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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5

       ​

        “…해서 무림맹에 온 겁니다.”

        ​

        “소설책으로 써서 팔면 인기가 많을 것 같은 이야기네요.”

        ​

        “그렇습니까?”

        ​

        “그럼요! 조난당한 색목인 남성과 해남검문 장문인의 막내 제자의 만남! 만남에서 이어지는 인연에서 시작되는 연애담이라니. 뭇 소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이야기였답니다.”

        ​

        그 정돈가?

        ​

        나는 예상보다 좋아하는 서련의 반응에 머리를 긁적였다. 면전에서 칭찬을 계속 들으니 뭔가 어색하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반응이 좋을 줄은 몰랐는데.

        ​

        딱히 가식적인 반응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게, 눈을 반짝이며 내 이야기에 집중하는 모습까지 보이는 게 모습이 죄다 연기면 이 여자는 경극 배우로 대성할 재목이었다.

        ​

        심지어 마스터의 눈깔은 표정의 미세한 변화도 민감하게 알아차릴 수 있기에 더더욱.

        ​

        “저도 그런 사랑을 하고 싶지만, 그건 힘들겠죠.”

        ​

        “이미 반쯤 포기한 거 아닙니까?”

        ​

        내 말에 그녀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

        자유냐 사랑이냐. 

        ​

        양립은 어렵고 한 가지만 골라야 한다.

        ​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둘 다 놓쳐버릴 수 있으니.

        ​

        일단은 전자부터 고르는 게 그녀에게 있어선 현명한 선택일 터.

        ​

        사랑…은 듣기는 좋아도 그거 찾는 게 얼마나 힘든데. 내가 운이 좋았던 거지 저렇게까지 좋아해 주는 사람 만나는 건 하늘에 별 따기니까. 심지어 시대가 시대라 더…

        ​

        자유조차 제한적으로 주어지는 세상이 중원이니까. 결국 무림인도 중원에서 사는 사람이니 중원의 법도를 무시할 수 없으니까.

        ​

        그나마 고수가 되면 상황이 좀 낫지만…서련은 경지 자체는 일류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이것도 대단한 거지만, 혜령이가 절정이고 목경이는…반쪽이지만 초절정에 발을 들였으니까. 

        ​

        머지않아 완전히 초절정으로 넘어오겠지.

        ​

        무리하게 싸움을 벌인 여파로 내상을 입은 탓에 경지를 제대로 넘어가지 못한 것뿐이니까.

        ​

        “위 대협. 그럼 단 소저와는 어떻게 만나게 되신 건가요? 그분하고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야기가 있었나요?”

        ​

        “목경…소저와는 그런 사이는 아닙니다.”

        ​

        “어머, 하지만…아, 그렇군요. 그런 상황이었군요.”

        ​

        뭘 혼자 납득한 걸까. 나는 대충 상황이 이해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모습에 머리를 긁적였다. 

        ​

        여자들끼리 통하는 뭔가로 눈치챈 거겠지.

        ​

        “위 대협은 죄 많은 분이시네요.”

        ​

        “제 평생 그런 소리 들을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전쟁터에서 구르다가 비명횡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

        “중원에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답니다. 위 대협은 그 말이 잘 어울리는 분 같아요.”

        ​

        …너무 잘 어울려서 슬프네. 

        ​

        지옥 같은 전장에서 그나마 천국 같은 중원으로 오는 데 성공했으니. 어쩌다 보니 연인도 생겼고.

        ​

        마교놈들만 어떻게 잘 해결하면 이제 남은 인생은 편하게 보낼 수 있을 터였다.

        ​

        누가 나를 귀찮게 하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

        “위 대협. 슬슬 다시 나가볼까요?”

        ​

        슬슬 나갈 때가 됐나. 여기에 반 시진 정도는 있었으니. 나는 서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이 데이트…

        ​

        데이트가 중원 말로는 뭘까.

        ​

        어쨌든 값을 지불한 나는 서련과 함께 찻집을 나섰다.

        ​

        기분 탓인지 몰라도 내 옆에 나란히 선 서련은 기분이 들어올 때보다 좋아 보였다.

        ​

        “이제 어딜 갈까요?”

       

        “저는 이곳 지리에 대해서 잘 아는 편은 아닙니다.”

        ​

        “임 소저와 돌아다니지 않으셨나요?”

        ​

        “그렇긴 하지만, 무한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필요한 물건을 사는 것 외에는 돌아다닌 곳이 그리 많지 않으니…”

        ​

        “그럼 제가 좋아하는 장소를 알려드릴게요.”

        ​

        좋아하는 장소라…

        ​

        어디로 날 데려갈 생각일까. 나는 앞서 걷기 시작한 서련을 따라 무한의 번잡한 길거리를 거닐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서련은 무한의 번화가에서 조금 벗어난 작은 건물 앞에 멈추어 섰다.

        ​

        “이곳이에요.”

        ​

        “여긴…”

        ​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곳 중 하나랍니다.”

        ​

        서점인가.

        ​

        나는 온갖 요란한 냄새 속에 묻혀있지만, 조금씩 빳빳한 종이의 냄새가 풍겨져 나오는 서점을 바라보았다. 서점 안쪽에는 문사 느낌이 나는 복장을 입은 중년의 남성이 조용히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

        “아버지 눈치를 보지 않고 올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곳이에요.”

        ​

        눈치를 보지 않고 볼 수 있는 곳이라.

        ​

        막내딸이라 그런 건지, 그냥 금지옥엽이라 그런 건지 몰라도 집안에서 서련은 꽤 아껴지는 모양이었다. 그 바쁜 맹주가 시간까지 내서 딸이 어딜 가는지 파악하고 있단 소리가 아닌가.

        ​

        딸에게 관심 없는 아버지였다면 어딜 가든지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았겠지.

        ​

        아, 이건 너무 21세기 감성인가?

        ​

        “위 대협은 책을 좋아하시나요?”

       

        “근 몇 년 건 읽어본 서적은 무공비급밖에 없을 겁니다.”

        ​

        “어머, 책에 재미를 붙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랍니다.”

        ​

        “한 권 추천해 주시겠습니까?”

        ​

        “그럼요.”

        ​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점으로 들어와 책장을 바라보았다. 21세기의 서점이 아닌, 중세 중국의 서점.

        ​

        좀처럼 보기 힘든 옛날 시대의 서책들이 모여있는 모습은 마치 박물관을 연상케 했다.

        ​

        “오랜만이오 서련 소저. 그간 잘 지내셨소?”

        ​

        “네. 잘 지냈답니다. 관 대인님.”

        ​

        “허허, 대인은 무슨. 그냥 영감이라고 부르게.”

        ​

        “아직 영감이라 불리기엔 젊으신걸요.”

       

        두 사람은 잘 아는 사이인 듯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대화를 나누더니, 서련이 책 이야기를 꺼내자 책을 덮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

        “오오, 그대가 요즘 세간에서 유명하다는 사자검협이라니, 길 건너 점쟁이가 오늘은 운수가 좋을 거라고 하더니 그게 대협을 만난다는 이야기였나 보오.”

       

        “과찬입니다.”

        ​

        “허허, 색목인인 것도 놀랍지만, 정말로 한어가 유창하시구려.”

        ​

        “중원에서 살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

        “중원에 오기 전엔 군인이라는 풍문을 들었소만, 혹 귀한 집의 자제가 아니십니까?”

        ​

        “아닙니다. 그거 인연이 닿아 공부를 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

        “그렇습니까.”

        ​

        고개를 끄덕인 그는 뒷짐을 진 채로 책장을 바라보더니, 이내 책 한 권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

        “독서에 입문하는 데에는 관심이 있을 법한 책이 좋겠지요. 이건 호심공(護心功)이라는 심법이 담긴 서적입니다.”

        ​

        “호심공이라…”

        ​

        “그리 뛰어난 심법은 아니지만, 양생공으로서 꽤 유명한 심법이지요.

        ​

        심법에 대한 이해가 쉽게 쓰여 있어 몇몇 세가에서는 천자문과 함께 호심공으로 무공을 배우기 시작하는 곳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

        “중원 무공 입문에 좋은 서적이라…좋은 서책이로군요.”

       

        “위 대협은 색목인이지만 저희와 똑같은 무림인이니, 중원의 내공심법에 대해 알 수 있는 이 서책이 어울릴 것 같았습니다.”

        ​

        “감사합니다. 그럼 값을…”

        ​

        “아닙니다. 넣어두시지요. 시장에서도 헐값이니, 첫 만남을 기념하여 그냥 드리겠습니다.”

        ​

        “그럴 필요까지는…”

        ​

        “괜찮아요 위 대협. 저분은 처음 만난 분에게 서책을 선물해주시는 것을 좋아하시거든요.”

        ​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

        “나는 다시 돌아가 볼 테니 혹시 사고 싶은 책이 더 있다면 가져오게나.”

        ​

        관 대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서책을 읽기 시작했다.

        ​

        호심공이라.

        ​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없는 것보단 낫겠지. 중원의 내공심법에 대해서 관심이 없던 것도 아니고. 

        ​

        나는 조용히 품속에 낡은 서책을 집어넣고 서련과 함께 책장을 둘러보았다.

        ​

        “이렇게 조용한 서점에서 서책을 고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진답니다.”

        ​

        “그렇군요.”

        ​

        “누군가가 적은 소설에 누군가가 정리한 학문서적, 그리고 이런저런 삼류무공이 적힌 서책까지…가끔 예상치 못한 수확을 얻으니, 위 대협도 서점에 들르는 취미를 가지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

        “책을 읽을 시간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아서 말입니다.”

        ​

        “후후, 위 대협처럼 바쁘신 분은 그렇겠네요. 저는 할 일이 그리 많지 않은 터라…”

        ​

        “그렇습니까?”

        ​

        “무가의 여식이 할만한 일은 무공 수련과 이런저런 소양을 채우는 일밖에 없답니다.”

        ​

        그 말을 꺼낸 서련의 얼굴이 흐려졌다. 

        ​

        별로 좋아하는 일이 아닌 건가.

        ​

        우리는 한동안 정처 없이 길을 걸으며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

        분위기가 무거워졌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녀가 뒤이어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

        그렇다고 계속 이 분위기로 있기는 그래서 나는 조용히 말을 꺼냈다.

        ​

        “서련 소저는 자유를 갖고 싶다고 하셨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된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 싶으십니까?”

        ​

        “가장 먼저 할 일이라면…바다에 가보고 싶어요.”

        ​

        그 말을 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처음보는 미소가 걸려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벌써 금요일이라니 시간 너무 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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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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