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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6

       “대구경 마르마로스 탄? 그런 걸 굳이 쓸 일이 있어?”

        

       앨리스의 표정은 꽤 심각해 보였다.

        

       “혹시 사용할 날이 오지 않을까 해서 만들어 둘 뿐입니다.”

        

       나도 솔직히 만들어서 쓸 날이 올지 오지 않을지는 모른다. 그냥, 일단은 만들어둘 뿐. 혹시라도 또다시 전장에 서는 날이 오면 그런 특수 탄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하지만 앨리스는 ‘내가’ 그런 탄을 주문했다는 것이 제일 걱정인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마치 미래를 읽는다는 것처럼 행동해왔으니까. 내가 그런 탄을 주문한다는 것이 ‘언젠가 쓰일 것’을 가정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저라고 해서 모든 미래를 다 예상하고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어떤 상황에서도 쓸모 있도록 이런저런 것들을 준비해둘 뿐이죠.”

        

       적어도 스토리 후반부에 등장하는 거대한 환수들과 싸울 때는 좋을 것이다. 그리폰 같은 생물도 잡을 수 있을지 모르고.

        

       “…….”

        

       나의 말에 앨리스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의혹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우리가 호텔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점심시간이 거의 다 된 뒤였다.

        

       상점 주인장이 나라는 손님을 놓치고 싶지 않았는지 해당 탄을 만드는 회사에 연락해서 맞춤 탄을 만들 수 있는지 확인하고, 혹시라도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 완성하지 못하면 배송까지 해 주겠다는 확답까지 했기에, 이런저런 서류를 쓰고 수표에 서명까지 했던 것이다.

        

       특히 최고급 마르마로스는 사실상 엄청 비싼 보석과 거의 동급이나 더 위의 물건으로 쳐지기 때문에 일회성 보험까지 들어야 했다.

        

       돈이야 황실에서 낼 테니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코뿔소 정도는 검으로도 그럭저럭 잡을 만하던데.”

        

       “…….”

        

       레오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나는 소피아가 왜 그렇게 너덜너덜해졌는지 알 것 같았다.

        

       같은 검술이라고 해도, 사람을 상대할 때와 짐승을 상대할 때는 다른 법이니까. 레오가 2부 시점에서 소피아한테 패배한 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코뿔소 사냥’과 같을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레오를 비롯한 주인공 일행은 당시 상황 때문에 멘탈이 멀쩡하지도 못했고.

        

       “언니는 검이 아니라 총을 쓰잖아.”

        

       클레어는 레오의 등을 탁 치면서 말했다.

        

       뭐 그렇지.

        

       내가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두 사람에게는 따라갈 수 없으니까.

        

       그저 내 실력이, 나중에 이 아이들 발목이나 잡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음.”

        

       우리 이야기를 묵묵히 들으며 걷던 샤를로트가 갑자기 그런 소리를 냈다.

        

       “무슨 일이야?”

        

       “아, 별건 아니고, 저기 제이크와 로티가 있어서요.”

        

       그렇게 말하는 샤를로트의 표정은 그렇게까지 밝지는 않았다.

        

       샤를로트와 앨리스, 레오와 클레어 모두 마찬가지였다. 어제 그 일을 다들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레나가 물었다.

        

       “아, 그게…….”

        

       앨리스는 레나에게 대답하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가, 곧 그대로 다시 다물었다. 그럴 만도 했다.

        

       평민이니 서자니 하는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많이 들리는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친구를 그렇게 말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로티의 어머니는 그냥 평민이 아니었다. 식민지 원주민이었으니, 어떻게 보면 그 사실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모욕’처럼 들릴 수 있는 것이다.

        

       “…….”

        

       앨리스의 표정을 보고 레나는 더 이상 자세한 것을 묻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무시하고 지나갈 수는 없잖아.”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클레어였다.

        

       “……그렇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제이크 친구니까.”

        

       레오가 그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레오에게로 시선이 몰렸다. 심지어 나나 레나의 시선까지.

        

       “왜, 왜? 내가 이상한 소리라도 했나……?”

        

       “에휴.”

        

       클레어가 레오 들으라는 듯 대놓고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이 자리에서 제이크가 로티를 이성적으로 좋아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레오 한 명뿐인 모양이다.

        

       원작에서도 본인에게 오는 관심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으니, 뭐.

        

       레오의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이 나의 캐릭터성에 위배되는지 아닌지 고민하는 사이에,

        

       “어이!”

        

       저쪽에서 먼저 우리 쪽을 눈치챘다.

        

       활짝 웃으며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드는 제이크를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우리는 모두 제이크와 로티가 있는 곳까지 몰려갔다.

        

       “다 같이 어디를 그렇게 다녀와?”

        

       “잠깐 무기점에 들렀습니다. 이쪽에서 사용하는 무기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해서요.”

        

       “아…….”

        

       제이크의 표정이 조금 미묘해졌다.

        

       “쓸만한 건 거의 없지 않아? 대부분 사냥용일 텐데. 너희 실력이라면 굳이 그런 것 없이도 사냥할 수 있잖아.”

        

       호오.

        

       사냥이 가능하지 않냐고 물어보는 제이크의 표정을 보니, 제이크는 코끼리나 코뿔소를 잡는 것에 조금 거부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원작에서도 그랬던가?

        

       그러고 보면, 제이크는 원작의 이 에피소드에서는 파티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었지.

        

       그렇다고 환경주의자거나 채식을 한다거나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이 생각은 일단 머리 한구석에 넣어두기로 했다.

        

       “탄자가 커서 활용할 방법이 여러 가지로 떠올랐습니다. 맞춤 탄을 몇 발 정도 주문하고 오는 참입니다.”

        

       “그래……?”

        

       제이크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네가 그렇게 판단했다면 그만큼 쓸만한 거겠지. 아, 그래. 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앉지 그래? 다 앉으려면 테이블을 몇 개 써야 하겠지만.”

        

       “제가 두 사람의 시간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만.”

        

       로티의 얼굴에서 성가시다는 감정이 읽히지는 않았지만, 원래도 표정을 숨기는 것이 특기인 로티였으니까.

        

       “너희들은 환영이야.”

        

       ‘어제 그 일도 있었고’라는 말이 딸려오지 않은 것은 레나가 같이 있었기 때문일까.

        

       우리는 서로 얼굴을 본 다음, 조심스럽게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제이크와 로티와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은 나와 레나였다.

        

       ……뭐지. 누가 어떻게 자리를 잡아준 것도 아닌데.

        

       레나가 2학기 들어서 나를 좀 따라 하고 있었다는 것은 알겠는데, 이렇게 당당하게 같은 테이블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줄은 몰랐다.

        

       하긴, 나머지 일행이 알아서 옆 테이블로 가 버렸으니 이게 더 자연스러우려나.

        

       “평소에도 이런 시간을 자주 가지십니까?”

        

       “그럼.”

        

       제이크가 웃으며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쭉 이렇게 지냈지.”

        

       “…….”

        

       로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소꿉친구 관계이십니까?”

        

       “오?”

        

       레나의 질문에 제이크가 놀랐다는 듯 반응했다.

        

       제이크와 레나가 직접 대화하는 것을 본 기억은 없는데. 내가 옆자리에 있어서 적극적이 된 건지, 아니면 그냥 나를 따라 하는 것의 일환인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레나는 미아 크로우필드처럼 ‘소심해서’ 말을 ‘못’ 거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이렇게 말도 더듬지 않고 당당하게 물어보는 것을 보면.

        

       ……그냥 말 걸 필요를 못 느껴서 그랬던 건가?

        

       “그렇게 보여?”

        

       “그렇지 않으면 남녀 사이가 그렇게 언제나 붙어 다닐 수 있습니까?”

        

       그 말에 로티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제이크는 다시 한번 “오.” 하는 소리를 냈다.

        

       레나는 그런 반응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나 마이어. 맞지?”

        

       “그렇습니다. 마이어라고 불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을 확실하게 긋네.

        

       “그럼, 마이어.”

        

       제이크는 씩 웃으면서 물었다.

        

       “평민과 귀족 간의 사랑을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고 자시고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나는 레나의 대담함에 내심 감탄했다.

        

       아니, 대담함이라기보다는 그냥 머릿속이 깨끗한 걸지도 모른다. 왠지 레나한테 아이 만드는 법을 물어보면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어디서 주워 온다고 할 것 같기도 한데.

        

       “그럼, 그런 두 사람이 결혼하는 건?”

        

       “법적으로 문제 될 일이 있습니까?”

        

       “음, 글쎄.”

        

       제이크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결혼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데, 정실의 위치를 따지는 데 문제가 생길 수는 있겠지.”

        

       “…….”

        

       이야기를 듣는 내내 로티는 계속 입을 다물고 있었다.

        

       “처음부터 한 사람과 결혼하면 정실 같은 것을 따질 이유가 있습니까?”

        

       레나는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보았다.

        

       “자치국에서는 어떻습니까?”

        

       “자치국에서 그랬다가는 부인에게 살해당할 수 있습니다.”

        

       “…….”

        

       “푸핫.”

        

       레나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고, 제이크는 웃음을 터뜨렸다. 크게 웃는 제이크를 레나는 이상하다는 듯 보았다.

        

       “그러네, 음, 확실히, 죽고 싶지는 않으니까 조심해야겠네.”

        

       아무래도 북부의 여인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강한 것 같았다.

        

       어,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진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안내소 안내원이나 제니퍼만 봐도.

        

       “그럼 한 가지만 더 묻자.”

        

       겨우 웃음을 멈춘 제이크는 이번에는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피부색 때문에 결혼하지 못한다는 건 어떻게 생각해?”

        

       그렇게 물었다.

        

       로티의 어깨가 다시 흠칫 떨렸다.

        

       “북부에도 피부색이 어두운 사람들은 많습니다. 특히 설산의 기지에 있는 사람들은 하얀 눈밭에 반사된 햇빛 때문에 어부처럼 그을리기도 합니다만.”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피부색이 다를 수도 있잖아.”

        

       “애초에 피부색은 태어날 때부터 모두 다르지 않습니까?”

        

       레나는 지금 이어지는 대화의 핀트를 잡기 어렵다는 듯 말했다.

        

       “앨리스 황녀님과 실비아 황녀님의 피부색이 조금 다르듯, 클레어와 샤를로트의 피부색이 조금 다르듯, 모든 사람의 피부색은 다른 것이 아닙니까?”

        

       “그거 흥미로운 주장이네.”

        

       제이크의 말에 레나는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그리고 저는 린드버러 님이—”

        

       “제이크라고 불러도 되는데.”

        

       “—제이크 님이 ‘하얀’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로티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레나는 뭔가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 무표정으로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피부색이 취향에 포함될 수는 있겠습니다만…… 만약 누군가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 피부색이 조건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굳이 결혼을 막을 이유가 있습니까?”

        

       이야기를 들을수록, 자치국이 어떤 나라인지 엄청나게 궁금해졌다. 가정교육이 대단한 건지, 아니면 자치국의 상황이 레나의 사고방식을 이렇게 만든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레나의 성격만 이런 건지.

        

       “피부색이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쉽게 바뀌는 것이니 피부색만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향후 평가에 잘못된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야, 너 진짜 마음에 든다.”

        

       “…….”

        

       제이크의 말을 들은 레나가 의자를 슬쩍 옮겨서 내 쪽으로 조금 다가왔다.

        

       ……그, 마지막의 그 평가에는 명백하게 제이크의 피부색이 포함된 것 같은데.

        

       물론 나는 괜히 그런 말을 꺼내서 분위기를 망칠 만큼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미리 조금만 말씀드리자면 자치국이 편견없는 선역이라기보다는 그냥 레나가 그런 것을 보지 못하고 자랐기에 그런 쪽으로 머릿속이 깨끗할 뿐입니다.

    자치국에는 식민지 원주민 출신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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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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