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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5

   EP.165

     

   “아, 오셨네요! 서고에는 잘 다녀오셨어요?”

     

   도산검림의 비고에서 돌아와 화향루의 입구에 들어서자 마지막 손님을 보내고 1층의 탁자를 닦고 있던 점소이 아명이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궁금한 건 알아내셨나요? 저는 가 본 적 없지만 서고에 흥미로운 책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음, 궁금증이 다 해결된 건 아닌데 확실히 흥미로운 게 있기는 했지. 덕분에 도움이 많이 됐어.”

   “다행이네요! 아,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것만 마저 정리하고…”

     

   아명은 뭔가 물어볼 게 많은지 입이 근질근질한 눈치였지만 이야기를 더 끌지 않으며 청소에 열을 올렸다.

     

   분명 나무 재질의 탁자임에도 불구하고 광택이 나기 시작하는 탁자들. 굉장히 급하게 청소를 하는 모습이었는데도 녀석의 성격이 꼼꼼한 편이었던지 일을 대충하는 법은 없었다.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마무리해. 나 어디 도망 안 가니까.”

     

   어제보다 굉장히 빨라진 손놀림에 내가 한마디를 던졌다. 애초에 녀석이 왜 저렇게 급하게 청소를 끝내려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까.

     

   “스승님을 기다리게 만들 수는 없죠! 바닥 청소만 끝내면 돼요!”

   “그래그래, 다 정리되면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내려와.”

   “옙!”

     

   무공을 가르쳐 주겠다고 아명과 약속한 첫 번째 날.

   천월문의 무공이 아닌 기초만 가르칠 생각이었기에 이쯤 되니 녀석이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까지 했다.

     

   “이것만 하면 끝나요!”

     

   동심까지 느껴지는 하는 아이의 순수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대충 가르치고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식탁에 묻은 이물질을 정리한 아명이 대걸레를 가져와 바닥을 빠르게 문지른다. 그리고 내가 그런 아명을 지켜보는 동안 나를 지켜보는 시선이 있었다.

     

   “그쪽 혹시 저한테 할 말 있으십니까?”

     

   나의 말에 조금 전부터 2층 난간에서 나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남자가 내 앞으로 다가와 조심스레 운을 띄웠다.

     

   “혹시 소협께서 아명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겠다고 약속하신 그 무인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화려한 청색 옷을 입고 머리를 말아 올린 귀티가 철철 넘치는 모습. 시간이 넘치고 할 일이 없는 귀족가의 자제가 아니라면 이 시간에 객잔에 있을 만한 사람은 하나밖에 없었다.

     

   “혹시 화향루의 객주 되십니까?”

   “오, 보통은 세가의 자제나 객잔의 돈 많은 손님 정도로 생각하는데 의외군요.”

   “기운이 범상치 않으셔서.”

     

   눈매가 찢어진 갸름한 청년은 나의 말에 괜히 어깨를 으쓱하며 뿌듯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 기운이 범상치 않다는 말이 아무런 힘도 없어서 무인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의미라는 건 비밀이지만.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제가 아명에게 무공을 가르치면 안 되는 겁니까?”

     

   나름대로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과거의 기록을 보고 돌아온 나는 무공이라는 게 자신을 지키는 용도가 될 수도 있지만 인간의 탐욕을 극한으로 치닫게 하는 양날의 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의 물음에 그는 안 그래도 얇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아명의 소원이 무공을 배우는 것이었는데 제대로 가르쳐 줄 수만 있다면 너무 좋지요. 제대로만.”

   “음…… 말이 조금 따끔따끔한 느낌이군요.”

   “아, 혹시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혹시나 해서 말입니다.”

     

   그의 말에서 알 수 없는 가시가 느껴졌다. 위협을 하는 느낌은 아닌데 눈치로 살살 찔러보는 느낌. 그리고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곧장 입 밖으로 내뱉었다.

     

   “제가 제대로 된 무인인지 걱정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솔직히 말해서 그렇습니다. 소협께서는 조금 기분 나쁘실 수도 있지만 소협에 대해 조금 알아봤거든요. 그런데 소협께서 외지인이다 보니 알 수 있는 정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요?”

   “저는 지금 소협께 무공을 배우게 될 아명이 걱정됩니다.”

     

   이 젊은 객주는 자신의 어린 직원이 혹시나 잘못된 길을 걷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검을 든다는 것은 언젠가 사람을 해칠 수 있는 가능성을 열게 되는 것. 협객이 될 수도, 살인귀가 될 수도 있는 갈림길에서 길잡이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정 걱정되시면 한 번 참관하셔도 됩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파격적인 제시를 했다.

     

   “……네?”

   “첫날이라 그렇게 진도를 길게 나갈 것도 아니니 보셔도 된다는 말입니다.”

   “그게 어찌…… 자고로 타인의 병법과 무공은 어깨너머로도 훔쳐보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저 그렇게 못 배운 놈 아닙니다. 무공 수업을 참관하라니요.”

     

   객주가 안 그래도 잘 보이지 않았던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응시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어깨너머로 무공을 훔쳤던 못 배운 놈이 바로 나다.

     

   “뭐 제가 그렇게 대단한 무인도 아니고 정말 기초를 가르칠 것이라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타인이 아닙니다. 객주님은 아명의 보호자 아니십니까.”

   “끄응…”

     

   직접 수업하는 것을 봐도 좋다는 말에 객주가 침음을 흘리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무공에 대한 동경심 같은 것이 그에게도 있었던 모양이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소협. 염치없지만 제가 하나만 더 부탁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뭐든 말씀하세요.”

     

   나는 아명을 걱정했던 그를 아명의 부모님 정도로 생각하며 예의를 다 했다. 학부모 참관 수업을 하게 되는 선생님의 심정이 이러할까?

     

   하지만 이어진 그의 말에는 표정을 관리하기가 조금 힘들었다.

     

   “다른 화향루의 다른 아이 몇 명을 더 참관시켜도 괜찮겠습니까……? 아아, 안 된다면 괜찮습니다. 조금 전에 그런 말을 해놓고 제가 헛소리를 했군요.”

     

   어이없다는 나의 표정을 본 그가 의미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손사래를 치며 사과를 연발했다.

   하지만 내가 그런 표정을 지은 이유는 화가 난 게 아니라 방금 전의 말이 떠올라 웃음이 새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유가 궁금하군요. 들어나 봅시다. 저도 아이들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나의 물음에 객주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말을 이었다.

     

   “그…… 사실 저는 이 아이들이 계속 객잔에서 머물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객잔을 떠나기를 원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모순적이군요. 왜 그런 거죠?”

   “사실 아명도 그렇고 객잔에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가 없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객잔에서 아이들이 퇴근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에 객주가 어마어마한 악덕업주거나 아이들이 오갈 데가 없는 고아가 아닐까 추측하고 있었으니까.

     

   “놀라지 않는군요.”

   “뭐 그럴 것 같았으니까요. 아무튼, 계속 말씀하시죠.”

     

   객주가 객잔의 1층을 슬며시 돌아본다. 청소를 하는 아이들. 자잘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꺄르르 웃는 모습을 보니 객주의 얼굴에 괜스레 미소가 피어오른다.

     

   “아이들이 더 넓은 식견을 가졌으면 합니다. 사실 아명이 무공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지난번에 화향루를 찾았던 한 무인 덕분이었습니다.”

     

   객주는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객잔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다. 허나 모든 것을 알고 지금의 삶을 선택하는 것과 아무것도 몰라서 지금의 삶에 남겨져야 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고 객주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저 또한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은 가문에서 태어나 밑바닥에서 시작하는 인생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때는 사내답게 큰 포부를 가지고 검을 들어 세상을 호령하고 싶다는 꿈도 꾼 적이 있었지요.”

     

   모두가 언젠가 한 번쯤은 가지는 원대한 포부. 그것은 아직 변성기도 오지 않은 꼬마일 때 살며시 나타날 수도 있고 성인이 되었을 때, 뜨거운 열정과 함께 폭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모든 현상이 자신이 알지 못했던 어느 세상에 대한 동경이 생겨날 때 나타는 경우가 많았고 그것을 위해서는 여러모로 식견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아이들에게 세상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걸레로 탁자를 깨끗하게 닦고 그릇을 한 손에 많이 쌓아 주방으로 가져가는 기쁨 따위가 아닌 제가 한때 느꼈던 그 뜨거운 열정 말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나는 잠시 동안 객주를 응시했다.

     

   참된 어른. 화향루의 아이들이 올바르고 순수하게 자란 것은 모두가 이 객주의 모범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나는 처음부터 생각했듯 그의 부탁을 승낙했다.

     

   “좋습니다. 객잔 정리가 마무리되면 다 같이 나오시죠. 혹시 주변에 넓은 공터가 있습니까? 가능하면 실외라면 좋겠군요.”

     

   나의 말에 객주가 진심으로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있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곳이 좋겠지요? 객잔 뒤편에 공간이 있으니 아이들이 모이면 함께 움직이시죠!”

     

   우리는 잠시 아이들이 객잔 청소를 끝내기를 기다렸다. 자신의 일을 빠르게 끝낸 아명이 후다닥 달려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나를 바라봤지만 객주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얌전히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잠시 후.

     

   “여깁니다.”

     

   나는 객주를 포함한 객잔의 아이들과 함께 화향루 뒤에 있는 넓은 공간으로 나왔다.

     

   객주는 나의 부탁에 따라 아이들을 일 열로 앉혀 적당히 초식을 구경할 수 있는 공간에 배치했다. 하지만 객주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나를 향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그런데…… 여긴 너무 어두운 것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딱 좋습니다.”

     

   그의 말에 아이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며 걱정을 토로했다. 이미 해가 완전히 떨어진 야심한 밤. 심지어 커다란 건물의 뒤뜰로 나오니 그나마 있던 달빛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빛도 느껴지지 않았다.

     

   “등잔이라도 가져올까요? 대여섯 개만 있어도 훨씬 밝아질 것 같습니다만.”

   “괜찮습니다. 객주님께서도 앉으시죠.”

     

   나의 호언장담에 그는 못미더운 표정을 지으며 슬그머니 뒤로 물러섰다.

     

   대충 표정을 보니 속은 것이 아닐까 싶은 억울한 얼굴이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으며 천천히 흑색 검을 꺼내 오른손에 쥐었다.

     

   스릉.

     

   “아이들에게 세상을 보여 주고 싶다고 하셨죠?”

     

   나의 말에 조그마한 관객들이 침을 꿀꺽 삼킨다. 진검을 봤다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역력한 표정.

     

   “제가 느꼈던 세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마주한 채, 한 걸음을 내디뎠다.

     

   터벅.

   스스슷.

     

   물 흐르듯 이어진 두 번째, 세 번째 걸음. 내가 움직일 때마다 주변의 공기가 춤을 추듯 나의 뒤를 따라오기 시작하자 객주의 호흡이 한순간 정지했다.

     

   나는 천천히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보법을 밟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까지 봤던 모든 움직임 중 가장 넓은 세상을 알려주었던 걸음.

     

   뒤뜰을 비추던 월광月光이 나의 검에 서서히 스며든다.

     

   객주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결코 보여주지 않았을 무공.

     

   [천월신공 天月神功]

     

   천월문의 독문무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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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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