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66

       *

         

         

         이반의 시간은 언제나 규칙적이다. 작전 상황이거나, 작전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 모든 여가시간이면, 그는 자신의 기능을 점검하는 데에 시간을 투자하곤 했다.

         

         필수적인 활동을 위한 적절한 열량 섭취. (영양바를 으적거린다.)

         교감, 부교감신경의 최적화를 위한 필수 수면 시간 준수. (3시간, 컨디션에 따라 35분까지 늘어난다.)

         근력량 유지를 위한 기초 체력 훈련 (모든 루틴을 완료할 경우 5시간 25분이 소요된다.)

         신경계의 상태 점검을 위한 감각 기관 차단 반복 훈련 (일반적으로 언제나 하고 있다.)

         

         타임테이블을 최대한 정교하게 짤 경우, 약 반나절 안에 이 모든 행위를 마무리할 수 있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위의 반복, 또는 향후 지침의 수정과 보완이다.

         

         

         “보는 내가 다 심심하구나.”

         

         

         이에 대한 에델플라트 코엔울프의 평은 냉혹했다.

         

         

         “욘, 자아. 날이 좋지 않으냐?”

         “음.”

         

         

         사실이었다. 틸레스 상공을 벗어나 동북면 엘븐 대해를 비행한 순간부터 날씨가 급격히 온후해졌으므로.

         

         

         “하늘이 맑고 바다는 푸르구나! 이 시기 바다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수평선을 보아라. 뭐가 보이느냐?”

         “수평선.”

         

         

         이반은 고개를 돌리고는 다시 병장기 손질을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기름을 먹이고 녹슨 부분이 없게 말끔하게 닦아낸 뒤에 다시 채결, 조립, 기능점검, 탄약관리.

         

         그 강중유 냄새 진하게 나는 풍경에서, 에델은 한숨을 푹 내쉬고 말았다.

         

         

         “저기 저 아이들을 보아라. 푸릇푸릇하구나. 저게 바로 인생을 즐기는 법이 아니겠느냐?”

         

         

         에델의 손짓에 따라 시선을 돌리자, 오스왈드와 에블린이 티격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에블린 홀로 티격거리고 오스왈드는 떨떠름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에블린은 오스왈드의 옛 약혼녀였다. 중요한 점은 ‘옛’이란 부분이다. 추밀의장의 딸, 에블린 러스트피츠는 일방적으로 오스왈드와의 약혼을 파했으니까.

         

         오스왈드가 빙의한 컨텐츠의 이름은 [악역영애가 집착하는 천재 마법사]였다.

         

         마법학부 성적으로 미루어 볼 때 천재는 아닌 것 같았지만. 오스왈드가 [빙의 특전]으로 얻은 것이 무엇인지는 명확했다.

         

         추밀원 고위가문의 엘프라는 점.

         그리고, 추밀의장과의 커넥션이 있다는 점.

         

         이건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추상적인 개념의, 그러나 분명히 실존하는 특전이다. 연합 왕국 최강대국의 고위 귀족으로서, 의회 중심과 접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그러므로 이반은 에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이번 칼리온 행에서 추밀의장과 만날 필요가 있었거든.”

         “설마.”

         “그 설마가 맞다. 오스왈드에게 러스트피츠 가문과 접견할 창구를 마련하라고 했다.”

         “인간의 마음을 잃어버린 것이냐…?”

         

         

         에델은 멍하니 이반을 바라보다가 이마를 감싸쥐었다.

         

         잠시 숨을 몰아쉰 그녀는, 곧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래, 칠용장을 참했다 했겠다.

         

         오냐, 잃어버린 ‘부분’이 있기는 한 모양이로구나.

         

         

         “검을 들어라, 욘.”

         “갑자기?”

         “왜 그러느냐. 무예의 겨룸으로 경지를 도야함은 무인의 기본이 아니더냐? 나도 너무 오래 쉰 모양이라 녹이 슬 것 같으니, 네가 도와야겠다.”

         

         

         무인은 무예로 심상을 전달하는 이들이다. 실제로 이반과 칼을 마주하며 그 심상을 파악했던 그녀로서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따라서, 마음이 다쳐 잃어버린 것들이 있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다시 쑤셔 박아주면 그만이니까.

         

         

         “왜, 두려우냐.”

         “하.”

         

         

         이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다. 적당히 몸을 풀어 머리를 비울 필요가 있었으니까.

         

         이번 작전은 변수가 너무 많았다. 걱정이라고까지 할 것은 아니었으나, 우려되는 부분이 없다 하긴 어렵다.

         

         지금 당장 선수부에 틀어박혀서 무장 점검이나 하고 있는 것 말고는 해법이 없었다. 칼리온 내부 사정에 대한 정보 부족은 지금 해결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으니.

         

         차라리 적당히 몸을 덥히는 편이 낫겠다.

         

         그리고 더불어, 에델과의 싸움은 도움이 된다. 언제나 배울 것이 있었다. 엘프 최강의 검사이자, 용사의 검술스승이 아닌가.

         

         최근 얻은 깨달음을 정리할 필요도 있고.

         

         

         “재활훈련으론 좋겠군.”

         “그래야지.”

         

         

         에델의 사나운 미소를 마주하며, 이반은 검을 들고 갑판 위로 나섰다.

         

         

        *

         

         

         엘피헤라가 갑판 위를 찾았을 때, 그녀는 반건조 미역이 된 이반과 상쾌해 보이는 에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엑.”

         

         

         땀에 푹 젖었다가 바람에 바싹 말린 것 같은 상태가 된 이반이 갑판 구석에 널브러져 있었다. 엘피헤라가 황급히 다가서자, 에델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정리하는 중이니 기다려라.”

         “코엔울프 경…? 이게 무슨…?”

         “무인은 검으로 대화하는 법이지. 진한 대화를 나누었다.”

         

         

         에델은 후후, 하고 웃었다. 잠시 후, 이반이 천천히 자세를 되찾으며 일어섰다.

         

         

         “회복이 빠르구나. 네 성장만큼.”

         “가르침에 감사하지.”

         “흐음.”

         

         

         에델은 매를 닮은 눈으로 한참 이반을 훑었다. 그녀는 입술 끝에 손가락을 가져가며 살짝 핥았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맹금류의 눈동자가 땀에 젖은 이반의 목덜미를 빠르게 훑었다.

         

         

         “???”

         

         

         오싹, 하고 소름이 돋아서. 이반은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대체 왜 살기 감지가…?

         

         

         “과연. 빠르게 자라는 주제에 아직 어린 것이….”

         “지금 무슨 소릴.”

         “아니다. 혼잣말이었다. 그래, 몸 상태가 썩 좋지 못하더구나. 지난 원정에서 입은 부상이냐?”

         “낫고 있다. 두어 달이면 회복되겠지.”

         “연금 학파에 들리는 것은 어떠냐?”

         

         

         에델은 엘피헤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엘피헤라의 귀 끝이 기쁘게 움찔거렸다.

         

         

         “마침 그럴 생각이었는데요! 코엔울프 경도 사실 것이 있으세요?”

         “신체 회복에 도움이 되는 약물 위주로. 너는?”

         “원숭… 음. 영장류 수명 연장 비약이요. 인간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구요.”

         “아하.”

         

         

         에델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둘 다 같은 족속이니까.

         

         이따금 작은 원숭이를 애완동물로 키우는 귀족들이 있다. 원숭이란 수명이 극도로 짧은 동물이었으므로, 그런 종류의 비약도 인기가 많기는 했다.

         

         인간에게도 어느정도 유효하기야 했다. 가격에 비해 썩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긴 어렵지만. 기껏해야 수 년 정도가 아닌가. 그것도 개체 차가 있고.

         

         

         “어차피 잘 됐죠. 중간 경유지에 연금 학파 물류정박장이 있거든요! 물자 보충도 해둘 겸 잠시 정박하죠?”

         “연금 학파?”

         “5대 학파 중 하나죠. 최근 주가가 엄청 올랐어요! 전쟁이 끝나고 돈을 거의 갈퀴로 쓸어 담았다던데….”

         “그야, 마족령엔 질 좋은 약초나 광물이 많으니까.”

         

         

         에델플라트의 대답에 엘피헤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반이 모르는 무언가를 설명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엘피헤라는 짐짓 가슴을 펴며 말했다.

         

         

         “에쉬홀드 마도 연금 조합이라고 해요. 섬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이고… 에쉬클리프 남작이랑 체스터홀드 남작이 500년 전에 설립한 회사죠!”

         “그렇군.”

         “둘 다 추밀원 소속이에요! 추밀원에 볼일 있다 하지 않으셨어요?”

         “그랬지.”

         

         

         하지만 만나고 싶다고 무작정 만날 수 있는 인물들인가? 현대로 따지자면 그룹 총수 같은 어감인데, 심지어 엘프들이 아닌가.

         

         이반의 의문에 엘피헤라는 후후, 하고 재수 없게 웃었다. 귀가 신나게 까딱거렸다.

         

         

         “제가 누구에요? 그리켄코스 가문의 적녀! 약속을 하지 않아도, 이 나라에 제가 만날 수 없는 인물은 여왕 폐하 말곤 없죠!”

         “음.”

         

         

         베올그린의 명망을 생각한다면야.

         

         이반은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친 김에 힐링 포션 원재료를 좀 싸게 구하면 좋겠군, 하면서.

         

         

        *

         

         

         “죄송하지만 회장님은 지금 부재중이십니다.”

         “엑.”

         “애초에 정박 인가서도 없이 무작정 선착장에 접안하시면 안 됩니다. 그리켄코스 양.”

         “아니, 아니 잠깐만.”

         

         

         입구부터 막혔다.

         

         이반은 가만히 납득했다. 하긴, 엘프가 아닌가. 하면서.

         

         나이든 엘프란 국가의 역사만큼 오래 묵은 족속들이다. 하나하나가 왕후장상의 권위를 자부하는 종족이란 뜻이었다.

         

         이 거대한 섬을 차지한 기업체의 업력이 500년이라 했다. 인간의 입장에서 그 정도 업력이라면 근본이 있다 하겠지만, 이 기업체의 창업 회장이 지금까지도 회사를 운영 중인 상황이다.

         

         지구식으로 따지자면 뭐라 해야 좋을까. 임진왜란쯤 기업을 만든 초대 회장이 현대까지 같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식이다.

         

         그런 족속이라면, 심지어 성공한 엘프라면 이럴 수 밖에. 이들의 교류는 친목의 영역이 아니라, 일개 개인조차도 외교의 영역에 있는 셈이니.

         

         

         “그리고 애완—. 외지’인’은 방역 검사 조치를 마친 뒤에야 입국이 허가됩니다. 그리켄코스 양. 입국허가서에 서명을 해주시고—.”

         “아, 그만! 그만! 됐어요! 이 일은 내가 추밀원에 직접 항의하겠어요!”

         “편하실대로 하시지요.”

         

         

         엘피헤라는 얼굴을 붉히며 손을 내저었다. 출입국사무소 근처의 엘프들은 저마다 부채 따위로 코나 입을 가리며 수근거리고 있었다.

         

         자신을 향하는 혐오 섞인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이반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단하긴 하군.’

         

         

         깨끗이 닦인 드넓은 도로와 선착장에서 연달아 움직이는 물류. 거대한 화물선과 각종 물산들까지.

         

         증기를 뿜어내는 거대한 공장이 저 멀리에 보이고, 그 공장보다 배는 거대한 성이 섬의 배경처럼 차지하고 있었다.

         

         이게 일개 기업의 소유라.

         

         이반은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에 못지 않다.”

         “그러게요.”

         

         

         오스왈드는 질린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엘프가 셋 포함된, 그것도 고위 가문의 일원들이 포함된 일행이 선착장에서부터 막힐 정도라니.

         

         반면 이반은 주위 인파를 둘러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일행 중엔 추밀의장의 딸, 용사 파티의 딸, 그리고 추밀원의 대전사가 포함되어 있다. 아무리 엘프가 오만하다 한들, 같은 엘프. 그것도 이토록 까마득한 귀족들을 상대로 이럴 수는 없다.

         

         그리고 선착장 인근의 병력이 심상치 않았다. 무장한 엘프들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다. 거기에 지금 소란을 일으키는 엘피헤라를 겨눈 마법들이 느껴졌다.

         

         살기마저 감지될 정도로 예민해진 상태였다. 마치 누군가가 한 차례 들쑤시기라도 한 듯이.

         

         

         “크라실로프에서 첩보원을 심지 못할 이유가 있었군요. 외교 공사를 먼저 찾으심이 어떠신지….”

         “그 직후 본국으로 송환되겠지.”

         “…그럼 어쩌죠?”

         “해야 할 일을 해야지.”

         

         

         이반은 무표정하게 뒤로 돌아 함선으로 향했다.

         

         해야 할 일? 오스왈드는 당황한 얼굴로 그를 쫓았다.

         

         

         “그게 뭔데요?”

         “절멸부대의 일.”

         

         

         아무렴, 일개 기업이 아무리 엄중하다 한들 칠용장의 왕거보다 더하겠는가.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고, 현직 추밀의원이라는 고위 엘프 기업가들과 대면할 필요가 있었다.

         

         알렉산드르가 엮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시점부터, 칼리온 또한 ‘다음 에피소드’에 포함된 것이 명백했으므로. 내부에 무언가 사태가 터졌다면 일단 확인은 해보아야 할 일이다.

         

         그리고, 자고로 절멸부대는 호기심이 많은 편이었다.

         

         

        *

         

         

        -으득.

         

         

         “전하. 손이 상합니다.”

         “아니!! 속이 상한다!!”

         

         

         이반이 마음 먹고 잠적하면 그를 추적할 수 있는 인물은, 이 나라에선 엔리케가 유일했다. 그리고 엔리케는 왕명을 거부했다.

         

         그녀에게 왕명을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애초에 엔리케는 국가의 명령을 받는 입장이 아니었으니.

         

         따라서 방첩사령부가 열흘 넘게 시도한 광범위한 추적 시도가 모조리 실패로 돌아갔을 때, 엘리자베타의 엄지손톱은 무척 짧아져 있다 하겠다.

         

         

         “드미트리!”

         “예, 전하.”

         

         

         파벨의 ‘밀입국경로’는 모조리 허사로 돌아갔다. 크라실로프 반군조차도 알지 못하는 밀입국 경로가 대체 뭐가 있으랴 싶긴 했으나, 상대는 이반이었다.

         

         방첩사령부의 사령관이자, 프리첸카야 방첩망을 직접 손본 사내다. 그런 그가 정보취약점을 모를 리가 없었다.

         

         따라서 이미 그는 칼리온으로 움직였다고 보아도 좋다.

         

         

         “칼리온으로 가라! 본인의 인장을 들고 가라. 공사로 입국해서 반카를 찾아라!”

         “즉시 호송해 오겠습니다.”

         “아니.”

         

         

         엘리자베타는 눈을 꾹 감고 한참 끙끙거린 뒤에, 작은 소리로 신음하듯 말했다.

         

         

         “그를 도와라.”

         “…예…?”

         “이미 입국한 순간부터 어차피 일은 벌어졌음이라…! 이제와 끌고온다 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느냐? 그이를 도와라…. 내 오라비를 잡아도 좋고, 그 외에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하면 무엇이든 도와라. 그리고, 적어도, 반드시….”

         

         

         살려서 돌아와라.

         

         무사히.

         

         엘리자베타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는 한참동안 끙끙거리며 신음한 끝에야 고개를 들었다.

         

         

         “제발 이번엔 몸 성히 오란 말이다. 제발.”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많이 늦었어요! 죄송합니다 ㅠㅠㅠ
    그러나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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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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