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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4

   EP.164

     

   현 무림은 썩어가고 있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속에서부터 썩어 있던 것이 이제야 밖으로 드러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거 이리 내놔!!!

   -싫어! 내가 찾았으니까 내 거야!!!

     

   지금 이 세상에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지옥에는 부모와 고향을 잃은 어린아이들이 있었다. 이미 폐허가 되어 버린 땅과 그곳에서 아직 피가 마르지 않은 시체를 뒤적거리는 아이들.

     

   배가 고파 이성을 잃어버린 그들은 이미 짐승에 가까웠다.

     

   -도, 도와주세요……

   -배가…… 배가 고파요……

     

   허나 차마 짐승이 되지 못한 아이들은 인간의 탈을 쓴 진짜 짐승들에게 도움을 갈구했다. 하지만 그 짐승들은 적의 종자들에게 선의를 베풀지 않았다.

     

   수십 년간 이어진 전쟁에서 그들의 친구와 혈육들을 살해한 자 또한 전쟁의 고통을 겪은 어린아이들이었으니까.

     

   -배가 고팠구나. 그래그래, 고생이 많았다. 이거라도 먹어보렴.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음식을 나눠주는 자들이 있었다. 뭣도 모르는 아이들은 그들이 주는 고기 조각 따위를 받아 냉큼 입안에 쑤셔 넣었다.

     

   -옳지, 옳지. 맛있니?

   -쩝쩝쩝!

   -그래 친구들도 데려오렴. 그럼 하나를 더 선물해 주마.

     

   끄덕끄덕.

     

   아이들은 그들을 의심하지 않았다. 오늘 살아 있다고 내일도 살아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에 눈앞에 떨어진 당장의 음식에 눈이 돌아가 본능대로 행동했다.

     

   -그래 이제 가자꾸나. 우리가 너희를 보살펴주마.

     

   아이들은 그들을 따라가 무기로 길러졌다.

     

   누군가의 검. 어느 문파의 유령. 어느 세가의 그림자 따위의 이름으로 불렸지만 그 누구도 그들의 진짜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렇게 길러졌던 아이들 중 하나였다.

     

   -……을 죽이고 돌아오거라.

   -명 받들겠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성장한 뒤, 나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 나는 이름 모를 무인들을 찾아가 그들의 목숨을 취했다.

     

   처음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저 명령을 수행할 뿐 나는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될 도구였다. 하지만 여느 때와 같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떠나던 어느 날.

     

   -먹을 걸 좀… 물이라도……

     

   전쟁과 기근. 하루에 수백 명이 목숨을 잃는 것은 예사였던 시기. 그들 중 절반 이상이 칼이 아닌 굶주림에 생명을 빼앗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저씨…… 배가 고파요……

   -살려주세요……

   -제발…

     

   나는 나에게 다가온 아이들의 눈을 바라봤다.

     

   이미 죽어 버린 눈빛. 그 눈에서 나의 비참했던 과거와 도구로 살아가게 된 기억이 떠오르자 마음 한구석이 쓰라려왔다.

     

   스윽.

     

   -으, 음식이다!

     

   그래서 그 아이들에게 벽곡단을 나눠줬다.

     

   물론 과거에 내가 먹었던 고기 조각에는 명령을 수행하지 않으면 사람의 뇌를 파먹는 고독이라는 벌레가 들어 있었지만 이건 아무것도 들지 않은 순수한 식량이었다.

     

   -너희들의 이름이 무엇이냐.

     

   아이들은 나의 물음에도 허겁지겁 벽곡단을 씹기 바빴다. 며칠을 굶은 아이들은 내가 그랬듯 음식을 가져다준 대상보다는 그 음식 자체에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와중에도 감사 인사를 하는 아이가 하나쯤은 있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이런 세상을 만든 어른이라 미안하구나.

     

   이제 막 10살은 되었을까 싶은 꼬마. 아이의 눈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사과하고 말았다. 하지만 아이는 그런 나를 보며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아저씨 같은 어른도 세상에 있으니까요.

     

   아이는 자신의 이름을 ‘영影’이라 소개했다.

     

   -그림자라…… 좋은 이름이구나.

   -헤헤. 엄마가 말했는데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그림자처럼 잘 숨어서 살아야 한댔어요. 물론 엄마는 지금은 이 세상에 없지만요.

   -……

   -아저씨는 이름이 뭐예요?

     

   아이의 물음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영影이라는 이름 때문이 아니라 유령이나 그림자로 살며 사람들을 해치는 자가 감히 이름을 가져도 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자격이 없다.

   -음? 이름이 없는 거예요?

   -그래.

     

   나의 말에 아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음…… 그럼 곤란한데.

   -왜?

   -엄마가 저한테 원수는 선택이지만 은혜는 꼭 갚아야 한다고 항상 말했었거든요. 그래서 이름을 알아야 해요. 이름을 모르면 은혜를 값을 수가 없거든요.

   -훌륭하신 어머니시구나.

     

   아이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잠시 동안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리고는.

     

   -량悢 어때요?

   -량? 무슨 뜻이지?

   -슬프다는 의미예요. 그냥 아저씨 얼굴 보니까 생각났어요. 막 좋은 이름은 아니라서 이 정도는 괜찮죠?

   -량…… 되었다. 이름은 무슨……

   -헤헷.

     

   처음으로 들은. 그것도 내 것도 아닌 이름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랐지만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저었다.

     

   그런 나를 향해 아이가 미소를 보인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미소. 찢어진 옷가지에 앙상한 갈빗대가 드러날 정도로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었으나 아이는 음식이 아닌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이거나 받거라. 며칠 후 이곳을 다시 지날 것 같으니 그때까지 먹기에 부족하진 않을 것이다.

     

   나는 괜히 민망해지는 기분을 숨기며 벽곡단 주머니를 아이에게 내밀었다. 아이는 당분간 먹을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이 생긴 것에 기뻐하며 벽곡단 주머니를 흔쾌히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갚을 은혜가 많아졌네요!

     

   아이는 망설이지 않고 자신이 받은 음식을 주변에 있던 아이들과 나눴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따스함. 진심어린 아이들의 미소를 보는 내내 나는 이 세상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그렇게 며칠 후. 나는 임무에 따라 한 문파의 장문인을 암살하는데 성공했고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있었던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

     

   하지만 ‘영’을 다시 만날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아이들은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

     

   굶주림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돌아올 동안 그 음식을 조금씩 나눠먹었다면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정도의 양이었으니까.

     

   -음식을 두고 싸운 건가.

     

   음식이 귀한 시기에 내가 준 식량이 오히려 아이들의 목을 졸랐다. 아이들의 주먹과 얼굴에는 피멍이 가득했고 처음 내가 식량을 건네준 ‘영’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더 이상은 싫구나.

     

   나는 삶에 염증을 느꼈다. 이제는 그만 이 전쟁이 끝나기를 바랐고 그래서 전쟁의 씨앗이 되는 모든 것을 끊어 놓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첫 번째로 나의 상관을 죽였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전쟁에는 눈곱만큼의 영향도 주지 못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사파의 우두머리를 죽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전쟁은 축이 기울었을 뿐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앉았다.

     

   그래서 정파의 쓰레기들을 죽였다. 무림을 어지럽히는 간신들을 죽였고 전쟁과 분란을 야기하는 모든 인간들을 척살했다.

     

   그렇게 일 년. 나는 이 전쟁이 고작 조직의 머리를 잘라 내는 것만으로 끝나기에는 그 골이 너무 깊어졌음을 깨달았다.

     

   -썩은 부위가 너무 많군.

     

   썩은 부위를 모두 도려내면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다.

     

   썩었다 생각하여 그 부위를 도려내면 더 깊게 썩은 내부가 나왔고 그것을 도려내면 더 이상 손을 쓰지 못할 지경의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가장 큰 문제를 제거하면 새로운 문제가 나오는 이유.

   인간의 욕망도 욕망이지만 나는 그것이 죽은 자들의 유지를 이을 후인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나는 무림에 있는 모든 비급들을 훔치기 시작했다. 구파일방이라는 큰 세력에서부터 시작해 자잘한 모든 문파의 기록까지 전부.

     

   -비급이 사라지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영문이란 말인가?

   -젠장할. 놈들의 짓이로군! 나는 당장 우리의 무공을 돌려받으러 가야겠소!

     

   하지만 무인들은 그들의 비급이 사라질 때마다 서로를 의심했다. 각자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작당이라 여기며 더 큰 싸움을 벌였다.

     

   이렇게 두면 무인들은 서로 자멸해 언젠가 끝을 보게 될 것 같았지만 그것은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시간이 없군.

     

   나는 약자들이 무인들의 전쟁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랬기에 나는 세상에 나를 드러내기로 했다.

     

   그래서 그들의 무공을 익혔다. 그들의 무공을 훔쳤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수련을 시작했다.

     

   살수가 되며 익혔던 무공의 근본이 나를 지우는 것에서 시작됐기에 다양한 무공을 배우는 것에 불편함이 없었고 세상에 미련이 없었기에 비워진 그릇을 채우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러 대부분의 무공을 어느 정도 숙달했을 쯤.

     

   나는 현 시대의 천하제일인이라 불리는 무인을 찾아갔다.

     

   ***

     

   “……”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나 있었다.

     

   정확히는 누군가가 기록의 뒷부분을 찢어 가져가 버린 것 같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량에 대한 새로운 정보들이었다.

     

   “다크 히어로 같은 녀석이었나?”

     

   나는 주변에 눈을 돌려 책상에 놓인 두루마리를 돌아봤다.

     

   혈서로 기록된 무인들의 이름. 내가 뒷이야기를 다 읽지는 못했지만 이쯤 되니 ‘량’의 기록이 왜 이곳의 꼭대기에 보관되어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정받았군.”

     

   그는 이곳에 있는 100인의 무인들에게 그가 천하제일인이라는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세간에서 무림의 공적이라 기록된 그가 천하제일임을 인정했다는 것은 그가 진짜 ‘적’이 아니었음을 의미했다.

     

   사실 처음부터 이상했다.

     

   도산검림이라는 역사적인 장소의 허술한 경비와 잠겨 있지도 않은 문.

     

   그리고 위로 올라오는 동안 모든 기록들이 친절하게 ‘량’이라는 한 사람의 업적을 알리는 것 같았고 4층에 올라와서야 나는 그 기록들을 종합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애초에 내가 이 기록을 봐줬으면 했던 것.

     

   그리고 그것을 유도할 수 있는 것은 ‘장막 뒤의 감시자’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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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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