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본색을 드러내자 바다는 죽음 같은 침묵이 감돌았다.
살아 숨 쉬는 모든 인간은 바다의 철썩거림과 쇠사슬이 내는 금속의 소리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고요하기 짝이 없는 침묵의 순간에서 그것을 바라보았고, 사지부터 머리까지 모조리 얼어붙은 채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타마더(他妈的)!”
그리고 그 고요한 침묵의 공간에서 가장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잠수함 위에 있던 왕웨이였다.
왕웨이는 이에 금이 갈 정도로 세차게 악물더니 잘 움직이지 않는 혀로 욕설을 내뱉곤 곧바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첨-벙!
물보라가 튀어 오르며 어둠 속에 녹아들고, 왕웨이가 내뱉은 욕설이 침묵을 갈기갈기 찢으며 날아오르자 장웨이 역시 정신이 든 듯 공포에 섞인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더니 바다로 뛰어들었다.
첨벙!
그것은 바다에 뛰어들곤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간신히 움직이며 수영을 하는 두 사람에게 소리쳤다.
“장웨-이! 왕웨이-! 어디 가는 거야!”
“원칙은 지켜야 해! 어서 돌아와!”
“계속 그렇게 가다간 거동이 수상하다고 총살을 당할 수도 있어!”
“바다도 위험한데 왜 굳이 수영해서 가려는 거야! 객기 부리지 마! 체온을 조절해줄 슈트도 없잖아!”
그것의 목소리는 친근감이 넘쳐흘렀다.
십 년 동안 알고 지낸 동료 같기도 했고, 같은 고향에서 나고 자란 친구 같기도 했으며, 악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상냥하기 짝이 없는 말투였다. 장난스러웠지만 그 안에는 정이 있었고, 놀리는 것 같으면서도 걱정이 숨어있었다.
“왕-웨이-!”
볼에 뚫린 구멍에서 튀어나온 혓바닥이 움직여 한 사람의 이름을 불렀고.
“장웨이-왕웨—이—”
입술이 움직이며 무저갱 같은 구멍 속에서 두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둘이 그것의 외침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어선으로 헤엄치는 것을 보자 손을 올려 제 턱뼈를 잡고는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나도록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리곤 제 턱뼈를 쑥 뽑아버리더니 그 안에 손을 집어넣더니 꾸역꾸역 팔꿈치까지 집어넣었다.
현녀는 그것을 행동을 바라보더니 역겹다는 듯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 악령이 자주 하는 짓이로다. ]
“악령….”
현녀의 곁에 선 중명조는 허공에 둥실둥실 떠서 색색으로 빛나는 제 깃털을 길게 늘어뜨려 현녀의 몸을 감싸주었다. 그리곤 여러 개의 눈동자를 또륵또륵 굴리며 해괴한 행동을 하는 ‘그것’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고, 그것이 어떤 것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알아내었다.
[ 하지만 저것은 악령이 아니다. 그렇다고 액도 아니고, 그것이 형상화를 이룬 것은 더더욱 아니지. ]
“예언대로인가요?”
[ 그렇다. ]
중명조는 제 몸의 반절을 아가리에 꾸역꾸역 집어넣은 그것을 보며 말했다.
[ 부정이 악령 흉내를 내는 것이다. ]
중명조는 그 말을 마치자마자 제 깃털을 움직여 현녀의 볼을 간질였다. 그러자 현녀는 중명조의 신호를 알아듣고 몸에서 권능을 끌어올렸고, 그러자 현녀의 몸에 감돌던 빛이 은은하게 빛을 발하며 선을 그리며 바다 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향해 날아갔다.
빛나는 선은 사람들의 몸에 닿자마자 녹아내리듯 사람들의 몸을 감싸 안았고, 액체로 그물을 짜는 것처럼 촘촘하게 면의 모습을 그려내었다. 그리고 그것은 외투의 형상으로 모습을 바꾸어 모든 사람의 몸에 자리를 잡았다.
중명조의 권능.
삿된 것을 물리치고 사악한 것을 없애는 힘이었다.
“아—아아아아—-! 아-!”
그것은 자신과 상극인 힘이 사람들에게 자리를 잡자 눈꼬리를 휘며 소리를 내질렀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고, 정신도 영혼도 육체도 무엇 하나 없는 부정의 덩어리.
무당을 흡수하고 마을을 때려 부수며 먹어 치웠던 혼과 백을 재료로 쌓아 올린 어설픈 형상.
의지를 가질 수도 없고, 오직 조건에 따라 움직이는 재앙에 불과한 것.
부정은.
그것은 히죽 웃으며 자기 얼굴에 세로로 된 거대한 입을 만들어내며 소리쳤다.
“아—린영정에 쓰린 부정! 숨지어 넋진 부정 피지고 가던 부정! 업어내고 모셔다가 열시왕의 사재부정!”
우여 슬프시다—!
사람을 진흙처럼 만들고 이리저리 뒤섞은 듯한 형상을 한 것은 입에서 친근한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듣고 있자면 절로 호감이 가는 목소리와는 달리 입에서 나오는 것은 흉흉하기 짝이 없는 말들이었으니.
일찍이 무당 악령이 진성을 홀리려 들었듯, 그것을 먹어 치운 부정 역시 무당 악령의 혼과 백을 재료로 흉내를 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부정은 몸 이곳저곳에 입을 이리저리 만들며 악을 쓰듯 소리를 질렀다.
“바다 위에서 숨이 끊어질 이들은 아홉 혼신 여망제님.”
“날 신체 젖은 시체 만지고 다룬 부정 관머리 널머리 마주친 부정이요!”
“곡성소리도 은하수 곡성소리 나던 부정! 머리끝에 백나비 부정은 흰나비 영정이요!”
“운명 시에 보던 부정 날 상시에 보던 부정!”
“임종 시 보던 부정 염습 시에 보던 부정!”
“입관 시에 보던 부정-!”
목소리는 교묘하게 어둠에 녹아들어 나비처럼 살포시 그들에게 날아갔다.
그리고 꿀을 바른 듯 귓가에 달콤하게 자리를 잡았고, 출렁이는 물결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람들을 홀리려 들었다.
발인 시에 보던 부정 길제 노제 시에 보던 부정
하관시에 보던 부정 평토 시에 보던 부정
매장 시에 보던 부정
거리에 오늘은 따라든 부정과 반혼 시에 보던 부정
열 부정 뜬 부정 길 위에 있던 부정 길알로 열 부정
일찍이 무당 악령이 그러려 했던 것처럼 부정은 무당의 흉내를 내며 사람들을 홀리려 들었고, 다른 곳이 아닌 자기 몸 안쪽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착각이 일어나게 했다.
오늘은 어떤 부정 귀로 듣던 부정 입으로 옮긴 부정
해묵은 부정에 달 묵은 영정은
조문하고 연신하고 왕래하던
영안실에 반혼시에 보던 부정에
이리저리 왕래하던 부정이요
“길위에 뜬부정 길아래는 열부정!”
“물부정 불부정 다 젖혀주소사!”
“하-하하하하!”
부정은 쉴 새 없이 여러 입으로 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현녀는 부정이 용을 쓰는 것을 보고도 인상을 찌푸리기만 하고 있었다.
[ 걱정 말거라. 액신이나 대악령도 아니고 고작 부정으로는 나의 권능은 뚫리지 않는다. ]
중명조는 어린애를 대하는 것처럼 현녀의 머리를 자신의 날개로 쓰다듬었고, 그러는 와중에도 눈동자 하나를 움직여 부정을 바라보았다.
[ 하지만 내가 없었다면 끔찍하긴 했을 것 같구나. 읽은 것으로는 단순히 기이한 존재감과 사악한 존재였을 것인데…. 저것은 그냥 사악한 것이 아니라 숫제 나약한 소국(小國) 하나는 너끈히 말아먹을 법한 오염 덩어리다. ]
중명조는 질린다는 듯 부리를 살짝 벌리곤 숨을 토해내었다.
[ 어째서 저런 것을 두고도 예언에서는 사악한 것이라고, 재액이라고만 나왔을까? 이해할 수가 없구나. ]
현녀는 한숨을 쉬는 중명조를 슬쩍 바라보더니 위로하듯 툭 말을 던졌다.
“그거야 대륙에 해를 끼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 그렇게 생각하느냐? ]
“예언이 있고, 하나로 결집한 중화의 힘이 있고, 제가 있어요. 저깟 부정이 얼마나 강한들 해를 끼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니까요. 그리고 패배한 것은 항상 보잘것없는 것이 되니, 당연히 예언에서는 사악한 것이라고만 나올 수 있어요.”
현녀는 그렇게 말하곤 자기 능력을 보여주겠다는 듯 권능을 끌어올려 손에 빛을 모았다.
그러자 살짝 몽롱해졌던 모든 사람의 눈에 총기가 돌아왔고, 그들의 얼굴에 공포 대신에 용기가 들어차 올랐다.
“오! 현녀님께서 힘을 내려주셨다!”
“현녀님께서 권능으로 우리에게 축복을 내리셨다! 다들 정신을 차려라-!”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본 부정은 자신이 하는 무당 흉내가 효과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꾹 닫아버렸다. 그리곤 반쯤 무너져내린 얼굴을 이리저리 뒤틀며 미소 비슷한 것을 띄우며 말했다.
“리샤오가 말하기를.”
“썩 물럿거라.”
“부정은 썩 물럿거라.”
그리곤 제 몸을 스스로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어허 썩 물럿거라.”
“어느 안전이라고 부정이 있느냐?”
“물 위에 뜬 부정 넘실넘실 파도를 타고 움직이고.”
“쇠로 된 자그마한 섬에 갇힌 부정 소금물에 타고 흔들흔들.”
“곰팡내는 소금물에 씻기고.”
“벌레알은 물살에 저 멀리로.”
“새끼를 칠 새도 없이 소금이 들러붙어 하얗게 변하고.”
“물결의 흔들림에 검은 것은 부서진다.”
“어허 바다야 햇살이 비치면 그 빛깔이야 참으로 고우니.”
“햇살이야 햇살 부정을 썩 쫓고 옮은 부정 머리채 쥐어잡고 바닥에 문지르는 햇살이야!”
“썩 부정은 물럿거라!”
“물건만 남기고 부정은 썩 물러가라!”
무너져내린 그것은 곰팡이를 긁어모아 가루로 만든 것 같은 까만색의 가루가 되어 잠수함의 위에 내려앉았고, 이윽고 뱀처럼 흐느적거리며 잠수함의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리곤 잠수함의 몸체에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순식간에 녹이 슬게 만들고 용접이 된 몸체에 틈을 만들어내었다.
그 모습을 본 현녀는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소리쳤다.
“일찍이 제가 말한 대로 행동하세요! 아주 작은 조각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산산조각 내버리도록 하세요!”
“예!”
“예!”
“예!”
현녀는 권능을 휘둘러 모두의 능력을 향상해주었다.
무인이 아닌 이들도 어둠을 꿰뚫어 볼 수 있도록 눈을 강화했고, 무거운 포탄을 깃털처럼 들어 올릴 수 있는 괴력을 주었고, 부정이 몸에 침범하지 못하도록 갑옷을 만들어주었고, 그들이 잡는 모든 것에 파사(破邪)와 퇴마(退魔)의 힘이 깃들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하늘을 날아다니는 드론에도.
어선의 아래에서 쏟아내는 기뢰에도.
잠수함의 몸체에 닿자마자 폭발을 일으키는 유탄과 총알에도.
거대한 물기둥을 만들어내는 포탄에도.
현녀가 발하는 권능의 힘은 사람과 물건을 가리지 않고 선의 형상으로 밤하늘을 수놓았다.
밤하늘의 어둠에 빛나는 선으로 베를 짜듯 움직이는 권능은 부정이 한 톨도 배가 만들어낸 원 밖으로 나설 수 없게 만들었고, 부정이 깃든 녹슬고 곰팡이가 잔뜩 슬어버린 물건들을 그 자리에서 조각내고 불태워버리게 했다.
“단 하나도 대륙에 닿지 못하도록 하세요!”
콰앙-!
콰아앙!
모든 군인은 현녀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백린이 들어간 총알과 유탄이 잠수함 안에 있었을 옷가지와 물건을 불태웠고, 날아다니는 포탄과 레이저가 녹이 슨 쇳덩어리를 조각을 내며 바다 아래로 수장시켰다.
“부정, 부정, 부정.”
“부정이야. 부정.”
“뭍에 닿지는 못하고.”
“물속에 내려갈 부정이야….”
그렇게 그것은 대륙에 발을 들이지 못한 채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쇳덩어리에 슬어있는 녹을 움직여 입술의 형상을 만들어 최후의 단말마를 내뱉고.
채 불타지 않은 옷가지 뭉치를 움직여 소리의 형상으로 마지막 유언을 내뱉고.
그렇게 현녀의 손에 의해 사라져버린 것이다.
현녀는 부정이 사라지자 그제야 안심한 듯 한숨을 쉬며 뒷정리하기 시작했다.
“쇠사슬 풀고 다들 부대 복귀하도록 하죠!”
만들어놓은 진형을 풀고 빠르게 부대로 복귀하기 시작했으며, 물건에 부여했던 권능을 회수하고 그만큼을 사람들에게 부여해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했다. 그리고 잠수함 위에서 도망쳐서 어선 위로 올라온 장웨이와 왕웨이를 의료용 스캔 기기로 보내 신체를 점검하게 했다.
“중위 왕웨이, 중위 장웨이. 두 명 모두 뇌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임무 나가기 전에는 없지 않았나요?”
“그렇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뇌종양이 생기게 만들었다고요?”
“그렇습니다!”
“끔찍하네요.”
리샤오는 군의관의 말을 듣고 한숨을 쉬었다.
귀신에 홀린 것처럼 행동하던 것을 생각해보면 무언가 이상이 생겼으리라 생각은 되었지만, 뇌종양이 생겼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 걱정하지 말거라. 크기가 작으니 수술하면 그만이다. ]
“후우.”
리샤오는 중명조의 위로를 듣고는 한숨을 쉬며 어선의 안으로 이동했다.
그리곤 자신의 몫으로 배정된 자그마한 개인공간 안에 들어가더니 안도와 불안감이 섞인 얼굴로 중명조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할 수 없었던 나약한 모습을 드러내며 중명조에게 말했다.
“대체 옛 북한 땅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대체 저런 게 왜 있고, 왜 따라왔고…. 그리고…그리고….”
[ 진정하거라. 샤오샤오. ]
“예언이 없었다면, 저 부정이 대륙에 발을 디뎠다면 무슨 재앙이 일어났을까요…!”
중명조에게 끌어안겨 가늘게 몸을 떨고 있는 리샤오의 모습은 배 위에서와는 달랐다.
냉철하고 카리스마 있는 여인이 아닌, 아름다운 외모에 걸맞은 나약하기 짝이 없는 소녀 같은 모습이었다.
자기 어깨 위에 올려진 짐의 무게에 힘들어하고, 가면을 쓰고 행동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소녀의 모습.
리샤오는 한참이나 자신의 볼을 간지럽히는 부드러운 깃털에 파묻혀 있었다.
그리고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간신히 가라앉혔는지 중명조의 품에서 벗어났다.
“더 힘내야겠어요. 저 반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눈에는 어떤 결의가 서려 있었다.
“어떤 흉계가 있다고 한들, 위대한 중화를 범하지는 못할 거예요.”
* * *
저택의 지붕에서 별을 보고 있던 진성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떤 멍청한 작자들이 부정을 뭉텅이로 가져갔는고?”
그는 잠깐 흐려졌다가 되찾은 별과 어두운 공간에 가려졌다가 다시 나타난 자그마한 별을 보며 피식 웃었다.
“별의 방향을 보아하니 북서쪽인데, 누군진 몰라도 그거 참으로 고맙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