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66

    시엔은 베르그를 안아주며 강렬한 감정들이 뒤엉켰다.

     

     

    7년만에 경험하는 타인과의 접촉. 7년 만에 느껴보는 사람의 온기. 7년만에 만져보는…사랑하는 남자.

     

    베르그를 만지면 이토록 북받치는 마음이 든다는 걸 이제야 떠올린다.

     

    이 온기를 느끼고자 지난 7년간 버텨왔던 것이다.

     

    홀로 쓰러져도 일어나고, 다쳐도 움직였던 것이다.

     

     

    손가락에 느껴지는 감촉.

     

    두 팔에 실리는 체중.

     

    어깨에 기대어 있는 베르그의 얼굴.

     

     

    그 모든게 눈물나도록 따스하다.

     

     

    물론 자신이 간사하다는 걸 시엔도 알고 있었다.

     

    약해진 베르그에게 다가왔다는 걸 그녀 또한 알고 있었다.

     

     

    평소라면 자신을 밀어냈을 베르그였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도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베르그는 자신에게 기대었다.

     

    무슨 일이 있음이 분명했고…모순적이게도, 그게 시엔을 위한 일이 되어버렸다.

     

     

    동시에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도 있었다.

     

    사랑하는 남자가 아파하는 모습은 언제나 괴로울 것이다.

     

    특히나 베르그의 눈물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시엔은 그의 눈물 앞에서 언제나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가 눈물을 흘리며 가지말라고 애원하던 모습이, 지난 7년간 그녀를 낙인처럼 괴롭혔으니.

     

     

    하지만 당장은 시엔도 베르그의 아픔을 캘 생각이 없었다.

     

    어렴풋이 아내와 관련된 일이 아닐까 싶었지만…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자연스레 그에게 일어난 일은 알게 될 것이다.

     

     

    당장은 그가 자신에게 기대었다는 사실에만 집중하고자 했다.

     

     

    시엔은 자신에게 일어난 커다란 변화를 베르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발생한지 얼마되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벨.”

     

    시엔은 울먹이며 베르그의 고개를 자신의 어깨에서 떼어냈다.

     

    힘겨워하는 그의 눈을 마주한다.

     

     

    그녀는 어렵게 웃음을 지어보이며 손등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보여…?”

     

    “…”

     

    상처투성이의 손등.

     

    하지만 그걸 보여주고자 한게 아니었다.

     

    베르그도 그녀의 손등을 보고는 멈췄다.

     

     

    “…헤아의 문양이…사라졌어.”

     

     

    마왕을 죽였기 때문일까.

     

    길었던 족쇄에서 그녀는 풀려났다.

     

    7년 간 빌었던 소원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그녀는 자유였다.

     

    더 이상…헤아 교단에 종속되어있지 않았다.

     

    어쩌면 이미 헤아도 알았던게 아닐까.

     

    이제는 자신을 잡아둘 방법이 없다는 걸.

     

     

    문양이 있든 없든, 베르그에게 왔을 그녀였다.

     

    하지만 문양이 사라지니 그 해방감이 너무도 행복할 따름이었다.

     

     

    “…오래…으흑….걸렸지…?”

     

    시엔은 눈물을 흘리며 베르그에게 말했다.

     

     

    어렸던 시절부터 함께했던 베르그.

     

    그와의 추억은 아직도 잊지 못할 그녀의 힘이었다.

     

    어렸던 자신을 구해주었고, 자신을 지탱해주었던 베르그였다.

     

    단 한 순간도 그에 대한 생각을 멈춘 적이 없었다.

     

     

    그러니 과거 이별에 대한 사과도 다시금 건넸다.

     

     

    “헤어질 때 말했던 말…. 다 거짓말이었어.”

     

    “…”

     

    “…너 없이 살아갈거라는 말…흐윽…다 억지로 내뱉은 말이었어…”

     

     

    베르그의 눈에서 또 다시 눈물 방울 하나가 흘러내린다.

     

     

    “우리의 꿈은 이제 버리자던 말도… 너와의 기억은 추억이 될거라는 말도…다…다…”

     

     

    시엔은 베르그의 눈을 곧장 바라보며 곧게 말했다.

     

    “내가 잘못했어. 두 번 다시는…널 밀어내지 않을게…”

     

     

    베르그는 이 모든 일이 너무 급히 일어난것처럼 숨을 내쉬었다.

     

    그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마음을 밀어붙이는게 이상하다는 걸 시엔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밖에 없었다.

     

    헤아의 문양이 사라졌다.

     

    베르그도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의 힘이 되어주고 싶은 시엔이었다.

     

     

    “…용서해줄래…?”

     

     

    베르그의 얼굴에는 이전과 같은 화가 조금도 들어있지 않았다.

     

    한참이나 그는 제 감정들을 추스르고 있을 뿐이었다.

     

     

    베르그는 한참을 그렇게 굳어있다…시엔에게 말했다.

     

     

    “…돌아가자.”

     

    그게 다였다.

     

    어떠한 대답도 돌려주지 않은 그였지만…그 말이, 자신을 받아들이는 말임을 시엔도 알았다.

     

    사라지라는 말이 아닌 함께 돌아가자는 말.

     

    예전의 꿈대로 혼인을 올리자거나, 약속을 이어가자는 말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시엔은 굳었던 베르그와의 관계가 이제는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음을 깨달았다.

     

     

    그걸로 충분한 그녀였다.

     

    그러니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7년만에 가장 밝은 미소를, 눈물과 함께 지어보였다.

     

    “…응.”

     

     

    ****

     

    네르는 숙소에서 굴러 사라진 베르그 반지를 찾느라 한참이나 바닥을 기어야 했었다.

     

     

    이별의 말을 들으며 멍해진 머리는 생각을 이어가지 못했지만, 몸만큼은 본능적으로 움직여 베르그의 반지를 찾아나섰다.

     

     

    옷장 밑. 침대 밑. 책상 밑… 구석 구석 그녀는 베르그의 반지를 찾으려 애썼다.

     

    걸음을 옮길때마다 떨어지는 눈물이 바닥을 적신다.

     

     

    그렇게 한참을 먼지속에서 구르고 나서야 그녀는 베르그의 반지를 찾아냈다.

     

     

    네르의 하얀 머리카락과 꼬리는 더러워져 회색빛이 되었다.

     

    과거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블랙우드 가문의 색을 찾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색이 싫은 네르였다.

     

     

    베르그는 흰꼬리가 예쁘다고 말해주었다.

     

    회색보다 마음에 든다고 말해주었던 그였다.

     

     

    그러니 몸을 씻어야한다는 걸 네르도 알았지만…이번에도, 본능을 이기지 못했다.

     

     

    네르는 눈물을 흘리며 밖으로 나섰다.

     

    반지를 찾느라 베르그를 쫓아가지 못했다.

     

     

    이게 이별일 리 없었다.

     

    아내인 그녀는 그의 곁에 있어야만 했다.

     

    정말로 이 현실을 믿을 수 없는 그녀였다.

     

     

    앞으로 베르그 없이 평생을 살라는 말일까?

     

    그의 온기를 느낄 수 없다는 이야기일까?

     

    추운 밤, 옆으로 손을 뻗어도 그는 없을거라는 의미일까?

     

    그 밝은 미소를 지어주던 베르그의 곁에 머물 수 없다는 의미일까?

     

     

    “..아…읏….으윽…”

     

    그건 최악의 악몽이었다.

     

    베르그는 자신과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자신의 남편이었다.

     

    유일한 그녀의 사랑이었다.

     

     

    “베르그…보셨나요?”

     

    그러니 그녀는 보이는 아무에게나 질문을 하며 다녔다.

     

    귀족. 사용인. 기사. 병사… 상관없었다.

     

    계속해서 같은 질문만을 던지며 돌아다녔다.

     

     

    “제…제 남편을 보셨나요?”

     

    눈물 범벅이 된 그녀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놀랐지만, 네르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자신의 짝을 찾아야했다.

     

     

    “베르그 못보셨나요…? 제…제 남편이에요…인족이고…착하고…흐윽…저를 많이 좋아하는데…”

     

     

    그렇게 돌아다닐수록 수군거리는 소리가 커져갔다.

     

    예전같았다면 움츠렸을 소리.

     

    ‘…네르…’

     

    ‘…네르 블랙우드….흰꼬리…’

     

    네르는 그 속삭임에 처음으로 반박을 해보았다.

     

    “블랙우드가 아니라 라이커에요..!!”

     

    그 외침을 들은 사용인들은 놀라 흩어졌다.

     

     

    라이커.

     

    스스로에게도 아직은 익숙치 않은 성씨를 남들에게 강요했다.

     

     

    하지만 이럴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 한순간도 버틸 수 없었다.

     

    베르그와 이어지지 않았다는게 그녀를 고통스럽게 했다.

     

     

    이 반지만 해도 그랬다.

     

    자신과 그를 이어주던 반지였다.

     

    당장 그에게 자신의 흔적이 그 무엇도 없다는게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러니 양손에 소중히 베르그의 반지를 꼭 쥔채, 베르그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이내 그녀는 돌아다니던 우두머리 조의 대원, 숀을 발견한다.

     

     

    네르는 그 인물을 급히 불러보았다.

     

    “쇼…숀!”

     

     

    숀은 네르를 돌아보았다.

     

    굳어있던 그의 표정이 잠시 깨진다.

     

     

    네르는 그에게 달려가 물었다.

     

    살짝의 안도감마저도 든다.

     

    “베…베르그를 찾고 있어요. 안내해 주실 수 있나요?”

     

    “………”

     

     

    하지만 숀은 어찌할줄 모르겠는 표정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네르의 상태에 놀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네르는 반응하지 않는 숀의 모습에 그의 이름을 다시 불렀다.

     

    “…숀…?”

     

     

    숀은 한참이나 입을 달싹이다 말했다.

     

    “….이……이혼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네르가 그대로 제자리에 굳는다.

     

    그녀는 반박할 말을 찾기 위해 한참이나 노력했다.

     

    이내 살짝의 분노를 담아 그에게 물었다.

     

     

    “…누가 그딴 말을 해요?”

     

    “……..”

     

    “…누가 그런…거짓말을 흘려요…?”

     

     

    하지만 숀은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네르에게 말했다.

     

    “…부…아니, 단장님께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네르는 그 말에 심장이 내려앉는다.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에 고개를 저었다.

     

     

    베르그가 벌써 거기까지 정리했을리 없었다.

     

    이렇게까지 빠르게 이별을 준비할리 없다.

     

     

    “착…각하신 거에요. 베르그에게 저를 데려가주세요.”

     

    “…”

     

    네르는 반응하지 않는 숀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꼈다.

     

    결국 과거의 이야기까지도 꺼내어 그에게 말한다.

     

    “…숀, 제가 과거에 목숨을 구해드렸잖아요…”

     

    “…”

     

    “부탁이에요. 베르그에게 데려가주세요.”

     

     

    숀은 잠시 고뇌하는 모습을 보이다, 이내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베르그 단장님께서도 제 목숨을 많이 구해주셨습니다. 저는 단장님의 명령을…우선시하겠습니다.”

     

     

    그렇게 숀은 네르를 떠나 걸음을 옮겼다.

     

    네르는 멍하니 떠나가는 용병의 모습을 보았다.

     

     

    한순간, 베르그와 마찬가지로 홍염단이 고개를 돌렸다.

     

    홍염단 전부가 얼마나 베르그를 향한 신뢰가 있는지 보이는 듯 했다.

     

     

    네르는 베르그에게서 순식간에 떼어져 나갔다.

     

     

    …하지만 그에 대해, 그 무엇도 하지 못했다.

     

     

    네르는 멍하니 베르그의 반지만을 꼭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

     

     

     

    이튿날, 나는 국왕의 부름을 받는다.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이미 예상할 수 있었다.

     

     

    굳이 수식할 말도 없었다.

     

     

    아내들과 나의 마무리.

     

     

    그게 다라고 볼 수 있다.

     

     

    나는 홍염단의 부단장이 된 바란과 함께 회담장으로 향했다.

     

    간부인 시어도어와 크리안도 이런 내 뒤를 따랐다.

     

     

    걸어가는 내내 우리를 향한 대우가 달라졌음을 확실히 느낀다.

     

    전쟁영웅으로 추앙된 홍염단이 받는 존중인 듯 했다.

     

     

    이런 와중에도 나는 아담 형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상상한다.

     

     

    평소와 같았다면…내 앞에 아담 형이 걷고 있었을 거다.

     

    형이었다면 내게 뭐라 했을까.

     

    사실 너무나도 가까웠던 형이기에…그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베르그. 우리도 이런 복도나 하나 만들까? 꽤나 멋있는데.’

     

     

    나는 아픈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계속해서 옮겼다.

     

     

    아직도 견뎌야할 고통이 남아있다는 걸 알았으니.

     

     

     

    .

    .

    .

     

     

    국왕의 서기관, 겐드리의 안내를 받아 입장한 회담장에는 예상했던 그 모든 사람들이 이미 자리하고 있었다.

     

     

    국왕.

     

    블랙우드 가문.

     

    셀레브리엔 가문.

     

     

    …그리고 네르와 아르윈.

     

     

    둘은 나를 바라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미 쓰디쓴 아픔에 너무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아르윈은 어느새 목에 나의 세계수 목걸이를 걸고 있었고, 네르는 나의 반지를 소중히 들어올린채 그 반지에 입을 맞추고 있었다.

     

    “…”

     

    나는 이를 악물다 그녀들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이혼이 옳은 선택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프다.

     

     

    순전히 나를 위한 선택이라는 건 알았다.

     

     

    그녀들의 배신이, 불안함에서 기인한 선택이라는 것도 이제는 이해했다.

     

    다시 받아달라며 눈물을 흘리던 모습을 보았기에 이제는 믿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힘이 없었다.

     

    더 이상은 아픔을 견뎌낼 자신도 없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니 나도 이제는 내 욕심을 부려도 되지 않을까하는.

     

    그런 이기적인 생각이 나를 내몰고 있는 것이다.

     

     

    참 힘들었다.

     

    왜 내가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걸까.

     

    …나는 진심밖에 보여주지 않았는데.

     

     

     

    내가 회담장에 들어서자, 국왕인 렉스 드레이고가 나를 보았다.

     

     

    “린의 투사, 베르그 라이커.”

     

    “…”

     

    그가 나를 부르니 나는 알 수 있었다.

     

    이제는 정말 끝이 다와가고 있었다.

     

     

    국왕이 말한다.

     

     

    “이혼할 상대를 골랐다고 들었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들과의 이별이 나를 기다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카레먹는곰님! 2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그만큼 집중하고 읽어주셨다는 말인듯 해 감사드릴뿐입니다ㅎㅎ

    연참오네가이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ㅋㅋㅋ 즐겨주셔서 감사해요!

    U76 E님! 2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마음이 너무 감사해요! 초창기부터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는 듯 합니다.

    심심심심님! 7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연참은 노력해보겠습니다…

    AnSik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네르를 좋아하시는군요! 지켜봐주세요!

    다음화 보기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