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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5

       “아가씨.”

        

       양혜인은 사라의 양어깨를 붙들고 말했다.

        

       “정신이 드시나요?”

        

       아까부터 제대로 정신을 잡지 못하고 눈동자가 흔들리던 사라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작게 끄덕이는 고개를 보고 양혜인은 작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우선 사라의 몸을 묶은 테이프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일단은 다리부터.

        

       단순히 발목만 묶은 것이 아니라, 무릎 부분에서도 한 번 묶어서 제대로 저항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 상태라면 버둥거리는 것조차 어려웠으리라.

        

       주머니에서 커터칼을 꺼내서 테이프를 조심스럽게 잘라나갔다. 아이러니하게도 테이프는 급한 대로 막 묶은 것이 아니라, 한겹 한겹 정성스럽게 묶여있었다.

        

       ……그 사실이, 조금 소름 끼쳤다.

        

       망가진 것은 사라뿐만이 아니었다. 최나경도 이미 사라만큼이나 망가져 있었다. 원인이 무엇인지는 모르겠고, 설령 그렇다고 해도 이게 용서할 수 없는 범죄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리고, 그 ‘용서’에 양혜인은 아무런 권리도 없다.

        

       모두, 모두 사라가 결정하는 데로 흘러갈 뿐.

        

       다리에 묶인 테이프를 모두 잘라냈지만, 사라의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축 늘어질 뿐이었다. 꽉 묶여 있었으니 피가 제대로 통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같은 자세로 거의 두 시간을 있었으니 이럴 만도 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힘없이 축 처진 사라의 몸을 뒤집었다.

        

       팔은 90도로 굽혀서 손목과 반대쪽 팔꿈치가 닿는 상태에서 묶여있었다. 역시 이 자세로도 어떻게 팔을 쓸 수는 없었으리라. 다리보다도 더 꽉 붙어있었기 때문에, 양혜인은 더 꼼꼼하게 확인하고 천천히 테이프를 잘랐다.

        

       혹시라도 사라가 다치지 않도록.

        

       그리고 이번에도, 사라의 팔은 구속이 풀리자마자 그저 축 늘어질 뿐이었다.

        

       “…….”

        

       덕분에 사라는 그대로 뒷좌석에 얼굴을 묻고 엎드린 모습이 되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깨진 유리가 이쪽까지 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양혜인은 혹시라도 사라가 다친 곳이 있을까 싶어 사라의 몸을 이곳저곳 확인했다.

        

       눈에 띄는 상처는 없었다.

        

       혹시라도 교복 아래에 상처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눈으로 보이는 곳에는—

        

       아니, 한 군데가 있었다.

        

       사라의 머리.

        

       이마 부분이, 새빨갛게 부어있었다.

        

       “…….”

        

       이건 최나경이 폭행한 흔적일까?

        

       양혜인이 차에서 내려서 본 모습은, 사라의 입과 코를 막고 꽉 누르고 있는 최나경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떨리는 손으로 사라의 젖은 머리카락을 치웠다. 새빨갛게 물든 이마는, 아마 그대로 멍이 들 것 같았다.

        

       “…….”

        

       아무리 용서가 사라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최나경이 몸을 일으키려고 하던 그때,

        

       “도와주세요!”

        

       누군가의 외침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옆에 차가 지나가는 소리도.

        

       “…….”

        

       양혜인은 일어나서 차 밖으로 나왔다.

        

       최나경은 맨발로 도로 저 멀리까지 달려 나간 뒤였다. 양혜인의 차를 타지는 못한 모양이다. 내릴 때 문을 닫고 내렸으니까.

        

       지나가던 승용차가, 최나경의 옆에 멈추어 선다. 최나경이 그 차의 문을 열더니 뭐라고 말을 하고, 그 차에 몸을 실었다.

        

       차는 그대로 황급히 도망가듯 자리를 떴다.

        

       “…….”

        

       최나경이 부른 차일까?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아무리 최나경이 회사의 우두머리라고 해도 이런 미친 짓에 협력할 존재는 없다고 생각하니까. 학교 관계자들조차 오늘의 일을 알고 나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릴 것이다.

        

       양혜인은 자기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두꺼운 옷을 입고, 목장갑을 끼고 있다. 최나경의 차는 창문이 박살 난 채 문이 열려있었고, 도로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리고 아마 지나가는 차는 보지 못했겠지만, 양혜인은 이 차에 들어올 때 장도리를 들고 들어왔고.

        

       거기에 검은 모자까지 쓰고 있었으니, 누가 봐도 외제 차를 강도질하는 강도의 모습이었다.

        

       맨발로 밖으로 나온 최나경은 그 피해자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테고.

        

       어쩌면 조만간 여기로 경찰이 들이닥칠지도 모를 일이다.

        

       “……으으…….”

        

       차 안에서 그런 앓는 소리가 들렸다.

        

       사라가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려고 노력하고 있긴 했지만, 여전히 묶여있던 팔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혀서 가벼운 뇌진탕이 왔을지도 모른다.

        

       “무리하지 마십시오.”

        

       양혜인은 바로 차 안으로 들어가, 사라의 몸을 돌려서 똑바로 눕혀주었다.

        

       “아가씨는 이제 괜찮습니다. 마음을 편하게 먹고, 잠시 눈을 감고 계셔도 됩니다. 제가 여기에 있으니까요.”

        

       “……혜인…….”

        

       “네,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양혜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사라의 손 위에 자기 손을 겹쳐 올렸다.

        

       ……이 정도는 해도 되리라.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보다는 사라의 친구들이 훨씬 더 도움이 될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당장 그 아이들이 여기에 없었으니까.

        

       그저 잠시만. 잠깐, 사람들이 다 올 때까지만 이러고 있어도 되겠지.

        

       “……지금, 상황이…….”

        

       “이제 괜찮습니다.”

        

       자꾸 주변을 보려고 애쓰는 사라를, 양혜인은 안심시켰다.

        

       “이제 다 끝났으니까요.”

        

       물론 최나경은 도망쳤다. 지금 당장 차로 달려가서 따라가기 시작하면 최나경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사라가 더 중요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사라를 이곳에 혼자 두고 갈 수는 없었으니까.

        

       “…….”

        

       거칠게 오르내리던 사라의 가슴이 조금은 진정되었다.

        

       최나경은 도망갔지만, 조만간 잡힐 것이다. 이런 일을 벌여놓았으니까. 이미 이전에도 경찰에서 조사하고 있었고, 구청에서도 직원을 파견한 전력이 있다.

        

       그러니, 끝난 일이다.

        

       양혜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

        

       “어, 저기!”

        

       달리는 차 안에서, 소희가 그렇게 소리쳤다.

        

       소희가 가리킨 곳에는 차 두 대가 나란히 서 있었다.

        

       “……아.”

        

       그중에 뒤쪽에 있는 차는 운전석의 유리가 깨져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그저 유리가 열려있는 것처럼도 보였지만, 차 바깥에 유리 조각이 흩뿌려져 있었다.

        

       기자는 그 차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주차하고, 제일 먼저 튀어 나갔다. 대체 어디서 카메라를 꺼내 갔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그리고 차를 열심히 찍기 시작했다.

        

       뒤이어서 나머지 세 사람도 차에서 내렸다.

        

       “사라야!”

        

       그렇게 소리친 것은 누구였을까. 아마 굳이 따지는 것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세 사람 다 어떻게든 사라를 불렀을 테니까.

        

       그리고, 세 사람 모두 곧 안도할 수 있었다.

        

       차의 뒷좌석에는 사라와 양혜인이 타고 있었다. 사라는 양혜인의 품에서 잠들어있었다.

        

       비록, 사라의 얼굴은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지만.

        

       그리고—

        

       “어?”

        

       제일 먼저 사라의 얼굴에 있는 이상한 점을 발견한 것은 유하늘이었다.

        

       “사라, 얼굴이 왜 이래요?”

        

       문을 열고 양혜인에게 물어보니, 양혜인은 고개를 저었다.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녀는 그렇게 말을 줄였지만, 유하늘은 그 말의 뒤에 어떤 말이 따라붙을지 예상할 수 있었다.

        

       “……최나경.”

        

       유하늘은 그 이름을 짓씹었다.

        

       “그 사람은 어딨죠?”

        

       유하늘이 그렇게 묻자, 열심히 사진을 찍던 기자의 귀가 쫑긋거렸다. 양혜인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나가던 차를 얻어타고 도망쳤습니다.”

        

       “……네?”

        

       같이 이야기를 듣던 수아가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마, 그녀가 피해자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최나경 회장을 돕는 일당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아…….”

        

       유하늘은 다시 한번 운전석 쪽을 슬쩍 보았다.

        

       ……운전석에는 미처 치우지 못한 유리 조각들이 마구 떨어져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일방적으로 유리를 깨부순 흔적이었다.

        

       게다가, 양혜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옷을 입고 있었으니까.

        

       “사라는 어떤 상태…….”

        

       어떤 상황에서 발견되었냐고 물어보려다가, 유하늘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양혜인의 품 안에서 잠든 사라가 말을 들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지금 사라의 몸에 있는 존재가 사라건, ‘사라’건, 무척 무섭고 소름 끼치는 일을 겪은 참이었다. 겨우 그 상황에서 빠져나왔는데, 일부러 기억을 상기시킬 이유는 없었다.

        

       “…….”

        

       눈을 돌려서, 주변 상황을 천천히 관찰한다.

        

       차 바닥에 테이프가 떨어져 있었다. 중간에서 칼로 자른 듯이 깔끔하게 잘려져 있었지만, 테이프 자체는 몇 겹이나 겹쳐 있었다. 그것만 봐도, 사라가 얼마나 세게 묶여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차라리, 그때 ‘사라’를 따라갔어야 했다. 아무리 거절하더라도, 억지로라도 따라갔어야 했는데.

        

       “…….”

        

       유하늘의 옆에 서 있는 소희와 수아 모두 말이 없었다. 그저, 차 안에 누워있는 사라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찰칵, 찰칵, 그 가라앉은 침묵 사이로, 작게 카메라 소리만이 들렸다.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유하늘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사라한테 이런 짓을 한 그 사람도, 사라가 이렇게 되도록 방치한 학교도. 전부.”

        

       물론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는 않았지만.

        

       무슨 수를 써서건, 가만히 두지 않을 거다.

        

       유하늘의 그 말에, 옆에 서 있던 소희와 수아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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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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