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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5

<4월 2일 기준으로 연재되었던 159화 ~ 163화 내용이 수정되어 159화 ~ 167화까지 연재되었습니다. 완전히 다른 내용이기에 4월 2일 이전에 읽으셨던 분들은 159화부터 다시 읽으시거나 168화 초반에 적어놓은 요약본을 읽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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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끙… 역시 생각이 안 나네.’
    ​
    ​
    함정이 잔뜩 깔린 저택으로 돌아와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고심해봤지만 역시 떠오르는 정보가 단 하나도 없었다. 아무리 리안이 개그 필터의 힘과 대단한 눈썰미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인지하기도 힘들었던 찰나의 순간 마주쳤던 네크로맨서와 노인을 연결 짓는 건 불가능했다.
    ​
    ​
    [ 파트너, 한가하면 검술 수련이나 하지. ]
    ‘그럴까?’
    ​
    ​
    마검과 연결이 짙어지면서, 굳이 마검이 리안의 몸을 조종하지 않아도 능력 일부를 가져와 쓸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이는 ‘스킬’적인 능력뿐만이 아니라 검술 또한 포함되었다.
    ​
    ​
    ‘가르간도아는 신성력에 약하니까 틈틈이 검술 연습을 하는 게 좋겠지.’
    ​
    ​
    리안이 신성력을 사용할 때마다 마검이 엉덩이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꺅꺅거린 탓에 생긴 오해였다. 적어도 교황이나 성자 정도 되는 수준의 신성력이 아니고서야 마검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신성력을 가진 이는 없었다.
    ​
    ​
    그저 리안의 신성력이 교황이나 성자 급으로 강한 탓에 생긴 오해였지만, 제대로 된 신관을 만나본 적이 없었기에 그저 마검이 신성력에 약하구나 -…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
    ​
    ‘실력이 생각보다 쑥쑥 늘어서 연습하는 맛이 있단 말이지. 이게 재능이라는 -… 헉! 크,큰일 날 뻔했다.’
    ​
    ​
    수련 기간이 길지 않음에도 벌써 기사단원 정도의 실력을 쌓은 탓에 오만한 생각이 머릿속을 차지할 뻔했다. 
    ​
    ​
    ‘자만하는 건 패배 클리셰 중 하나지. 암…’
    ​
    ​
    특히 외모가 뛰어난 이가 자만하기 시작하면 꼴사납게 패배하여 “으윽, 끔찍해.”라는 혐오 가득한 평가를 받게 되는 건 유구한 역사를 통해 증명된 사실이다.
    ​
    ​
    ‘자만하지 말고, 딱 운동 수준으로만 수련하기. 잊지 말자.’
    ​
    ​
    죽자 살자 수련에 매달리는 것도 ‘개그 기술’을 개화시킬 수 있기에 피해야 했다. 리안은 머릿속에 ‘개그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100가지 규칙’ 따위를 떠올리며 저택과 멀찍이 떨어진 숲에서 수련을 시작했다.
    ​
    ​
    마검의 지도 아래 한 시간 정도 검을 휘두르자 복잡하던 머릿속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
    ​
    “후… 역시 머리가 복잡할 땐 운동이지.”
    ​
    ​
    이마에 살짝 맺힌 땀을 닦아내며 마검을 작은 단검 형태로 바꾸어 허리춤에 매었다. 
    ​
    ​
    [ 파트너, 배가 고프다. ]
    ‘씻고 줄게. 씻고.’
    [ 나는 지금 배가 고프다! 가는 길에 주면 되잖나! ]
    ‘아무리 그래도 땀에 젖은 상태잖아. 먹는 너도 찝찝할 거 아니야?’
    [ 인간들이 소금 뿌려 먹는 것과 비슷하니 상관없다. ]
    ‘아니… 그게 그런 느낌이라고? 그것보다 그걸 어떻게 아는 거야?’
    [ 그야 먹어본 적이 있으니까. ]
    ‘먹어봤다고? 언제?’
    [ 파트너가 귀찮다고 자기 전에 꽂아두고 잘 때 있지 않았나? 인간은 잠든 상태에서 꽤 땀을 많이 흘리니 알 수밖에 없지. ]
    ‘…’
    ​
    ​
    당당하게 자신이 잠든 사이에 땀을 핥아먹었다는 변태적인 발언에 리안은 할 말을 잃었다. 마검의 여성체 모습을 상상하니 얼굴에 열이 오를 것 같으면서도, ‘소금’을 뿌린 것 같다는 발언을 생각해보면 정말 음식이 된 것만 같아서 기분이 묘해졌다.
    ​
    ​
    그런 쓸데없는 대화를 하며 저택으로 향하던 중.
    ​
    ​
    “…! 오빠!”
    “아이리스?”
    ​
    ​
    아이리스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무들 사이에서 나타나 리안의 품에 달려들었다. 익숙하게 아이리스를 안아주며 머릿속에 갈고리를 띄웠다.
    ​
    ​
    순간 공작을 공격했던 ‘도플갱어’인가 싶었지만 마검이 반응하지 않는 거로 봐선 아이리스가 맞는 것 같았다. 당황이 잦아들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
    ​
    ‘그새 깼나 보구나.’
    ​
    ​
    아이리스는 여전히 공작과 낯을 가려, 리안과 공작이 신관을 만나러 갈 때 혼자 저택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혼자 저택에서 리안을 기다리게 된 아이리스는 머릿속을 채우는 불안감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
    ​
    오빠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지? 이대로 떠나버리면 어쩌지?
    ​
    ​
    한껏 긴장한 상태로 오만가지 생각을 떠올리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저택을 뛰쳐나왔다. 다행히 아이리스가 뛰쳐나오는 것과 리안이 저택으로 돌아오는 것과 맞물려 서로 엇갈림 없이 마주칠 수 있었다.
    ​
    ​
    아이리스는 그의 품에 안기고 나서야 머리끝까지 차오른 긴장을 풀 수 있었다. 단단하고 따스한 품에 안긴 채 긴장이 풀리자 그대로 까무룩 잠들어버렸다.
    ​
    ​
    리안은 그런 아이리스를 모포가 깔린 방에 눕혔다. 이후 아이리스의 옆에서 신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자 끙끙거리다가 마검의 수련 제안을 받아들여 저택 인근 숲에서 수련을 하고 돌아가던 중이었다.
    ​
    ​
    ‘제스는 어디에다 두고 혼자 온 거지?’
    ​
    ​
    아이리스가 혹여 중간에 깨더라도 놀라지 않도록, 제스에게 산책하고 올 테니 아이리스가 깨어나면 금방 돌아오겠다는 말을 전해달라 했었다. 
    ​
    ​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
    ​
    제스가 약속을 어길 성격은 아니었기에 걱정이 담긴 시선으로 저택을 바라보았다.
    ​
    ​
    꽈악!
    ​
    ​
    “윽..!”
    ​
    ​
    리안이 자신이 아닌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있다는 걸 귀신같이 알아챈 아이리스가 리안이 깜짝 놀라 신음을 뱉을 정도로 꽉 끌어안았다.
    ​
    ​
    “아,아이리스?”
    ​
    ​
    뭔가 눈치를 봐야 할 것 같은 상황에 눈을 도르륵 굴리며 조심스럽게 등을 토닥거리자 허리를 반으로 또각 부러뜨릴 듯 조이던 팔이 조금이지만 느슨하게 힘이 풀렸다.
    ​
    ​
    “오빠…오빠..”
   
    ​
    아이리스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리안의 가슴팍에 얼굴을 문지르며 연신 그를 찾았다. 리안은 그런 아이리스를 익숙하게 토닥거리며 어린아이를 달래는 듯한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
    ​
    “악몽이라도 꿨어? 미안, 미리 말을 하고 나왔어야 했는데.”
    “으응.”
    ​
    ​
    리안의 체향과 다정한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자 안정을 찾았는지 울먹이던 목소리가 어느새 투정을 담고 있었다. 
    ​
    ​
    “나 지금 땀투성이라 냄새나니까 우선 떨어지자. 씻고 안아줄 테니까. 응?”
    [ 호오, 파트너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암컷 -.. 아니, 여성체를 꼬시는 연습이라도 했었나?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
    ​
    오늘도 어김없이 헛소리를 늘어놓는 마검에게 어이없다는 투로 대답해 준 후,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젓는 아이리스를 달래고자 재차 입을 열었다. 아이를 달래는 듯한 말이 튀어나오는 것보다 아이리스의 말이 더 빨랐다.
    ​
    ​
    “악몽,을 꿨어. 오빠가 내 곁을 영영 떠나버리는 악몽…”
    “아…”
    ​
    ​
    정말 그런 악몽을 꾼 건지 리안의 허리를 끌어안은 아이리스의 팔에 재차 힘이 들어갔다. 느슨하게 풀렸던 목소리가 어느새 울음을 머금고 있었다.
    ​
    ​
    “오빠… 는 쭉 내 곁에 있어 줄 거지?”
    “…”
    “계속… 계속 함께해줄 거지?”
    ​
    ​
    리안은 말없이 입술을 벙긋거리다가 아무런 말도 뱉지 못했다.
    ​
    ​
    “흐윽… 대답해줘, 제발.”
    ​
    ​
    규칙적으로 아이리스의 등을 토닥거리던 손이 애매하게 허공에서 뚝 하고 멈춘 채 갈 곳을 잃은 것처럼 흔들리다가 이내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
    ​
    “…당연하지. 오빠가 아이리스의 곁을 떠날리가 없잖아.”
    “…! 정..말?”
    “물론이지.”
    ​
    ​
    리안은 부드럽게 웃음 지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제 표정과 말투를 통제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
    ​
    “대신 조건이 있어.”
    “조건…?”
    “응, 곁에 있어 줄 테니까 공작님도 가족으로 여겨줬으면 좋겠어.”
   “…!”
    ​
    ​
    아이리스는 오랜 시간 정에 굶주려온 만큼 누군가의 애정을 쉽게 거부하지 못한다. 그게 진짜 가족과의 관계라면 더더욱 끊어낼 수 없을 터다. 자신이 약속을 어기고 떠난다고 해도 -… 공작에게 한 번 마음을 준다면 미워하지 못할 것이다. 
    ​
    ​
    그래, 이건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다. 
    ​
    ​
    “…알겠어.”
    ​
    ​
    리안은 눈부시게 웃으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
    ​
    “고마워!”
    ​
    ​
    그리고 미안해.
    ​
    ​
    전해지지 못한 뒷말이 혀 아래 씁쓸함을 남기고 꿀꺽 삼켜졌다.
    ​
    ​
    ***
    ​
    ​
    …분명 ‘선의의 거짓말’을 속삭이던 장면은 뭔가 멋있으면서도 씁쓸한 그런 장면 아니었나?
    ​
    ​
    “고맙군, 그대 덕분에 아이리스.. 내 딸과 처음으로 대화를 해 볼 수 있었네.”
    “하하, 정말 다행이네요!”
    ​
    ​
    여기까진 그래, 별문제 없었다. 도리어 뿌듯함을 느끼기까지 했었다. 문제는 이다음으로 이어진 공작의 말이었다.
    ​
    ​
    “설마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청혼할 줄이야.”
    “ㅖㅇ?”
    “아이리스에게 들었다. 평생 곁에 있어 주겠다고 청혼했다지? 정말 로맨틱한 고백이었다.”
    “우ㅓㅇ에?”
    “당장은 상황이 어수선하나… 이런 경사를 밀어둘 순 없지. 공작가에 도착하는 대로 곧바로 약혼식을 진행해줄 테니 기대하고 있게.”
    ​
    ​
    공작은 리안이 고장난 것처럼 멍청한 표정으로 이상한 소리를 내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제 말만 줄줄 늘어놓은 후, 회의가 있다며 순식간에 자리를 떠났다.
    ​
    ​
    주르륵.
    ​
    ​
    리안의 얼굴 위로 식은땀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
    ​
    ‘이거 완전 강제 결혼 엔딩이잖아!’
    ​
    ​
    이때 어리바리한 표정으로 ‘우엣?’같은 소리를 내다간 정신을 차렸을 때 식장에 입장해있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산부인과에서 아기를 안고 있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사진을 찍고 있을 것이다.
    ​
    ​
    개그 세계에서도 악독하기로 유명한 강제 결혼 이벤트 중 하나였다.
    ​
    ​
    ‘이, 이대로 있다간 쾌락 없는 책임만이 남게 된다!’
    ​
    ​
    리안의 얼굴 위로 식은땀이 한 바가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
    ​
    ‘공작가에 돌아가기 전에 튀어야 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
    ​
    그런 리안의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아 개그 필터가 맹렬하게 작동한 덕분인지, 그도 아니면 그저 하늘이 리안을 불쌍하게 여긴 건지.
    ​
    ​
    쿠르르릉!
    ​
    ​
    “…! 저거다!”
    ​
    ​
    도망칠 기회가 땅에서 솟아났다.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4월 2일 기준으로 연재되었던 159화 ~ 163화 내용이 수정되어 159화 ~ 167화까지 연재되었습니다. 완전히 다른 내용이기에 4월 2일 이전에 읽으셨던 분들은 159화부터 다시 읽으시거나 168화 초반에 적어놓은 요약본을 읽어주세요 >

‘끙… 역시 생각이 안 나네.’

함정이 잔뜩 깔린 저택으로 돌아와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고심해봤지만 역시 떠오르는 정보가 단 하나도 없었다. 아무리 리안이 개그 필터의 힘과 대단한 눈썰미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인지하기도 힘들었던 찰나의 순간 마주쳤던 네크로맨서와 노인을 연결 짓는 건 불가능했다.

[ 파트너, 한가하면 검술 수련이나 하지. ]

‘그럴까?’

마검과 연결이 짙어지면서, 굳이 마검이 리안의 몸을 조종하지 않아도 능력 일부를 가져와 쓸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이는 ‘스킬’적인 능력뿐만이 아니라 검술 또한 포함되었다.

‘가르간도아는 신성력에 약하니까 틈틈이 검술 연습을 하는 게 좋겠지.’

리안이 신성력을 사용할 때마다 마검이 엉덩이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꺅꺅거린 탓에 생긴 오해였다. 적어도 교황이나 성자 정도 되는 수준의 신성력이 아니고서야 마검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신성력을 가진 이는 없었다.

그저 리안의 신성력이 교황이나 성자 급으로 강한 탓에 생긴 오해였지만, 제대로 된 신관을 만나본 적이 없었기에 그저 마검이 신성력에 약하구나 -…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실력이 생각보다 쑥쑥 늘어서 연습하는 맛이 있단 말이지. 이게 재능이라는 -… 헉! 크,큰일 날 뻔했다.’

수련 기간이 길지 않음에도 벌써 기사단원 정도의 실력을 쌓은 탓에 오만한 생각이 머릿속을 차지할 뻔했다.

‘자만하는 건 패배 클리셰 중 하나지. 암…’

특히 외모가 뛰어난 이가 자만하기 시작하면 꼴사납게 패배하여 “으윽, 끔찍해.”라는 혐오 가득한 평가를 받게 되는 건 유구한 역사를 통해 증명된 사실이다.

‘자만하지 말고, 딱 운동 수준으로만 수련하기. 잊지 말자.’

죽자 살자 수련에 매달리는 것도 ‘개그 기술’을 개화시킬 수 있기에 피해야 했다. 리안은 머릿속에 ‘개그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100가지 규칙’ 따위를 떠올리며 저택과 멀찍이 떨어진 숲에서 수련을 시작했다.

마검의 지도 아래 한 시간 정도 검을 휘두르자 복잡하던 머릿속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후… 역시 머리가 복잡할 땐 운동이지.”

이마에 살짝 맺힌 땀을 닦아내며 마검을 작은 단검 형태로 바꾸어 허리춤에 매었다.

[ 파트너, 배가 고프다. ]

‘씻고 줄게. 씻고.’

[ 나는 지금 배가 고프다! 가는 길에 주면 되잖나! ]

‘아무리 그래도 땀에 젖은 상태잖아. 먹는 너도 찝찝할 거 아니야?’

[ 인간들이 소금 뿌려 먹는 것과 비슷하니 상관없다. ]

‘아니… 그게 그런 느낌이라고? 그것보다 그걸 어떻게 아는 거야?’

[ 그야 먹어본 적이 있으니까. ]

‘먹어봤다고? 언제?’

[ 파트너가 귀찮다고 자기 전에 꽂아두고 잘 때 있지 않았나? 인간은 잠든 상태에서 꽤 땀을 많이 흘리니 알 수밖에 없지. ]

‘…’

당당하게 자신이 잠든 사이에 땀을 핥아먹었다는 변태적인 발언에 리안은 할 말을 잃었다. 마검의 여성체 모습을 상상하니 얼굴에 열이 오를 것 같으면서도, ‘소금’을 뿌린 것 같다는 발언을 생각해보면 정말 음식이 된 것만 같아서 기분이 묘해졌다.

그런 쓸데없는 대화를 하며 저택으로 향하던 중.

“…! 오빠!”

“아이리스?”

아이리스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무들 사이에서 나타나 리안의 품에 달려들었다. 익숙하게 아이리스를 안아주며 머릿속에 갈고리를 띄웠다.

순간 공작을 공격했던 ‘도플갱어’인가 싶었지만 마검이 반응하지 않는 거로 봐선 아이리스가 맞는 것 같았다. 당황이 잦아들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새 깼나 보구나.’

아이리스는 여전히 공작과 낯을 가려, 리안과 공작이 신관을 만나러 갈 때 혼자 저택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혼자 저택에서 리안을 기다리게 된 아이리스는 머릿속을 채우는 불안감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오빠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지? 이대로 떠나버리면 어쩌지?

한껏 긴장한 상태로 오만가지 생각을 떠올리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저택을 뛰쳐나왔다. 다행히 아이리스가 뛰쳐나오는 것과 리안이 저택으로 돌아오는 것과 맞물려 서로 엇갈림 없이 마주칠 수 있었다.

아이리스는 그의 품에 안기고 나서야 머리끝까지 차오른 긴장을 풀 수 있었다. 단단하고 따스한 품에 안긴 채 긴장이 풀리자 그대로 까무룩 잠들어버렸다.

리안은 그런 아이리스를 모포가 깔린 방에 눕혔다. 이후 아이리스의 옆에서 신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자 끙끙거리다가 마검의 수련 제안을 받아들여 저택 인근 숲에서 수련을 하고 돌아가던 중이었다.

‘제스는 어디에다 두고 혼자 온 거지?’

아이리스가 혹여 중간에 깨더라도 놀라지 않도록, 제스에게 산책하고 올 테니 아이리스가 깨어나면 금방 돌아오겠다는 말을 전해달라 했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제스가 약속을 어길 성격은 아니었기에 걱정이 담긴 시선으로 저택을 바라보았다.

꽈악!

“윽..!”

리안이 자신이 아닌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있다는 걸 귀신같이 알아챈 아이리스가 리안이 깜짝 놀라 신음을 뱉을 정도로 꽉 끌어안았다.

“아,아이리스?”

뭔가 눈치를 봐야 할 것 같은 상황에 눈을 도르륵 굴리며 조심스럽게 등을 토닥거리자 허리를 반으로 또각 부러뜨릴 듯 조이던 팔이 조금이지만 느슨하게 힘이 풀렸다.

“오빠…오빠..”

아이리스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리안의 가슴팍에 얼굴을 문지르며 연신 그를 찾았다. 리안은 그런 아이리스를 익숙하게 토닥거리며 어린아이를 달래는 듯한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악몽이라도 꿨어? 미안, 미리 말을 하고 나왔어야 했는데.”

“으응.”

리안의 체향과 다정한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자 안정을 찾았는지 울먹이던 목소리가 어느새 투정을 담고 있었다.

“나 지금 땀투성이라 냄새나니까 우선 떨어지자. 씻고 안아줄 테니까. 응?”

[ 호오, 파트너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암컷 -.. 아니, 여성체를 꼬시는 연습이라도 했었나?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오늘도 어김없이 헛소리를 늘어놓는 마검에게 어이없다는 투로 대답해 준 후,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젓는 아이리스를 달래고자 재차 입을 열었다. 아이를 달래는 듯한 말이 튀어나오는 것보다 아이리스의 말이 더 빨랐다.

“악몽,을 꿨어. 오빠가 내 곁을 영영 떠나버리는 악몽…”

“아…”

정말 그런 악몽을 꾼 건지 리안의 허리를 끌어안은 아이리스의 팔에 재차 힘이 들어갔다. 느슨하게 풀렸던 목소리가 어느새 울음을 머금고 있었다.

“오빠… 는 쭉 내 곁에 있어 줄 거지?”

“…”

“계속… 계속 함께해줄 거지?”

리안은 말없이 입술을 벙긋거리다가 아무런 말도 뱉지 못했다.

“흐윽… 대답해줘, 제발.”

규칙적으로 아이리스의 등을 토닥거리던 손이 애매하게 허공에서 뚝 하고 멈춘 채 갈 곳을 잃은 것처럼 흔들리다가 이내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당연하지. 오빠가 아이리스의 곁을 떠날리가 없잖아.”

“…! 정..말?”

“물론이지.”

리안은 부드럽게 웃음 지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제 표정과 말투를 통제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신 조건이 있어.”

“조건…?”

“응, 곁에 있어 줄 테니까 공작님도 가족으로 여겨줬으면 좋겠어.”

“…!”

아이리스는 오랜 시간 정에 굶주려온 만큼 누군가의 애정을 쉽게 거부하지 못한다. 그게 진짜 가족과의 관계라면 더더욱 끊어낼 수 없을 터다. 자신이 약속을 어기고 떠난다고 해도 -… 공작에게 한 번 마음을 준다면 미워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 이건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다.

“…알겠어.”

리안은 눈부시게 웃으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전해지지 못한 뒷말이 혀 아래 씁쓸함을 남기고 꿀꺽 삼켜졌다.

***

…분명 ‘선의의 거짓말’을 속삭이던 장면은 뭔가 멋있으면서도 씁쓸한 그런 장면 아니었나?

“고맙군, 그대 덕분에 아이리스.. 내 딸과 처음으로 대화를 해 볼 수 있었네.”

“하하, 정말 다행이네요!”

여기까진 그래, 별문제 없었다. 도리어 뿌듯함을 느끼기까지 했었다. 문제는 이다음으로 이어진 공작의 말이었다.

“설마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청혼할 줄이야.”

“ㅖㅇ?”

“아이리스에게 들었다. 평생 곁에 있어 주겠다고 청혼했다지? 정말 로맨틱한 고백이었다.”

“우ㅓㅇ에?”

“당장은 상황이 어수선하나… 이런 경사를 밀어둘 순 없지. 공작가에 도착하는 대로 곧바로 약혼식을 진행해줄 테니 기대하고 있게.”

공작은 리안이 고장난 것처럼 멍청한 표정으로 이상한 소리를 내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제 말만 줄줄 늘어놓은 후, 회의가 있다며 순식간에 자리를 떠났다.

주르륵.

리안의 얼굴 위로 식은땀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이거 완전 강제 결혼 엔딩이잖아!’

이때 어리바리한 표정으로 ‘우엣?’같은 소리를 내다간 정신을 차렸을 때 식장에 입장해있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산부인과에서 아기를 안고 있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사진을 찍고 있을 것이다.

개그 세계에서도 악독하기로 유명한 강제 결혼 이벤트 중 하나였다.

‘이, 이대로 있다간 쾌락 없는 책임만이 남게 된다!’

리안의 얼굴 위로 식은땀이 한 바가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공작가에 돌아가기 전에 튀어야 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런 리안의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아 개그 필터가 맹렬하게 작동한 덕분인지, 그도 아니면 그저 하늘이 리안을 불쌍하게 여긴 건지.

쿠르르릉!

“…! 저거다!”

도망칠 기회가 땅에서 솟아났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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