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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6

        어제부로 세운 겨울방학 계획은 간단했다. 

       

        먼저 마왕성에 간다. 가서 연구재료를 가져오겠다는 명목 하에 살리에르 영지로 발걸음을 옮긴다.

       

        요르문간드와 맺은 계약이 그러했다. 겨울방학 때 우라늄을 더 생산할테니 와서 가져와라, 그런 약속이었다.

       

        그러니 그걸 핑계로 살리에르 영지에 다녀오면 될 터였다. 거기서 로테와 2주 정도 보내면 되고, 그 이후로 마왕성에 복귀하여 남은 방학을 보내면 될 일이었다.

       

        어쨌거나 마왕성에는 가야만 한다. 로즈마리와 한 약속이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이 의자매에 대한 예의요, 최소한의 도리였다.

       

       동시에, 로테도 신경을 써 줘야만 했다. 

       

        다른 일이 아니다. 가장 친하던 친구가, 갑자기 이상하게 변해버렸으니까. 걱정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생각해 보니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새벽부터 그랬다. 늦게 들어왔다고 평소보다 핀잔을 더 많이 주더니, 주말 내내 나에게 눈치 주는 일이 잦았다.

       

        공교롭게도, 본인은 그걸 의식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평소 대화를 나눌 때 로테는 그대로였다.

       

        단 한 가지 경우, 로즈마리가 엮인 일이 벌어졌을 때를 제외하고는.

       

        “어, 언니?”

       

        월요일 아침.

       

        교실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로즈마리는 울상이 될 것만 같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툭, 하고 그녀의 손에 들려 있었던 목도리가 떨어졌다. 극세사처럼 부드러워 보이는 질감의 검정 목도리였다.

       

        반대로, 나는 단짝에게 받은 하양 목도리를 목에 두르고 있던 중이었다.

       

        “그거 누가 준 거야…?”

        “제가 선물해 드렸어요, 공녀님.”

       

        그리 말하는 로테의 입가에는 호선이 드리웠다. 로즈마리의 시선이 내 목 언저리를 향하고 있었다.

       

        내 눈동자가 슬쩍 굴려졌다. 그렇게 본 로테의 얼굴은 평온했고, 또 고요했다.

       

        붉은빛을 내는 심유한 눈동자가 로즈마리를 향한다. 로테는 로즈마리를 쳐다보며 싱긋 웃었다.

       

        소름 돋을 정도로 이질적인 웃음이었다. 로테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로즈마리는 죽일 기세로 로테를 노려보았다. 그녀가 ‘위압’을 발산하여 로테에게 집중적으로 퍼부었다.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아무런 요동도 없었다. 당당한 로테의 태도에, 로즈마리가 되려 쭈뼛거리며 목도리를 주웠다.

       

        “이거, 언니 주려고 목도리 짜 왔는데….”

       

        목도리를 든 의자매의 손이 애처롭게 떨리는 중이었다. 이 모습을, 차마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더는 안 되겠다.

       

        나는 슬며시 웃으며 검정 목도리를 잡았다. 로즈마리의 입에서 어, 어 하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고마워, 동생. 요번 겨울은 따뜻하겠다.”

       

        인간이든 마수든 뭐가 상관이냐. 나에게 헌신적인 사람에게 더는 모질게 굴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참이었다.

       

        툭툭. 먼지를 털어내고 목에 목도리를 둘렀다. 하얀 실과 검은 실이 뱀처럼 뒤엉켰다. 솔직히 말해서, 그다지 보기 좋은 패션은 아니었다.

       

        졸지에 목도리를 두 개나 두르고 다니는 병신이 되어버렸지만, 괜찮았다.

       

        블루베리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물렁물렁하고 떫어 보이는 표정이었는데, 갑자기 통통 튈 것만 같은 탄력이 생겼다.

       

        “네, 언니! 잘 쓰시길 바랄게요.”

       

        로즈마리가 좋아하던 그때였다. 

       

        로테가 낯빛을 조금 굳혔다. 미묘한 변화였지만, 그녀의 입꼬리가 내려가는 건 흘끗 보는 것만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 나름대로 불퉁한 표정이었다. 조만간 로테와 로즈마리는 서로를 노려보며 기싸움을 벌였다.

       

        파지직, 하고 전기가 튀는 것 같았다. 붉은 색의 예기와, 푸르름을 가장한 노란빛 섬전이 부딫힌다.

       

        양쪽 다 질투가 만연한 기색이었다. 나는 짐짓 한숨을 쉬며 먼저 자리에 앉았다.

       

        로즈마리가 왜 저러는지는 이해가 간다. 오히려 저러는 편이 그녀다운 행동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에테르’라는 존재는 마왕과 비견될 정도였다. 적어도, 이 몸의 기억이 맞다면 그렇다는 소리였다.

       

        로즈마리는 금안족이 세운 ‘튀르케닐’ 왕국의 왕녀였다.

       

        그 나라는 제국의 침략을 받아 멸망했다. 그때 로즈마리는 겨우 열다섯 남짓이었다.

       

        아무런 힘도, 마력도 없었다. 겁간을 시도하려는 제국 마도기사단 앞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왕궁 첨탑에서 뛰어내리는 것뿐이었다.

       

        당연히 큰 부상이 뒤따랐다. 목숨은 건졌지만, 사지가 박살났다. 때마침 타르케닐이 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본관이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그 자리에서 죽었을 터였다.

       

        그 뒤로 많은 기억이 머릿속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수술, 변화, 재활까지. 모조리 이 몸이 도와주었다.

       

        그러니까 지금 로즈마리의 행동 패턴은 이해하기 쉬웠다.

       

        나 때문에 계획이 줄줄 실패하고 있는데, 적대하지를 못하고 있다. 오히려 집에 돌아와 달라고 투정을 부리고, 사소한 일에도 헌신하려 든다. 

       

        즉, 로즈마리의 애정과 집착은 예측 범위 내였다.

       

        하지만.

       

        로테는 아니었다.

       

        “공녀님, 슬슬 자리에 앉으세요. 곧 조례 시작할 거예요.”

       

        그녀가 조용한 투로 말했다. 명백히 가시가 돋친 어조였다.

       

        그런 로테의 모습을 보며, 나는 눈매를 가늘게 뜰 수밖에 없었다.

       

        본래 내 단짝은 이러지 않았다. 훨씬 더 착하고, 배려심 깊은 아이였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남에게 기싸움을 걸 정도로 성격이 모날 수는 없었다.

       

        지난 수 개월간 그런 모습만 보여준 친구였다. 고작 나 하나 때문에 병적으로 집착하게 될 리가 없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한 가지였다. 

       

        명백하게,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다.

       

        “그리고 실내에는 목도리 하나만 두르고 있어도 돼. 불편하잖아.”

       

        로테는 교과서를 꺼내며 말을 덧붙였다. 싸늘하면서도 묵직한 어조였다.

       

        마치 빙결 마법이라도 맞은 느낌이었다. 발끝에 서리가 낄 정도로 시린 말투.

       

        그러나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아. 충분히 춥거든.”

       

        추우니까 벗을 필요는 없다는 스탠스였다. 

       

        사실 그다지 덥지는 않았다. 내 신체는 기계였으니까. 추위는 물론이고, 더위도 잘 느끼지 않는다.

       

        “그, 그래? 교실이 많이 춥나? 어디 히터라도 트는 게…”

        “로테.”

        “으, 응?”

        “아직 가을인데 뭘 그래. 이 정도면 괜찮아.”

       

        로테의 눈이 명멸하듯 깜빡인다. 여러 감정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그런 그녀의 생각을 온전히 읽어내긴 어려웠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정도는 유추하고도 남았다.

       

        친한 친구 상대로는 미안하지만, 잠시 가면을 쓰기로 했다. 처음 만난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딱딱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기계처럼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선생님 오신다.”

       

       

        **

       

       

        아카데미에서 돌아온 로즈마리.

       

        그녀는 전신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빗질했다. 단아한 머릿결을 한 번씩 쓸어내릴 때마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뭐가 그리 즐거우십니까?”

        “큭큭, 아 웃겨.”

       

        블랜튼의 물음에도 로즈마리는 키득거리기만 했다. 쌤통이라는 듯한 얼굴이었다.

       

        “네가 그 불여시 년 얼굴을 봤어야 했어.”

        “목도리는 잘 전달해 드렸습니까?”

        “그래.”

        “2석께선 뭐라 하십니까?”

        “별다른 말은 없었어.”

       

        고맙다고 한 말. 그 말 한마디 들었다고 부관에게 자랑하기에는 조금 민망했다.

       

        “그나저나 웃기는 일이네. 그 빨갱이가 어떻게 그리 성격이 변할 수가 있지?”

        “그, 제가 조금 건드린 적이 있었습니다만….”

        “뭐?”

       

        느닷없는 고해였다. 블랜튼의 고백을 들은 로즈마리가 멍한 표정을 지으며 거울에서 물러났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살리에르 영애의 정신에 간섭한 게 저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뭐야, 네 독단이었어?”

       

        블랜튼 공작… 그러니까 오를레이앙은 고개를 내저었다.

       

        “워낙 저항력이 높아서 말입니다. 스트레스를 주는 것도 쉽지 않더군요.”

        “지금 네 독단이냐고 물었잖아.”

       

        로즈마리의 표정이 차게 식었다. 제아무리 마수를 위한 일이라고는 해도, 상관이 떡하니 있는데 혼자서 일을 처리한 건 규율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로즈마리를 대하는 블랜튼의 태도는 여전했다.

       

        “곧 로드스톤이 들어오지 않습니까?”

        “그게 왜.”

        “그때 되면 이사장이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이쪽에서 물밑 작업을 해 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야 이 호로새끼야, 그렇다고 언니 빼앗길지도 모르는 도박수를 둬?!”

       

        그리 말하는 로즈마리의 목소리는 발끈 달아올라 있었다. 

       

        “어쩔 수 없잖습니까. 기껏 세워놓은 계획이 연달아 터지고 있는데.”

        “언니만 데려오면 다 만회 가능하다니까?”

        “이러다가 8석에게 비웃음을 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새끼는 또 왜 들먹여?”

       

        로즈마리는 씩씩거리며 침대에 앉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를레이앙은 한결같은 어조로 보고 들은 바를 전했다.

       

        “이번에 카우렐리아 남부 해안에서 8석이 대대적인 습격을 벌인 거,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엘프 나라 말이야?”

        “예.”

        “아니? 몰랐는데?”

       

        제국 멸망 계획에 집중하랴, 큰 언니를 돌아오라고 설득하느라 오랜 시간을 썼다. 다른 구천지대계의 업적이나 활동 따위,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물의 로드스톤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랬는데.

       

        “저, 정말로?”

        “제가 거짓말을 하곘습니까?”

       

        오를레이앙은 그러면서 팩스로 찍어낸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곧 로즈마리의 눈동자가 정갈하게 인쇄된 종이를 훑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용 : 물의 로드스톤 확보]

       

        [소재지 : 일리야드 아카데미의 해안만에서 확보함.]

        [작전분류 : 기습]

        [아군 피해 : 없음]

        [적군 피해 : 아카데미 정교수 8명 사망, 기타 교직원 30명 이상 사망, 학생 100명 이상 사상.]

       

        다 읽은 로즈마리는 종이를 꼬깃꼬깃하게 접으며 던져버렸다. 그대로 쓰레기통에 직행, 골인이었다.

       

        “여전히 무미건조한 녀석이네.”

        “마수가 감정적이어서 뭐가 좋겠습니까? 딱 할 말만 하고 일하는 편이 이상적입니다.”

        “진짜 어이가 없어서. 누군 일 안 하는 줄 아나….”

       

        로즈마리는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며 생각에 잠겼다.

       

        블랜튼이 ‘세뇌’와 ‘감정 유도’를 사용한 걸지도 모른다. 아니, 무조건 사용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오랜 기간 관찰해 온 살리에르 영애의 정신상태 변화를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 건 사실.

       

        로테는 로즈마리의 ‘위압’을 무시했다. 이는 그녀가 세뇌 관련 스킬을 받을 때도 저항력이 높다는 소리였다.

       

        즉, 블랜튼의 스킬만으로는 로테의 성격 변화를 유추하기 어렵다.

       

        ‘뭔가 또 있는 모양인데.’

       

        틀림없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을 터였다.

       

        그런 생각에 잠긴 로즈마리 앞에, 또 하나의 팩스가 전달됐다.

       

        [추가 정보 : 일리야드 아카데미에서 교환 학부생이 예정보다 일찍 출발하여 도착할 예정.]

        [상위 정령과 계약한 자도 있어 보이니, 작전 시 들키지 않도록 유념할 것.]

       

        “뭐야.”

       

        로즈마리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언니 건이니 뭐니 할 때가 아니었다.

       

        이러다간 제국에서 철수해야 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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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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