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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6

       

       

       산 중턱, 제3실습장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위치하고 있는 간이 휴게소.

       

       이유하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자 이미 실습장에서 내려온 학생들이 더러 모여 있었고, 먼저 내려와 있던 우리 분대원들 역시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시라바야시 군 왔다—! 곳찌곳찌(여기여기)!』 

       

       이미 테이블 하나를 맡아놓고 있던 양복자가 손을 흔들며 외쳤다. 나도 테이블 앞에 앉아 둘러보는데, 무라사끼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양복자랑 한 조로 붙여줬을텐데.

       

       『무라사끼는?』

       『글쎄? 중간부터 따로 다녀서…… 아! 말하니까 저기 오네. 흐흥! 쟤도 ‘얌반상’은 못되는구나!』

       

       양복자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무라사끼 녀석이 이제 막 휴게소로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양복자의 말마따나 양반은 못 되네.

       

       『오이! 건방진 조선인! 많이 잡았냐!』

       

       나는, 빵빵해진 행낭을 들어보이는 무라사끼 녀석과 양복자를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너희들 설마, 따로 다녔어?』

       『그렇다!』

       

       무라사끼 녀석의 당당한 대답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둘에게 말했다.

       

       『야. 둘이 협동하면 좋잖아. 도미꼬가 염동력으로 마수를 묶어주고 무라사끼 네가 마수를 베면 좋을 것 같아서, 일부러 붙여줬더만.』

       『흥! 필요없다! 도움따윈 방해다!』

       

       무라사끼 녀석은, 여전히 협동하지 않고 혼자 싸우려는 성질머리 그대로였다. 양복자도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주 제멋대로라니까! 내가 동쪽에 마수가 있대도 서쪽으로 가고, 마수를 묶어줘도 고마운 줄을 몰라!  어차피 강한 마수도 안 나와서, 나 혼자서도 잡겠던데? 이럴 바에는 차라리 아이까와랑 한 조를 할 것을 그랬지!……』

       

       서로의 능력만 보자면 나름 잘 맞을 것 같아서 붙여 줬더니, 팀웍이 엉망이었다. 그리고 그 문제는 무라사끼 녀석에게 있었다.

       

       『야. 오늘 나온게 약한 마수들이라 망정이지, 나중에 강한 마수를 상대할 때는 무엇보다도 협동이 중요해. 아까 나랑 이유하는 요로미미즈를 마주쳤는데, 이거 너네들 따로따로는 못 잡았을 걸?』

       『흥! 시끄럽다! 호랑이가 오면 호랑이를 베고, 부처가 오면 부처를 베면 그만이다!』

       

       후우…… 아무래도 이 녀석은 성격 개조가 좀 필요할 듯 싶었다. 언제 한 번 기회를 봐서 성격을 고쳐놔야지.

       

       그런 그렇고, 송병오 녀석은 잘 했으려나. 

       

       송병오의 마력탄은 마수를 패퇴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탄에 마력을 응집시키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고, 그것을 아이까와가 상쇄해줄 수 있기에 한 조로 붙여줬었다.

        

       하나는 사상이 불량하고 하나는 소심하긴 하지만, 둘 다 비협조적인 성격은 아니니 서로 협동하면서 잘 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송병오 녀석을 향해 몸을 돌리려는데,

       

       『저기, 시라바야시 군.』 

       

       아이까와가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 실습은 잘 했어?』 

       『응! 소오 군이 총을 엄청 빨리 쏴서! 나는 보조해준 것 밖에는, 별로 한 것도 없었어!』

       

       과연. 이유하·양복자·송병오처럼 마력을 외부로 방출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마력의 운용을 도와주는 아이까와같은 보조가 붙으면 그 효율이 상당히 올라간다. 그래서 송병오에게 아이까와를 붙여 주었던 것.

       

       그나마 이 쪽이라도 팀워크가 좋았다니 다행이었다.

       

       『잘했어.』

       『에헤헤. 다 시라바야시 군이 시킨 대로 한 건데, 뭐.』

       

       그렇게 양갈래 머리를 양손으로 잡고 쭈뼛거리며 웃던 아이까와는, 

        

       『그런데……』

       

       하고, 걱정스러운 눈길로 송병오가 있는 쪽을 힐긋거리며 말을 이었다.

       

       『……소오 군이 조금 이상해.』

       『이상하다니?』

       『으응. 저어, 뭐랄까. 정신나간 사람처럼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고…… 이런 말을 하면 소오 군에게 미안하지만, 그래도……』

       

       아이까와는 말할 듯 말 듯 주저하다가 작게 입을 열었다. 

       

       『뭔가 기분나빠……』

       

       뭐지? 설마, 송병오 녀석이 또 빨갱이 토킹을 남발하기라도 한 걸까? 게다가 어지간하면 나쁜 말을 안 하는 아이까와의 입에서 대놓고 ‘기분 나쁘다’라는 말까지 나오다니.

       

       나는 아이까와와 대화를 마치고, 테이블의 한구석에서 책을 읽고 있던 송병오에게 다가가 조선어로 작게 얘기했다.

       

       “야. 송병오.”

       “여어, 백철연이.”

       “너, 괜찮은 거 맞지?”

       “음! 물론일세.”

       

       송병오 녀석은 책을 덮어놓고는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흐흐……. 내 그제 자네가 한 말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는데 말일세. 사상적인 면에 있어서 남들보다 깨어있는 티를 내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 쯤은, 나 역시 알고 있네. 그래서 적어도 학교에서는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고 내 최대한 노력을 해보겠네마는……”

       “그래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자네처럼 일본의 제국주의적 행보를 찬양하는 척을 하기란, 내 솔직한 근성으로는 극히 어려운 일이란 말일세. 그래서……”

       

       녀석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광대가 되기로 하였네.”

       “광대?

       “그래. 유모어러스한 사람이 되겠다는 게야…… 보게.”

        

       녀석의 손에 들려진 책은 <포복절도 유모어 만담집> 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예로부터 광대는 직언을 해도 모가지가 달아나지 않는 족속이었지.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어보고자 하네. 웃을 수밖에 없는 세상이 아닌가. 그리고…… 그렇잖아도 나 정도면 꽤나 위트있는 사람이니, 퍽 어울리지 않나?”

       “…….”

       

       안타까운 일이지만 세상에는, 똑같은 얘기를 똑같이 해도 어쩐지 재미없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송병오 이 녀석도 그런 부류였지만…… 

       

       그래도 뭐, 이건 나름대로 긍정적인 변화였기에 난 녀석의 어깨를 뚜덕여주며 말했다.

       

       “뭐, 힘내라.”

       『아-아! 배고프다! 빨리 밥 먹으러 갔으면~』

       

       두 팔을 쭉 뻗고 기지개를 켜며 말하는 양복자에게, 나는 손목시계를 흘깃 보고는 자리에 앉으며 대꾸했다.

       

       『기다려야지. 아직 점심시간 안 됐으니까.』

       

       나도 배가 고프긴 했지만, 오전 내내로 배정된 수업이었으니 그때까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우리 분대원들은 빨리 내려온 편에 속했을 뿐 학생들이 전부 내려오지도 않았으니 얄짤없이 기다려야 했다.

       

       『모오-! 물론, 모두가 나 같은 우-등-생-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다들 느려! 이 작은 가방 하나 채우는 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양복자는 그렇게 말하며 창 너머로 제3실습장의 초입을 노려보았다. 나도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양복자의 시선을 따라 제3실습장의 초입을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들어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제2실습장은 없지?』

       

       교내 캠퍼스 건물들 가운데 위치한, 원형 투기장처럼 생긴 제1실습장. 그리고, 북한산 일대에 펼쳐져 있는 제3실습장.

       

       그렇다면 분명 제2실습장도 있을 법 한데, 여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허어! 없기는. 자네, 학교에 관심이 없어도 너무 없군!』

       

       송병오가 유모어 만담집을 읽다 말고 대꾸했다. 

       

       『있어?』

       『그래. 제2실습장은 예전에 폐쇄된 곳일세. 저길 보게.』 

       

       녀석은 휴게소 창 밖의 한 쪽을 가리켰다. 제3실습장 초입과는 다른 방향에 있는 구석진 쪽.

       

       『어…… 진짜 있네.』

       

       나무와 덩쿨이 우거진 그늘에 있어서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확실히 그곳에는 [第貳實習場(제이실습장)]이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송병오 녀석은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이 학교가 ‘한성착요학교’였을 때부터 있던 실습장인데, 지금은 폐쇄된 곳이지.』 

       『그게 언제야?』

       『음! 그러니까, 경술국……』 

       

       송병오는 잠시 말을 끊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일한병탄이 있던 해에 학교 이름이 바뀌었으니까는, 명치 사십삼 년 이전…… 아니, 서기로 하면은 일천구백십 년 이전이겠군. 하여간 병탄 이후에 폐쇄된 것으로 알고 있네.』

       

       1910년이라. 무려 29년 전이다. 그 때부터 있어왔고 폐쇄되어있던 실습장이란 건가. 나는 호기심이 들어 송병오에게 더 물었다.

       

       『왜 폐쇄됐는데?』

       『글쎄, 듣기로는 지형이 너무 험한 탓에 낙사 사고가 많이 일어났다지 뭔가. 그래서 제3실습장을 만들고부턴 그냥 방치중인 듯 하네. 학교측에서 관리도 안하는 모양이야.』

       

       과연, 그렇게 된 건가. 하긴, 아무리 이 학교에 학생들의 영혼을 모으려는 교수진이 있다고는 해도, 일단은 소수일테고, 대놓고 낙사사고가 많은 실습장에 학생들을 밀어넣지는 못하겠지. 그래서 위험한 제2실습장 대신 제3실습장을 만든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양복자가 끼어들었다.

       

       『귀신이 나온다나!』

       『뭐?』

       『저기서 죽은 학생들은 글쎄, 시체도 못 찾았다는 거야! 그래서 오늘같은 날이면, 원통하게 죽어서 한 맺힌 귀신들이, 죽은 자들이 살아서 움직인다나!』

       

       그렇게 목소리까지 음산하게 깔며 말하자, 아이까와가 오들오들 떨며 기겁했다.

       

       『히익……』

       

       양복자는 아이까와가 겁먹은 것을 놓치지 않고, 아이까와를 덮치려는 듯한 손모양을 하며 읊조렸다.

       

       『구야시이나(분하구나)~ 우라메시이나(원통하구나)~』

       『꺄악!』

       

       ‘귀신이라니……’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 역시 영혼의 존재는 알고 있고, 이 학교(의 일부 교수)가 학생들을 고의적으로 위험에 빠트려 영혼을 수집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교내 부지를 넓게 둘러싼 결계를 만들어서 영혼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고, 지하의 진공관 컴퓨터로 영혼을 수집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교내에 영혼 따위가 돌아다니는 일은 없다. 진공관 컴퓨터에 사로잡히고 말 테니까. 그래서, 아이까와를 쫓아다니던 조선인 혼령 방숙자도 영혼의 상태로는 돌아다닐 수 없던 탓에 인체모형에 빙의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이 학교 부지 내에서 귀신이 돌아다닐 리도 없고 살아 움직일리는 더더욱 없었다.

       

       ‘하여간, 이상한 소문만…… 잠깐.’

       

       그렇게 관심의 한켠에서 치워두려는데, 문득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적석.’

       

       준비를 마친 적석을 가지고, 마문을 어디서 생성시켜볼지 고민하던 차였다. 주택가는 당연히 안 되고, 학교의 실습장도 종종 사람들이 오기에 안 될거라고 생각해서, 이걸 대체 어디서 테스트해봐야하나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마침 저런 장소가 있었던 곳이다.

       

       ‘보자. 외딴 곳이고, 사람의 출입도 없고, 학교도 관리 안하고.’ 

       

       다른 사람에게 들킬 우려도 없고, 마수가 튀어나와도 주변에 민폐나 인명피해를 걱정할 것 없다.

       

       ‘혹시나 내가 혼자서 감당 못하는 마수가 나오더라도 학교엔 예비 엽사들이 많으니 도움을 요청하면 그만이다.’

       

       물론, 이 경우엔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수밖에 없지만,  사람들은 자연발생한 마문으로 생각할 것이니 나에게 오는 손해는 없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혼자 독식할 수는 없어서 아쉽지만…… 뭐, 그런 경우에는 어쩔 수 없지.

       

       그야말로, 적석을 테스트해보기 더할나위 없이 완벽한 장소가 아닌가. 마문을 어디서 열어야하나 그렇게 고민했는데, 마침 운이 좋게도 학교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나는 씨익 웃으며 생각했다.

       

       ‘저기가 딱 좋겠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3월 1일, 삼일절입니다!

    경술국치 이후 근 10년만인 1919년에, 일제의 폭거에 대항하여 전국적인 만세 운동이 일어났던 날이죠!
    임시정부 수립의 계기가 되고, 해외의 민족운동에도 영향을 준것 등 여러 의의가 많은 날이기에 한국인이라면 누구에게나 뜻깊은 날이지만, 이런 시대배경을 소재로 글을 쓰는 저에게는 더더욱 의미있게 느껴지는 날이네요.

    그래서 외전이라도 써 볼까 하다가, 외전을 쓸 여유는 없어서 그냥 평소의 전개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만세운동을 비롯해 독립운동 전반에 관련해서는, 나중에 본작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질 날이 올 거예용!

    아무튼 오늘은 여기까지!
    이번주도 월화목금 연재가 될 듯 합니다!(그런고로 수요일인 내일은 쉬어용!)
    그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모두들 맛저하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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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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