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66

       밤의 복도. 새하얀 제복을 차려입은 라자 페델리안은 ‘궁내감’으로 향했다.

         

       ‘귀찮게 됐군.’

         

       데카르트 공작령에서 서신이 도착했다. 내용은 다름 아닌 성녀와 초월 마법사, 라드리엔의 소식.

         

       ‘설마 둘이서 공격을 할 줄이야.’

         

       라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두 명이 대체 무슨 목적으로 데카르트 공작을 공격하는 것인가? 대체 왜? 권력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다.

         

       ‘서신에 자세한 내용은 없는 걸 보니 물어봐도 알려주지 않을 테고.’

         

       후, 답답함에 한숨을 쉬고 고개를 내저은 라자는 ‘궁내감’에 도착했다.

         

       “문을 열어라. 형님을 보러 왔다.”

       “예!”

         

       황실 기사는 옆으로 물러나며 열쇠로 ‘궁내감’을 열었다. 철컥, 쿠구구궁. 죄수를 가두는 곳인지라 소리만 들어도 문의 무게가 느껴졌다.

         

       저벅. 저벅. 라자는 레제프가 갇힌 감옥 앞에서 앞머리를 쓸어넘기곤 소식을 전했다.

         

       “형님. 성녀 소미레와 초월 마법사 라드리엔이 데카르트 공작령을 공격했다가 복귀한 진 바렌베르크에게 처형당했습니다.”

         

       그 말에 우당탕 소리가 들려오더니 레제프가 허겁지겁 달려나와 문의 철창살을 잡았다.

         

       “그게, 그게 무슨… 정말인가?”

       “제가 거짓을 고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단번에 무너져 일그러지는 레제프의 얼굴. 쯧쯧, 라자는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한심한 형님 같으니라고.

         

       “그들이 왜 데카르트 공작을 공격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물어봐도 알려주지 않을 거 같더군요.”

         

       라자는 앞으로의 일을 위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지만 레제프는 듣지 않았다. 정확히는 들리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알고는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처형을 피해갈 수 없다는 걸. 그러나 막상 현실이 되니 이 세계에서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소미레는 레제프의 전부였다. 다시는 그 아름답던 미소를, 자애로운 성품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무너지고 있던 정신이 바스스,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것 같았다.

         

       “…형님. 제 말 듣고 계십니까?”

         

       보다 못한 라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털썩 주저앉은 레제프를 굽어봤다.

         

       “지금까지 어떻게 제국이 대륙의 최강이라 불렸습니까? 초월 마법사와 성녀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둘이 동시에 사망했다고요!”

         

       국가적 비상이다. 그간 제국의 위상을 드높였던 비대칭 전력이 사라진 것이다. 타국에서 이를 알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초월 마법사는 워낙 알려진 게 없었으니 모를 테고, 문제는 성녀입니다. 타국의 입장에서 보면 그간 꼴보기 싫었던 제국의 전력 절반이 사라진 것과 같다고요.”

         

       오로지 힘만으로 대륙에서 횡포를 부려왔던 제국이다. 기어오르면 머리를 눌러버리고 거스르면 응징. 반항하면 멸망을 시켜왔다.

         

       그런데도 손해를 보지 않았던 것은 성녀 소미레와 초월 마법사, 라드리엔 때문이었다.

         

       최고의 공격과 최고의 방어가 있는데 누가 제국의 뜻을 거스르겠나.

         

       그러나 이것도 이젠 옛말이 될 지경이다.

         

       여기서 끝나면 다행이지, 그들이 합심해서 전쟁을 일으킨다면 답이 없을 거다. 라자는 이를 알기에 레제프의 정신을 잡는 게 우선이었다.

         

       “형님, 제발 군주라면 정신을 차리십시오. 제국은 그 어느 때보다 혼란에 빠져있단 말입니다.”

         

       그런 라자의 말에도 레제프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지 않았다.

         

       “…….”

         

       라자는 그런 레제프가 답답하여 결국 윽박지르고 말았다.

         

       “데카르트에서 반역자 소미레와 라드리엔은 현 황권과 관계가 있으니 조사 후 처벌을 부탁한다고 했습니다! 이대로 형님이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모든 게 끝난다고요!!”

         

       ‘궁내감’에서 라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마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기사들도 이를 들었으리라. 그런데도 레제프는 대답이 없었다.

         

       “답이 없군.”

         

       고귀한 황족으로 태어난 자가 여자에 미쳐서 군주의 책임과 의무도 잊어버리다니. 참담했다.

         

       “이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겠군요. 제가 황위를 이어받겠습니다.”

         

       자유분방한 라자는 어린 시절부터 영특하고 다양한 재능이 많았지만, 황위라는 책임만 막중하고 귀찮기만 한 자리는 질색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쩔 수 없다.

         

       고귀한 황족으로 태어난 자는 누리는 권리만큼 그 핏줄에 대한 의무를 져야 한다.

         

       “레제프 페델리안. 차기 황제, 라자 페델리안의 권한으로 그대를 황족의 자리에서 파면하겠다.”

         

       파격적인 말까지 했지만, 여전히 대답이 없다. 라자는 고개를 내젓곤 걸음을 옮겼다.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 * *

         

         

       며칠 후. 저널리스트들의 신문 기사에선 제국의 혼란이 가득했다.

         

       【황태자로서 황위를 이어받은 레제프 페델리안, 사실은 성녀에게 홀려 제국을 위기로 몰아갔다?! 충격……】

         

       【데카르트 공작의 목숨을 노린 성녀, 그녀의 호위인 진 바렌베르크에게 살해당하다.】

         

       【위대한 황제의 자리는 제2 황자, 라자 페델리안 전하가 이어받아……】

         

       【혼란으로 가득한 제국, 타국이 공격을 할 것인가? 군사 전문가 ‘사라미른이 어케언 준시’가 분석……】

         

       프란체는 최근 신문 기사들을 보고 픽 웃었다. 호들갑 떠는 거 하고는.

         

       ‘혼란은 무슨 혼란이야?’

         

       제국은 마도 혁명이 일어나 압도적인 군대를 만들 수 있다. 마법사가 아닌데도 마법이 담긴 공격을 할 수 있는 거다.

         

       그 위력은 초월 마법사와 성녀라는 비대칭 전력이 사라졌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뭐, 알아서 조용해지겠지.”

         

       일은 술술 잘 풀리고 있다. 인연이 있어 데카르트에 호의적이었던 라자 페델리안이 황위를 이어받고 레제프는 파면.

         

       더 이상 프란체의 유토피아를 건드릴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에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공작님, 곧 폐하께서 도착하신답니다.”

       “그래? 알겠어. 당장 가자꾸나.”

         

       프란체는 자리에서 일어나 응접실로 향했다.

         

       라자 페델리안이 데카르트 공작령으로 찾아온 이유는 다름 아닌 그간의 일을 청산하기 위해서.

         

       자기 형님이 싼 똥을 동생이 치운다니, 황족도 별 일이다.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니?”

         

       헬레나는 씩씩하게 고개를 들며 브리핑을 시작했다.

         

       “황제 폐하와 대화를 나누실 응접실이 준비됐어요. 만찬 또한 요리사들을 총동원해 극상으로 나갈 예정이고, 귀빈들을 모실 사용인들까지 배치가 끝났어요!”

         

       역시 헬레나가 눈치도 빠르고 일을 잘한다. 경력이 그렇게 길지도 않은데 어릴 적부터 고생을 해서 그런가. 프란체는 만족스러움에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고생했단다. 그럼 폐하를 맞이해야 하니 마중 준비를 하자꾸나.”

         

       헬레나는 네, 하곤 바로 사용인들과 기사단을 부르러 갔다. 남은 건…….

         

       ‘진이 뭐하고 있나 확인해야겠네.’

         

       수정구로 봤을 땐 그냥 침대에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 프란체로선 창문 하나 없는 감옥에 그를 외롭게 두고, 아무런 오락거리도 주지 않아 미안함이 가득하고 안타깝지만…….

         

       ‘그 계획을 쓰기 위해선 어쩔 수 없어.’

         

       프란체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공작저의 지하 문으로 향했다. 계단에선 겉보기에도 스산한 느낌이 물씬 풍긴다.

         

       ‘마도구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구나.’

         

       특정 인물의 피와 오러, 마력을 넣어 정보를 등록하면 그 사람의 힘을 흡수한다. 진에게 통할지 의문이었지만…….

         

       ‘내가 진을 약화시켰지.’

         

       프란체의 일부분이 되어 삶을 유지하고 있는 진은 프란체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다. 힘을 제어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사아악-

         

       프란체의 손 위에 소멸의 특성이 발현됐다.

         

       ‘진의 능력도 내가 사용가능하고.’

         

       이거로 진은 완전히 프란체의 소유가 된 것이다.

         

       아무것도 없던 프란체의 첫 아군이자, 절망이 가득한 인생을 통째로 바꿔준 진. 누구보다 자신을 생각해주고 미래를 생각해준 진. 사랑하는 진.

         

       그 사람을 손에 넣은 것이다.

         

       ‘여기서 무사히 황제와 대화를 마치고 바렌베르크를 편입해서 혼인까지 마치면…….’

         

       즐거운 밤이 오겠지. 초야를 생각한 프란체는 입꼬리가 씰룩였다.

         

       또각. 또각. 프란체는 어두운 계단을 내려갔다. 촛불이 어둡게 어둠을 들어올리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건 개선하는 게 좋겠네.’

         

       아무튼, 그렇게 지하 감옥에 도착하고. 프란체는 진이 머물고 있는 방으로 향해 철창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진?”

         

       프란체의 목소리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공작님?”

         

       진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이쪽을 바라봤다. 수척한 모습이 가슴을 찔러오지만…….

         

       프란체는 그 모습에서 오히려 흥분을 느꼈다. 그토록 강하고 의지가 되던 진이 저리 약한 모습이라니. 당장이라도 숨을 헐떡일 것 같다.

         

       그러나 아직 때가 아니다. 진을 완벽히 제어하기 위해 큰 계획을 세우고 있으니 그때까진 기다려야지. 프란체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제어했다.

         

       “크흠, 프란체라고 부르기로 했잖니?”

       “프란체…….”

         

       그제야 프란체는 싱긋 웃었다.

         

       “창문 하나 없고, 빛도 들지 않고. 이런 곳에서 생활하게 해서 미안해. 그래도 조금만 참아주렴.”

         

       진이 입술을 머금은 채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왜 제가 여기에 갇혀있어야 하는 건가요? 어차피 도망칠 수는 없을 텐데요…….”

         

       그거야 당연히 큰 계획을 위해서지. 하지만 프란체는 이를 알려주지 않았다.

         

       “혹시 모르잖니? 너는 평범한 인간들과는 다르니까. 만약을 대비해서라는 걸 알아두렴.”

         

       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 하는 건가요.”

       “글쎄? 일이 다 끝나면?”

         

       프란체는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이곤 입꼬리를 올렸다.

         

       “아무튼, 앞으로 진행될 일을 알려줄게.”

         

       진은 침대에 앉아 수척한 얼굴로 철창을 올려다봤다. 탁기에 물든 눈빛. 그의 허약한 모습에 프란체는 더욱더 흥분이 몰려왔지만…….

         

       ‘아직 아니야.’

         

       이내 고개를 젓곤 본론을 꺼냈다.

         

       “제2 황자가 황위를 이어받았어. 그리고 곧 공작저로 오실 거야. 그때 바렌베르크 세력 편입을 얘기할 거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얘기를 나눌 예정이야.”

         

       진이 물었다.

         

       “…제가 없어도 되나요?”

       “괜찮단다. 너는 그저 가만히 있으면 돼.”

       “…….”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미간을 주무르는 진.

         

       “…공작님. 죄송하지만, 이렇게 자유를 빼앗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도 없이 도망쳐서 못 믿으시는 건 이해합니다만 이건 좀…….”

         

       아, 그렇게 오해를 하고 있구나. 그런 단순한 이유가 아닌데. 프란체는 픽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 나중에 다 설명할 테니 조금만 참아주렴.”

         

       그에 진은 마른 세수를 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햇빛이 보고 싶습니다. 아무도 없어서 너무 외롭기도 하고요. 케일이나 라데아, 헬레나라도 불러주시면 안 될까요?”

         

       간절한 진의 눈빛. 순간적으로 마음이 약해졌지만…….

         

       “미안해. 지금은 이해해주렴. 다 너를 위한 거란다.”

         

       그 계획을 위해 애써 넘겼다.

         

       “…알겠습니다.”

         

       다행히 포기한 건지 고개를 내젓곤 침대에 드러누운 진.

         

       “오늘은 맛있는 게 많이 나올 거란다. 너무 외로우면 케일에게 말해둘게. 음식도 케일이 가져다줄 테니 그때 대화하렴.”

         

       진은 힘빠진 목소리로 “알겠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 것이 자포자기 상태다.

         

       “후훗.”

         

       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음흉한 웃음소리가 나왔다.

         

       “진. 나는 항상 너를 위한다는 걸 알아주렴.”

       “…예.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다음에 봐.”

         

       또각. 또각. 프란체는 걸음을 옮겼다.

         

       “아…….”

         

       촛불 때문일까? 유난히 프란체의 얼굴이 붉었다.

         

       “빨리, 빨리 그때가 됐으면 좋겠어.”

         

       흥분으로 인한 거친 호흡을 진정시키며 프란체는 지하를 나왔다.

         

       일을 위해 새로운 황제와 대면할 시간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다음화 보기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