫 작품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그의 작품을 반강제적(?)으로 도맡아 왔으며, 백준영과 함께 927 작가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라고 평가받는 인물.

         

       이것이 나영진이라는 사람에 대한 세간의 평가였다.

         

       하지만 설소영은 나영진이 저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연차와 실적이 쌓일 때로 쌓인 나영진이 여전히 현장에서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는 것도 그렇고, 실력과 센스를 겸비하지 못했다면 927 작가의 작품을 계속 도맡지도 못했을 것이다.

         

       애초에 927 작가가 계속해서 제작총괄의 자리를 그에게 맡기고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남편은 자신의 작품에 한해서 누구보다 까탈스러운 사람이니까.

         

         

       “그러고 보니……”

         

         

       그때였다.

         

       나영진이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은우 군이 자녀분들 사진을 제게 보여주었는데 은빈 양이 소영 양과 너무 닮아서 조금 놀랐습니다.”

       “아, 저도 가끔 은빈이가 제 어린 시절의 모습과 많이 겹쳐 보이긴 해요. 아무래도 딸은 아빠 쪽을 더 많이 닮는다는 말이 무조건 맞는 건 아니더라고요.”

         

         

       설소영은 그 말을 하면서 한 가지 웃고픈 추억이 떠올랐다.

         

       부디 딸들이 자신보단 엄마 쪽을 더 닮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간절히 기도를 올리던 남편의 간절한 모습을 말이다.

         

       처음에는 웃으라고 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저쪽은 완전 진심으로 이 부분을 걱정하고 있었다.

         

       다행히 아이들이 점차 커가면서 앞서 했던 걱정은 거의 사라진 모양.

         

       하지만 설소영과 이다혜의 시선에선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걱정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옛날부터 그 사람은 그런 부분에서 이상하게 기준이 높았다. 물론 그 기준이 인기 남배우인 박하준이라면 딱히 할 말이 없긴 한데…….

         

         

       ‘객관적으로만 봐도 남편은 나름 잘생겼으니까.’

         

         

       그렇기에 처음 927 작가의 정체가 처음 공개되고 더 큰 화제성을 얻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능력도 있는데 나이도 어리고, 심지어 겸손과 외모까지 갖추고 있다?

         

       이보다 더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에 좋은 조건이 어디 있겠는가.

         

       뭐… 그 덕분에 임자가 있는 몸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편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긴 해서 조금 불안하긴 하다.

         

       

        “하하. 역시 저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군요.”

         

         

       설소영이 그러한 고민에 빠진 한편, 그녀의 말을 들은 나영진이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럼 언젠가는 두 분이 같은 작품에 함께 출연하는 그림도 제법 흥미롭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어떠한 불순한 의도를 담고 있지 않은, 말 그대로 순수한 호기심을 담아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어머니인 설소영과 딸인 서은빈.

         

       만약 자신의 어머니 쪽을 많이 닮은 서은빈이 설소영의 아역 역을 맡아준다면 그것보다 작품 내에서 위화감이 적을 일도 없을 거다.

       

       거기서 만약 부모의 재능까지 물려받았다면……

         

         

       ‘여러 의미에서 화제가 되겠지.’

         

         

       물론 나영진은 이 문제에 관해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흘러 한 4, 5년 정도 뒤에 고민해 볼법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하지만 나영진은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인기 여배우에게 집착 받는 천재작가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She likes me enough to win an award. Meet Seo Eun-Woo, a passionate K-Drama fan turned writer, whose life takes an unexpected twist when he awakens in a world of mediocre dramas. Frustrated and desperate for the perfect storyline, he stumbles upon a former actress who sparks his creative genius. Watch as their fateful encounter turns his life into a captivating drama of it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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