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66

     

    “비명뿌리초 차라네. 입맛에 안 맞을 게야. 마셔보게나.”

     

    시모어는 간만에 만난 수제자에게 직접 차를 따라주었다. 아셀라가 한 모금 머금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라스.”

     

    “예.”

     

    라스가 아셀라의 뜻을 이해하고는 바로 사탕을 하나 꺼내주었다.

    아셀라는 달콤한 벌꿀로 망친 혀를 달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모어의 통나무 집은 아늑했다. 언덕에 그를 방해할 다른 건 없기에 공간을 넓게 써도 되었겠지만, 굳이 낭비하지도 않겠다는 의사가 보였다.

     

    시모어가 오밀조밀한 찬장에서 잔을 하나 더 꺼내며 말했다.

     

    “내 사람을 반가워할 성격은 아니었건만, 하하. 자네들을 보니 생각이 달라지는구먼. 어찌 이 외지까지 찾아올 생각을 했는가?”

     

    “그간 황실의 일을 들려드리자면…”

     

    “됐어, 세간 일이야 이 늙은이는 더 알아도 필요 없고 조언 줄 수도 없는 내용이야. 자네들의 이야기면 충분해.”

     

    시모어가 활짝 웃으며 아셀라의 건너편에 앉았다.

     

    그가 라스를 향해 시선을 보냈다.

     

    “자네는 앉지 않는가?”

     

    “어차피 금방 나가야 할 것 같아서요.”

     

    “아, 마법이로군.”

     

    시모어는 비밀스러운 이야기의 주제를 눈치챘다.

     

    “여전히 현명하구만, 고트베르크. 마법사들의 지식은 은밀한 법이지. 자네와의 회포는 곧 풀도록 하겠네. 잠깐 괜찮겠나.”

     

    “예. 생각보다 건강해 보이셔서 안심했습니다, 현자님.”

     

    “하하, 다 노하우가 있다네.”

     

    라스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문밖으로 몸을 옮겼다.

     

    집 안에 둘만 남게 되고, 시모어가 아셀라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회로가 막혔군. 고난을 겪고 있구먼.”

     

    “네. 위계가 떨어지는 일은 태어나서 처음 겪었어요.”

     

    아셀라는 가능한 덤덤하게 대답했다. 호들갑 떨면 정말 큰일처럼 느껴질까 봐서였다.

     

    “진을 그려보게나.”

     

    아셀라가 차분하게 소형 술식을 전개했다.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천리안의 진이었다.

    이번에도 다섯 번째 진을 그리지 못하고, 작성은 중단됐다.

     

    “아셀라, 마법의 경지마다 붙은 이명을 알고 있는가?”

     

    “이명. 스승님이 도달하신 7위계는 위인의 경지이지요.”

     

    “그렇다네. 6위계는 영웅의 경지, 5위계는 인외의 경지라 불리지.”

     

    “인외…”

     

    “원인은 간단하네. 자네는 인간으로 돌아온 게야.”

     

    아셀라는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시모어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이해했다.

     

    라스가 자신을 고쳐냈다.

     

    평생 괴롭히던 고통과 저주, 속박으로부터.

     

    그 복부의 통증이 자신이 가진 재능의 대가였다고, 아셀라는 인과를 깨달았다.

     

    “저는 원래 인간이 아니었나요?”

     

    “지금도 범인은 아닐세. 그 나이에 자네만 한 통치력을 가지고 십 년은 위인 형제들과 경쟁하는 일반인이 어디 있겠나.”

     

    “하지만, 마법사로서는.”

     

    “재능은 남았지만 더 이상 역사적인 천재는 아닐세.”

     

    천재는 나 같은 미남을 두고 하는 소리지. 시모어가 수염을 튕기며 호탕하게 웃었다.

     

    “나을 방법은요?”

     

    사형선고를 받았다면 그 순간 사람은 절망하기 마련이건만, 아셀라는 그럴 시간도 아까웠기에 해결책을 찾으려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시모어는 아셀라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자네는 병에 걸린 게 아니야. 나을 수 있는 현상이 아니라네.”

     

    “그런…”

     

    “자네의 지금 재능만으로도 다시 5위계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하진 않아 보인다네. 평생 노력한다면 음, 늙어 죽기 직전에는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스승님.”

     

    아셀라를 감싼 공기가 싸늘해졌다.

     

    “제가 그런 대답을 바란 게 아니라고 잘 아시잖아요.”

     

    시모어는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만족스러웠다.

     

    자신이 일평생 유일하게 받은 수제자가 어느 누구보다 훌륭한 마법사의 정신을 가졌기에.

     

    높은 경지에 도달한 경험을 한 번이라도 맛본 마법사는 더는 멈출 수 없다.

     

    다음 문을 또 열고 싶어서 일평생 마법에 매진하게 된다.

     

    마법을 신기해하며 과시하거나 한두 번 쓰고 마는 이들은 가짜다.

     

    모든 마법사는 중독자다. 자신이 그랬고, 카밀라가 그랬듯.

     

    아셀라도 마찬가지였다.

     

    “아셀라, 멈춘다면 지금일세. 아마 네 주치의는 강한 마법을 바라지 않을 게야.”

     

    “아뇨, 높은 경지의 마법은 그를 위해서라도 필요해요.”

     

    “호오.”

     

    시모어로서는 상당히 의외의 대답이었다.

     

    그 아셀라가 누군가를 위해 행동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아셀라는 진심이었다. 당장 라스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떠들썩해질 대륙의 판도를 제국이 휘어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황제가 당장 내일이라도 서거할 수 있는 지금은 더더욱. 대륙이 분열하면 그만큼 마계와의 전쟁은 길어진다.

     

    자신이 차기 황제로서 천하를 제압하려면 강력한 마법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진심이구먼, 아셀라.”

     

    “저는 언제나 진심이었어요.”

     

    “으음.”

     

    시모어가 눈을 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의 태도를 보고 아셀라는 통찰했다. 그의 생각을 예리하게 읽어냈다.

     

    “재능을 되돌리는 게 아니라, 새롭게 부여할 방법을 알고 계시는군요.”

     

    “조금은 다르다네.”

     

    “다르다면….”

     

    아셀라는 대화의 흐름에서 시모어가 대답하기 망설이는 이유를 깨달았다.

     

    “대가를 지불하는 방법이군요. 스승님도 그를 이용해서 7위계에 도달하셨고요.”

     

    시모어가 패배를 인정하며 허탈하게 웃었다.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건만, 아셀라는 모든 걸 꿰뚫어 보았다.

     

    “대가가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 알고 있겠지, 아셀라.”

     

    “…네.”

     

    “내가 지불한 건 감각뿐만이 아닐세. 더 많은 것을 잃었지. 대신 강력한 마법을 얻었다네.”

     

    “어떤 대가를…?”

     

    시모어는 잠시 뜸을 들인 후 대답했다.

     

    “수명일세.”

     

    앞으로 마법을 쓰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셀라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카밀라도 알고 있었을 거야. 수도 없이 지불했겠지. 그 머리 색을 보면 뻔했어.”

     

    “은발 말인가요? 분명 젊을 땐 저처럼 금발이었다고 했어요.”

     

    아셀라는 시모어의 새하얀 백발에 눈길이 갔다.

    묘한 윤기가 나며 은은하게 빛을 반사한다. 그 역시 은발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셀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수명을 대가로 강력한 마법을 쓴다니, 흑마술과 다를 바 없지 않나요?”

     

    “다르다네. 흑마술은 교환비가 맞지 않아. 100의 희생으로 1의 파괴를 만들지. 대가의 거래는 등가교환일세. 100을 지불하면 100만큼 마법의 경지를 올릴 수 있다네.”

     

    시모어가 덤덤하게 말했다.

     

    “어찌 보면 합리적이야. 재능이 부족한 이는 그만큼 가진 걸 내놓으라는 뜻이니. 굵고 짧게, 혹은 가늘고 길게. 면적은 같다네.”

     

    “…수명을.”

     

    “어쩌겠나, 아셀라.”

     

    시모어가 그녀에게 다시 한 번 질문했다.

     

    농담기 하나 없는 진지한 얼굴이었다.

     

    “그리 해서라도 마법을 쓰고 싶은가?”

     

     

     

    ***

     

     

     

    아셀라는 한참 시간이 흘러서야 시모어의 집에서 나왔다.

     

    황금빛 머리칼을 살랑살랑 흩날리며 내게 다가온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자신감 넘치는 코웃음을 흘렸다.

     

    “마음에 드는 대답을 들으셨나 보군요.”

     

    아셀라는 대답 대신 내가 맡아뒀던 지팡이를 가져가더니, 금방 네 개의 진을 그렸다.

     

    ―파아앗!

     

    화려한 황금빛 마나와 함께 시전되는 주문.

     

    진이 구축한 육각형의 구멍을 찢으며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머리에 왕관 같은 깃털을 단, 아셀라의 팔뚝만 한 앵무새였다.

     

    “허어, 리콜을 쓰셨어요?”

     

    “스승님이 주인을 풀어주셨어. 놀랐니?”

     

    “상당히요. 황실에 들키면 큰일 나지 않겠습니까.”

     

    “알아낼 사람이 어디 있겠니.”

     

    아셀라의 말이 맞았다. 이제 황실에는 그녀만큼 마법의 이해도가 높은 이가 어디에도 없다.

     

    마지막 회귀 전, 그녀가 대규모로 소환했던 용군단.

     

    그건 저 리콜에서 발전한 고위계 공간마법이었겠지.

     

    하지만 뭐.

     

     

    [No. 001 용군단 : 0%]

     

     

    이제는 없을 일이다.

    아셀라가 공간 마법을 다루게 되어도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됐다.

     

    “현자님께서 해결법은 알고 계시던지요.”

     

    “음… 있긴 있었어.”

     

    “난이도가 있나 보군요. 설명해주시면 저도 보조하겠습니다.”

     

    “아냐. 스승님을 만나게 해준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렇네, 요즘 정찬이 물렸어. 새 메뉴를 만들어주렴.”

     

    아셀라는 만족했다는 듯 라이터의 불을 끄듯 손가락 끝의 마나를 튕겨 날려 보냈다.

     

    그녀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잘 됐구나, 라스. 약조는 지켜줄게.”

     

    “망극한 말씀입니다.”

     

    “물론 그래야지. 나 아셀라 폰 뷔르템펠트의 총애를 받았잖니.”

     

    나와 아셀라 둘이서만 바로 선 언덕.

    그녀는 나에게만 보낼 셈이라며 과시하듯,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악마 같은 미소를 실어 보냈다.

     

     

    ―――――――――――

    · 굿엔딩

    · ■■년 후, 다시 ■■에서 43% → 54%

    ―――――――――――

     

     

    지금은 그 미소에 악의보다는 다른 의미가 많이 담겼다고 잘 안다.

     

    “너도 스승님을 뵙고 올 거지?”

     

    “예. 저도 개인적인 용무가 있었습니다.”

     

    “다녀오렴.”

     

    사박사박, 잔디를 밟으며 아셀라를 지나치며 상태창을 열었다.

     

    ‘현자 시모어. 생각해보면 그의 무덤에서 얻어야 하는 아티팩트가 있었어.’

     

    아크스태프.

     

    200년 전 활약한 전전대 용사파티의 대마법사가 썼다고 전설로 내려오던 지팡이다.

     

    등급으로 따지면 세계급 무구다.

     

    그걸 손에 넣은 덕에 우리 파티의 마법사가 강해졌고, 리치를 쓰러트릴 수 있었다.

     

    ‘그땐 그러려니 했는데, 생각해보니 시모어가 그걸 가지고 스스로 묻혔다는 건.’

     

    자신도 물려받은 것이라면 후대에 전해줬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이유는 하나.

     

    본인의 물건이기 때문에.

     

    자격 있는 혈족이 아니면 자신의 마법은 일절 계승하지 않는 마법사들의 특성이다.

     

    ‘시모어는 엄청나게 장수했어.’

     

    하지만 그의 종족은 확실하게 인간이다.

    200년 이상 살아왔다면 혹시라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엘릭서에 대해서.’

     

    내가 시모어에게 가진 용건은 그것이었다.

     

    언젠가 내 스킬 랭크가 더 상승해 디버프가 겉잡지 못하게 되면 연금술로 상쇄해야만 한다.

     

     

    ―――――――――――

    ◎ 연성 목록

    ……

    · 엘릭서 = ??? + ??? + ???

    [랭크 부족]

    ―――――――――――

     

     

    최하단에 적힌 엘릭서는 아직 조제법도 모른다. 시모어에게라면 단서를 얻을 수 있을 터였다.

     

     

    “좋아.”

     

    시모어의 오두막집에 거의 다 와 상태창을 치우려던 순간.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

    · 굿엔딩 진척도가 절반을 넘었습니다.

    · 추가 정보가 개방됩니다.

    ―――――――――――

     

     

    ‘지금 시점에서 새로운 단서라고?’

     

     

    ―――――――――――

     

    ○ 노멀엔딩

     

    [화타의 길]

    · 새끼손가락은 ■■■ ■■고 65%

    [모험왕의 길]

    · 북부의 얼음은 녹지 않는다 0%

    [영웅의 길]

    · ■■은 ■■입니다 69%

     

    ○ 굿엔딩

     

    [화타의 길]

    · ■■년 후, 다시 ■■에서 54%

    [모험왕의 길]

    · 녹아내려, 흐르고, 이어지다 0%

    [영웅의 길]

    · 용사■ ■■ 62%

     

    ※ 굿엔딩이 발생하지 않았을 때만 노멀엔딩이 발생합니다.

     

     

     

    ○ 히든엔딩

     

    [욕망의 길]

    · 주■■는 ■■■ ■■고 ■■■■ 25%

     

     

    ―――――――――――

     

     

     

    다음화 보기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