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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5

     합스베르크로부터 선물 받은 마도자동선을 타고, 나는 아스타시아와 함께 지브롤터 백작령으로 돌아왔다.

     “잘 왔구나.”

     캐롤라인 성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가 나를 맞이했다.

     “황손녀께서는 저택 안으로 들어가시오. 셜롯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오.”

     “네, 아버님!”

     아스타시아는 바로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어머니에게로 향했고, 아버지는 나를 캐롤라인 성에 있는 집무실로 데리고 들어왔다.

     

     구 백작성에 있는 서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디자인.

     차이점이 있다면, 서재에 있는 조상님들의 초상화 대신에 제국의 기술력으로 인화된 사진들이 수도 없이 걸려있다는 점.

     “세상에. 이걸 다 찍으신 겁니까?”

     “그럼.”

     어머니가 절반. 레타르, 루비, 샤피, 마린이 각각 10%씩. 나머지는 나나 누아르, 그리고 임신한 어머니.

     아버지에게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사진이라는.

     “…문제가 하나 있군요.”

     “문제?”

     “아버지께서 안 계시잖습니까?”

     “아.”

     벽에 걸린 수많은 사진은 전부 아버지가 찍은 사진이기는 하지만, 정작 그러다 보니 아버지 본인이 나오는 모습이 전혀 없었다.

     “스스로 찍을 수 있게 사진기를 개량해달라고 하겠습니다. 아니면 제국에서 사진 전문가를 고용해서 보내달라고 하거나.”

     “그건 안 된다.”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남자에게 함부로 셜롯을 찍게 할 수는 없고, 여자라면 셜롯이 아니라 나를 찍느라 정신이 나가있을테니까.”

     “…….”

     참으로 아버지다운 답변이라 뭐라고 말은 못 하겠지만, 실제로 그럴 것 같아서 반문하기를 포기했다.

     “하여튼 방학이라고 해도, 와줘서 고맙다. 저 배에 관한 이야기는 들었다. 합스베르크 황태자의 통보 없는 선물이 그다지 내키지는 않지만, 이번에도 세인트 지오에게 그냥 넘겨주게 놔둘 수는 없지.”

     아버지는 오자마자 내가 타고 온 마도자동선에 대한 소유권을 분명히 했다.

     “혹시나 세인트 지오 그 자가 이걸 노린다면, 크림슨 지브롤터의 것이라고 말해두도록. 감히 지브롤터의 것을 노릴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생각보다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습니다?”

     “만일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결코 마도자동선을 넘겨주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자는 마도자동선을 마치 셜롯을 빼앗아 간 것처럼 생각하겠지. 분명 배 갑판에다가 대고 아랫도리를 문지르고 있을 것이다. 썩을 놈.”

     “어, 으음….”

     정확히는 무능왕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그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군요.”

     “남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그렇게 생각하는 자가 세인트 지오지. 제일 역겨운 게 뭔지 아느냐? 그자는 그 배에 ‘샤를롯테’라는 식으로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진짜입니까?”

     “거의 99%의 확률로. 조사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그렇겠지. 나중에 누군가가 따진다면, 샤를로’트’가 아니라 샤를’롯테’라면서 이름이 다르지 않냐고 적반하장으로 나올 인간이다.”

     “인간이 아니라 인간 미만의 것이나 마찬가지네요.”

     나름 무능왕의 행동 원리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젊은 시절부터 상대해 온 아버지가 훨씬 더 잘 이해하고 있는 모양이다.

     “합스베르크 황태자에게는 고맙다고 전해두고.”

     “예. 두 가지, 급히 상의드릴 부분이 있습니다만.”

     정말로 급한 문제 두 가지.

     “이미 소식을 전해 들으셨겠지만, 제가 습격을 당했습니다.”

     “……안 그래도 직접 찾아갈까 생각도 했었다.”

     “누구를요? 세인트 지오를?”

     “그레이.”

     하나는 내가 암살당할 뻔했다는 것에 아버지가 몹시 화가 났다는 것.

     “우리는 오늘부터 매국명가가 아니라, 반역명가다.”

     “아니, 아버지.”

     매국이 아니라, 반역?

     “제국의 도움을 받지 않고 왕도로 쳐들어간 다음, 세인트 지오의 사지를 구속하여 영영 움직이지 못하는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건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러다가 혀 깨물고, 아니 누군가가 독약이라도 먹여서 죽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크흠….”

     극단적인 생각까지 할 정도로 아버지는 화가 많이 났다.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너는 누군가가 아스타시아를 향해 암살자를 보냈다면 가만히 놔둘 것이냐?”

     “…제가 그 정도입니까?”

     “당연한 소리를. 무슨 실없는 소리를 하는 것이냐. 아무리 연기를 한다고 해도, 아들이 암살당할 뻔했다는 것에 분개하지 않을 아버지가 어디에 있단 말이더냐.”

     회귀 전의 당신이요.

     라는 말이 잠시 뱃속에서 끓었지만, 이미 가슴에 벅차오른 약간의 감격에 밀려 명치조차 올라오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괜찮습니다. 앞으로는 함부로 암살하려고 들지 않을 거니까요. 저를 습격한 적은….”

     나는 습격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전했고, 아버지는 심각한 얼굴로 경청했다.

     “…그렇게 시체를 처리했습니다. 흡혈귀로 만들어서.”

     “걸리지 않았고?”

     “예. 마법으로 처리했다고 대충 둘러댔습니다. 뼈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태워버렸다고 생각하겠죠. 상대의 수준은 상급 기사였으니….”

     “만일 다음에 암살자가 온다면, 제로스 경 수준의 기사가 오겠군.”

     “예.”

     마스터급 기사.

     황금여명의 1인자인 제로스 경 또한 마스터 급 기사로 알려져 있다.

     ‘알려져는 있지.’

     회귀 후의 정보라서 함부로 말은 할 수 없지만, 대외적으로 그는 마스터가 맞다.

     “멘테 경을 붙여주랴?”

     “리프트 영지에서 한창 바쁘게 캐롤라인 원료를 수급하고 있을 텐데, 제가 어찌 바쁜 사람을 호위랍시고 부르겠습니까.”

     “그러면 로버트 경은?”

     “한참 즐겁게 재미 보고 있을 로버트 경을 부를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가 거기에 있어야 저희가 정기적으로 이걸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주시죠.”

     “내가 나온 것보다 이게 더 반가워 보이는구나.”

     나는 아버지가 직접 가져온 솜누스 차를 단번에 들이켰다.

     “후우. 역시 숲에서 가져온 물로 우려낸 차는 다르군요.”

     로버트는 현재 엘프의 숲 관련된 업무를 전담하듯 맡고 있다.

     간혹 페가수스가 날아와서 내 집무실 옥상에 떨어뜨리고 가는 백금경의 편지에 따르면, 로버트를 노리는 엘프 여성들이 하나둘 제법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하더라.

     “로버트는….”

     “함부로 허리띠를 풀지 않고 백금경에게 훈련을 받고 있다고 하더군요. 지브롤터의 기사를 그만두면 흡혈귀 사냥꾼으로 전직해도 될 만큼.”

     “괜히 하프엘프 여럿 데리고 오는 게 아닐지 걱정되는군.”

     나이가 자신보다 길게는 십수 배 가까이 되는 여자들이라는 걸 자각하고 있어서 쉽게 넘어가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이지만, 그것도 조만간이리라.

     “그래. 그러면 두 번째는 무엇이냐?”

     “제국의 이야기이며, 아직 확정된 건 아닙니다만.”

     “가정의 이야기인데 네가 암살당한 것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라는 것이냐?”

     “예.”

     나는 죽지 않았지만, 저쪽은 죽었으니까.

     “테르시안 제국의 황제가 서거했습니다.”

     “…….”

     “공식적으로는 아직 살아있는데, 이미 죽었습니다. 조만간 황제가 바뀔 것 같습니다.”

     “그래. 그자가….”

     아버지는 어딘가 회한이 담긴 얼굴로 아련하게 밖을 바라봤다.

     “강적이었지.”

     “…예?”

     “아무도 몰래 마스터 셋을 데리고 제 1관문을 넘어오길래, 직접 가서 쫓아낸 적이 있었다.”

     “…….”

     금시초문인데.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이구나.”

     “당연한 거 아닙니까? 도대체 언제요?”

     “네가 1살이었을 때였나. 지브롤터에서 아기가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건지, 야밤에 몰래 관문을 넘어오려고 하더구나. 제법 고생했지.”

     “허….”

     회귀 전은 물론, 회귀 후에도 처음 듣는 이야기.

     “왜 알리지 않은 겁니까?”

     “뭐 하러 알리느냐. 마스터 넷이 협곡을 넘으려고 했다고 이야기했다가는 반년은 관문 꼭대기에서 숙식하며 경계를 서야 했을 텐데.”

     “앗.”

     “그리고 그 뒤로 제국도 함부로 협곡을 넘어올 생각을 못 했으니, 잘된 일이지.”

     “…….”

     아무래도 아버지는 역사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일들을 여러 번 처리해 온 모양이다.

     알렸으면 달라졌을까?

     글쎄.

     오히려 아버지에게 ‘수호자’의 의무를 다하라고 누군가가 종용하면서, 혼자가 된 어머니를 노리는 어둠의 마수가 일찌감치 뻗쳐왔을지도 모른다.

     “잘하셨습니다. 하여튼 황제가 죽었는데, 죽은 사유로는 불륜으로 인한 치정 문제에서 비롯된 걸로 사료됩니다.”

     “불륜…?”

     “예. 이사벨라 황태자비가 축출되고, 에르윈 아이페리아 회장이 황태자비로 올라설 예정입니다. 아스타시아의 친모이며, 황태자비가 되거나 혹은 곧장 황후로 올라서겠죠.”

     “불륜으로 인해 죽었다고?”

     “정확한 사유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만….”

     “그래. 불륜을 했으면 죽어야지.”

     “…….”

     가슴에 벅찬 감격을 뚫고 목구멍까지 치솟는 말이 하나 있었지만, 나는 간신히 참았다.

     “뭐냐. 그 표정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거라.”

     “아니요.”

     어머니는요, 라고 말을 했다가는 바로 연무장으로 끌려들어 갈 것 같아서 참았다.

     “그냥, 아버지에게 불륜을 하도록 만든 제가 좀 죄송스러워서.”

     “불륜이라고 할 건 없지. 셜롯에게 허락을 받은 건 물론이거니와, 그 뒤로 몇몇을 들이든 그건 ‘후처’가 되는 거니까 불륜은 아니지.”

     “…….”

     “아, 그래. 혹시나 네 어머니의 일에 관해 생각한 거라면.”

     나는 잠시, 등골이 서늘해졌다.

     “뭐. 강….”

     아버지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을 하려다-

     “…강제로 추행을 당한 건 본인이 원해서 그런 게 아니라,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란 인간이 함부로 저지른 것이니 어쩔 수 있나. 힘없는 여인인데. 됐다. 이 이야기는 그만하자꾸나.”

     빠르게 말을 마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검이 녹슬었는지 한 번 확인이나 해야겠다. 그레이. 칼을 뽑아라.”

     “갑자기요?”

     “방학이라고 그러면 아스타시아와 둘이서 데이트만 즐기고 놀 생각이었더냐? 안 될 말이지. 나도 방학 때는 셜롯과 떨어져서 지냈는데.”

     “아버지.”

     “결코 내가 나 어렸을 때는 방학 때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지 못했다고, 아들에게 그 억울함을 토로하는 그런 불합리한 자가 아니라는 건 알아다오.”

     “누가 봐도 그런 거 아닙니까.”

     “그럴 리가.”

     아버지는 허리에 찬 검을 가볍게 손으로 튕겼다.

     “암살당하지 않게 그 실력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니, 안심하거라. 이 서재는 마스터 둘이 검을 겨뤄도 밖에서 그 누구도 모르도록 마법이 설정되어 있으니까.”

     “그 상대하는 사람이 저잖습니까. 백금경 부르십시오, 백금경.”

     “백금경이 그러던데, 제자가 자신보다 뛰어나니 제자를 상대로 검을 겨루면 될 거라고 하더군.”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카ㅡㅡㅡ앙!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나는 본능적으로 칼을 뽑았다.

     “반응이 좋구나. 그래. 크림슨 지브롤터급 암살자와 상대할 날이 있다면, 이 정도는 해야지.”

     “세상에 아버지 같은 암살자가 어디에 있다고!”

     불합리하다.

     이렇게 고생하는 건 내가 아니라 누아르의 몫인데.

     “어디 보자. 지난번에는 그랬으니까…이번에는 1시간 동안 버티는 걸로 하지.”

     “아버지! 누아르를 상대로는 1분 버티기를 하시면서!”

     “너는 누아르랑 같은 취급을 받고 싶으냐?”

     “크읏…!!”

     나는 어쩔 수 없이, 휘두르던 칼날에 오러를 담았다.

     “패륜을 저질러도 저는 모릅니다?”

     “환영하는 바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그레이 지브롤터 변경백이 되겠구나.”

     “크윽….”

     “7년 동안의 계획은 무너지겠지만, 수호자로서의 가문은 그 어떤 때보다도 더 빛나게 되겠지. 가장 강했던 소드 마스터를 쓰러뜨리고 당당히 백작위를 차지한 새 시대의 변경백으로서.”

     “…….”

     점점 아버지가 말을 하면 할수록 어째 의욕이 떨어지는 건 어째서일까.

     카ㅡㅡ앙.

     “칼날이 무뎌졌다, 그레이.”

     “실수로라도 아버지를 죽이고 나면 제가 여기에 갇혀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내키지 않아서.”

     “흐음. 건방진 녀석. 좋다. 그렇다면….”

     카ㅡㅡㅡ앙!

     “한 시간 안에 나를 쓰러뜨린다면, 방학 내내 아스타시아와 자유롭게 놀게 해주지.”

     “…….”

     나는 잠시 거리를 벌린 뒤, 자세를 취했다.

     “아이페리아류.”

     “지브롤터의 장남이라는 녀석이 당당하게 남의 집 도법이나 읊어대는 꼴을 보게.”

     “찰나베기.”

     전력을 담은 일격.

     “인정하마. 백금경의 칼은 강하고, 너 또한 날카롭지. 허나.”

     아버지에게 먹힐까.

     그런 의문은 소용없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무너지지 않는 협곡이라도 덤벼드는 게 승부.

     “내가 백금경과 안 맞는 부분이 하나 있다면.”

     섬광처럼 날아간 참격을 향해, 아버지는 담담한 표정으로 검을 들었다.

     “기술명이라는 건, 우리와 같은 자들에게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

     “깨닫게 해주마.”

     나의 칼날을 향해 떨어지는 아버지의 검은.

     “내려 베기.”

     마치, 아득한 협곡이 나를 향해 떨어지는 것처럼 무거웠다.

     * * *

     “그래서 얼마나 버텼다고요?”

     “59분 57초.”

     “그거, 그냥 아버님께서 마지막에 일부러 시간 맞추신 거 아닌가요?”

     “그 일격만 막아냈으면….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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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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