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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5

       강림으로 인한 황금이 드리운 밤 아래.

       

       펄럭-

       

       찬란히 빛나는 소미레의 등에서 커다란 천사의 날개가 피어나고, 머리 위에 고리가 만들어졌다.

       

       나와 프란체는 이 광경을 바라보며 넋을 잃었다.

       

       여신.

       

       소미레의 모습은 이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었다.

       

       “…괜히 강림이라 불리는 게 아니군.”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한 마디. 그만큼 입이 벌려지는 광경이었다.

       

       “그러게 말이야…….”

       

       이는 프란체도 마찬가지였는지 조용히 읊조리며 동조했다.

       

       “아…….”

       

       깍지 낀 두 손을 모은 소미레는 조심스레 눈을 떴다. 사파이어 같던 눈동자마저 황금의 광채에 삼켜져 있었다.

       

       “아쉽게도 이 세계에서 사라진 존재를 되돌리는 방법은 없군요. 생명, 혼, 존재. 생명체를 이루는 이 세 가지가 전부 사라졌으니까요.”

       

       그런가.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어쩔 수 없지. 결과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게 무슨…? 아, 안 돼! 이대로 진을 잃을 수는 없어…!”

       

       프란체는 한참 전부터 산발이 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울먹였다. 소미레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따스하게 웃어보였다.

       

       “되돌릴 방법이 없다고 했지,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는 안 했습니다.”

       

       살며시 고개를 올려다본 프란체는 “그게 무슨…?”하면서 붉어진 눈을 끔뻑였다.

       

       “진, 당신을 공작님에게 귀속시키겠어요.”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정확히는 공작님의 일부분으로 귀속되는 거네요. 원래부터 초월자의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 인간의 삶은 유지할 수 있을 거예요. 힘은 좀 줄어들겠지만요.”

       

       귀속이라니, 그건 또 무슨 무서운 소리니.

       

       “그럼 진은 떠나지 않아도 되는 거야?”

       

       프란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소미레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공작님이 허락하지 않는 이상 절대 떠날 수 없고 명령도 거부하지 못할 거예요. 평생, 영원히. 공작님이 죽어 윤회하셔도 진 씨가 함께할 거예요.”

       

       그거 영혼을 결속하는 <간절한 영원의 노래>보다 더 위험한 거 아닌가?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래…?”

       

       프란체는 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매처럼 매섭고 독사처럼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진 바렌베르크. 대답하세요. 이것이 자애로운 여신님께서 내리신 유일한 성배입니다. 그대의 존재를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여 최소한의 자비를 베푼 것이지요.”

       

       소미레는 황금빛 광채를 빛내며 말을 이었다.

       

       “수락하실 건가요? 지금은 강림으로 인한 권능으로 당신을 유지하고 있지만, 거절하는 즉시 존재가 사라질 겁니다.”

       

       이거 받을 수밖에 없긴 한데. 등골이 서늘해지는 조건이다.

       

       ‘그래도…….’

       

       사랑하는 이와 이별해야 하는 두려움보단 등골이 서늘해지는 게 낫지 않을까. 고민할 가치도 없다. 나는 고개를 주억였다.

       

       “…수락하지.”

       “잘 생각하셨군요.”

       

       소미레는 싱긋 웃더니 날개를 펄럭였다. 천천히 허공으로 부유하며 새하얀 깃털이 떨어졌고, 별이 떠오른 밤하늘에 황금의 선풍이 불었다.

       

       “당신에게 권능이 깃듭니다.”

       

       화아악─!

       

       몸을 구성하던 금색의 입자가 곳곳에 스며들었다. 따스한 기분. 속이 텅 빈 느낌이었는데 무언가에 의해서 채워지고 있다.

       

       “아…….”

       

       졸음이 몰려오는 것이 노곤하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고 침대에 누운 기분. 이러면 안 될 거 같은데…….

       

       ‘너무 편안해.’

       

       눈꺼풀이 무겁다. 서서히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진, 편히 쉬렴. 깨어났을 땐 모든 게 끝나 있을 거란다.”

       

       프란체가 다가와 나를 꼬옥 안았다.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뺨을 비볐다. 권능이 깃들며 몸의 형체가 돌아와 다시 접촉할 수 있는 건가.

       

       “프란체 데카르트. 당신에게 진 바렌베르크의 존재를 귀속합니다.”

       

       펄럭! 한차례 움직인 날개의 깃털이 사방으로 퍼지며 소멸하기 시작했다. 밤하늘에 드리운 황금도 점차 줄어들고, 소미레를 중심으로 퍼지던 광채도 사라지고 있다.

       

       “이것으로 끝이네요. 규율을 어긴 저는 여신님에게 버려졌고요.”

       

       소미레는 싱긋 웃으며 눈썹을 들썩였다.

       

       “정해진 운명에 저항한 초월자여, 그대에게 경의를. 부디 편히 잠드시길.”

       

       그것이 내가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었다.

       

       

       * * *

       

       

       눈을 떴다.

       

       낯선 천장에는 새하얀 수정으로 이루어진 샹들리에가 반짝이고, 주변에는 향초가 피워져 심신이 안정되는 느낌을 받았다.

       

       몸이 사르르 녹아들 정도로 푹신하고, 대자로 뻗어도 공간이 남는 넓은 침대.

       

       고개를 돌려보니 방 두 개가 있는 것도 모자라 욕실과 화장실도 있다. 단순한 침실이라 보기엔 웬만한 집과 비슷한 수준.

       

       벽면에는 유명 화가가 그린 것 같은 그림들이 붙어있고, 곳곳엔 예술 공예품들이 배치되어 있다.

       

       주로 황족이나 대귀족들이 사용할 것 같은 고풍스러운 방.

       

       구석진 곳에는 동그랗게 생긴 수정구들이 붙어 반짝이고 있다.

       

       그런데 이질감이 드는 기분은 어째서일까.

       

       “…….”

       

       이내 느껴지는 이질감의 정체를 알았다.

       

       왜 감옥처럼 문에 철창이 붙어있는 거지? 창문은 또 왜 하나도 없고?

       

       “어…?”

       

       서둘러 허리를 일으켰다. 주먹을 쥐락펴락하고 몸을 움직이며 상태를 살폈다.

       

       “…몸에 문제는 없고.”

       

       빈혈이 온 것처럼 눈앞이 핑 돌거나, 몸속이 허한 느낌도 사라졌다. 성녀의 강림 의식이 성공적으로 끝난 모양.

       

       ‘일단 나가보자.’

       

       침대에서 나와 문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철창과 가까워질수록 힘이 빠진다.

       

       ‘뭐야?’

       

       풀썩.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 공간의 무언가가 내 힘을 실시간으로 흡수하고 있다.

       

       ‘철창 때문인가?’

       

       그리 보이진 않는데…….

       

       굳이 유추하자면 저 사각지대에만 박혀있는 수정구일까?

       

       “…….”

       

       아무것도 느낄 수 없어서 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나와 같이 정원에 있었던 프란체와 소미레는 어디에 있는 건가.

       

       눈을 끔뻑이며 혼란에 빠져있던 그때.

       

       “일어났군.”

       

       문에 달린 철창 사이로 케일의 얼굴이 보였다.

       

       “케일?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렇게 됐다.”

       “뭔 소리야?”

       “…네가 알아서 생각해라.”

       

       케일은 그리 말하고 휙, 고개를 돌렸다.

       

       “케일? 케일!”

       

       애절한 내 부름에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저기, 진 오빠.”

       

       케일 옆에 라데아도 있던 건가? 이런 와중인지라 반가운 얼굴이다.

       

       “라데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어… 진 오빠의 업보죠.”

       “업보라니?”

       

       라데아는 슬며시 시선을 피하며 멋쩍게 웃었다.

       

       “아무튼, 잘 지내세요. 앞으로 얼굴을 더 볼 수 있을진 모르겠네요.”

       “…….”

       

       철창 사이로 보이는 라데아는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 평소에 잘하시지.”

       “…….”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이어 라데아의 모습이 철창 사이에서 사라졌다.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쿵. 문이 닫히는 소리까지 들렸다. 내가 널 데려와서 출세시켜줬는데 너무 냉담한 거 아닌가.

       

       ‘그나저나, 대체 여기가 어디지? 공작저인가?’

       

       내가 알기론 공작저에 이런 공간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상하게 오러를 사용할 수 없다. 사라진 존재를 되돌린 강림의 부작용? 그렇다고 하기엔 내 몸에 내장된 힘은 그대로 느껴진다.

       

       ‘감각은?’

       

       원래의 수준보다 한참 떨어져 있다. 본래라면 지하에 숨겨진 벌레 하나 움직이는 소리마저 들려와야 정상인데…….

       

       ‘부작용이 맞는 거 같네.’

       

       그리 생각하던 찰나였다.

       

       덜컥.

       

       또각. 또각.

       

       문밖에서 차가운 구두 소리가 울려 퍼졌다. 평소였다면 기척으로 누군지 바로 알아차렸을 텐데.

       

       ‘누구지?’

       

       소리를 들어 봤을 때, 무게가 가벼운 걸 보니 일단 남성이 아닌 건 확실하다.

       

       “일어났니?”

       

       고막을 살살 긁는 듯한 우아하고 단정한 목소리. 다름 아닌 프란체였다.

       

       “공작님? 어떻게 된 겁니까?”

       “뭐가?”

       “그냥… 이 모든 상황이 말입니다.”

       “음…….”

       

       문에 있는 철창으로 고개를 내민 프란체는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공기가 얼어붙을 것 같은 싸늘한 미소.

       

       “일단 너는 여기서 못 나간단다.”

       “그게 무슨…?”

       

       프란체의 눈꼬리가 올라간 채 정지했다. 그녀가 가지는 분위기와 더불어 저런 얼굴마저 아름다워 섬뜩했다.

       

       “성녀가 사용한 권능을 설명해줄게.”

       

       싱긋 웃은 프란체는 고개를 살짝 꺾곤 말을 이었다.

       

       “네 존재가 나한테 귀속되어 생명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단다. 내 존재의 일부분이라 명령을 거부할 수도 없고, 내게서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질 수 없지.”

       

       프란체는 그리 말하곤 씨익 웃었다.

       

       “넌 이제 완전히 내 소유란다.”

       

       아무래도 큰일 난 거 같다.

       

       

       * * *

       

       

       집무실로 돌아온 프란체는 상쾌한 기분으로 기지개를 켰다.

       

       “하아아…….”

       

       진이 잠들어있던 시간은 나흘. 아까 상태를 보니 딱히 문제는 없는 거 같다.

       

       “고마워. 이 일은 평생 갚지 못할 거야.”

       

       프란체는 소미레를 바라보며 눈꼬리에 호선을 그렸다.

       

       “그리 감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를 위해 한 행동이기도 하니까요.”

       

       그리 말하곤 차의 향을 음미하는 소미레. 프란체는 웃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아무튼, 소미레. 너는 데카르트 공작저의 주치의로 일하게 될 거야. 성녀의 힘은 잃었지만, 신성 마법은 여전히 사용할 수 있으니까.”

       

       이전처럼 절단된 신체를 재생하거나, 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순 없다. 그런데도 카자르와 비견될 정도로 신성 마법은 사용할 수 있다.

       

       카자르도 혹사당하고 있는데 업무를 분담할 사람은 있어야지. 무엇보다 거래의 내용이기도 했고.

       

       “그리고 네 신분을 새로이 만들 거고, 소미레라는 이름은 이제 이 세상에서 사라질 예정이란다.”

       

       소미레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신분까지요?”

       “그래. 자유는 줘야 하지 않겠니?”

       “그렇게까지 해주시다니…….”

       “은인이니까.”

       

       아마 소미레가 없었다면 끔찍한 결과가 나왔을 거다. 존재가 사라져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이별한 순간의 상처는 거짓이 아니니까.

       

       “너한테 부여할 신분은 남작위야. 데카르트 가문의 가신으로서 활동할 수 있게 되지. 나는 너에게 많은 편의를 봐줄 거란다. 돈도 아낌없이 지원할 거고.”

       

       그 말에 소미레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해요.”

       “아니야. 내가 더 감사하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원수 같던 소미레인지라 아직 거부감이 가시지 않았지만, 내면의 사람이 달라져 혐오감은 들지 않았다.

       

       “너의 새로운 이름은 ‘달리아 샤스타’야. 몰락한 샤스타 남작가의 작위를 구매했지.”

       

       데카르트 공작가의 힘으로 귀족 작위 하나 구매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이 넓고 방대한 제국에 몰락한 귀족가는 얼마든지 있으니 말이다.

       

       “황실에도 전할 거야. 원래의 소미레는 초월 마법사, 라드리엔과 같이 공작령을 공격해 진에게 살해당했다고. 그럼 모든 일이 끝나겠지.”

       

       아직 할 일이 많다. 황제인 레제프도 파면해야 하고, 데카르트에 호의적인 새로운 황제를 세워야 하고, 바렌베르크 세력 편입과 진과 혼인 등등…….

       

       앞으로 굉장히 바빠져 쉴 틈이 없겠지만, 그런데도 프란체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그토록 원하던 진을 완전히 소유했으니.

       

       “…그런데 그건 계속 보고 계실 건가요?”

       

       소미레가 눈치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프란체는 아, 하고 수정구에서 눈을 뗐다.

       

       “당연히 계속 봐야지. 아무리 완벽하게 감금해뒀다지만, 진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잖아?”

       

       수정구는 진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비추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달리아 샤스타는 [프란체 코퍼레이션!]에 추가되었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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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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