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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5

    호텔의 로비, 루크와 시루드는 짧은 밤 산책과 대화를 마치고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루크는 병원에 입원을 하면서 이미 체크아웃이 된 상태였기에, 따로 예르나와 같은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낼 생각이었다.

     

    “먼저 들어가게, 시루드.”

    “알겠어, 난 먼저 갈게.”

     

    루크는 그렇게 시루드가 자신의 방으로 다시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러자 시루드도 크게 손을 흔들며 화답하는 모습에 루크는 아이가 기운차보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몸을 돌렸다.

     

    그러고보니 내일이면 에이레스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다.

     

    마탑은 구경하지 못했지만 세계수의 진액도 구했으니, 아쉬움은 남지만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고 볼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호텔의 로비로 걸어나온 순간이었다.

    익숙한 얼굴의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루크는 반가운 낯으로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아, 헬레나? 아직 안 갔었나보구나?”

    “으, 흠, 그, 그냥 조금 더 있으려고 했을 뿐이야. 그러고보니, 너. 병원에 입원했었다면서? 바보같기는, 놀러와서 병원이나 가고 말이야…….”

    “하하, 들었느냐? 혹시 걱정을 끼쳤다면 미안하구나.”

    “윽, 딱히 걱정한 건 아니거든?”

    “그렇느냐?”

    “…….”

    “…….”

     

    잠깐의 침묵, 뭔가 더 할 이야기는 없는 것일까?

    갑자기 조용해지다니, 원래 이렇게 얌전한 아이였던가?

     

    루크는 한차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어냈다가 어깨를 으쓱하고 아이를 스쳐지나가며 말했다.

     

    “아무튼, 즐겁게 놀거라. 그럼, 나는 이만.”

     

    그때, 등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루크는 발걸음을 멈췄다.

     

    “아, 저기…….”

     

    헬레나가 루크를 쫓듯이 발걸음의 간격을 넓히며 가까이 다가와 눈을 마주쳤다가, 다시 고개를 끌어내리며 얼굴을 피했다.

     

    루크는 아이의 행동에 짐짓 당황한 모습으로 헬레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길래 이 아이가 이러는 것일까?

    아이들은 언제나 예측하기 어려운 생물이었기에, 루크는 도저히 답을 예상할 수 없었다.

    그 순간, 헬레나가 도저히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그만 소리로 중얼거렸다.

     

    “ㄱ, ……어?”

    “조금 더 크게 말해주겠느냐? 잘 들리지 않는구나.”

     

    그러자, 헬레나가 잠깐 움찔, 하더니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 남자애랑 사귀냐고……!”

    “아, 혹시 시루드를 말하는 게냐? 하하, 그럴리가. 그 아이와는 그저 친구일 뿐이란다.”

    “거짓말…….”

    “나는 거짓말 따위는 하지 않는단다.”

    “…….”

     

    그러자, 갑자기 헬레나가 고개를 들어올리며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그럼 사귀지도 않는데 왜 그렇게 붙어다니는 건데! 바보야!“

    “응?”

     

    그 말을 끝으로 그 아이는 부끄러웠는지 홱,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대체 왜 저러는 것일까.

    루크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깨달은 듯 탄성을 내뱉었다.

     

    ‘옳지, 그렇구나. 헬레나가 시루드에게 이성적으로 관심이 있나보군, 그래. 이건 아마 질투인 것 같구나.’

     

    질투, 아마 그럴 것이다.

    그 아이의 외침 속 억양에서 분명 그런 느낌이 들었으니까.

    루크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관심이 있다면 시루드에게 직접 이야기하면 될 것을.’

     

    역시 부끄럼이 많은 아이였던건가.

     

    ‘이거, 아무래도 조금 신경을 써주어야 하겠군.’

     

    ———

     

    다음날 아침.

     

    헬레나는 여전히 부루퉁한 얼굴이었다.

    옆에는 정장을 입은 여성이 그런 그녀와 동행하며 입을 열었다.

     

    “아가씨. 충분히 노시지 않으셨습니까? 왜 그런 표정이신거죠?”

     

    ‘충분히 놀았다’라.

    아마 그렇게 보이겠지.

     

    무려 4박5일이라는 긴 체험학습.

    평소라면 학원에 가정학습에 공부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였는데,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놀러 온 것이었다.

    아빠한테 허락을 받는 것이 어찌나 힘들었던지.

    이번에 1등을 하지 않았다면 허락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응.”

     

    그런데 이제 에이레스로 돌아가야 하는구나.

    하지만, 어딘지 아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사실, 그것은 단순히 휴식의 종말이 가져다주는 느낌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루크와 별로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했다는 것.

     

    사실 헬레나는 그동안 루크와 말을 붙여볼 기회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애초에 반이 달라 인솔하는 교사와 관람하는 장소가 달랐고, 항상 같이 다니는 남자애 때문에 제대로 이야기할 기회가 나오지도 않았던 데다가, 숙소에서라도 이야기를 해볼까 싶었는데 갑작스럽게 루크가 기절하는 바람에 아예 그 기회조차 잃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따, 딱히 걔랑 친구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이제 걔는 1등도 아니니까!

    친해져서 공부법을 배울 필요는 전혀 없어!

    게다가 집에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긴 모습은 완전 잡종이잖아!

     

    친해져도 쓸모가 전혀 없지!

     

    “…….”

     

    그래도 영 쓸모가 없는 애는 아니었다.

     

    그나마 그 아이의 문병을 핑계로 대고 출발을 미뤄서 며칠 더 있을 수는 있었으니까…….

    그, 실제로 걱정도 좀 됐고.

     

    “하아…….”

     

    “왜 그러시나요? 돌아가고 싶지 않으신 겁니까?”

     

    “……아냐.”

     

    맞아, 사실 돌아가고 싶지 않아.

    헬레나는 맑고 화창한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확, 비라도 내렸으면 좋을 텐데.

    비행기가 뜨지 못 할 정도로.

     

    ‘그러면 루크랑 조금 더…….’

     

    ——–

     

    공항으로 향하는 길.

     

    루크와 디아나와 파이리스는 모두 뒷좌석에 올라탔다.

    파이는 디아나와 놀기 위해서 여전히 파이리스인 상태였으므로.

    아무래도 아이와 노는 것이 상당히 즐거웠던 모양이다.

    당분간은 이 모습을 유지할 듯 하다.

     

    아이들이 모두 타는 것을 확인한 예르나가 운전대를 잡은 채 말했다.

     

    “자, 이제 출발할 거니까, 다들 안전벨트 매렴.”

     

    “네!”

     

    디아나와 파이리스가 동시에 외쳤다.

     

    “끄응…….”

     

    그러나 파이리스는 호기롭게 외치긴 했지만 도저히 안전벨트를 매지는 못해서, 보다 못한 루크가 나섰다.

     

    “기다려보게. 내가 매어주지.”

    “고마어!”

     

    루크는 몸을 잠깐 일으켜 파이리스에게도 안전벨트를 매어주었다.

    아무리 정령이라고 해도 물질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이상, 물리적인 충격에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계속 물질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려니 상당히 피곤했는지, 파이리스는 금세 잠들어버렸다.

     

    디아나는 곰돌이 인형을 들고 있었는데, 그것을 안아 든 모습 그대로 안전벨트를 매서 인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오빠, 이것 봐! 니나도 안전벨트 맸다!”

    “그래, 잘 했다. 안전이 제일이지, 니나도.”

    “하하하.”

     

    대충 맞받아치는 다이튼, 루크는 한차례 웃고는 안전벨트를 당기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화창해 보이기는 하지만, 어쩐지 구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비가 오려나.’

     

    ——-

     

    쏴아아아아……..

     

    역시 루크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공항에 딱 도착한 순간부터 쏟아져내리기 시작한 빗줄기는, 금방 그칠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루크는 자신의 예측이 들어맞았음을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허, 오늘 비가 올 확률은 20분의 1미만이라고 들었는데…….”

    “하지만 이 정도로 비가 내리면 어지간해선 결항되겠는 걸.”

     

    공항 한켠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대화소리.

     

    “…….”

     

    다른 대화들을 모두 들어보니, 비가 심하게 온다면 비행기를 띄울 수 없다는 모양이다.

    미처 생각지도 못한 문제에 봉착한 루크는 턱을 쓸어내리면서 한숨을 쉬었다.

     

    비를 멎게 하는 마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현상을 건드릴 때에는 분명히 큰 대가가 따른다.

    자칫 잘못하면 자연의 밸런스를 해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만약 자연의 밸런스가 무너진다면 가장 비가 필요한 순간에 비가 내리지 않는다거나, 단순한 소나기로 끝날 비가 난데없는 태풍으로 변질되거나 할 수 있다.

    게다가 무엇보다, 아직 3서클의 권한으로는 날씨를 조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정령이라면 별다른 부작용 없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 터.

     

    루크는 파이리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으나, 파이리스는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내가 왜? 난 사실 돌아가기 시른데? 여기 재밌어!”

     

    “…….”

     

    하긴, 정령이라면 진짜 세계수가 존재하는 이곳 베리튼에서 굳이 벗어나려고 할 이유도 없겠다.

    그것도, 자연환경에 직접 손을 대면서까지 돌아가고자 할 필요는 더더욱 없겠지.

     

    그리 생각하니 더 부탁을 하기에도 뭐하다.

     

    이 날씨에도 비행기가 뜰 수 있기를 바랄 수 밖에.

    ———

    하지만 아니나다를까, 비행기는 결국 뜰 수 없었다.

     

    “큰일이네.”

     

    시루드도 비가 쏟아지는 창 밖을 바라보며 난처하다는 목소리를 내었다.

     

    “흠, 금방 그칠 것 같지는 않구나, 어쩌면 이 비는 내일까지 이어질 지도 모르겠다.”

    “그러게…….”

     

    그렇게 된다면 일단 오늘 잠자리가 문제가 된다.

    오늘 갑자기 이렇게 비가 쏟아질 줄 몰랐으니, 모두 숙소에서 짐을 빼고 체크아웃까지 마친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전화로 문의해본 결과 숙소는 이미 대부분이 매진된 상태였다.

    갑작스러운 폭우로 발이 묶인 사람들이 모조리 몰린 모양.

     

    “흐음.”

     

    낭패로구나.

    난처한 표정의 루크를 바라보던 시루드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 자신의 곁을 지키던 검은 양복의 사내에게 물었다.

     

    “아, 그러고보니 베리튼에 별장이 있지 않았어요?”

    “흠, 대부분의 별장은 전 회장님이 돌아가시면서 처분했습니다. 아마 베리튼의 별장도 그때…….”

    “……아.”

     

    맞다, 그랬었지.

     

    “그럼 진짜 큰일이네.”

     

    이러다가는 어디 구석진 곳의 정말 불편한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시루드는 도로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그 순간이었다.

     

    “뭐야, 트리핀드가 도련님, 설마 베리튼에 별장도 없는 거야?”

    “헬레나?”

     

    뽐내는 듯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분홍색 트윈테일의 꼬마 엘프숙녀, 바로 헬레나 루스핀드였다.

     

    “안타깝네, 후후. 뭐, 잘 곳이 없다면 우리 루스핀드가의 별장에서 특별히 재워줄 수도 있어.”

    “정말?”

    “흐음, 그렇다면 큰 도움이 되겠지만…….”

     

    루크는 말 끝을 흐렸다.

    그리고 잠시후, 전화를 마친 예르나가 루크에게 외쳐온다.

     

    “됐어, 루크. 우리는 언니의 엄마네 집에서 자면 될 거야.”

    “오, 그게 정말인가? 그거 참 다행이로군. 그럼, 지금 출발하면 되나?”

    “응, 친구들이랑 이야기 끝나면 주차장으로 와?”

    “알겠네. 금방 가지.”

     

    루크가 고개를 다시 헬레나와 시루드 쪽으로 돌리자, 그쪽에는 굳어버린 표정의 헬레나와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이 살짝 웃고 있는 시루드가 있었다.

     

    시루드는 축하한다는 투로 말했다.

     

    “잘 됐네, 루크. 잘 곳을 찾아서.”

    “뭐, 뭐야? 잘 곳이 없는 거 아니었어?”

     

    헬레나는 마치 시루드의 말에 석화에서 풀려난 것 같았다.

    루크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나는 잘 곳을 구했으니, 별장은 잠자리를 구하지 못한 시루드가 쓰면 되겠구나.”

    “아, 정말이다. 그러면 되겠네. 고마워, 헬레나. 이 은혜는 꼭 갚을 게.”

    “……어?”

     

    루크는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 헬레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어쩐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은 채 사라졌다.

     

    ‘이, 이게 아닌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와! 오늘은 그림을 많이 그려서 삽화 비축분이 많이 생겼어요!
    그런데 정신 차리고보니 또 4시였음… 허…
    삽화에 진심인 작가…!

    PS. 지각의 이유중 하나는 미사용 삽화분에 올려두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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