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64

<4월 2일 기준으로 연재되었던 159화 ~ 163화 내용이 수정되어 159화 ~ 167화까지 연재되었습니다. 완전히 다른 내용이기에 4월 2일 이전에 읽으셨던 분들은 159화부터 다시 읽으시거나 168화 초반에 적어놓은 요약본을 읽어주세요 >
   
   ​
    ​
    ​
    침묵이 내려앉은 두 사람 사이로 환희에 잠긴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
    ​
    “아아! 리안님께서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식물을 자라게 하셨다!”
    ​
    ​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평소 ‘리안교’를 전파하고 다니던 신도가 큰 소리로 소리치며 달려 나갔다. 저택 안에서 리안교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
    ​
    “뭐? 생명을 창조하셨다고?”
    “아니야! 땅을 창조하셨다고 했어!”
    ​
    ​
    ..소문이 언제나 그렇듯 리안의 이야기는 끝없이 부풀어 올랐다. ‘리안교’는 평소에도 미친 소리를 스스럼없이 입에 담던 이들이었기에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 탓에 소문은 점점 크기를 키워갔고.
    ​
    ​
    “천지창조다! 세계를 만드시고 계신 거야!”
    ​
    ​
    오로지 리안교 내에서만 커진 소란이었기에 리안은 해탈한 표정으로 퍼져나가는 소문을 바로잡지 않았다 -.. 라는 건 조금 나중의 일. 지금은 수상한 신관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였다.
    ​
    ​
    마력으로 대화 소리를 차단하는 막을 만들어 둔 탓에, 두 사람의 대화가 새어 나갈 위험은 없었다. 하지만 ‘리안교’ 신도가 다른 신도를 끌고 올 수도 있기에 자리를 바꿀 필요가 있었다.
    ​
    ​
    두 사람은 저택 뒤에 자리한 창고의 뒤쪽으로 향했다. 장작이나 잡다한 물건을 보관해두는 창고는 작은 크기였지만 두 사람의 대화 정도는 가뿐하게 숨겨줄 수 있는 크기였다.
    ​
    ​
    “그 신관이 수상하다고는 하나, 자네 정도의 힘을 가진 존재일지도 모르니 섣불리 추궁할 수 없네. 그러니 도움을 줄 수 있겠나? 같은 신관인 자네라면 내가 보지 못한 걸 발견할 수 있을 테니.”
    “그런 거라면 당연히 도와야죠!”
   “고맙군.”
    ​
    ​
    그 신관이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힘을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으니 자연스럽게 신의 인장 쪽으로 시선이 갔다. 
    ​
    ​
    처음 신의 인장을 받았을 땐 눈에 띄는 색을 품고 있었지만 신성력의 힘이 강해질수록 신기하게도 피부색과 비슷한 색으로 변해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확인하기 힘들었다. 
    ​
    ​
    날이 갈수록 커지는 신성력의 크기만큼 인장의 크기도 커져, 어느새 손목과 팔뚝까지 번진 상태였다. 만약 인장의 색이 피부색과 비슷해지지 않았다면 장갑을 끼고 다녀야 했을지도 몰랐다.
    ​
    ​
    ‘신의 인장은 말이 통하는 것도 아니라서 걱정했는데 다행인 일이지.’
    ​
    ​
    마검과 계약한 증거로 새겨진 인장은 마검의 의지대로 문양의 크기와 색을 조절할 수 있어 눈에 띄지 않도록 조절해달라 부탁할 수 있었다. 마검이 극도로 흥분했을 땐 섬뜩한 문양이 어깨까지 타고 오르기에 이때는 주의할 필요가 있었지만, 그 정도로 흥분할 만한 강자가 없어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
    ​
    ‘피를 먹을 때 종종 색이 진해져서 조금 웃겼지.’
    ​
    ​
    마검이 피를 빨아 마실 때마다 인장이 진해졌다가 흐려지길 반복하는 걸 보다 보면 충전 중인 전자제품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
    ​
    인장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장을 건네주었던 ‘다크 판타지 세계의 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
    ​
    ‘그러고 보니… 신전에 방문하면 신전에서 많은 도움을 줄 거라고 했었지.’
    ​
    ​
    무려 신이 해준 조언이었기에 당시에는 잘 기억해두었다가 써먹을 생각이 가득했다. 마을에 자리한 신전을 방문하기 전까지는.
    ​
    ​
    ‘도움은커녕 방해만 됐지.’
    ​
    ​
    리안이 방문했던 신전은 멀쩡한 신관이 단 한명도 없었던 범죄자 소굴이었기에 개그 신에게 밟히고 있는 다크 판타지 신의 입장에선 억울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
    ​
    문제는 다른 신전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런 범죄자가 떡하니 대신관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정도로 신전은 썩어가고 있었다. 신실한 대신관이 관리하는 신전을 찾는 건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려울 터였다.
    ​
    ​
    그나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법은 제국 수도에 자리한 대신전에 방문하는 것뿐이었다.
    ​
    ​
    ‘기회가 되면 한 번 찾아가지 뭐.’
    ​
    ​
    제 일행의 곁을 떠난다고 해도 멀찍이 거리를 둔 채 죽을 것 같을 때마다 한 번씩 일행을 도와줄 생각이었기에 쉽사리 수도로 떠난다고 생각할 순 없었다. 대신전이 완전히 썩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경우의 수도 존재했기에 ‘기회가 되면 방문하자’라고 결론 내렸다.
    ​
    ​
    “그럼 준비가 되는 대로 호출할 테니 쉬고 있게.”
    ​
    ​
    신전 방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
    ​
    ***
    ​
    우르르 몰려다니면 주민들의 경계 섞인 시선을 받을 수 있었기에 리안과 공작, 기사단장과 마법사 이렇게 넷이서 신관을 찾아 나섰다.
    ​
    ​
    신관을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
    ​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조심하십시오.”
    ​
    ​
    마을 중앙, 신관은 가장 화려한 건물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신관은 오랜 세월로 머리를 하얗게 물들인 나이 많은 노인이었다. 길게 기른 수연이 턱 아래까지 내려와 산타클로스 같은 인자한 외모를 자랑했다. 마치 ‘선하다’라는 단어를 빚어놓은 것 같은 사람이었다.
    ​
    ​
    노인은 기괴한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사람’처럼 보여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안도감이 들었다.
    ​
    ​
    ‘뭔가… 어디서 본 거 같은데?’
    ​
    ​
    리안은 묘한 기시감에 미간을 구긴 채 노인의 얼굴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뒤적여도 떠오르는 얼굴이 없어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웠다. 잊어버린 게 아닌가 싶다가도 워낙 개성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어 잊어버리기도 힘들어 보였다.
    ​
    ​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공작이 대표로 신관에게 다가가 대화를 걸었다.
    ​
    ​
    신실한 신관의 표본 같은 노인과 온화한 표정을 한 공작의 대화는 겉으로 보면 평화로워 보였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날카로운 말들이 숨겨져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
    ​
    ‘와, 이게 귀족식 화법이구나.’
    ​
    ​
    신관이 일괄적으로 똑같은 대답을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혀 다른 질문을 던져서 확인하는 모습이 오싹할 정도였다. 
    ​
    ​
    리안은 공작의 말솜씨에 속으로 감탄하며 생각했다.
    ​
    ​
    ‘내가 없었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
    ​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신관이 예상치 못한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
    ​
    “아, 이 주변의 환경이 변한 건 제가 한 게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분명 마을 주민들은…”
    “아아, 그에 대해 설명해 드리자면 조금 길어질 수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으니 말해보게.”
    “크흠 -… 전 이곳저곳을 떠돌며 신의 뜻을 전하는 신의 종입니다. 너무 많은 것을 탐하지 말라는 신의 뜻에 따라 대가 없이 아픈 이들을 도와주고 작은 도움을 받으며 여행을 이어왔죠. 이곳에 들린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
    ​
    노인은 길게 자란 하얀 수염을 쓸어내리며 옛날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려주는 할아버지처럼 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에 공작은 지루함을 참고 귀를 기울였다.
    ​
    ​
    길게 이어진 대화를 요약하자면 이랬다.
    ​
    ​
    노인은 평소처럼 마을 사람들을 도와주고 약간의 돈이나 음식을 얻을 계획으로 가까운 마을을 찾았다. 의사가 귀한 세계였기에 신관은 환영받으며 마을 사람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
    ​
    치료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작스럽게 눈보라가 치기 시작했고 노인은 어쩔 수 없이 마을에 잠시 머물게 되었다.
    ​
    ​
    문제는 눈보라가 일주일이 넘도록 멈추지 않으면서 생겼다. 떠돌이 신관인 노인은 신성력이 미약하여 큰 상처를 돌보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고, 어느 순간부터 식량을 축내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
    ​
    눈보라가 쏟아지는 상황에 내쫒기면 그대로 목숨을 잃을 게 뻔했기에 노인은 필사적으로 방법을 강구했고, 그나마 떠오른 방법이 신께 기도를 올리는 것이었다.
    ​
    ​
    새벽부터 일어나 신께 기도를 올리려는 순간, 창문 밖으로 눈보라가 기이한 바람에 휩쓸려 사라지는 게 보였다. 기적 같은 장면에 신관은 감격하며 신께 감사 기도를 올렸다. 모든 게 신의 자비 덕분이라 생각한 것이다. 
    ​
    ​
    그는 환희에 잠긴 심정을 숨기지 못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이 모든 게 신의 자비라고 떠들고 다녔다. 물론 아무도 믿지 않았다. 
    ​
    ​
    신관은 이 마을이 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하여 며칠 동안 더 머물며 기도를 올렸다. 문제는 그다음 날부터 시작되었다.
    ​
    ​
    다음날이 되자 마을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몬스터들이 녹아내리듯 사라져버렸고, 그다음 날에는 쌓여있던 눈이 천천히 녹아내려 파릇파릇한 초록색 풀을 내보였다.
    ​
    ​
    경악스러운 기적이 며칠이고 이어지자 마을 사람들은 노인을 신이 보내주신 사자라며 칭송하기 시작했다. 이때쯤 부터 노인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인지했다.
    ​
    ​
    신의 자비라기엔 기이한 기운이 주변에 만연했기 때문이다. 
    ​
    ​
    노인은 뒤늦게 모든 게 오해라고 소리쳤지만, 마을 사람들은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노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
    ​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간다는 걸 인지하곤 다른 신전에 도움을 청하고자 마을을 떠나려 했지만, 마을 사람들이 악마에 홀린 것처럼 눈을 뒤집고 쫓아와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머무르며 수상한 흔적을 찾아내고 있다고 했다.
    ​
    ​
    ‘쉽게 말해 조력자라는 말이네?’
    ​
    ​
    게임이든 소설이든 막막한 상황에서 물꼬를 터 줄 조력자는 필수적으로 등장한다. 눈앞에 있는 노인은 딱 그런 ‘조력자’인 듯했다. 
    ​
    ​
    “가능하면 조사를 도와달라 부탁드리고 싶지만… 이 마을에서 가장 수상한 건 저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지금까지 조사한 정보라도 부디 받아주십시오.”
    ​
    ​
    노인은 그리 말하며 낡은 종이 뭉치를 내밀었다. 마법사가 종이에 아무런 저주나 마법이 걸리지 않은 걸 확인한 후 공작에게 종이를 넘겨주었다.
    ​
    ​
    “그대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네. 도움을 청할 일이 있다면 의견을 묻고자 찾아와도 되겠나?”
    “허허, 그리해주신다면 제가 감사하지요.”
    ​
    ​
    공작은 마을을 살리기 위해 열심히 정보를 모아온 신관에게 예를 표한 후 일행과 함께 저택으로 돌아왔다.
    ​
    ​
    “신관님은 범인이 아닌 것 같군요.”
    “글쎄, 그건 모르는 일이다.”
    ​
    ​
    기사단장이 자신도 모르게 그리 중얼거리자 공작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
    ​
    “아이, 여자, 노인. 이 셋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니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예!”
    ​
    ​
    리안은 일행의 뒤를 따라가며 미간을 찌푸린 채 턱을 쓰다듬었다.
    ​
    ​
    ‘분명 어디서 봤는데… 끙…’
    ​
    ​
    리안은 재차 찾아온 기시감에 끙끙거리고 있었다. 기시감이 한 번 느껴졌으면 모를까 반복적으로 느껴지는 상황에서 ‘뭐 어때? 괜찮겠지!’하고 어깨를 으쓱하고 지나가면 작은 눈덩이가 집채만 한 눈덩이가 되어 리안을 덮칠 터였기에 기억을 더듬는 걸 멈추지 않았다.
    ​
    ​
    ***
    ​
    ​
    ‘크하하핫…! 모든 게 계획대로 잘 굴러가는군.’
    ​
    ​
    새하얀 수염을 느릿하게 쓸어내리고 있는 인자한 노인이 속으로 겉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비열한 광소를 터뜨렸다.
    ​
    ​
    공작의 예상대로 노인은 마을을 기이한 상태로 만든 범인이었다.
    ​
    ​
    ‘크흐흐,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몸을 빼앗을 걸 그랬어.’
    ​
    ​
    노인의 비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누군가’의 몸을 빼앗아 인간 행세를 하고 있었다. 
    ​
    ​
    ‘빌어먹은 울음소리를 꾸역꾸역 참기만 했던 과거가 조금 후회되는군.’
    ​
    ​
    노인의 머릿속에 시도 때도 없이 울음을 터뜨리며 떼를 쓰고, 무려 사천왕 중 한명인 에르보안을 스토킹하다가 마왕군에서 쫒겨나기까지 했던 분홍 머리 변태녀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
    ​
    그렇다. 노인이 빼앗은 몸의 주인은 리안과 공작의 공격에 하늘의 별이 될 것처럼 날아가 버린 ‘네크로맨서’였다. 
    ​
    ​
    네크로맨서는 우주까지 날아갈 것처럼 쏘아져 올라가다가 그대로 쇼크사했고, 비어버린 몸을 노인이 차지하게 된 상태였다.
    ​
    ​
    네크로맨서이 누리던 아득한 행운이 전부 불행으로 바뀌어, 운 나쁘게 몸이 빼앗긴 것처럼 보였지만 이는 예정된 일이었다.
    ​
    ​
    그녀가 강력한 몬스터를 사역할 수 있었던 것도, 에르보안 조차 고개를 저을 정도로 어려운 공간 이동 마법을 성공한 것도 전부 -… 노인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행운’이었기 때문이다. 
    ​
    ​
    그녀가 누렸던 모든 행운은 영혼을 포함한 모든 것을 내어준다는 불공정한 거래 덕분에 누릴 수 있었던 것들이다. 당사자조차 알 수 없었던 이 거래가 성사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
    ​
    네크로맨서의 몸을 꿀꺽해버린 존재가 인간과 격이 다른 존재였기 때문이다. 
    ​
    ​
    ‘아아 -… 아니지, 처음부터 몸을 빼앗았다면 공작가에 숨어들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를 얻을 수 없었을 테니. 딱 적당한 타이밍에 몸을 빼앗은 거라고 할 수 있겠군. 흐흐, 이 또한 그분의 축복이 나와 함께한다는 증거!’
    ​
    ​
    노인의 정체는 ‘그분’과 함께 텅 비어버린 세계를 꿀꺽하고자 다크 판타지 세계에 숨어든 ‘외신’이었다.
    ​
    ​
    무려 ‘신’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만큼 어마어마하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것 같지만 -… 노인은 외신들 중 약한 편에 속하는 존재였다.
    ​
    ​
    과거 리안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가 개그 신의 입속으로 다이빙 해버린 외신보다 더 허접한 존재였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말단 중의 말단, 외신보단 잡신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존재 정도 되겠다.
    ​
    ​
    그 탓에 노인이 세운 계획은 약자의 것처럼 야비하고 은밀했다.
    ​
    ​
    ‘지금처럼 적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라 경계심이 한껏 올라간 상황에선 특히 선의의 손길이 달콤할 터. 끔찍한 함정으로 정신력이 왕창 깎인 인간을 공략하는 건 생명체 없는 세계를 꿀꺽하는 것만큼 쉬운 일이지.’
    ​
    ​
    자화자찬의 말이 덕지덕지 붙어 길어지는 생각을 짧게 요약하자면, ‘끔찍한 경험으로 인해 정신이 너덜너덜해진 공작을 인위적인 사고에서 구해주어 신뢰를 얻어 가까워진다.’정도 되겠다.
    ​
    ​
    마음이 가는 여자에게 호감을 얻어보고자 양아치들과 결탁하여 인위적인 위기를 만들고, 인위적인 구원 서사를 만든다!
    ​
    ​
    말만 들어도 유치해 보이는 작품명 ‘은혜 갚는 공작’은 공작이 마을에 도착한 순간부터 막을 올린 상태였다.
    ​
    ​
    ‘이대로만 착착 진행되면 난 공작가의 은인이 되어 제국의 중심에 숨어들 수 있겠지. 그리된다면 마왕군에 도움이 되는 묵직한 정보들을 수없이 얻어내 ‘그분’의 총애를 얻을 수 있을 거야! 크흐흐..!’
    ​
    ​
    시나리오 첫 번째 목표인 ‘공작에게 무해한 사람으로 어필하기’가 무난하게 성공한 덕분에 노인은 잔뜩 기고만장해진 상태였다. 이미 손안에 성공이라는 달콤한 열매가 들려있기라도 한 것처럼 황홀한 기분에 빠져들어 히죽거리기 바빴다.
    ​
    ​
    외신 아니, 잡신은 몰랐다. 본인이 칭송하고 있는 ‘그분’이 경계하고 있는 존재가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과 그 존재가 가진 (개그 필터) 권능이 ‘속으로 기고만장하게 제 계획을 술술 불면 100% 확률로 망하게 된다’라는 힘을 품고 있을 거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
    ​
    “아니, 이게 왜 이렇게 되는 건데..?”
    ​
    ​
    그 때문에 잡신은 망해버린 제 계획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
    ​
    ​
    ​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4월 2일 기준으로 연재되었던 159화 ~ 163화 내용이 수정되어 159화 ~ 167화까지 연재되었습니다. 완전히 다른 내용이기에 4월 2일 이전에 읽으셨던 분들은 159화부터 다시 읽으시거나 168화 초반에 적어놓은 요약본을 읽어주세요 >

침묵이 내려앉은 두 사람 사이로 환희에 잠긴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아아! 리안님께서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식물을 자라게 하셨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평소 ‘리안교’를 전파하고 다니던 신도가 큰 소리로 소리치며 달려 나갔다. 저택 안에서 리안교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생명을 창조하셨다고?”

“아니야! 땅을 창조하셨다고 했어!”

..소문이 언제나 그렇듯 리안의 이야기는 끝없이 부풀어 올랐다. ‘리안교’는 평소에도 미친 소리를 스스럼없이 입에 담던 이들이었기에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 탓에 소문은 점점 크기를 키워갔고.

“천지창조다! 세계를 만드시고 계신 거야!”

오로지 리안교 내에서만 커진 소란이었기에 리안은 해탈한 표정으로 퍼져나가는 소문을 바로잡지 않았다 -.. 라는 건 조금 나중의 일. 지금은 수상한 신관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였다.

마력으로 대화 소리를 차단하는 막을 만들어 둔 탓에, 두 사람의 대화가 새어 나갈 위험은 없었다. 하지만 ‘리안교’ 신도가 다른 신도를 끌고 올 수도 있기에 자리를 바꿀 필요가 있었다.

두 사람은 저택 뒤에 자리한 창고의 뒤쪽으로 향했다. 장작이나 잡다한 물건을 보관해두는 창고는 작은 크기였지만 두 사람의 대화 정도는 가뿐하게 숨겨줄 수 있는 크기였다.

“그 신관이 수상하다고는 하나, 자네 정도의 힘을 가진 존재일지도 모르니 섣불리 추궁할 수 없네. 그러니 도움을 줄 수 있겠나? 같은 신관인 자네라면 내가 보지 못한 걸 발견할 수 있을 테니.”

“그런 거라면 당연히 도와야죠!”

“고맙군.”

그 신관이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힘을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으니 자연스럽게 신의 인장 쪽으로 시선이 갔다.

처음 신의 인장을 받았을 땐 눈에 띄는 색을 품고 있었지만 신성력의 힘이 강해질수록 신기하게도 피부색과 비슷한 색으로 변해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확인하기 힘들었다.

날이 갈수록 커지는 신성력의 크기만큼 인장의 크기도 커져, 어느새 손목과 팔뚝까지 번진 상태였다. 만약 인장의 색이 피부색과 비슷해지지 않았다면 장갑을 끼고 다녀야 했을지도 몰랐다.

‘신의 인장은 말이 통하는 것도 아니라서 걱정했는데 다행인 일이지.’

마검과 계약한 증거로 새겨진 인장은 마검의 의지대로 문양의 크기와 색을 조절할 수 있어 눈에 띄지 않도록 조절해달라 부탁할 수 있었다. 마검이 극도로 흥분했을 땐 섬뜩한 문양이 어깨까지 타고 오르기에 이때는 주의할 필요가 있었지만, 그 정도로 흥분할 만한 강자가 없어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피를 먹을 때 종종 색이 진해져서 조금 웃겼지.’

마검이 피를 빨아 마실 때마다 인장이 진해졌다가 흐려지길 반복하는 걸 보다 보면 충전 중인 전자제품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인장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장을 건네주었던 ‘다크 판타지 세계의 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신전에 방문하면 신전에서 많은 도움을 줄 거라고 했었지.’

무려 신이 해준 조언이었기에 당시에는 잘 기억해두었다가 써먹을 생각이 가득했다. 마을에 자리한 신전을 방문하기 전까지는.

‘도움은커녕 방해만 됐지.’

리안이 방문했던 신전은 멀쩡한 신관이 단 한명도 없었던 범죄자 소굴이었기에 개그 신에게 밟히고 있는 다크 판타지 신의 입장에선 억울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문제는 다른 신전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런 범죄자가 떡하니 대신관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정도로 신전은 썩어가고 있었다. 신실한 대신관이 관리하는 신전을 찾는 건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려울 터였다.

그나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법은 제국 수도에 자리한 대신전에 방문하는 것뿐이었다.

‘기회가 되면 한 번 찾아가지 뭐.’

제 일행의 곁을 떠난다고 해도 멀찍이 거리를 둔 채 죽을 것 같을 때마다 한 번씩 일행을 도와줄 생각이었기에 쉽사리 수도로 떠난다고 생각할 순 없었다. 대신전이 완전히 썩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경우의 수도 존재했기에 ‘기회가 되면 방문하자’라고 결론 내렸다.

“그럼 준비가 되는 대로 호출할 테니 쉬고 있게.”

신전 방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

우르르 몰려다니면 주민들의 경계 섞인 시선을 받을 수 있었기에 리안과 공작, 기사단장과 마법사 이렇게 넷이서 신관을 찾아 나섰다.

신관을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조심하십시오.”

마을 중앙, 신관은 가장 화려한 건물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신관은 오랜 세월로 머리를 하얗게 물들인 나이 많은 노인이었다. 길게 기른 수연이 턱 아래까지 내려와 산타클로스 같은 인자한 외모를 자랑했다. 마치 ‘선하다’라는 단어를 빚어놓은 것 같은 사람이었다.

노인은 기괴한 마을과는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사람’처럼 보여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안도감이 들었다.

‘뭔가…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리안은 묘한 기시감에 미간을 구긴 채 노인의 얼굴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뒤적여도 떠오르는 얼굴이 없어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웠다. 잊어버린 게 아닌가 싶다가도 워낙 개성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어 잊어버리기도 힘들어 보였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공작이 대표로 신관에게 다가가 대화를 걸었다.

신실한 신관의 표본 같은 노인과 온화한 표정을 한 공작의 대화는 겉으로 보면 평화로워 보였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날카로운 말들이 숨겨져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와, 이게 귀족식 화법이구나.’

신관이 일괄적으로 똑같은 대답을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혀 다른 질문을 던져서 확인하는 모습이 오싹할 정도였다.

리안은 공작의 말솜씨에 속으로 감탄하며 생각했다.

‘내가 없었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신관이 예상치 못한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 이 주변의 환경이 변한 건 제가 한 게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분명 마을 주민들은…”

“아아, 그에 대해 설명해 드리자면 조금 길어질 수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으니 말해보게.”

“크흠 -… 전 이곳저곳을 떠돌며 신의 뜻을 전하는 신의 종입니다. 너무 많은 것을 탐하지 말라는 신의 뜻에 따라 대가 없이 아픈 이들을 도와주고 작은 도움을 받으며 여행을 이어왔죠. 이곳에 들린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노인은 길게 자란 하얀 수염을 쓸어내리며 옛날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려주는 할아버지처럼 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에 공작은 지루함을 참고 귀를 기울였다.

길게 이어진 대화를 요약하자면 이랬다.

노인은 평소처럼 마을 사람들을 도와주고 약간의 돈이나 음식을 얻을 계획으로 가까운 마을을 찾았다. 의사가 귀한 세계였기에 신관은 환영받으며 마을 사람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치료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작스럽게 눈보라가 치기 시작했고 노인은 어쩔 수 없이 마을에 잠시 머물게 되었다.

문제는 눈보라가 일주일이 넘도록 멈추지 않으면서 생겼다. 떠돌이 신관인 노인은 신성력이 미약하여 큰 상처를 돌보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고, 어느 순간부터 식량을 축내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눈보라가 쏟아지는 상황에 내쫒기면 그대로 목숨을 잃을 게 뻔했기에 노인은 필사적으로 방법을 강구했고, 그나마 떠오른 방법이 신께 기도를 올리는 것이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신께 기도를 올리려는 순간, 창문 밖으로 눈보라가 기이한 바람에 휩쓸려 사라지는 게 보였다. 기적 같은 장면에 신관은 감격하며 신께 감사 기도를 올렸다. 모든 게 신의 자비 덕분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는 환희에 잠긴 심정을 숨기지 못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이 모든 게 신의 자비라고 떠들고 다녔다. 물론 아무도 믿지 않았다.

신관은 이 마을이 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하여 며칠 동안 더 머물며 기도를 올렸다. 문제는 그다음 날부터 시작되었다.

다음날이 되자 마을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몬스터들이 녹아내리듯 사라져버렸고, 그다음 날에는 쌓여있던 눈이 천천히 녹아내려 파릇파릇한 초록색 풀을 내보였다.

경악스러운 기적이 며칠이고 이어지자 마을 사람들은 노인을 신이 보내주신 사자라며 칭송하기 시작했다. 이때쯤 부터 노인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인지했다.

신의 자비라기엔 기이한 기운이 주변에 만연했기 때문이다.

노인은 뒤늦게 모든 게 오해라고 소리쳤지만, 마을 사람들은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노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간다는 걸 인지하곤 다른 신전에 도움을 청하고자 마을을 떠나려 했지만, 마을 사람들이 악마에 홀린 것처럼 눈을 뒤집고 쫓아와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머무르며 수상한 흔적을 찾아내고 있다고 했다.

‘쉽게 말해 조력자라는 말이네?’

게임이든 소설이든 막막한 상황에서 물꼬를 터 줄 조력자는 필수적으로 등장한다. 눈앞에 있는 노인은 딱 그런 ‘조력자’인 듯했다.

“가능하면 조사를 도와달라 부탁드리고 싶지만… 이 마을에서 가장 수상한 건 저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지금까지 조사한 정보라도 부디 받아주십시오.”

노인은 그리 말하며 낡은 종이 뭉치를 내밀었다. 마법사가 종이에 아무런 저주나 마법이 걸리지 않은 걸 확인한 후 공작에게 종이를 넘겨주었다.

“그대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네. 도움을 청할 일이 있다면 의견을 묻고자 찾아와도 되겠나?”

“허허, 그리해주신다면 제가 감사하지요.”

공작은 마을을 살리기 위해 열심히 정보를 모아온 신관에게 예를 표한 후 일행과 함께 저택으로 돌아왔다.

“신관님은 범인이 아닌 것 같군요.”

“글쎄, 그건 모르는 일이다.”

기사단장이 자신도 모르게 그리 중얼거리자 공작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 여자, 노인. 이 셋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니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예!”

리안은 일행의 뒤를 따라가며 미간을 찌푸린 채 턱을 쓰다듬었다.

‘분명 어디서 봤는데… 끙…’

리안은 재차 찾아온 기시감에 끙끙거리고 있었다. 기시감이 한 번 느껴졌으면 모를까 반복적으로 느껴지는 상황에서 ‘뭐 어때? 괜찮겠지!’하고 어깨를 으쓱하고 지나가면 작은 눈덩이가 집채만 한 눈덩이가 되어 리안을 덮칠 터였기에 기억을 더듬는 걸 멈추지 않았다.

***

‘크하하핫…! 모든 게 계획대로 잘 굴러가는군.’

새하얀 수염을 느릿하게 쓸어내리고 있는 인자한 노인이 속으로 겉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비열한 광소를 터뜨렸다.

공작의 예상대로 노인은 마을을 기이한 상태로 만든 범인이었다.

‘크흐흐,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몸을 빼앗을 걸 그랬어.’

노인의 비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누군가’의 몸을 빼앗아 인간 행세를 하고 있었다.

‘빌어먹은 울음소리를 꾸역꾸역 참기만 했던 과거가 조금 후회되는군.’

노인의 머릿속에 시도 때도 없이 울음을 터뜨리며 떼를 쓰고, 무려 사천왕 중 한명인 에르보안을 스토킹하다가 마왕군에서 쫒겨나기까지 했던 분홍 머리 변태녀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렇다. 노인이 빼앗은 몸의 주인은 리안과 공작의 공격에 하늘의 별이 될 것처럼 날아가 버린 ‘네크로맨서’였다.

네크로맨서는 우주까지 날아갈 것처럼 쏘아져 올라가다가 그대로 쇼크사했고, 비어버린 몸을 노인이 차지하게 된 상태였다.

네크로맨서이 누리던 아득한 행운이 전부 불행으로 바뀌어, 운 나쁘게 몸이 빼앗긴 것처럼 보였지만 이는 예정된 일이었다.

그녀가 강력한 몬스터를 사역할 수 있었던 것도, 에르보안 조차 고개를 저을 정도로 어려운 공간 이동 마법을 성공한 것도 전부 -… 노인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행운’이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누렸던 모든 행운은 영혼을 포함한 모든 것을 내어준다는 불공정한 거래 덕분에 누릴 수 있었던 것들이다. 당사자조차 알 수 없었던 이 거래가 성사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네크로맨서의 몸을 꿀꺽해버린 존재가 인간과 격이 다른 존재였기 때문이다.

‘아아 -… 아니지, 처음부터 몸을 빼앗았다면 공작가에 숨어들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를 얻을 수 없었을 테니. 딱 적당한 타이밍에 몸을 빼앗은 거라고 할 수 있겠군. 흐흐, 이 또한 그분의 축복이 나와 함께한다는 증거!’

노인의 정체는 ‘그분’과 함께 텅 비어버린 세계를 꿀꺽하고자 다크 판타지 세계에 숨어든 ‘외신’이었다.

무려 ‘신’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만큼 어마어마하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것 같지만 -… 노인은 외신들 중 약한 편에 속하는 존재였다.

과거 리안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가 개그 신의 입속으로 다이빙 해버린 외신보다 더 허접한 존재였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말단 중의 말단, 외신보단 잡신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존재 정도 되겠다.

그 탓에 노인이 세운 계획은 약자의 것처럼 야비하고 은밀했다.

‘지금처럼 적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라 경계심이 한껏 올라간 상황에선 특히 선의의 손길이 달콤할 터. 끔찍한 함정으로 정신력이 왕창 깎인 인간을 공략하는 건 생명체 없는 세계를 꿀꺽하는 것만큼 쉬운 일이지.’

자화자찬의 말이 덕지덕지 붙어 길어지는 생각을 짧게 요약하자면, ‘끔찍한 경험으로 인해 정신이 너덜너덜해진 공작을 인위적인 사고에서 구해주어 신뢰를 얻어 가까워진다.’정도 되겠다.

마음이 가는 여자에게 호감을 얻어보고자 양아치들과 결탁하여 인위적인 위기를 만들고, 인위적인 구원 서사를 만든다!

말만 들어도 유치해 보이는 작품명 ‘은혜 갚는 공작’은 공작이 마을에 도착한 순간부터 막을 올린 상태였다.

‘이대로만 착착 진행되면 난 공작가의 은인이 되어 제국의 중심에 숨어들 수 있겠지. 그리된다면 마왕군에 도움이 되는 묵직한 정보들을 수없이 얻어내 ‘그분’의 총애를 얻을 수 있을 거야! 크흐흐..!’

시나리오 첫 번째 목표인 ‘공작에게 무해한 사람으로 어필하기’가 무난하게 성공한 덕분에 노인은 잔뜩 기고만장해진 상태였다. 이미 손안에 성공이라는 달콤한 열매가 들려있기라도 한 것처럼 황홀한 기분에 빠져들어 히죽거리기 바빴다.

외신 아니, 잡신은 몰랐다. 본인이 칭송하고 있는 ‘그분’이 경계하고 있는 존재가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과 그 존재가 가진 (개그 필터) 권능이 ‘속으로 기고만장하게 제 계획을 술술 불면 100% 확률로 망하게 된다’라는 힘을 품고 있을 거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니, 이게 왜 이렇게 되는 건데..?”

그 때문에 잡신은 망해버린 제 계획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