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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5

       

       

       “그 해괴한 내의는 오늘도 입은 채요?” 

       

       산 속을 걸으며, 몇 걸음 뒤에서 뒤따라오던 이유하가 물어왔다. 해괴한 내의라면 그 전신 타이즈 수트를 말하는 것이리라.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요샌 안 입고 다녀.” 

       “드디어 그 망측한 취미는 그만둔 것이오? 다행이구려. 그대가 부인네나 입을 듯한 속곳을 걸치는 취미를 지닌 것이 어찌나—”

       “야!”

       

       얘, 내가 전신 타이즈를 입는 게 보호복 목적이라는 걸 진작에 나한테 들어서 알았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거는 분명 놀리는 거다. 아닌게 아니라, 저렇게 말하며 보일 듯 말 듯 입가에 웃음이 걸려있지 않나.

       

       애초에 해명할 것도 없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거, 애초에 취미같은 게 아니라니까…… 그냥, 그거 입으면 더워서, 요샌 입을게 못되더라.”

       “하긴, 곧 여름이니 말이오.”

       “그렇지.”

       

       우리는 햇볓이 내리쬐는 산 속을 걸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여름이 다가오자 더욱 우거진 북한산 일대. 4월 초의 입학식 이후로는 처음 와보는 제3실습장이었다. 

       

       ‘여기도 오랜만이네.’

       

       입학실 날에는 조그만 벌레형 마수나 게다마처럼 사람에게 거의 해를 끼칠 수 없는 마수들을 잡으며 분대원들과 협동을 다지는 것이 실습 목적이었었지. 말이 사전체험실습이지 거의 신입생 OT같은 개념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때와는 달리 어느정도 실전을 염두에 둔 본격적 훈련이었기에, 분대 단위가 아니라 둘씩 조를 이루어 진행하는 소규모 인원 험지돌파 훈련이었고, 마수들도 입학식 날의 그것보다는 위협적인 마수들이었다.

       

       그래도 대부분 하급 소형 마수라서 혼자서 혹은 둘이서 쉽게 잡을 수 있는 마수들이었기에, 마수를 잡는 거야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산이라면 지긋지긋한데 또 산이라니.’

        

       그렇잖아도 저번주 내내 늑대 잡는답시고 이곳저곳의 산으로 불려다니느라 개고생을 했는데, 그 때는 그나마 대부분 밤에 산을 올랐던데다가 계속 비가 오고 날씨가 우중충해서 그리 더운 것을 몰랐지만……  

       

       지금, 5월 중순 대낮의 산을 돌아다니려니 죽을 맛인 것이다. 

       

       “하여간 오늘은 진짜 좀 덥네. 이번 여름은 얼마나 더울려고.” 

       

       나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투덜거렸다.

       

       “하복은 대체 언제부터 입지.”

       

       그렇게 투덜거렸지만, 내가 괜한 불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벌써 5월 중순인데 아직도 교복은 동복 차림인 것이 잘못이었다. 치렁치렁한 망토에 교모까지 쓰니 덥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어깨에 걸친 행낭에는 자잘한 마수들을 잡고 챙긴 마석과 부산물들도 한가득 들어있는 채로 산길을 오르려니 불평이 안 나올 수가 있나. 

       

       내가 투덜거리자, 몇 발자국 뒤에서 뒤따라오던 이유하가 말했다.

       

       “내 마침 오늘 아침에 기숙사 게시판을 보니, 유월부터 하복 착용을 실시함에 따라 지침에 맞는 하복을 구비하라는 안내가 붙어있더구려.”

       “유월?” 

       

       6월이 되어서야 하복으로 전환된다니. 벌써부터 이렇게 더운데……

       

       “너무 늦는 거 아냐? 보통 오월 중순이면 입지 않나.” 

       “하복 규정이 새로 나오는 탓에 늦어졌다고 들었소. 작년과는 달라져서 새로 맞춰야 하는 모양이오.”

       

       으음……. 어쩔 수 없나. 아무튼 하복도 맞춰야겠네. 집에 돌아가면 함서주한테 부탁해 둬야지. 

       

       그런데 이유하를 돌아보니, 이유하는 전혀 더운 티를 내지 않고 있었다. 망토에 모자까지 써야 하는 남학생 교복에 비해 여학생 교복은 그나마 좀 낫지만,  어깨를 덮는 케이프 때문에 더운 것은 매한가지이리라. 

       

       “넌 안 더워?”

       

       이유하는 대답 없이,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띄우며 내 쪽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녀의 손짓에 따라, 차가운 서리바람 한 줄기가 내 쪽으로 살짝 불어왔다.

       

       “아.”

       

       바람 한줄기와 함께 찾아오는 청량함과, 또 그와 함께 밀려오는…… 

       

       이 배신감이란. 지금까지 내가 전방 주시를 하느라 몇 걸음 앞서서 걸어나간 탓에 몰랐는데,

       

       ‘지금까지 너만 에어컨 풀로 돌리고 있었던 거냐?’

       

       나는 멈춰서서 이유하에게 말했다.

       

       “야, 그거 진작에 나한테도 좀 나눠주지…….”

       “범위를 넓히면 마력 낭비가 크니 어쩔 수 없었소.” 

       

       하긴. 아무리 약하게 조절해도 냉기 방출을 계속 유지하고 있으면 마력 손실이 꽤 클 터. 원소계 방출의 마력 효율이 떨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걸 몇 미터나 되는 범위로 넓게 방출하자면 벌써 마력이 다 떨어졌을 거다.

       

       이유하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가까이 붙으면 좀 시원할 거요.” 

       “오……”

       

       이유하가 가까이 붙자 말 그대로 공기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 확실히 시원했다. 마치 무더운 여름날 밖에 있다가 에어컨 풀가동되는 실내로 들어섰을 때의 그런 느낌.

       

       ‘이게 천국이지.’

       

       하지만 그런 쾌적함을 느끼기도 잠시,

       

       “잠깐. 물러서.”

       

       나는 정색하고 이유하를 뒤로 물리며 빠르게 말했다. 

       

       “마수야. 11시 방향. 빠른 속도로 접근중이야.”

       

       마수의 마력을 느낀 나는 칼자루를 쥔 손에 힘을 주며 강기를 주입했고, 이유하도 냉방의 목적으로 뿌리던 냉기를 거두고 내가 말한 방향을 주시하며 외쳤다.

       

       “내 눈에는 보이질 않소만……” 

       

       그녀의 말대로, 내가 말한 방향에서 마수의 모습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 마력감응은 마수가 접근중이라고 확실하게 말해주고 있었고,

       

       마수가 꼭 땅 위로만 다니라는 법은 없었다.

       

       “땅 속이야!”

       

       내가 그렇게 외침과 동시에, 무언가가 흙과 낙엽을 파헤치고 땅 속에서부터 튀어나왔다. 3미터정도 되는 길이의, 지렁이 모양을 한 마수였다.

       

       “저건, 투구토룡!”

       

       이유하가 (아마 예전 시절의 명칭임이 분명한) 마수의 이름을 외쳤고, 나는 두 손으로 칼자루를 고쳐잡으며 생각했다.

       

       ‘어째 이번에는 좀 센 놈이 나왔네.’

       

       지금은 요로미미즈(ヨロミミズ)라고 불리고, 21세기에는 암드 웜(Armed Worm)으로 불리던 놈으로, 그 이름처럼 갑옷을 두른 듯한 형상의 거대한 지렁이 모양을 하고 있었다. 

       

       껍질은 갑옷처럼 경질화되어있기 때문에 어지간한 물리적 타격은 통하지 않고, 게다가 땅을 파헤치며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숨는 것이 상대하기 까다롭다.

       

       하지만 이 역시 파훼법을 알면 단순하다. 갑주를 갖춘 대부분 마수의 약점이 입인 것처럼, 이 녀석 역시 입을 크게 벌렸을 때 입 속에 공격을 때려박는 것이 특효였다.

       

       칼을 들고 마수를 향해 달려나간 나는, 놈이 내 쪽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자마자, 

       

       “이유하!”

       

       뒤에서 준비중이던 이유하를 향해 외쳤다. 마력 강기를 씌운 칼을 꽂아넣어도 되고 마력탄을 쏴도 좋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고열로 속을 태워버리거나 냉기로 속을 얼려버리는 것.

       

       “물러서시오!”

       

       이유하는 그렇게 외치며 완드처럼 짧은 지팡이를 손에 들었다. 원소계 능력에 있어서 방출의 방향성을 곧게 해주는 역할로, 양복자가 염동력으로 컨트롤해주는 것보단 못하지만 지금처럼 이유하 혼자 냉기를 방출할 때에는 나름 효과적인 도구였다.

       

       크게 벌려진 아가리가 나를 집어삼키기 직전에 나는 옆으로 몸을 굴렸고, 그 뒤로 맹렬하게 날아온 냉기가 요로미미즈의 아가리에 직격했다.

       

       —꾸득, 득, 드득.

       

       냉기를 체내 깊숙히 들이마시고 움직임이 느려진 요로미미즈. 

       

       “나이스, 이유하.”

       

       나는 그 틈을 타서 놈의 측면으로 달려가, 갑옷같은 껍질의 틈새에 정확히 칼을 찔러넣었다. 3번째 마디와 4번째 마디의 사이, 체내의 마석이 위치한 곳이다.

       

       —키에에엑……!

       

       요로미미즈는 단말마와 함께 몸을 뒤틀더니 곧 미동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요로미미즈의 갑주를 뒤틀어젖혀 마석을 챙기고 행낭에 넣으며 말했다.

       

       “이거면 되겠는데.”

       

       마석이 든 행낭이 꽤 묵직했다. 물론 실습에서 얻은 마석은 학교에 반납해야 하는 것이고, 대부분 자잘한 마석이었기에 팔아봤자 돈도 별로 안 되는데다가, 나도 딱히 돈이 아까운 사람은 아니라서 별다른 욕심은 안 들었지만 말이다.

       

       “슬슬 내려갈까. 시간도 얼추 다 되어가고.”

       “그대 좋을 대로 하시오.”

       “어우, 이거했다고 또 덥네.”

       

       이번에는 나만 더운 게 아니라, 이유하도 자체 냉방을 그만두고 마수를 상대하는데에 전념해서인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뭐, 이제 마수를 더 잡을 것도 아니니 얘도 굳이 마력을 아낄 필요는 없지.

       

       “유하, 에어컨 좀.”

       “에어컨은 또 무슨 뜻이오?”

       “잘못 말했네. 찬바람 좀 쐬어 달라고.”

       

       이유하는 “그렇게 말하면 될 것을……” 하고 중얼거리고는, 가까이 다가와 다시 냉기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후우, 이제야 좀 살겠네. 나는 행낭을 어께에 걸치고, 찬 바람이 나오는 이유하와 나란히 산길을 걸어내려가며 말했다.

       

       “다른 애들은 잘 하고 있으려나.”

       “마지막에 나온 투구토룡은 몰라도, 그 밖에는 대개 유악한 마수들이었으니 걱정없지 않소?”

       “그렇겠지? 무라사끼랑 양복자야 뭐 잘 할테고…… 아이까와는 송병오 녀석이랑 붙여놨으니까 괜찮을 거고.”

       

       그렇게 말하니 이유하가 뭔가 생각난 듯이 말했다.

       

       “아! 그대가 송가 병오 이야기를 하니 생각난 것이오만, 내 궁금한 것이 있었소.”

       “응? 뭔데.”

       “아까 아침나절의 얘기 말인데…… ‘아베크’가 당췌 무엇이오? 내 종종 전부터 말은 들어보았으나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서 물어보는 것이오.”

       

       아침의 그 얘기구나. 송병오와 공팔자 둘이서 ‘아베크’를 하다가 늑대 마수의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아베크가 무엇인지 궁금해진 모양이었다.

       

       “데이트랑 똑같은 뜻이야.” 

       “데이트?” 

       

       이유하는 살짝 갸웃하더니 되물었다.

       

       “영어로 날짜라는 뜻 아니오?” 

       

       그러고보니, 데이트라는 말은 더 안썼을 때지. 그 대신 아베크라는 말이 유행어로 쓰이고 있는 거니까. 나는 다시 설명했다.

       

       “음. 아베크라는게, 이게 아마 프랑스어일건데, 젊은 남녀가 둘이서 놀러다니는 걸 뜻하는 유행어?같은 거야.”

       “아!”

       

       이유하가 알았다는 듯 말했다.

       

       “젊은 남녀가 둘이서 함께 다닌다면, 필히 혼인한 부부겠구려. 나도 일전에 경성 시내를 나갔을 때 종종 보았소.”

       “어……”

       

       나는 이유하가 뭔가 오해하는 것 같아서 설명을 덧붙였다.

       

       “뭐, 이미 결혼한 사이도 있겠지만, 아닌 경우가 더 많겠지?”

       “그럼, 혼인을 약조한 사이부터 아베크를 하는 것이오?”

       “아니아니. 그냥 사귀는 사이끼리.”

       “그 무슨……!”

       

       이유하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일장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이 모두 혼인했거나 혼인을 약조한 사람들인 줄로만 알았소. 그런데 그게 아니라니,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지만 해괴한 풍속이구려. 서로를 약조한 사이도 아닌데 남녀가 어찌 함께 다닌단 말이오?”

       “아니, 뭐. 같이 다닐 수야 있지. 그냥 가볍게……”

       “남녀가 함께 다닌다는 것은 서로의 정이 깊었음을 의미하는 바. 하지만 그렇게 쉬이 정을 쌓고 또 쉬이 저버리는 것이 당연하다면 사내는 몸가짐이 방정치 못함이요 계집은 신의가 없음이니, 장차 세상 사람이 모두 그렇게 된다면 다른 이를 어찌 믿고 백년기약을 맺을 수 있겠소.”

       “어어……”

       “아베크라는 것이 그런 것이었구려. 실망했소.”

       

       이유하는 말세라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나는 이유하가 고개를 젓는 것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은빛 댕기머리를 보며 생각했다.

       

       ‘으음.’

       

       얘 지금, 자기도 남자랑 함께 다니고 있다는 것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월요일입니다!

    주말 동안에 여러 일들이 있었지요.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화두는 전쟁이겠지만, 그런 무거운 이야기를 제외하자면……

    버추얼유튜버 야붕ㅇ…… 아니, 키즈나 아이의 은퇴 라이브가 있었네요. 안 본지 오래됐지만 왠지 뭉클하더라고요.

    아아…….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만약 내일 글이 업로드된다면 이번주도 저번주처럼 월화 목금 연재가 되겠고, 내일 올라오지 않는다면 월수금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다들 맛저하셔용!

    다음화 보기


           


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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