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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6

       “몇 수를 내어주길 바라느냐?”

       

       투기장의 모래를 짓밟으면서 그리 물었더니 한서우가 웃음을 흘렸다.

       

       “저 그래도 세계에서 노는 프로게이머인데요.”

       “그래서 네가 본인보다 천마신공을 더 잘 다루더냐?”

       

       네 놈이 현대에서야 날 뛸 수 있겠지만 무림을 기준으로 한다면 그저 눈에 띄는 초출에 불과하다.

       

       그런 녀석이 자신의 주제도 알지 못하고 자신이 강하다고 나대다니.

       

       화룡무인 속의 나는 이 놈에게 주제 파악을 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은 것인가?

       

       아니군. 이 자의 스승이 정말 나라면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겠지.

       

       어차피 죽어도 죽지 않는 몸이니 직접 들이박으며 경험을 해보란 생각이 아니었을까.

       

       어쩔 수 없구나. 직접 주제를 파악하게 만들어주는 수밖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보법을 펼쳤다.

       

       어느 정도까지 눈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가를 시험하기 위함이었다.

       

       한서우는 가진 바 실력에 비해 괜찮은 눈을 지니고 있었다.

       

       일순에 자신의 앞에 도달한 나를 끝까지 따라잡았을 정도로.

       

       허나 눈이 아무리 좋아한들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한서우는 내 권에 얻어맞고 한참이나 흙바닥을 굴렀다.

       

       “이래도 몇 수를 내어주지 않아도 되느냐?”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한서우는 작게 숨을 내뱉더니 신공을 위한 자세를 취했다.

       

       “그럼 가능한 많이 주시겠어요?”

       

       눈빛이나 동작이나 무언가 큰 결심을 한 것처럼 보였다만 그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너무도 허술했다.

       

       의기를 지닌 초출이라면 한 번 부딪혀 보겠다고 말을 해야 할 터인데.

       

       헛웃음이 절로 샜다.

       

       저런 식으로 나오니 심술이 나는구나.

       

       “알겠다. 세상에서 제일 큰 수를 그대에게 선사하마.”

       “정말입니까?”

       “그래. 0을 주마. 너무도 작기에 너무도 큰 수이니라.”

       

       그리 말을 해주자 한서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내 농을 던지긴 했으나 그대에게 재밌는 농은 아닐 터인데?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먼저 수를 내어주겠다고 하셨잖아요!”

       “그러게 순순히 대답을 했어야지.”

       “와아. 이 대답도 똑같네.”

       

       똑같아? 화룡무인의 나와?

       

       그 시절의 내가 이리 치졸한 인간이었던가.

       

       그보다는 좀 더 냉혹한 사람에 가까웠을 터인데.

       

       화룡무인의 여러 가지 변수들이 나라는 인간조차도 바꾸어 둔 것일까 아니면 그냥 다른 사람인 것일까.

       

       뭐어. 그것은 나중에 확인하면 그만인 일이다.

       

       지금의 내가 보아야 할 것은 한서우가 지닌 실력이오, 그가 배운 천마신공이 어떤 것인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앞전에 한 것은 농이었다. 마음껏 덤벼 보거라. 받아주겠다.”

       “정말이죠?”

       “내 기대 이하만 아니라면 말이다.”

       “노력해야겠네요!”

       

       한서우가 내지른 권을 받아냈다.

       

       역시 보정 기능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군.

       

       이 게임을 업으로 삼은 녀석이 이 정도를 못 할 리가 없나.

       

       내가 권을 가볍게 받아내자 한서우가 입술을 일자로 만들며 재차 권을 내질렀다.

       

       이번에는 한 번 받아쳐볼까.

       

       권과 권이 부딪힌 순간에 한서우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되래 나를 주먹채로 박살내겠단 의지를 담아서 내기를 운용했다.

       

       천마신공이 지닌 패도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구나.

       

       교육을 잘 받았어.

       

       이전에 당소일은 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지라 가르칠 때에 무척 답답했었는데 말이지.

       

       그 후로 몇 번의 합이 이어졌다.

       

       한서우는 강맹했다.

       

       그는 내가 방어를 택하면 방어를 깨부수려 했으며. 회피를 택하면 회피할 곳을 없애려 만들었고, 받아치면 기껍다는 듯이 받아 주었다.

       

       과연 천마신공의 사용자다운 모습이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시험한 것은 그의 전투논리였다.

       

       공격을 할 때. 수세를 취할 때.

       

       어떤 식으로 판단하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지를 나는 끊임없이 살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이 자를 가르친 것이 분명 본인이었다.

       

       한서우가 지닌 전투논리는 내가 지녔던 논리와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던 것이다.

       

       신공에 대한 해석이야 우연히 같을 수 있다지만 지닌 전투논리까지 비슷하다는 것은 우연이 될 수 없었다.

       

       저것은 내가 수십 년간 투쟁을 하며 만들어 낸 것이니까.

       

       그런가. 그대는 평생 제자를 둔 적이 없던 내가 처음으로 들인 제자구나.

       

       그렇다면 본인은 알고 싶구나.

       

       그대의 무엇이 본인의 마음에 든 것인가?

       

       본인이 지금 보기에 한서우 그대가 지닌 재능은 그리 뛰어나다 말할 수 없다.

       

       그대 수준에 이른 무인은 세상에 차고 넘친단 말이다.

       

       그런데 나는 어찌하야 그대를 아래에 들였을까.

       

       내게 달려들고자 하는 한서우를 저 멀리로 걷어낸 후에 내기를 끌어 올렸다.

       

       “이 정도면 충분히 받아줄만큼 받아준 것 같구나.”

       “오십니까?”

       “가겠다.”

       

       그대에게 극한을 경험시켜줄 터이니 그대도 내게 자신이 지닌 자질을 보여다오.

       

       기대하도록 하마.

       

       *

       

       한서우는 자신의 앞에서 내기를 주변에 퍼트리고 있는 화령을 바라보다가 침을 삼켰다.

       

       그녀의 주변에 아른거리고 있는 천마신공 특유의 내기는 색으로 비유한다면 흑색이었다.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켜 자신의 색으로 물들여 버리는 칠흑.

       

       주변의 공기마저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상대에게 숨을 쉬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짙디짙은 색깔.

       

       한서우는 이전에 이와 비슷한 것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자신의 스승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

       

       천마신공을 사용하는 자신을 보고 그녀가 흥미를 드러냈을 때.

       

       고요하던 대나무 숲을 지배하던 천마신공의 내기는 지금 화령의 주변을 둘러싼 그 내기와 한없이 닮아 있었다.

       

       한서우는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점점 더 거칠어지려는 호흡을 진정시키고.

       

       진동하기 시작하는 손을 억지로 부여 잡고.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을 피하고 싶단 생각을 억지로 잊으려 노력하며 가만 화령을 바라보았다.

       

       이는 그가 스승에게 배운 것이었다.

       

       아무리 자신보다 막강한 상대라 할지언정 공포에 사로잡히면 스스로 무너지게 될 뿐이라면서.

       

       상대가 강대하면 강대할수록 냉정을 유지하며 상대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한서우의 스승은 수도 없이 그를 짓눌러 주면서 이를 알려주었다.

       

       그 덕분에 한서우는 지금 압도적인 강자를 앞에 두고서도 자세를 취할 수 있었다.

       

       이 이후에 스승님이 뭐라고 했더라.

       

       지는 미래는 상상조차 하지 말라고 그랬지.

       

       어차피 나는 죽음을 모르는 몸이니 죽으면 그만이라 생각하고 이기는 것만을 상상하라고.

       

       그런데 지금 한서우는 자신이 이기는 광경을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불가능했다.

       

       그 어떤 수를 둔다 하더라도 그 이후에 떠오르는 것은 박살이 나버리는 자신의 모습뿐이었으니까.

       

       한서우의 스승은 이에 관해서도 조언을 해준 일이 있었다.

       

       ‘이기는 미래를 볼 수 없다면 어찌 해야 하냐고?’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만 그런 상황이 오면 죽어야지 어쩌겠느냐.’

       ‘그냥 죽을 각오를 하고 스스로가 생각하는 최선을 시도하거라.’

       

       스승이 제자에게 해주기에는 너무도 무책임한 말이었지만 한서우의 스승은 그 뒤에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죽고서 살아나면 다시 내게 오거라. 내 복수를 해줄 터이니.’

       

       이번에는 딱히 뒷말은 중요하지 않으리라.

       

       생각할 것은 앞의 말 뿐이다.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것.

       

       한서우는 눈을 감았다.

       

       그는 자신의 눈이 남들보다 많은 것을 본다는 것을 안다.

       

       그가 지닌 눈 덕분에 여러 시련을 넘어왔기에 자신의 눈을 믿고 있기도 하다.

       

       허나 지금은 잠시 그 눈에서 벗어날 때다.

       

       일전에 수를 나누며 그는 깨달았다.

       

       화령의 동작을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음을.

       

       설령 간신히 따라잡는다 하더라도 눈으로 보인 것을 몸이 따라가지 못함을.

       

       그러니 지금 그의 장점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다간 오히려 거기에 잡아먹혀 패배할 뿐이다.

       

       눈을 감고 오감에 집중한다.

       

       화령의 동작은 한없이 그의 스승과 가깝다.

       

       그러니 그녀의 돌격도 한없이 스승과 닮아있으리라.

       

       그렇다면 어찌 대응해야 할 지도 비슷하지 않을까.

       

       발소리를 듣는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아주 자그마하지만 무거운 발소리를.

       

       진각이 대지를 짓누름과 동시에 신공의 기운이 세상을 좀먹기 위해 움직인다.

       

       그 속에서 한서우는 끊임없이 화령을 쫓으며 자신 안의 내기를 운용했다.

       

       준비하는 것은 필살의 일격.

       

       여태 한서우에게 많은 승리를 안겨주었던 최선의 권.

       

       한서우는 자신에게로 향하는 기운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칠흑 속에 한줄기 빛이 생겨나기를 바라며 모든 힘을 쏟아 부었다.

       

       허나 태양이 아무리 밝다 하여도 먹구름에게 가려지면 대지에는 빛이 전해지지 않으니.

       

       한서우의 일격은 너무도 허무하게 집어삼켜져 사라져 버렸다.

       

       그 순간 한서우는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다.

       

       이런 사람이 대체 왜 여태 재야에 묻혀 있었던 거야.

       

       *

       

       바닥에 널부러진 한서우를 바라본다.

       

       최악의 순간에도 최선을 붙잡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꽤나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저러한 재능은 쉬이 지닐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은 절망의 앞에 서면 움츠러들기 마련이지 않나.

       

       좌절을 극복하는 것보다 거기에 고개를 숙이는 것이 훨씬 더 쉽고 편하기에 모두들 체념의 마음을 먼저 품는다.

       

       이 녀석도 마지막에 체념을 하긴 했으나 그 전까지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자신의 하늘에 저항하고자 했다.

       

       화룡무인 속 본인이 이 녀석의 어디를 마음에 들어 했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구나.

       

       “일어나거라. 슬슬 정신을 차렸음을 모를 듯 싶더냐?”

       “그냥 이대로 대화하면 안 될까요?”

       

       아무리 방금 전의 대련으로 지쳤다지만 너무도 불경하구나.

       

       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살기를 내뿜었지만 한서우는 태연했다.

       

       이런 일에 익숙하다는 것처럼.

       

       이빨을 오들오들 떨면서도 일어나지 않으려 발악하는 것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한심하다고 해야 할지.

       

       그래서 나는 그래 네 좆대로 하라 생각을 하며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네 놈을 가르친 것이 화룡무인 속 천마신교의 천마더냐?”

       “어떻게 아신 건지는 모르겠는데요. 네. 정확합니다. 천마님께 지난 몇 년 간 수련을 받고 있습니다.”

       “천마의 이름은 어찌되느냐.”

       “백 자 화 자 령 자를 쓰십니다. 지금 화령님의 이름과 같죠.”

       

       놀람은 없었다.

       

       이미 대련을 하는 도중에 확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물어본 이유는 어디까지나 확인을 하는 일에 불과했다.

       

       이 자를 가르친 것이 본인이라면 이 자가 내게 부탁을 하고자 하는 게 무엇일지도 어렵잖게 추측을 할 수 있었다.

       

       “네 스승이 본인을 보고 싶다 하더냐?”

       “제 머릿 속이라도 읽고 계시나요?”

       “대답이나 하거라.”

       “넵. 한 번 만나서 대화를 하고 싶다 하십니다.”

       

       신교에 존재하는 본인인가.

       

       그리 만나고 싶은 상대는 아니구나.

       

       신교에 머무를 적의 본인은 아직까지 미혹에 빠져있는 자인지라.

       

       요샛 말로 하자면 흑역사에 가까운 상태라 그리 마주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녀석은 화룡무인의 세상 속에서 여러모로 바뀐 것 같긴 하구나.

       

       내가 기억하던 당시의 나라면 제자 따위를 들일 리가 없으니 말이다.

       

       흐음. 고민이 되는 군.

       

       “네 스승에게 전하거라. 본인은 신교에 발을 들이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 만나고자 한다면 네가 화산의 부지에 오라고.”

       

       그런 수고를 들인다면 내 한 번 생각 정도는 해보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흑역사 보기 vs 넌 미래에 저렇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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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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