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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6

    촤르륵-. 자동차의 바퀴가 물을 튀기는 소리가 그 통나무집의 앞에서 끊기고, 털털거리는 소리를 내던 마력엔진의 시동을 끄는 예르나.

     

    “자, 얘들아. 도착했어.”

    “으음.”

    “하암…….”

     

    참 이상한 일이다, 어째서 차만 타면 이리도 잠이 쏟아지는 것인지.

    원래는 이토록 잠을 오래 자지도 않았을 뿐더러, 탈것 안에서 일부러 수면을 취한 적은 더더욱 없었던 것을.

    어쩌면, 탑승감이 너무 좋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며 루크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차로 한 시간정도 폭우를 뚫고 도착한 예르나의 본가는 도심에서 살짝 벗어난 외곽지역이었다.

    현대 첨단마법의 온상지인 베리튼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연 친화적인 형태의 통나무집.

     

    숲의 입구에 지어진 그 집은, 마치 숲지기의 숙소와도 같은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다이튼과 루크는 일종의 안정감마저 느끼고 있던 와중이었다.

     

    똑똑, 예르나가 문을 두드리자, 금방 문이 열리며 안쪽에서 그녀를 닮은 엘프가 활짝 웃으며 문을 열었다.

     

    “어머, 벌써들 왔니?”

     

    정확히하자면, 예르나가 어머니를 상당히 닮은 것이리라.

    그녀는 이제 80세 이상, 인간으로치자면 30~40대의 육체나이임에도 남이 보면 마치 자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젊은 듯 보였다.

     

    뜻밖의 외견에 긴장한 다이튼은 뻣뻣하게 굳은 몸으로 읊듯이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단지 예르나와 닮은 여성이기 때문이라고 보기보다는 예르나의 어머니라는 사실이 다이튼에게는 더욱 커다란 의미였겠지만.

     

    “아, 안녕하세요! 저, 저는 다이튼 게네퍼. 예르나의 직장동료이고…….”

     

    “후후, 그쯤 하고 어서 들어오렴, 비도 많이 오는데.”

     

    “그,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실례하겠습니다!”

     

    다이튼의 인사를 디아나가 따라하며 집 안쪽으로 발을 들였다.

    역시 인간사이의 예법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정령이 그 뒤를 따라 잽싸게 들어가버리려고 하자, 루크는 급하게 파이를 불러와 인사를 시켰다.

     

    “자, 파이리스. 인사.”

    “안녕하세요, 파이리스입니다.”

    “그래, 어서 들어오렴.”

     

    마침내 그 뒤를 따라 인사를 건네는 루크는 무려 옛 엘프식 여성 귀족인사까지 선보이며 인사를 했다.

     

    “그대의 발이 결코 진창에 빠지지 않기를, 반갑네. 나는 루크 이루시라고 한다네.”

     

    “아하, 이런 식이로구나?”

     

    “송구스럽다만, 말투는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니 양해를 바라겠네, 한번 말을 놓아보니 영 불편해서 말일세.”

     

    루크는 일전에 예르나의 앞에서 일부러 현대 아이의 말투를 흉내내어본 것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때 자신의 연기가 어찌나 불편했던지, 예르나도 곧장 쓰러져버렸지 않던가?

    루크는 그때의 일로 교훈을 얻었다. ‘사람은 본래 살던대로 살아가야 하는 법’이라고.

    안 하던 짓을 하는 것은, 자신의 몸에 새겨진 본능을 따르는 것으로도 이미 충분하니까.

     

    루크의 말투를 들은 그녀는 눈웃음을 지으며 예르나를 돌아보았다.

    예르나는 조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너무 오래되어서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예법과 인사말을 이토록이나 태연하게 건넬 수 있다니, 대체 얼마나 동화속 이야기에 진지해야 가능한 것일까?

    뭐, 그것도 나름대로 귀여운 모습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반가워. 나는 미르나 리스핀드, 편하게 미르나 아줌마라고 부르렴.”

     

    그녀의 간단한 소개에 루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점잖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마담 미르나, 나 또한 그대와의 만남이 대단히 반가운 만남일 따름임을 다시금 상기시키지. 그대는 나 또한 편하게 루크라고 불러주시게.”

    “그래도 아줌마한테는 편하게 해도 되는데.”

    “흐음, 알겠다. 그럼 편하게 이야기하지. 제안 고맙다, 미르나.”

    “……아, 그게 정말로 편한 말투였니?”

    “그렇다만, 혹시 듣기에 불편한가?”

    “음, 아냐. 네가 편하다면야…….”

     

    정말 편한 거라면 어쩔 수 없지, 강제로 말투를 교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쉽기는 했다.

     

    ‘조금 더 손녀 같은 느낌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래서야 동갑내기 할아버지하고 대화하는 느낌이네.’

     

    정말 특이한 아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들어 알고 있기는 하지만, 그걸 따져봐도 너무 특이했다.

     

    단어의 선택이라던가, 말투에서 묻어나오는 연륜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어린아이가 힘든 과거때문에 동화에 너무 심취해 말투마저 옛 동화속의 말투가 되어버렸다니, 슬픈 사연에 조금은 숙연해지곤 하지만, 그래도 모처럼 귀여운 목소리가 진심으로 아깝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마냥 잘못되었다고, 그것을 교정을 시키는 것도 잘못이고…….

     

    그렇게 모두 들어온 것을 확인한 미르나는 거센 비가 들이치는 현관문을 닫았다.

     

    ——–

     

    디아나와 파이리스는 차에서 내리니 갑작스럽게 쌩쌩해져서는, 루크가 짐에 끼워넣었던 우비를 발견하고 바로 써봐야겠다며 바깥으로 놀러나갔다.

    마침 만약의 만약을 대비해 두 벌씩 준비한 것이, 디아나와 파이리스에게는 꽤나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던 모양이다.

    창문 밖으로 바라보니 아이들은 신이 나서 물 웅덩이를 찰팍대고, 손을 흩뿌리며 서로에게 물을 튀기며 즐겁게 놀고 있었다.

    그 모습은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치 더위가 가시는 듯했다.

     

    그렇게 아이들에게는 비행기가 뜨지 못할 거센 빗줄기마저 놀잇감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결국 위험한 짓을 하지 않게 감시, 관리, 감독하기 위해서 다이튼은 밖으로 아이들을 따라 나섰고, 그 모습을 보며 미르나는 집이 아이들로 북적거리는 건 처음이라 굉장히 즐겁다며 웃었다.

    “이런 걸 보면 나도 빨리 손자들이 보고 싶은 때가 있어.”

    “아이, 참. 엄마도.”

     

    비가 와서 급하게 걷어서 말리던 빨랫감을 개며, 예르나와 미르나는 그동안 쌓여있던 모녀간의 대화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대화의 주제는 숲에서 루크를 주웠던 일부터 시작해, 루크와 함께 있었던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숲에서 산책을 하고, 밥도 만들어먹고, 소풍을 하기도 하고…….

    용으로 변했던 순간이나 노예상에 관련된 껄끄러운 이야기들은 대충 뭉뚱그려서 넘어가버리기는 했지만, 그것 말고도 예르나가 루크에 대해 이야기할 것은 산더미처럼 많았으니까.

     

    그렇게 이야기를 듣던 미르나는 푸흡, 웃으며 말했다.

     

    “그쪽에서도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그러자, 예르나는 문득 입을 멈추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 지낸다, 뭐……. 그렇기야 하지, 솔직히 잘 지내고 있는 건 맞아.

    하지만 엄마는, 과거 자신이 벌인 일 때문에 고초를 겪어야 했었기에 이런 외딴 집에서 마치 사회와 격리라도 된 것처럼 살아가고 계신데.

     

    그렇게 생각을 하던 예르나는 곧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엄마야말로 별 일 없는거지?”

    “나야 뭐, 항상 그렇지, 평범하게 잘 지내고 있단다.”

     

    “또, 우리들은 원래 숲 속에서 살았고.”

     

    언제나 미안하다고 하면 돌아오는 그녀의 단골멘트였다.

    확실히, 자신도 나이를 두 손으로 다 세지도 못 할 정도로 어렸던 때에는 숲의 집에서 생활했던 기억이 나니까.

    하지만 요즘은 솔직히 숲의 종족인 엘프라고해도 도시가 편했다.

    숲은 딱히 불편함을 감수할 정도로 훌륭한 장소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미르나는 정말 별 것도 아니라는 듯이 태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괜찮다니까, 아, 맞다. 그런데 글쎄, 엊그제 텃밭에서 기르던 채소에 꽃이 피었어. 기억나니? 너도 몇 년 전에는 도와준 거긴데.”

    “기억나, 그거 보고싶네.”

    “비가 그치면 잠깐 보고 가렴.”

     

    화목한 모녀의 대화를 끼어들지 않고자 얌전히 아이들이 노는 것을 창으로 지켜보던 루크는 문득 어제 샀던 세계수의 진액이나 확인하며 추출법을 미리 생각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크는 미르나에게 묻는다.

     

    “미르나, 여기 면봉과 화장 솜, 또는 휴지가 있나?”

    “아, 면봉이랑 화장솜이라면, 저쪽 서랍장 맨 위에 있을 거야.”

    “혹시 내가 잠깐 빌려도 괜찮은가?”

    “물론이지. 맘껏 쓰렴.”

     

    루크는 곧장 미르나가 가르킨 서랍장으로 다가가 맷 윗칸을 열고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랍장의 맨 윗 칸은 아무래도 아직 아이의 몸인 루크에게는 살짝 높아서 약간 까치발을 들고 서야만 했다.

    작아진 키가 아주 조금정도는 원망스러울 법도 하지만, 루크는 이제 일일이 그런 것에 불평을 내기는 귀찮기도 하고, 쓸모도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면봉은 금세 찾을 수 있었어도 화장 솜은 바로 눈에 띄지 않아서 서랍 안쪽을 자세히 살피며 찾아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서랍 안쪽을 뒤적거리던 루크는 서랍 안에서 조그만 액자를 발견했다.

    약간의 호기심이 동한 루크는 액자를 뒤집어보고는 작게 감탄했다.

     

    “오, 이건…….”

     

    ———-

     

    잠시 후, 면봉과 화장솜을 찾으니 아이들은 밖에서 충분히 놀았는지 우비를 정리하고 씻기 위해 욕탕으로 들어갔다.

    겨우 숨을 돌린 듯 소파에 앉아 한숨을 쉬는 다이튼에게 수고했다며 물 한잔을 건네고 루크는 서랍에서 찾은 남성 엘프의 사진을 들고 곧장 예르나를 찾아갔다.

     

    “예르나, 이건 누구의 사진이지?”

     

    “응? 그게 뭔데?”

    그렇게 루크가 건넨 액자를 받아든 예르나는 즉시 탄성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아하, 이건…….”

     

    “아, 그게 거기에 있었네.”

     

    미르나는 예르나에게서 액자를 받아들고 웃으며 대답했다.

     

    “이거, 아줌마 남편이 젊었을 때 찍은 사진이야.”

     

    “응, 이건 아빠 사진이야.”

     

    “오호, 그렇군. 꽤나 잘 생기셨군그래.”

     

    “그렇지? 내가 남편은 아주 잘 뒀었다니까.”

     

    “그런데…….”

     

    루크는 집 안을 둘러보며 잠깐 고민에 빠졌다.

    화장실에는 하나뿐인 칫솔, 여성용 신발뿐인 신발장, 온통 여성복인 빨랫감…….

    집 안에는 전혀 남성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혹시 지금은 따로 사는 중인가?”

     

    루크의 물음에, 예르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 아빠는 옛날에 돌아가셨어. 나 어릴 때.”

     

    “그……. 유감이로구나.”

     

    그 말에 루크와 곁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다이튼은 바싹 굳어버린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예르나는 정말 별 것 아니라는 듯 피식 웃어버리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뭘, 다 옛날 일인걸.”

     

    “그래, 숲지기셨거든. 아마 내가 6살 때 였을 거야. 숲에서 대형 몬스터의 공격을 받아서…….”

     

    잘 기억도 안 나기는 하지만, 이라고 덧붙이는 예르나의 목소리는 정말 괜찮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조금 굳어버렸던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미르나는 살짝 미소지으며 입을 연다.

     

    “내가 그래서 얘가 숲지기를 한다고 했을 때 반대를 많이 했었지, 네가 진짜 누구보다 뛰어나게 할 자신이 없으면 아예 하지 말라고 내가 얼마나 잔소리를 했는데…….”

     

    미르나는 추억에 잠긴 듯 지긋이 눈을 감더니 말했다.

     

    “그랬더니 아예 1등을 해버리더라고.”

     

    ——–

     

    “12살 때부터 사격엔 천부적이었지. 새총으로 10번을 쏘면 10번 다 중앙에 맞고 그랬으니까.”

     

    예르나는 뭐 그런 이야기를 다 하느냐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와, 대단하네요.”

    다이튼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옛날에 그랬던 아이가 지금은 가만히 있는 표적이라면 2km 밖에서도 간단히 저격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정말 성장이 놀라운 수준.

     

    그렇게 루크가 서랍 구석에서 발견한 옛 사진에서 시작된 예르나의 옛날 이야기는, 루크에게는 그닥 흥미로울 것이 없었지만 다이튼에게는 꽤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던 모양이다.

    좋아하는 여성의 옛날 이야기를 듣는 기회는 모처럼 오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다이튼은 액자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확실히, 멋있긴 하셨네.’

     

    왕년에 여성 여럿 울렸을 것 같은 얼굴이라고 할까, 같은 남자가 봐도 확실히 호감형이었다.

    이 얼굴이면 배우를 하시지, 왜 숲지기 같은 것을 하셨는지 잘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자신과 비교를 하기엔 더없이 미안할 정도로 잘 생기신 모습이었…….

     

    “아, 너 그것도 기억하니? 옛날에 누구랑 결혼할 거냐고 물어봤을 때.”

    “아, 엄마!”

     

    멈칫.

    다이튼은 생각마저 멈추고 대화에 집중했다.

    예르나의 어릴 적 이상형은 절대 놓칠 수 없는 주제였으니까.

     

    “너 아빠사진 처음 봤을 때 이거보다 못 생긴 사람이랑은 절대 결혼 안 하겠다고 했었지? 어때? 지금도 그러니?”

    “아니, 엄마는 대체 언제적 얘기를 자꾸 하고 그래…….”

     

    부끄러움에 빨랫감을 들어올려 표정을 감추려는 예르나, 그러나 다이튼은 충격에 빠진 표정으로 액자만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

     

    아무리 꼼꼼히 분석적으로 뜯어봐도 자신은 어디 하나 닮은 부분이라곤 없었다.

    질투는 고인에게 품기엔 부적절한 감정임을 알지만, 다이튼은 자신의 감정에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솔직한 남자였다.

     

    루크는 그런 그의 등을 두드리며 격려했다.

     

    “다이튼, 사람의 취향은 원래 시간이 지나면 다 변하는 법이라네. 너무 충격 받지 말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예르나 아빠는 대충 원빈이라고 치죠. 멋있게 삽화로 그려보고 싶었는데 제가 보기엔 별로 안 멋있어서 포기한건 아니고….ㅎ

    근데 아빠사진이 원빈이고 아빠보다 못생긴 남자랑 결혼 안하겠다 선언하면 그건 평생독신으로 살겠다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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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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