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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6

       이상하게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경찰이 오는 일은 없었다.

        

       “아뇨, 이제 저에게 그런 힘은 없습니다.”

        

       혹시나 해서 양혜인에게 물어봤더니, 그녀는 그저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대답할 뿐이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과거에는 병원을 찾아온 경찰들이나 의사들을 물리는 수준까지 되었다고 하지만, 그건 양혜인 개인의 힘이 아니라 그 뒤에 있던 회장의 힘이었으니까.

        

       “……경찰에 신고해야 할까요?”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물어보는 유하늘에게,

        

       “아마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양혜인은 그렇게 대답했다.

        

       산 중턱, 좌우로 빽빽하게 우거진 나무밖에 보이지 않는 곳이었지만, 의외로 경찰은 일찍 도착했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창문을 깨신 이유가, 납치된 소녀를 구하기 위해서였다는 말씀이십니까?”

        

       이야기를 다 듣고도 상황이 믿기지 않았는지, 경찰은 그렇게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납치범은 유진 그룹의 최나경 회장이었고요.”

        

       “예.”

        

       “……납치당한 상대는 그 딸인 예사라 양, 이고요.”

        

       “그 말씀대로입니다.”

        

       경찰이 수첩을 다시 한번 보면서 확인하자, 양혜인은 담담하게 그렇게 대답했다.

        

       “…….”

        

       상황을 한 번 다시 확인한 후, 두 젊은 경찰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냐?’ ‘아니’ 뭐 그런 대화가 오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말소리가 오가지는 않았지만.

        

       “……서에 가셔서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만, 괜찮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선배.”

        

       잘못한 것이 없는데 경찰서에 가겠다는 양혜인을 보고, 소희가 그렇게 끼어들었다.

        

       “괜찮아요. 이건 필요한 절차니까요.”

        

       “그렇습니다. 원래 이런 건 양쪽의 말을 다 듣는 것이 필수라…….”

        

       “…….”

        

       소희는 조금 발끈한 것 같았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 경찰들이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이미 최나경은 돈의 힘을 휘둘러서 사라의 몸에서 발견한 상처에 대한 의혹을 넘겨버린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는 최나경이 직접 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그 힘의 원천은 최나경 회장에게서 나온 것이 분명했다.

        

       일이 이렇게까지 커져 버렸으니 당연히 그냥 넘어갈 수는 없겠지만, 최나경은 최나경대로 발악할 것이다. 유하늘은 그렇게 생각했다.

        

       “……저희는요?”

        

       “참고인으로 동행해주시면 저희야 감사드리죠.”

        

       “그렇다면 저희도 동행할게요.”

        

       “뭐?”

        

       유하늘이 멋대로 그렇게 말하자, 경찰의 제지에도 열심히 사진 찍을 순간을 재고 있던 여기자가 깜짝 놀라 그렇게 외쳤다. 하지만 근처에 있던 수아가 그녀를 바라보자, 한숨을 푹 쉬면서 양손을 들어 보였다. 한쪽 손에는 여전히 묵직한 카메라가 들려 있었기에, 손은 금방 내렸지만.

        

       “……고용주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지.”

        

       그녀는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

        

       결국, 경찰서를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나중에 따라붙은 그룹뿐이었다.

        

       양혜인을 바로 구속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아 보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양혜인은 그 순간에 그곳에서 가장 많은 것을 보고 들은 사람이었다. 조사가 길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선배, 구속당하는 건 아니겠지?”

        

       “아마 아닐 거야.”

        

       소희의 걱정스러운 중얼거림에 대답한 것은 의외로 유하늘과 수아가 아닌 그 기자였다.

        

       “나도 종종 경찰서에 갈 일이 있었으니까 대충은 알아. 뭐…… 나중에 불이익을 받을 수야 있겠지. 어쨌거나 남의 차를 박살 낸 거니까. 상대는 세상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 중의 한 명이고 하니까.”

        

       이야기를 듣는 세 사람이 점점 어두운 표정을 하자, 그녀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이고는 말했다.

        

       “그래도 이 인간들이 여론 눈치를 보긴 하거든. 완전히 무죄나 무혐의까지는 아니더라도, 감옥에 가는 수준은 아닐 거라고 본다. 자기네 윗선에 관련된 거물 정치인들이라면 모를까, 의외로 돈만 많은 회장 같은 사람들은 커버가 안 되는 범위가 넓은 법이거든.”

        

       그리고 머리를 긁적인 뒤,

        

       “그러니까, 뭐……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야. 그리고 여기 쓰러져있는 이 아가씨도 돈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많잖아. 정신 차리고 나면 뭐라도 해주지 않겠어? 자길 구하려던 사람인데.”

        

       그렇게 말했다.

        

       모두가 경찰서로 갈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사라가 있었으니까. 바로 조금 전까지 회장이 납치하려고 한 대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병원에 혼자 보내둘 수도 없었다.

        

       학교에서 ‘사라’를 혼자 보냈다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바로 오늘 겪은 참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정도로 멍청한 사람은 이 중에선 없었다.

        

       사진을 찍은 기자와 유하늘만 일단 경찰서로 갔고, 소희와 수아가 사라를 따라 근처 병원으로 왔다.

        

       머리의 타박상과 납치당했다가 구출되었다는 특수성 때문에 몇몇 검사를 했지만, 신체에 큰 이상이 없다는 소견이었다.

        

       그래도 링거는 맞았지만.

        

       “…….”

        

       잠시간의 침묵.

        

       자리에 앉은 모두가 사라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바로 조금 전까지 큰일을 겪어서인지, 자는 표정도 별로 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핏기 없는 얼굴에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그런데.”

        

       침묵을 깬 것은 소희였다.

        

       “당신은 이름이……?”

        

       “…….”

        

       그러고 보니, 이 자리에서 기자의 이름을 알고 있을 것 같은 사람은 수아뿐이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해?”

        

       “부를 때마다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서…….”

        

       “흐음.”

        

       소희의 말에, 그녀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대답했다.

        

       “이유경. 이유경이야. 그리고 부를 때는 이름 말고 기자님이라고 불러.”

        

       “…….”

        

       이름을 이유경이라고 밝힌 그 사람은, 이 상황에서도 혼자 어둡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뭔가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다. 특히 잠들어있는 사라의 표정을 볼 때마다 그런 감정이 선명하게 보였다.

        

       “……하아.”

        

       작게 한숨 소리가 들렸다.

        

       유하늘은 아마 그게 수아의 한숨 소리일 거로 생각했다.

        

       *

        

       눈앞이 깜깜했다.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들리는 것도, 느껴지는 것도 없었다. 그저 아무것도 없는 검은 공간에, 나 혼자.

        

       무슨 일이 있었지?

        

       그래, 나는 최나경에게 납치당했다.

        

       아니, 사라가 납치당했다. 어떤 이유로 사라가 의식을 잃었고, 내가 깨어났다.

        

       ……이건, 처음 그 순간이랑 똑같았다.

        

       그때도 사라는 의식이 없었다. 내가 한동안 학교에 다니다가, 결국 최나경이 나를 만나러 올 때까지 계속 잠들어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어쩌면.

        

       어쩌면 이번에도, 내가 사라를 찾지 않으면 사라는 계속 잠들어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의식 안에 있었을 때, 사라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라는 나름대로 노력했으리라. 자기 삶을 위해서, 그리고 고민하던 나를 위해서.

        

       그저 최나경이 어떤 인간인지, 상상하지 못했을 뿐.

        

       그럴 만도 했다.

        

       누가 그런 사람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게임의 설정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나조차도 최나경이 어떤 인간인지 제대로 몰랐으니까.

        

       …….

        

       최나경은 이제, 사라의 기억 속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지 못한다.

        

       물론 아직 추억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부터는 친구들이 그 기억을 하나하나 덮어줄 테니까.

        

       그래, 다른 친구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방법도 있을지 모르지.

        

       눈을 뜨고 나면, 다른 친구들에게 나를 안아달라고, 입을 맞춰달라고 하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까지?

        

       나는 언젠가 이 몸을 떠나야 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될 때까지 사라를 몇 번이나 찾아야 할지 모른다.

        

       자극적인 기억이라는 것은 결국 몇 번이고 반복되면 무뎌지는 법이다. 그런 방법으로 계속 사라를 찾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전면에 나와 있는데도 사라를 불러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는 안된다.

        

       이 몸은 나의 몸이 아니라, 사라의 몸이니까.

        

       이 육체가 살아가는 인생은, 나의 인생이 아니라 사라의 인생이어야 했으니까.

        

       사라의 삶은, 사라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번에는 내가 사라를 찾아야 했다.

        

       내가 무의식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마다 사라가 나를 찾아왔듯, 이번에는 내가 잠든 사라의 의식을 깨워야 했다.

        

       “…….”

        

       눈을 감는다.

        

       어차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을 감는다고 뭐가 달라지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집중하기 위한 나의 행동일 뿐이다.

        

       나의 기억을 자세하게 떠올리듯, 사라의 기억도 자세하기 떠올리기 위해서.

        

       사라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던 감각을 되살렸다.

        

       손으로 더듬어가듯, 기억을 차근차근 더듬는다.

        

       사라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기억 안으로. 그래, 그 기억이 좋겠다.

        

       ……시야 저 멀리, 희미하게 빛이 보였다.

        

       그 빛을 따라, 한 걸음씩 옮겼다.

        

       한 걸음 가까워질 때마다 빛도 밝아진다.

        

       이윽고 시야 앞이 하얗게 물들었을 때, 나는 눈을 떴다.

        

       내 눈에 보인 것은.

        

       내 앞에 있는 것은—

        

       그저, 평소에 바라보던 방이었다.

        

       “…….”

        

       내가 기억 속에서 언제나 마주하던 방.

        

       침대 위에, 사라가 앉아있었다.

        

       “사라……?”

        

       내가 그렇게 불러봤지만, 사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사라 앞으로 가다가,

        

       나는 사라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라 옆에, 한 사람이 더 있다.

        

       앉아있는 사라보다는 훨씬 몸집이 작은, 더 어려 보이는 사라.

        

       사라에게는 여동생이 없다. 무엇보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존재는 기억도 못 할 정도로 어린 시절의 사라가 아니었다.

        

       작은 사라를 받치고 있는 사라는, 지금의 사라와 나이가 크게 차이 나지 않아 보였으니까.

        

       ……그 사라는, 평소에 사라의 기억 속에서 내가 입던 옷을 입고 있었다.

        

       흡혈귀의 옷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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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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