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66

       

       

       

       

       

       166화. 엘프 ( 2 )

       

       

       

       

       

       몬스터X를 세 병이나 쓰고, 그렇게나 소란을 떨고서는 고작 작은 사과나무 정도의 크기라니.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결과에 맥이 빠졌다. 처음부터 원본 황금 나무 정도의 크기를 바란 것은 아니지만, 이건 너무 작지 않은가. 적어도 아름드리나무 정도는 됐어야지.

       

       위대한 황금 나무보다는 ‘나의 작은 황금 나무’가 어울리는 크기다. 농담이 아니라 드워프가 각 잡고 점프하면 맨 꼭대기 가지에 손이 닿을 지경이다.

       

       – “삐익. 삐이익?”

       

       쪼르르 날아온 이베르가 작은 황금 나무 주변을 빙글빙글 맴돈다. 꼬리도 프로펠러처럼 돌아가는데, 모양새가 친구를 만난 시골 강아지 같다.

       

       ‘조졌네 이거.’

       

       황금 나무를 심었는데 활은 해금될 기미도 없고, 주변의 애꿎은 작은 묘목들만 쑥쑥 자라난다. 황금 나무의 효과 중 하나다.

       

       주변의 나무들의 성장을 극대화하는 버프형 토템. 반짝이는 황금 토템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축 늘어진 의욕을 붙잡고 손을 움직여 건물 리스트로 향한다. 맥이 풀리는 것과 별개로 할 일은 해야지.

       

       《소박한 나무 그루터기 오두막》 (NEW!)

       《미지근한 목욕탕》 (NEW!)

       《구석에 거미줄이 쌓인 활 공방》 (NEW!)

       

       “어?!”

       

       몸이 앞으로 확 쏠리며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토록 찾던 활이 여기에 이렇게 있을 줄이야! 인생은 역시 어떻게 될 줄 모르는 법이다.

       

       손이 바쁘게 움직이며 건물들을 모조리 건설한다. 아무것도 없던 황금 나무의 주변 공터에 우르르 올라오는 건물. 그에 비례해서 상단에 보이는 골드도 빠르게 줄어든다.

       

       다소 속이 쓰리지만 투자가 있어야 수확이 있는 법. 

       

       ‘이건 나중에 전부 회수할 수 있는 무조건 돌아오는 투자야.’

       

       당장 엘프 전용으로 해금된 건물은 세 개가 전부지만, 나중에 다른 건물도 올리고 승급도 시키면 만들어내는 장비의 질도 좋아질 것이다.

       

       – “으잉? ㅈ¿ㅓ기 이상한 귀쟁이들ㅇi 있는데?”

       

       – “어이! 이베르! @ㅓ디 갔냐! 이ㅂ※ㅔ르ㅡ!!”

       

       – “형ㄴ&ㅣㅁ, 저쪽에 뭔지 모를 녀서~ㄱ들이 한 무더기로 있ㄴ§ㅡㄴ데 어쩔까요?” 

       

       병아리마냥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엘프들을 발견했는지, 드워프가 삼삼오오 뭉치며 쑥덕거리는 모양새를 취했다.

       

       판타지에서 드워프와 엘프라고 한다면, 유명한 앙숙 아닌가.

       

       엘프들은 아직도 적응하지 못했는지 똘똘 뭉쳐있고, 호기심을 느낀 드워프들은 엘프들을 향해 조금씩 다가간다.

       

       꿀꺽.

       

       나는 이어폰을 끼고, 볼륨을 조금 더 높였다.

       

       

       

       

       

       *****

       

       

       

       

       

       “———귀쟁이…!! 형님ㅡ!! ———까요?” 

       

       “어이!! 이베ㅡ..!! ———냐!!”

       

       저 멀리 키 작은 사내들이 무리 지어 시끄럽게 떠들며 다가온다.

       

       엘프들을 이끄는 대족장, 알랜시아는 빨갛게 부어오른 이마를 문지르며 천천히 몸을 바로 잡았다.

       

       드넓게 펼쳐진 초원, 해와 달이 공존하는 하늘, 끝없이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그리고 초원 전체에 퍼진 은하수와 별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시선. 거대한 존재가 개미를 관찰하듯, 부모가 아이를 바라보듯. 따뜻함과 흥미 섞인 시선이 느껴졌다.

       

       알랜시아는 확신했다.

       

       ‘이곳이…성지.’

       

       어머니의 어머니, 또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오래된 전설과도 같은 땅. 신이 직접 보살피며 기적과 신성이 흐르는 고귀한 땅.

       

       기분 탓인지 불어오는 바람에서도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내음이 느껴졌다. 이유 모를 익숙함이 차오른다. 그들의 본능과 영혼이 고향이라는 것을 아는 걸까.

       

       “조, 족장님. 저기, 정말. 정말로 이곳이 성지가 맞는 거죠?”

       

       아직도 확신할 수 없는지, 혹은 믿기지 않는 것인지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사내. 벌써 다섯 번째 질문이지만 알랜시아는 짜증 내지 않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 여기는 성지가 맞는 것 같구나.”

       

       “아, 아아… 아아아!!”

       

       갑작스러운 지진에 엎드려 있던 이들도 하나둘 일어나며 상황을 파악했다. 받아들이는 방식도 가지각색이다.

       

       눈을 비비며 끔뻑거리는 이, 정신없이 사방을 둘러보며 감탄하는 이, 오열하면서 바닥의 풀을 뜯어 먹으려는ㅡ

       

       “아니, 그걸 왜 먹으려고 하는 거야! 얼른 쟤 막아!”

       

       “흐어엉ㅡ 이게, 이게 성지의 풀 맛이구나… 우물우물… 맛, 맛있어ㅡ!! 으아앙!”

       

       “나도, 나도 먹을 거야!! 우물우물…”

       

       감정이 극에 달한 탓일까. 평소에 하던 바보짓이 조금 더 심해진 느낌이다. 

       

       이럴 때 똑 부러지고 깐깐한 에스텔이 있었다면 좀 편했을 텐데.

       

       ‘후우- 에스텔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하고 다르게 냉정하고 착실한 아이라서 큰 도움이 됐을 것인데.’

       

       오랫동안 황금 나무 주변에서 안락한 생활을 수백 년 동안 보낸 탓일까. 대부분의 엘프는 족장인 알랜시아가 보기에도 머리에 나사가 좀 많이 빠져 있었다.

       

       좋게 말하면 낙천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머리가 꽃밭이다.

       

       그런 이들 사이에서 막내로 백 년 조금 넘게 지내온 에스텔이 차갑고 냉소적인 성격으로 자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니었을까.

       

       “흠, 크흠!”

       

       “아.”

       

       저도 모르게 상념에 잠긴 사이에 키 작은 사내들이 코 앞까지 다가왔다. 알랜시아는 재빨리 자세를 똑바로 고치고 그들을 바라봤다.

       

       “음… 반갑소.”

       

       “…반갑습니다.”

       

       오가는 어색한 인사.

       

       서로 눈을 마주치며 상대를 파악하는 찰나의 순간. 사내는 알랜시아를, 알랜시아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해서 느낀 사내들의 첫인상은…

       

       ‘왜 얼굴이 다 똑같이 생겼지?’

       

       대충 세 명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 사내들은 판에서 찍어낸 듯 얼굴이 똑같았다. 그녀가 구분을 못 해서 비슷하게 보였다는 수준이 아니라, 쌍둥이처럼 아주 똑같은 얼굴이다.

       

       우락부락한 팔뚝과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 꼰꼰함이 가득한 눈매까지. 유일하게 다른 점이라면 어깨에 새겨진 그림이 조금씩 달랐다.

       

       그리고ㅡ

       

       ‘왜 어디서 본 것 같지? 분명 오늘 처음 보는 이들일 텐데.’

       

       알랜시아가 혼란에 빠져있을 때, 드워프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뭐야. 왜 이렇게 여리여리해?”

       

       “형님 저기 저 여자… 저거 풀 먹는 거 아니요?”

       

       “…진짜네. 뭐지 이 녀석들. 그런데 아우야, 나만 저 친구들이 좀 익숙하냐? 어디서 본 것 같단 말이지.”

       

       “형님도? 신기하네, 나도 그런데.”

       

       여느 때처럼 위대하신 분의 인도를 받은 손님인가 싶었지만, 마주치는 순간 본능적으로 손님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리어 눈을 마주하는 순간 피어나는 것은 이유 모를 익숙함과 반가움. 

       

       생전 처음 보는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반가움에 드워프와 엘프, 모두 어쩔 줄 몰라 했다.

       

       “어ㅡ 흠, 크흠! 나는 드워프들의 맏형, 오푸스 팔락이요. 그쪽의 아가씨는 이름이 뭐요?”

       

       “아, 아아! 이제까지 이름도 말하지 않았군요. 저는 엘프들의 대족장, 알랜시아라고 합니다.”

       

       “알랜시아, 알랜시아라…”

       

       몇 번인가 이름을 입안에서 굴리던 오푸스 팔락이 대뜸 알랜시아에게 물었다.

       

       “내가 진짜 미안한데, 혹시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소? 왜 이렇게 그쪽 손님들이 반갑고 막 잘해주고 싶고 그러지?”

       

       “오푸스 팔락님께서도 그러신가요? 놀랍군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익숙하고 반갑다는 감정이 들고 있었습니다.”

       

       “호. 우리만 그런 게 아니구먼.”

       

       고개를 끄덕인 오푸스 팔락. 알랜시아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박수를 탁 쳤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저희 일족에는 대대로 전해지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쇠락하고 몰락했지만, 언젠가는 해와 달이 빛나는 성지로, 영원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의 전설인데… 그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해와 달이 빛나? 하늘이 있는 저거? 아니, 잠깐만. 아가씨네 조상이 여기가 고향이라고?”

       

       “네.”

       

       “허어ㅡ 기이한 일이 구만. 나보다 훨씬 전에 일했던 선배들인가?”

       

       최초의 드워프인 오푸스 팔락이 그리 말하자 드워프들이 술렁거렸다. 그럼 눈 앞에 있는 이들은 그들보다 먼저 이 땅에서 일했던 선배들의 자손이라는 소리 아닌가.

       

       드워프들 사이에서 퍼지던 웅성거림은 빠르게 진정됐다. 그들의 맏형인 오푸스 팔락이 진중한 표정으로 침묵을 고수한 까닭이다.

       

       “아가씨네가 굳이 이 땅으로 돌아온 이유가 있을 테지. 그 이유가 뭐요?”

       

       “저희 일족은 여섯 번째 신을 위해 봉사하고자 합니다.”

       

       알랜시아가 지체없이 대답했다. 신께서 그들을 받아주실지는 모르지만, 신을 위해 일하고자 하는 마음은 진실이었다.

       

       “그으래…?”

       

       오푸스 팔락이 여리여리한 남성 엘프의 몸을 훑었다.

       

       못 먹고 자랐는지 근육 하나 없이 삐쩍 마른 팔뚝, 툭 차면 부러질 것 같은 허리와 곱상한 생김새.

       

       드워프의 기준에서 엘프는 말라빠진 이쑤시개와 비슷했다. 든든한 근육도 없고, 남자다움의 상징인 수염도 없다. 키만 멀대 같이 큰 친구들.

       

       유일하게 봐줄 만한 것은 잘빠진 얼굴, 딱 하나.

       

       ‘기생오래비같이 생겼구먼.’

       

       오푸스 팔락은 엘프들을 못 미덥게 바라보다가, 이내 손을 내밀었다. 자신들의 판단은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위대하신 분의 뜻대로 될 것이니.

       

       “뭐, 아무튼 반갑수다. 위대하신 분께서 당신네를 받아주시면 한솥밥 먹고 지내는 식구가 될 테니, 서로 인사하며 지냅시다.”

       

       “네,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알랜시아와 오푸스 팔락이 굳게 손을 잡고 흔들었다.

       

       오푸스 팔락은 알랜시아의 굳은살 하나 없는 손에 경악했고, 알랜시아는 오푸스 팔락의 두꺼운 가죽 장갑 같은 손에 놀랐다.

       

       “삐이익ㅡ!”

       

       “오? 이베르! 어디 갔다 오는 거냐.”

       

       둘의 악수를 기점으로 엘프와 드워프들 사이에 훈훈한 공기가 맴돌 무렵, 작은 날개를 퍼덕거리며 이베르가 날아왔다.

       

       입에는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물고 있었는데, 오푸스 팔락에게 자랑하듯 내밀었다.

       

       “이건 또 뭐야.”

       

       작은 나뭇잎이다.

       

       황금빛을 내뿜는 작은 잎사귀. 갓 자라난 듯 파릇한 생기가 가득하다. 풀밖에 없는 성지의 어디에서 이런 걸 가져온 걸까.

       

       오푸스 팔락이 이베르가 희한한 걸 물어왔다고 떠들며 잎사귀를 이리저리 둘러볼 때, 알랜시아의 새된 비명이 들려왔다.

       

       “어, 어어? 어어어어ㅡ?!”

       

       번개처럼 달려든 알랜시아가 황금빛의 나뭇잎을 채가더니 손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는 걸 봤다는 표정이다. 

       

       “이, 이이이이이거!! 이거, 이거 어디서 구했나요!!”

       

       막 무덤에 넣으려는 부모님이 관 뚜껑을 부수고 나왔을 때 자식의 표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알랜시아의 눈에서 이글거리는 무언가 줄기줄기 흘러내렸다. 그런 것이 보이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녀의 기백에 움찔한 이베르가 삐익…하며 소심하게 한 쪽 방향을 꼬리로 가리켰다.

       

       타탓!

       

       “족장님?!”

       

       “모두 나를 따라와라!”

       

       쏜살같이 초원을 가로지르는 알랜시아. 나막신을 신었음에도 초원을 누비는 한 마리의 야생마처럼 날쌔기 그지없다.

       

       바람처럼 빠르게 달리고 있건만, 그녀의 마음은 더욱더 빠르게 달리라 채찍질했다. 더 빠르게, 더!

       

       손에 움켜쥔 잎사귀가 팔랑거린다.

       

       ‘틀림없어.’

       

       특유의 황금빛 가득한 잎사귀. 어찌 못 알아볼까. 방금 전까지 그렇게 절절하게 떠나보낸 황금 나무의 것일 텐데.

       

       ‘제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지만, 알랜시아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놓을 수 없었다.

       

       그렇게 초원을 따라 달리기를 한참.

       

       “하아- 후으읍! 하아아!”

       

       알랜시아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멈췄다.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간다.

       

       솨아아아ㅡ

       

       초원의 끝에서 불어온 바람이 뺨을 어루만지고 지나간다.

       

       그에 맞춰 살랑이는 황금빛 잎사귀.

       

       크기는 조금 작다. 기껏해야 그녀의 명치에 올까? 원래는 그녀가 한참을 올려다봐도 끝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는 반대가 됐다.

       

       “…정말, 정말로?”

       

       살랑-

       

       작은 황금 나무가 바람에 맞춰 나뭇가지를 가볍게 흔들었다.

       

       나무였지만, 어쩐지 조금 머쓱해 보였다면 기분 탓일까. 다시 만날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우, 우읍ㅡ!!”

       

       알랜시아의 커다란 눈에 물기가 방울방울 맺히더니, 털썩 무릎 꿇었다. 조심스럽게 작은 황금 나무를 어루만진다.

       

       어떻게, 왜, 어째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 여기, 이렇게 다시 만났다는 것이 중요하지.

       

       “…보고, 크흡. 싶었어요…”

       

       작은 황금 나무도 잎사귀를 살랑이며 인사했다.

       

       다시 봐서 반갑다고. 보고 싶었다고.

       

       …물론 이렇게 빨리 보게 될 줄은 몰랐지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달달한 초코라떼처럼 녹아드는 달콤한 후원!!! 감사합니다!!! 드워프와 엘프들의 관계는 어떻게 될지…!! 작까인 저도 매우 흥미로운 바입니다…!!!

    다음화 보기


           


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