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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6

     비록 아버지에게 방학 내내 시달리게 되었지만, 다행히 나만 시달리는 게 아니다.

     “곧 누아르가 고향으로 올 테니, 이제는 누아르 좀 봐주십시오.”

     “그런다고 너를 안 봐줄 건 아니란다.”

     “저는 1시간이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1시간 동안 아버지를 전력으로 상대하는 게 어디 쉬운 줄 아십니까?”

     “아쉽군. 모처럼 지브롤터의 전통을 알려줄 생각이었는데….”

     지브롤터의 전통.

     될 때까지 패면-가르치면 된다.

     아버지는 그 지론에 따라 누아르를 지금의 실력에 이르게 만들었고, 이제는 내게도 그 지론을 주기적으로 설파하려고 하고 있다.

     “아들아. 너는 이 아비와 어울리는 게 그렇게도 싫으냐?”

     “차라리 체스를 두시지요. 제가 폰이랑 나이트를 두 개씩 빼겠습니다.”

     “그건 내가 머리가 아프니 싫다. 검사면 검사답게 검으로 대화하자꾸나.”

     “아들을 어떻게든 이겨 먹으려고 하는 게 그렇게 좋으십니까?”

     “아들이 아버지를 이기려고 어떻게든 이기는 전장만 고르려고 하는 건 어떻고?”

     “하아. 됐습니다. 딱, 하루에 한 시간입니다.”

     논쟁이 길어질 것 같아, 나와 아버지는 결국 한 시간으로 합의를 봤다.

     ‘이렇게 된 이상, 어머니를 이용하는 수밖에.’

     아버지가 이제는 만능 어머니 투입론에 그다지 설득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게는 어머니를 이용해 아버지가 일어나지 못하게 할 50가지 방법이 아직 남아있다.

     “저는 이만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가겠습니다.”

     “그래. 나는 잠시 뒷정리를 하고 가도록 하마.”

     뒷정리라고는 말했지만, 아버지는 아마 서재에 남아 자신의 마나를 다스리고 나와의 대련을 복기하려고 하시는 것일 터.

     아버지는 강하다.

     비록 회귀 전의 아버지처럼 24시간 중 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 동안 복수의 칼날을 갈던 그 야윈 늑대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아버지가 많이 약해진 것도 아니다.

     마스터 8명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게 회귀 전이었다면, 지금은 대략 4~5명 정도라고 해야 할까.

     자식이 한 명 생길 때마다 상대할 수 있는 마스터의 숫자도 한 명씩 줄어드는 느낌이지만, 그렇게 떨어진 기량을 이렇게 마스터와의 대련과 검술 복기로 채우면서 동시에 기량을 늘리고 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

     아버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 나 또한 아버지와 직접 대련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다양한 마스터와의 대련’을 통해 강해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이는 만큼, 야윈 늑대만큼은 아니더라도 차차 강해지고 있는 게 확실한 만큼 나는 아버지에게 내가 낼 수 있는 전력을 부딪치고 있다.

     내가 아버지를 이기는 날이 온다?

     ‘그러면 바로 황궁 습격하러 가는 거지.’

     그날이 합스베르크의 모가지를 따는 날이다.

     

     아버지에게 시키면 되지 않겠냐고 하기에는 여러모로 아쉽지만, 합스베르크도 정도를 아는 인간.

     ‘어머니를 상대로 선물을 퍼부으면 퍼부었지, 결코 아버지의 심기를 거스르게 하는 일은 하지 않아.’

     아버지가 냅다 칼을 뽑아 황궁으로 쳐들어가게 하는, 아버지가 수호자의 의무를 버리고 매국의 길을 걷게 만든 ‘무능왕’과 같은 행동만큼은 합스베르크는 절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의 지브롤터가 발전하고 성장하며, 제국식 성이라고 할 수 있는 캐롤라인 저택을 짓는데 알게 모르게 건축가를 몰래 보내주고 한 것처럼, 합스베르크는 아버지에게 나름 잘 보이고 있는 중이다.

     아무리 장남의 부탁이라고 하더라도, 아버지에게 목숨을 걸고 황제를 죽여달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말이야 할 수는 있겠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으며 실패의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말을 해봐야 아버지가 나설 생각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만일.

     합스베르크가 어머니를 상대로 암살자를 보내서 죽이기라도 한다면.

     그렇게 꾸미기라도 한다면-

     “하.”

     말도 안 되는 소리.

     매국노 그레이라고 해도 패륜아는 아니기에,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다.

     남의 가문에는 그런 방식으로 이간질을 펼쳐 자멸하게 만들기도 하기는 했지만, 남이 하면 호로자식이고 내가 하면 패륜 아니겠는가.

     ‘아버지는 조사 끝에 내가 저지른 짓이라는 걸 알아챌 거야.’

     합스베르크를 향하게 만든 칼날은 나를 향해 날아올 것이다.

     그건 바라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그런 짓을 했다가는 아스타시아가 실망할 거야.’

     합스베르크를 죽이기만 하면 끝나는 게 아니다.

     죽이는 과정에서 ‘어떻게 죽이느냐’도 생각을 해봐야 하는 문제기에, 나는 선택을 함에 있어 신중해야 한다.

     결국 합스베르크를 죽이는 건 아스타시아의 행복을 위한 일.

     그렇게 합스베르크를 암살하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아스타시아는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아스타시아에게 있어 우리 지브롤터는-

     “언니! 와, 굉장해!”

     “진짜? 더 보여줄…흠흠!”

     황궁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장소, ‘가족’이 되었으니까.

     

     “이야기는 끝나셨어요?”

     “예.”

     “오빠아아아ㅡㅡㅡㅡ!!”

     아스타시아에게 다가가기 무섭게, 하얀 토끼가 전력으로 달려와 내게 안겼다.

     “오랜만이야, 레타르.”

     “오빠! 왜 인제와?! 넉 달이나 지났어!”

     내 허리를 두 팔로 감싸며 딱 달라붙는 이 11살의 소녀는 누구인가.

     레타르다.

     

     “오빠!”

     “오라…버니?”

     “그레ㅡㅡ이!”

     

     그리고 그 뒤로 다닥다닥 달라붙는 어린아이들은 또 누구인가.

     머리카락 색과 눈동자 색으로 바로 알 수 있듯이, 순서대로 루비-샤피-마린이다.

     여동생들.

     레타르야 회귀 이전에도 있었지만, 지브롤터 가문에 점차 가족애라는 것이 생겨나면서 늘어난 지브롤터의 새로운 역사.

     “그래, 그래. 오랜만이야. 쿠키는 맛있었어?”

     “응! 제국에서 들여오는 것보다는 슴슴했지만, 전통적인 맛이었어!”

     “아, 그래.”

     어린아이에게 너무 단 걸 많이 먹이면 안 좋다고 이야기는 들은 것 같지만,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게 아니면 먹지도 입지도 선택하지도 않는다.

     무섭구나, 제국이여.

     이미 어린아이들의 입맛마저 제국화시켜버린 이상, 앞으로 더 많은 노스트럼의 아이들이 제국 친화적인 모습을 보이겠지.

     “저기, 얘들아…?”

     

     졸지에 여동생들을 한 번에 빼앗긴 아스타시아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온다.

     그냥 미소라면 좋을 텐데, 어딘가 살짝 기분이 언짢은 표정이다.

     저 표정, 어디에서 봤더라.

     회귀 이전의 아카데미, 왕국이 멸망한 뒤의 사교계에서 매국노 영애들이 나를 상대로 추파를 던질 때 짓던 표정이 저거랑 비슷했는데.

     ‘왜?’

     여동생들인데 저런 표정을 짓는다고?

     설마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아스타시아.”

     “네, 네?”

     “너무 그렇게 질투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동생들이니까….”

     “맞아! 오빠는 언니 거니까!”

     “뭐, 뭐?”

     

     레타르의 말에 아스타시아가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그, 그건 무슨 말이니?”

     “응? 아니야?”

     레타르가 잠시 혼란스럽다는 듯 나와 아스타시아를 번갈아 훑어봤다.

     “결혼하려고 데리고 온 거 아니었어?”

     “뭐, 뭣!”

     결혼이라는 말에 아스타시아가 펄쩍 뛰며 놀랐다.

     “무, 무슨 소리니! 레타르 양, 그건!”

     “아빠가 그러던데, 오빠가 집에 여자 데리고 와서 풀어진 표정 하고 있으면 그 여자가 아내 될 사람이라면서 잘 보이라고 했는데.”

     “내가 지금 풀어진 표정이라고?”

     “응. 아니야?”

     나는 거울을 바라봤다.

     딱히 표정이 바뀌거나 한 건 전혀 없었다.

     ‘그냥 집에 들어와서 연기를 할 이유가 없어서 그런 건가?’

     생각해 보니 평소에는 다른 이들을 방심시키기 위해 미소를 짓고 다니거나 그러는데, 지금은 그런 게 전혀 아니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면 레타르를 비롯하여 동생들이 나를 편하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고.

     “겨, 결혼….”

     “레타르. 실례야.”

     “어, 어? 시, 실례…?”

     “그런 건 알고 있어도 모르는 척해야지. 내가 먼저 소개하는 게 아니라면.”

     “…아, 그런 거야? 아직 안 한 줄 몰랐지!”

     “안 한 건 아니야.”

     몇 번이고 지나가면서든 아니면 직간접적이든 말을 하기는 했다.

     “성인이 되어서 정식으로 하기 전까지는 전부 노카운트거든.”

     “그런 거야?”

     “그런 거지.”

     “복잡하네.”

     “성인이 되기 전에 하는 고백과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 하는 고백은 무게감에 있어 차이가 상당히 크단다. 전자는 그냥 아이들의 장난처럼 여겨지겠지만, 후자는 진심으로 하는 청혼이거든.”

     “으음…. 그렇구나.”

     레타르는 잠시 인상을 찌푸리더니, 아스타시아를 향해 두 팔을 크게 벌렸다.

     “그래도 미리 축하해, 언니!”

     “그, 그래. 고마워. 레타르.”

     “오빠가 어떤 여자랑 결혼할지 궁금했는데, 언니라면 인정이지!”

     “인정?”

     잠시, 어처구니가 없었다.

     “네가 인정하지 않았다면 결혼을 막았을 거야?”

     “당연하지! 나는 나보다 안 예쁜 여자가 오빠 아내가 되거나 한다면 인정하지 않을 생각이었으니까!”

     “아스타시아는?”

     “으음, 으으음…! 인정하기는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겠어…!”

     “고마워해야 하는 거겠지? 하하….”

     레타르의 활발함에 아스타시아는 여러모로 생각이 복잡해진 것 같았지만,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고마워, 레타르. 인정해줘서.”

     “그래도 아직 아니야! 언니가 바람피우거나 하면 그때는 다시 인정 취소!”

     “그런 일은 없어.”

     아스타시아가 다소 엄하다 싶을 정도로 단호하게 말하자, 레타르가 딸꾹질하며 잠시 말을 멈췄다.

     “바람을 피운다는 건 곧 죽는다는 말과 같거든. 물론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나도 마찬가지지.”

     “흐음, 그렇구나…. 아앗!”

     레타르가 내 뒤를 가리켰다.

     “아빠!”

     “……?!”

     

     방금, 뭐라고?

     “이런. 다 여기 있었나.”

     어느새 복기를 마친 건지, 아버지가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빠아아아ㅡㅡㅡ!”

     레타르뿐만 아니라, 내 다리에 달라붙어 있던 동생들이 다 같이 잰걸음으로 아버지를 향해 달려갔다.

     ‘큰일인데.’

     아버지, 저렇게 막 달려드는 거 별로 안 좋아할-

     “조심하거라.”

     “……!!”

     아버지가, 무릎을 꿇었다.

     한쪽 무릎을 꿇으며 두 팔을 좌우로 비스듬히 펼치자, 곧 동생들은 익숙하다는 듯 곧장 아버지를 향해 뛰어들었다.

     “세상에.”

     레타르는 아버지의 목뒤로 목마를 타고, 루비와 샤피, 마린이 전부 아버지의 두 팔 위를 마치 그네처럼 살포시 앉았다.

     “꽉 잡거라, 레타르.”

     “응!”

     

     심지어 레타르는 두 손을 아버지의 머리를 붙잡았고, 아버지는 세 명의 아이를 두 팔로 받쳐 들며 몸을 일으켰다.

     그 자세는 어떤 흔들림도 없었다.

     겉으로 흘러나오는 마나만 봐도 잘만 보였다.

     아버지는 아이 넷을 동시에 안아 드는데 그냥 드는 게 아니라 전신에 마나를 돌리며 아이들을 정확하게 안아들고 있었다.

     절대로 흔들리지 않게, 아이들이 불안하지 않게.

     “왜 그러느냐, 그레이.”

     “…아뇨. 그냥, 새삼 놀라워서.”

     “놀랍겠지. 아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을 넷이나 이렇게 안고 있으니.”

     나는 그냥 아버지가 여동생들을 저렇게 안아들고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는 말이었지만, 아버지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따라오너라. …아스타시아도 함께.”

     “앗…!”

     심지어 아버지는 아스타시아를 이름으로 불렀다.

     “캐롤라인 저택에서는 황손녀로 있을 이유가 없지. 뭐, 황손녀로 존대를 바란다면….”

     “아뇨, 괜찮아요! 그…!”

     아스타시아는 나와 팔짱을 끼며,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

     “며느리라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대해주세요!”

     “그래.”

     아버지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여기가 집이라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지내거라. …물론 하인들에게까지 그렇게 대우하라고 하는 건 그들에게 고문이니, 거기까지는 좀 조심하고.”

     “네…!”

     아스타시아가 허리를 꾸벅 숙이자, 아버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들을 데리고 어머니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하.”

     정말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동시에, 어느정도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가는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저러니까 아이 한 명씩 늘어날 때마다 실력이 예상보다 더 안 늘지.’

     회귀 이전. 아이는 레타르까지 있었고, 가족에게는 그 어떤 신경도-심지어 아내에게까지 무정하게 변한 채 오직 나라를 팔아먹을 때만 벼르던 복수자.

     그자와 지금의 아버지를 비교하면 다시 한번 생각해도 ‘변경백’으로서는 약할 수 있지만.

     “…하.”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해가 가면 갈수록 더 강해지고 있다.

     왠지, 싫지만은 않았다.

     “그레이.”

     옆에서 아스타시아가 작게 속삭였다.

     “노카운트, 알죠?”

     “압니다.”

     아버지에게 잠시 정신이 팔렸지만, 나는 다시 아스타시아에게 집중하며 작게 속삭였다.

     “정식으로 프러포즈하기 전까지는….”

     “무효가 아니라, 적립이라고 해두죠.”

     정식 프러포즈를 하기 전까지는, 무효가 아닌 적립.

     “즉,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겁니까?”

     “…….”

     우리는 그렇게, 방학을 보냈다.

     * * *

     그리고.

     방학이 끝나, 2학기가 시작하기 이틀 전.

     우리는 아카데미로 돌아갈 새도 없이, 협곡을 넘어갈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진짜 방학 끝날 때까지 기다려준 건가.”

     테르시안 제국 황제, 서거.

     선황을 위한 성대한 장례식과 함께, 합스베르크 황태자가 황제에 즉위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출장 무사히 끝나서 예약 걸어둔 거 다 해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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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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