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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5

       마야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길 바랐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광경.

       그녀의 귀에 들리는 소리.

         

       모든 게 그녀의 믿음과 대치되는 것이었다.

         

       원더스타인.

       그녀가 존경하는 스승이, 지옥도 앞에서도 경건한 모습을 보이던 이 남자가 다 큰 처녀를 방에 불러 놓고는 옷을 벗으라고 속삭이다니.

         

       단장님.

       제가 잘못 들은 거죠?

       그렇죠?

         

       마야는 레이나를 바라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저 애도 단장님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무슨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것으로 자신이 잘못 들었다는 것을 증명해줄 것이다.

         

       애석하게도 레이나가 취한 다음 행동은 마야의 기대와 어긋난 것이었다.

         

       그녀는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버, 벗을게요.”

         

       그녀는 자신의 옷에 달린 매듭과 단추를 하나둘 풀기 시작했다.

         

       그것을 지켜보는 마야의 두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외투를 벗어 던졌다.

       그녀의 상의가, 하의가 하나하나 그녀의 굴곡진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단장님은 그녀의 뒤태를 감상하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말에 따라 상대가 고분고분 옷을 벗는 모습을 즐기고 있었다.

         

       마야는 어비스의 아득한 바닥 없는 어둠 속으로 떨어지는 감각을 느꼈다.

         

       이게 단장님이라고?

       이게…….

         

       레이나의 어깨와 허리와 다리가 차례차례 새하얀 속살을 드러났다.

       이제 남은 것은 아래위 한 장씩 걸친 속옷뿐이었다.

         

       그가 침대에서 일어나 그녀의 등 뒤로 다가갔다.

         

       마야는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이 이상 지켜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더는 이런 곳에 있기 싫어.

         

       그녀는 떨리는 다리로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다.

         

       등 뒤로 옷자락이 사락거리며 소리가 들렸다.

         

       “저……여기 있어요.”

       “이리 주렴.”

         

       마야의 가슴이 검게 타들어 갔다.

       그녀가 마침내 속옷까지 모두 벗은 것이다.

         

       그녀는 서둘러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어두운 공간 속에서 벽에 기대고는 심호흡을 했다.

         

       그녀는 자신이 본 것들을 부정하고 싶었다.

       환상을 본 거라 믿고 싶었다.

         

       다시 볼까?

       뭔가 오해일지도 몰라.

       그래. 단장님은 지금까지 의술로 사람들을 고쳤잖아.

       레이나 몸에 무슨 병이 난 걸지도.

       맞아. 분명…….

         

       그때, 문틈 사이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좀 벌려보겠니, 레이나? 손이 잘 안 들어가는구나.”

       “알겠어요. 너, 넣을 때, 조심해주세요. 좀 작아서…….”

         

       마야는 놀라서 그만 숨을 헉 들이켰다.

       둘의 대화는 그녀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노골적이었다.

         

       “확실히 그렇게 보이는구나. 음? 근데 이거 분홍색이구나. 후후, 네 평소 이미지와는 좀 다른데?”

       “아핫, 가, 간지러워요. 그, 그게 이유가 있어요…….”

         

       그만!

         

       그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화장실 창문을 열고 염동력으로 공중을 박찼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 하나하나가 그녀의 뇌세포를 새하얗게 불태우는 것 같았다.

         

       그녀의 몸은 이리저리 휘청이며 하늘을 날았다.

         

       원더스타인은 레이나가 내민 상의를 바라봤다.

       분홍색에 프릴이 달린 이것은 확실히 얼음 공주 캐릭터를 연기하는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몇 년 전에 만든 거라서 그래요.”

       “몇 년 전?”

       “일단 다 입은 다음에 설명해 드릴게요.”

       “알겠다.”

         

       그렇게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반대편 팔을 소매에 끼워 넣기 위해 애썼다. 아무래도 옷이 작아서 그런지 서로 낑낑대며 고생해야 했다. 원래 허리쯤에 위치해야 할 프릴이 그녀의 겨드랑이 사이를 간질였다. 그녀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마야는 별장 지붕 위에 쪼그리고 앉았다.

       원더스타인의 방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아래층에서 우몬이 코를 그르렁거리며 골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달빛이 그녀의 새하얀 얼굴을 비췄다.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무심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 아래 얼마나 많은 감정이 요동치는지 다른 사람들은 짐작하기 힘들 것이다.

         

       그녀는 한참 동안 허공을 바라봤다.

         

       두 사람은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떠올리기 싫었지만, 방 안의 광경이 머릿속에 재생됐다.

         

       원더스타인이 레이나의 알몸을 주무르며 쾌락을 탐닉하는 모습을.

       레이나가 기분 좋게 호응하는 모습도.

         

       그녀가 앉은 주변 지붕의 기와들이 들썩였다.

       그녀의 마력이 제멋대로 염동력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나 통제할 의욕이 들지 않았다.

         

       사실 놀랄 일도 아니잖아?

       알고 있었잖아.

       원래 그런 분이라는 걸.

         

       여자랑 엮이면 문란해지는 사람이잖아.

         

       그녀는 새하얀 손이 파랗게 질릴 정도로 옷자락을 꽉 쥐었다.

         

       그런데 왜 걔를 그렇게 편하게 대하는 거죠?

       저한테는 존댓말을 쓰면서.

       저는 당신의 제자를 자처하는데…….

       그건 거절했잖아요.

         

       걔한테는 곡예를 가르쳐줘서 그런 거예요?

       그래서 말을 놓는 거예요?

         

       왜 저한테는 거리를 두는 거죠?

       저는 제자가 아닌가요?

       걔가 진짜 제자예요?

       당신은 제자와도 자는 사람인가요?

         

       만난 지 얼마 안 된 잘 알지도 못하는 애한테는 그렇게 다정하게 굴면서…….

         

       마야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봤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이나.

         

       원더스타인.

       그가 그녀의 머릿속을 꽉 채웠다.

         

       우습게도 그녀는 제자를 자처하면서 그의 스승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이름과 나이, 그리고 가지고 있는 능력 몇 개.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무관심한 그녀의 성격 때문이기도 했고, 그가 자신의 과거에 대해 좀처럼 털어놓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괘종시계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새벽 동이 터올 때까지 밤새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제멋대로 튀는 염동력을 간신히 부여잡고 몸을 허공에 띄었다.

       그녀는 최대한 단장님의 방이 있는 쪽을 피해서 그녀의 방으로 돌아갔다.

         

       궁금하긴 했다.

       단장님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그러나 행여 침대 위에 알몸으로 뒹굴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본다면.

       아니면, 서로 사랑을 나누며 신음을 토하는 두 사람의 소리를 듣는다면.

         

       만약 그런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녀 안에 있는 마음의 도화지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찢어질지도 몰랐다.

       지금도 마력 제어가 무너지고 있는데, 그것이 어떤 식으로 자신의 마법에 영향을 끼칠지 두려웠다.

         

       그녀가 다른 신비주의 마법사들과 구분되는 점은 마법 사용에 감정의 영향이 없다는 것이었다. IMT의 공학자들처럼 정확히 계산된 양과 수식으로 일정한 출력의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러한 장점도 그녀가 어설프게 신비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무너져 내리려 하고 있었다.

         

       이러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마법에 영구적인 손상이 갈 수 있었다.

         

       방에 돌아온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지워야 해.

       이런 감정.

         

       비워야 해.

       마음의 도화지를.

         

       그렇게 각오를 다진 그녀는 아침 식사 자리에 내려갔다.

       그곳에는 원더스타인과 레이나도 있었다.

         

       두 사람은 어색한 시선을 나누며 격의 차린 대화를 나눴다.

         

       마야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지금까지는 저들의 연기에 깜빡 속았었다.

       공장 견학 자리를 빼앗겼을 때도 그저 운이 없었다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다.

       두 사람은 이미 그때부터 사람들 몰래 밀회를 즐기며 뒤로 말을 맞추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가증스러웠다.

       두 사람 모두.

         

       하지만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어차피 이제 그녀의 안에서 지우기로 한 사람이다.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일행이 드래프트를 종결하기 위해 학교로 간 동안 전에 갔던 그 카페를 찾았다.

       주인 할머니가 그녀를 반겼다.

         

       “손님, 오늘도 오셨네요.”

         

       그녀는 노트를 테이블 위에 펼치고 앉았다.

       그러나 여전히 도식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젯밤의 일이 자꾸 눈앞을 아른거렸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사장님, 전에 마셨던 것보다 더 독한 걸로 주세요.”

         

       그 말에 주인 할머니가 손으로 입을 가렸다.

         

       “세상에. 우리 작은 아가씨가 그보다 독한 걸 마셔도 되겠어?”

       “많이 힘들어요.”

       “……알겠어요.”

         

       노인은 바로 가서 그저께 만들었던 음료를 또 제조했다.

       재료의 양은 이전과 같았다.

       대신 보드카를 2배로 넣었다.

       귀이개만큼이나 작은 티스푼으로 2숟갈을 부었다.

         

       이것으로 음료의 알코올 도수는 1%가 되었다.

         

       “어때요?”

       “확실히 독하네요.”

         

       맥주의 반의반도 안 되는 도수의 술을 가지고 독하다고 평하는 마야의 모습을 보며 노인은 속으로 웃음 지었다.

         

       참, 귀여운 아가씨란 말이야.

         

       조금 알딸딸한 기분을 느낀 그녀는 어젯밤의 사건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있었다.

       그녀는 퍼즐을 좀 더 연구하다가 마차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2주 만에 돌아온 부단장과 일행들이 있었다.

         

       마야는 마차를 타고 가면서 신경 안 쓰기로 다짐했건만 자꾸 단장님에게 눈이 갔다.

       그녀는 부단장의 어깨에 얹은 그의 손을 바라봤다.

         

       저 손으로 레이나의 가슴을 주무르고, 살을 더듬었을까?

       그리고 그……손을 넣었을까.

         

       부단장은 자신이 없는 2주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나 할까?

         

       “나 없어서 아쉬웠지?”

         

       엘라의 질문에 원더스타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그랬죠. 하지만 좋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레이나 양에겐 엘라 양에게 없는 능력이 있더군요.”

         

       부단장, 속지 마.

       그 사람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의미로 말한 거 아니야.

         

       그녀는 그렇게 속으로 되뇌었다.

       별장으로 돌아온 그녀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졌다.

       역시 전날에 무리한 탓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광장에 나갔다.

       논리적인 문제를 파고듦으로써 다른 문제를 덮기 위함이었다.

         

       주로 찾은 곳은 그동안 신세를 진 카페였다.

       주인 할머니는 그녀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그녀는 이제 그녀에게 말을 놓으며 과자를 공짜로 주기도 했다.

         

       “이건 내일 나올 신제품이란다. 한번 먹어보렴.”

         

       그녀는 노인이 내민 과자를 보더니 말했다.

         

       “먹어봤어요.”

       “응? 어디서? 아, 설마 그때 말한 얘기 듣고 공장 견학 갔다 온 거니?”

       “네.”

         

       마야는 그녀의 관심이 부담스러운지 시선을 살짝 피했다.

         

       노인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소녀의 그런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연륜으로 알고 있었다.

         

       “누구랑 갔니? 아, 그래. 여행 중이라고 했지. 좋아하는 남자가 일행에 있니?”

         

       좋아하는 남자…….

         

       마야는 고개를 붕붕 저었다.

         

       관심 없다.

       그런 남자.

       내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들 뿐인 바람둥이.

         

       “아니에요.”

         

       그때였다.

       원더스타인과 엘라가 팔짱을 낀 채 카페 안으로 들어온 것은.

         

       “마야!”

       “단장님, 부단장.”

         

       두 사람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노인이 메뉴판을 내왔고, 두 사람은 음식을 주문했다.

         

       마야는 노트에 적힌 도식에 정신을 집중했다.

       억지로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곳에 시선을 뺏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그녀의 집중력은 계속해서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분산되었다.

         

       원더스타인이 자신이 연구하는 것을 보고 입을 여는 것을 바로 알아차린 것도 그 덕분이었다.

         

       “아, 그건.”

       “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 끼어들지 마세요.”

         

       그녀의 싸늘한 대꾸에 그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물러났다.

         

       마야는 여전히 스승으로서 그를 존경했지만, 자신의 마음이 혼란스러운 지금은 그에게 끼어들 여지를 주고 싶지 않았다.

         

       얼마 안 있어 식사가 나왔다.

         

       주인 할머니는 마야의 표정을 살피다가 원더스타인의 얼굴을 슬쩍 보고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나이 차는 있어 보인다만…….

       저 정도 미남자라면 괜찮은 것 같네.

       하지만 정작 우리 아가씨에게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데?

         

       마야는 테이블에 놓인 음식 중에 작은 팬케이크 하나를 자신 앞으로 끌어왔다.

       그녀가 시킨 것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이프를 집어들었다.

       아니, 집어 들려 했다.

         

       그녀는 맞은편에 앉은 두 사람을 보고 동작을 멈췄다.

         

       엘라가 자신 앞에 놓인 음식을 두고 팔짱을 낀 채 멀뚱히 원더스타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조금 난처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녀는 관심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내면의 속삭임을 무시하고 말했다.

         

       “왜 그래?”

         

       엘라는 그녀를 슬쩍 바라보더니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나는 오늘 떠먹여 주는 사람이 있거든.”

       “무슨……소리야?”

         

       엘라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 대신 입을 벌렸다.

         

       “아.”

         

       마야는 순간 그녀가 무슨 의도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하는 동작, 그녀가 내뱉은 말이 가리키는 의미는 명확했다.

       그러나 그것이 벌어지는 장소가,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 그것을 요구하는 대상이 너무나 비상식적이었기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상식은 오늘 또 부정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Jaldabaoth 님, 100코인 후원! 정주행 즐겁게 하신 것 같아 제 기분이 다 좋네요. 앞으로도 즐거운 글로 보답해드리겠습니다.

    처음으로 리플레이 시점 착각 전개를 써보는 것 같네요…하하…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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