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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5

       

       

       

       

       

       아르가 너무 좋아해서 아르마블을 한 판 더 한 뒤, 나는 도시 카드와 황금열쇠, 돈, 주사위를 다시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러는 동안 아르는 텐트 바닥에 누워 뒹굴면서 내가 만들어 준 회색 미니 아르 모형을 손에 들고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헤헤, 헤헤헤….”

       

       뒹굴, 뒹굴.

       

       왼쪽, 오른쪽으로 몸을 뒤집으면서도 미니 아르 모형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

       “우응! 넘무 조아! 히히.”

       

       아르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입을 헤 벌리고, 바닥에 아르 모형을 놓은 뒤 손으로 인형을 가지고 놀듯이 점프를 시키기도 하고, 하늘을 날게 하기도 했다. 

       

       사실 날개는 조각하기가 어려워서 대충 엄청 작게 등 부분을 파 놓은 수준으로 해 놨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어떻게든 디테일하게 만들어 줄 걸 그랬다. 

       

       “아, 생각난 김에 그거 해 줘야겠다. 아르야, 모형 눈 그려 줄 테니까 잠시만 줘 볼래?”

       “쀼우! 알게써!”

       

       업그레이드를 시켜 준다는 말에 아르가 얼른 모형을 내밀었고. 

       

       나는 염료를 꺼내 모형에 아르의 맑고 붉은 보석 같은 눈을 그려 넣었다. 

       

       겨우 눈 두 개 그려 넣는 과정이었지만 마치 피규어 장인처럼 한 땀 한 땀 신경 써서 그려 넣었더니 그래도 꽤나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왔다. 

       

       “우아아! 고마어, 레온!”

       “염료가 좀 말라야 되니까 기다리….”

       “타임 엑셀러레이션!”

       

       슈욱.

       

       “…금방 말랐네.”

       “히히, 소중히 보관해야징.”

       

       아르는 아공간을 열어서 아르 모형을 조심스레 집어넣었다. 

       

       그 아공간 안쪽에는 내가 맨 처음 주었던 루비, 그리고 용병 길드장이 준 블루 사파이어, 이드밀라가 준 자수정이 들어 있었다. 

       

       아르는 그 옆에 아르 모형을 배치시키고는 마치 피규어 진열장을 바라보는 듯한 얼굴로 씨익 웃더니 아공간을 닫았다.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모아 놓은 아공간인 모양인데, 아르 모형이 거기 들어갔다는 사실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귀여워….’

       

       문득 작은 모형만 가지고도 저렇게 좋아하는데, 인형을 만들어 주면 더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인형을 만들어 줄 생각을 못 했네.’

       

       아르 아빠로서 그간 딸내미한테 인형 하나 사 주거나 만들어 주지 않았다니.

       

       아무래도 다음 들르는 도시에서 주문제작을 하거나 재료를 사서 직접 만들어 줘야겠다.

       

       웬만하면 직접 만들어 주는 편이 아르가 더 좋아하긴 하겠지. 

       

       ‘인형은 옛날에 고등학교 때 만들어 본 게 다긴 한데.’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옛날에는 ‘기가’라고 불렸던 기술·가정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그중에서 직접 바느질을 해 가며 부직포와 솜으로 인형을 만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뭐, 나름 그때 만점을 받을 정도로 있는 재료 가지고 잘 만들긴 했었지.’

       

       그때도 생각해 보니 마침 공룡 인형을 만들었었다.

       

       이유는 별거 없고 그냥 당시에 공룡 메카 로봇 같은 게 유행했었기 때문에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었는데, 반영이 너무 잘 되었는지 반 친구들이 자기한테 돈 받고 팔라고 경매식 입찰까지 했었다. 

       

       ‘그거 안 팔고 기념으로 집에 가져와서 선반에다 올려놨었는데…. 그냥 팔걸. 팔아서 맛있는 거라도 사먹었으면 남는 건데.’

       

       의미 없는 후회를 잠깐 한 나는, 다음 도시에 들르자마자 재료를 구매하기로 마음먹었다. 

       

       ***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대도시에나 도착해야 재료를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다음으로 도착한 작은 마을에 인형을 파는 가게가 있었던 것이다. 

       

       <마그렛의 인형 가게>

       

       골목 안쪽에 있어서 아르는 보지 못한 모양이었지만, 인형 가게라는 글자만 보이기를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 보던 나는 가게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근처에 제발 여관도 있어라…! 오! 있다.’

       

       인형 가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여관을 발견한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오늘은 저기서 묵을까요?”

       “그럴까요?”

       “어차피 작은 마을이라 호텔 같은 곳도 없으니, 그냥 대충 하룻밤 묵는다고 생각하고 가죠.”

       “아르는 아무데나 조아! 레온이랑 온니랑 다 가치 잘 수 있는 침대만 이쓰면 대.”

       

       마을이라 딸내미 모드로 내 손을 꼬옥 잡고 있는 아르는 나를 올려다 보며 헤헤 웃었다. 

       

       “그래, 아르야. 넓은 침대가 있는 방으로 달라고 해 볼게.”

       

       그리 큰 여관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우리는 커다란 침대가 있는 방을 구할 수 있었다. 

       

       아르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문에 끼이지 않을 정도로만 몸을 줄인 용 폼으로 돌아와서 커다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쀼우! 침대댜!”

       

       삐걱.

       

       “헉.”

       “하하하, 괜찮아 아르야. 호텔 침대 아니면 이 정도 삐걱거리는 건 당연한 거니까.”

       “구, 구런 거지? 구래도 조심해야게따….”

       

       초호화 호텔에서 아무렇지 않게 방방 뛰어 다니고 날아 다녔던 아르는 행동을 조금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한 듯 비교적 얌전히 침대 위에서 뒹굴거렸다. 

       

       ‘이때다.’

       

       나는 뒹굴며 이불을 몸에 둘둘 말고 있는 아르에게 말했다. 

       

       “아르야, 거기서 쉬고 있을래? 나는 잠시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나갔다 올게.”

       

       그러자 아르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려고 했다. 

       물론 돌돌 감싸진 이불 때문에 꿈틀하는 게 다였지만.

       

       “레온 오디 가? 아르두 가치 가!”

       “아냐, 아르는 그냥 여기 있어. 내가 따로 볼일이 있어서 그래.”

       “히잉…. 레온이랑 떨어지는 거 시룬데….”

       

       아르의 눈망울을 보고 마음이 약해질 뻔했지만, 나는 금세 마음을 다잡았다.

       

       “대신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면 내가 깜짝 선물 가지고 올게. 응?”

       

       선물이라는 말에 아르의 귀가 쫑긋 섰다. 

       

       “징짜?”

       “응. 그러니까 잠깐만 실비아 씨랑 같이 있어. 알겠지?”

       “우응!”

       

       나는 실비아에게 잘 부탁한다는 눈빛을 보냈고. 

       실비아는 뭔진 모르지만 알겠다고 눈빛으로 답했다. 

       

       그렇게 여관에서 빠져나온 나는 곧바로 인형 가게로 들어갔다. 

       

       “어서 오슈.”

       

       가게 주인은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였다. 

       

       “안녕하세요.”

       “딸아이 인형이라도 사러 온 모양이로구먼. 여자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인형이라면 저쪽에 있수다.”

       “아뇨, 실은 인형을 사러 온 게 아니라….”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호오, 인형을 직접 만들어 주고 싶다라…. 손재주가 조금 있는 모양이구먼.”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있습니다. 재료랑 도구만 좀 팔아 주시면 제가….”

       “이리로 들어오시우. 내 인형 만드는 것 좀 봐 드리지.”

       “저, 정말인가요? 감사합니다!”

       

       사실 재료랑 도구만 사 가지고 가서 아르가 잠들었을 때 슬며시 일어나 작업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아예 인형을 만들어 가지고 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안쪽 작업실로 들어간 나는 감탄사를 뱉었다. 

       

       “우와…. 진짜 뭔가 많네요.”

       

       안 그래도 여기 들어왔을 때 본 진열된 인형들이 꽤나 종류도 많고 퀄리티도 생각보다 좋아서 의외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가게를 제대로 찾은 것 같았다.

       

       “일단 원단을 골라야 하는데…. 예산은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나?”

       

       나는 곧바로 금화를 꺼내 보였다. 

       

       “골드 단위로도 가능합니다.”

       

       금화를 본 주인장 할머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홀홀. 이거 참, 우리 가게에서 금화를 내는 손님을 보게 될 줄이야.”

       

       할머니는 금화에서 잠시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할머니의 눈에는 곧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얼핏 생각하면 오랜만에 호구를 잡은 가게 주인이 덤터기를 씌우려는 눈빛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냐. 저건 재물을 탐내는 사람의 눈이 아니다.’

       

       할머니의 눈빛은 뭐랄까, 돈 자체를 탐하는 눈빛이라기보다는 이 돈으로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빛나는 눈빛에 가까웠다.

       

       “딸아이한테 선물해 줄 거라고 했지? 그럼 원단은 이걸로 해 보는 게 어떻수?”

       

       주인 할머니는 가장 구석 쪽에 있는 원단 박스를 열었다. 

       

       “보존이 잘 되도록 가공 과정을 거친, 짧은 밍크 원단이우. 아주 부드러우면서도 어떤 형태의 인형에든 잘 어울리는 원단이라고 할 수 있지.”

       

       이제는 목소리에도 아까보다 훨씬 힘이 들어가 있었다.

       

       “오오…. 확실히 다르긴 다르네요.”

       

       처음에는 밍크 원단이라길래 털이 부숭부숭 나 있는 원단인 줄 알고 다른 걸로 하겠다고 하려고 했는데….

       

       ‘이건 달라.’

       

       아주 짧은 밍크가 오밀조밀하게 직조되어 있었고, 가공 과정까지 거쳐서 그런지 겉의 촉감이 굉장히 신기하게 부드러웠다. 

       

       뭐랄까, 굳이 표현하자면 보들보들과 맨들맨들의 중간 정도라고 해야 할까?

       

       천연 소재를 살짝 가공한 걸로 이런 촉감을 만들 수 있다니….

       

       ‘진짜 비싸긴 비싸겠네.’

       

       페룬 대륙에서 이 정도 기술을 적용한 원단이니, 안 비쌀 수가 없겠지.

       

       “이 정도 크기 잘라서 사면 얼마 정도 하나요?”

       “50실버 정도 하우.”

       “비싸긴 비싸네요.”

       

       내가 바로 인정하자 주인 할머니는 웃음을 터뜨렸다. 

       

       “홀홀홀. 사실 이 원단은…. 어찌 보면 이 늙은이의 욕심이 담긴 원단이우. 언젠가 이런 원단으로 예쁜 인형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특별 주문 제작해 두었지만, 이걸로 인형을 만들어 달라는 사람도, 이걸로 만든 인형을 사려는 사람도 없었지.”

       

       할머니는 바깥쪽의 진열대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딱 봐도 퀄리티가 좋은 커다랗고 귀여운 곰인형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가격은 70실버였다. 

       

       “…안 팔릴 만하네요.”

       

       아무리 퀄리티가 좋다고 해도 그렇지, 돈이 썩어 넘치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누가 인형을 70실버나 주고 사겠는가.

       

       …살까?

       

       “그렇지. 홀홀.”

       

       물론 원가 이하로 가격을 파격 인하하면 팔릴 가능성이라도 있겠지만, 애초에 그럴 거면 만들지도 않았을 거다.

       

       그러니까 저 인형은, 그저 순수하게 할머니가 더 좋은 퀄리티로 만들고 싶어서 만든 인형인 것이다.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후우.’

       

       그리고 계획을 조금 변경하기로 했다. 

       

       “할머니, 아무래도 제가 직접 만드는 것보단 주문 제작을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혹시 지금 바로 작업 가능하세요?”

       “홀홀. 당연히 가능하우.”

       “그럼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 주시겠어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만들 인형의 실사 모델을 좀 데려오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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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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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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