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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7

    <167 – 저주대소동>

     

    가짜 유령을 반지에 인챈트한 이후로 일상생활이 부쩍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어라? 분명 필기구는 책상 위에 뒀는데 이게 왜 바닥에 떨어져있지?”

    “나도나도. 아까 머리에 꽂았던 헤어핀이 교복 앞주머니에 꽂혀있는 거 있지?”

    “그냥 건망증 아니야~?”

    “그런가?”

    “너무 부끄러워하지 마. 나도 가끔 깜빡깜빡 해서 쪽지시험에서 40점 맞고 그래!”

    “…그건 공부를 안한 거잖아.”

     

    강의 도중에 내 주변 자리에 앉은 학생들이 이상한 일에 휘말리는 것은 일상이다.

     

    “으으. 이거 봐, 오크노디. 내 빨대가 축축해.”

    “미, 미안.”

    “오크노디가 왜 사과해…?”

     

    어쩌다 식당 앞에서 만나서 식사시간에 함께 밥을 먹던 즈앙이 유령이 먼저 쪽쪽 빨아버린 빨대를 만지며 입을 삐죽이기도 했다.

     

    “자, 의적활동도 신체가 유연해야 수월한 법. 오늘은 장대높이뛰기, 멀리뛰기, 림보자세로 지나가기, 앉은 자세로 팔 멀리 뻗기 등의 유연성을 시험하겠다.”

     

    심지어는 내 차례가 되어 높이 뛰어오를 준비를 하는데 유령화 상태로 아무도 모르게 반지에서 나온 린이 장대를 손으로 슬쩍 들어올리기까지!

    평가를 방해하는 집요함에 기가 찼지만 어림도 없지, 도움닫기를 하는 척 20m 밖까지 나가서 린이 장대를 잡지 못하는 틈에 잽싸게 달려가 뛰어넘었다.

     

    [당신은 유령의 방해를 뚫고 장대높이뛰기에 성공했습니다.]

    [멀리뛰기 경험치+3]

    [따돌리기 경험치+1]

    [도약 경험치+1]

     

    흥. 고인물의 발목을 잡으려 들다니 어림도 없지!

    당당하게 콧방귀를 뀌며 도발하니 10cm 더 높이 뛰는 다음 차례에는 이 악물고 내가 달려가는 속도에 맞춰서 장대 앞에 등장했다.

    은근슬쩍 방해할 생각도 않고 아예 대놓고 두 손으로 장대를 잡고 자기가 들어올릴 수 있는 최대치의 높이로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리는 가짜 린.

     

    “저게 뭐야…?”

    “장대가 왜 지 맘대로 떠올라?”

    “염동마법을 쓴 학생. 타 학생을 방해해서 자기 점수를 보전한다는 전략은 높이 평가하지만 교묘하지 못한 부정행위는 감점사유임을 명심하게.”

     

    브론즈 교수의 말에 반칙을 해도 걸리지 않으면 오케이야?? 하는 논란이 일어났지만 그래도 장대를 내려놓지 않는 유령 때문에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내가 너무 알아듣기 어렵게 얘기했나보군. 장대는 이만 원래대로 돌려놓으라는 말이네.”

    “…”

    “교수의 말을 무시하다니. 지금 감점을 당하고 싶다는 건가?”

     

    염동마법을 건 사람이 없기에 당연히 장대가 내려갈 일은 없다.

    화가 난 브론즈교수가 감지파동을 방출하며 염동마법을 건 사람을 색출하고자 시도했다.

    파장에 걸린 마력을 검출하여 누구와 연결된 마법인지를 파악하고 술사를 특정 짓는 마법.

    세계 최고의 의적다운 실용성 있는 마법이다.

    하지만 마법을 건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걸릴 사람도 없다.

     

    “마법이 아니야…?”

     

    마법도 아닌데 지 맘대로 떠오른 장대.

    당연히 강의실은 발칵 뒤집어졌다.

     

    “저거 뭐야?”

    “왜 저래?”

    “유령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

     

    유령이라는 말에 흠칫 놀란 가짜 린이 반지 속으로 돌아왔다.

    땡그랑.

    학생의 말을 알아듣고 행동한 것처럼 공교로운 타이밍에 일어난 이변.

    실제로도 진짜 알아들은 거지만.

    내막을 모르는 학생들은 꺄악! 하고 비명을 지르고 뒷걸음질 치며 난리가 났다.

     

    “음.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니 오늘 실습은 여기까지 하지.”

     

    결과적으로 강의는 이론수업으로 대체가 되었지만 안목키우기 강의를 듣는 학생 사이에서는 때아닌 괴담마저 돌기 시작했다.

     

    “뭐였을까? 그 유령.”

    “장대높이뛰기에 실패해서 추가포인트를 받지 못하고 굶어죽은 학생의 유령은 아닐까요?”

    “지젤, 떠오르는 대로 말한다고 다 말이 아니야.”

    “하하. 미안합니다. 조금 분위기를 풀어보고 싶어서 그만.”

    “그래도 꺼림칙하기는 하네. 왠지 불운한 사고를 겪고 죽은 유령이 원한을 품고 학생이 다치게 만들고 싶은 악의가 느껴져서. 오크노디는 괜찮아?”

    “괜찮아요! 전 몸이 튼튼하니까 발이 걸리더라도 그런 걸로 안 죽어요.”

    “우리가 걱정되어서 그래.”

    “꼬마숙녀가 자립심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무슨 일 있으면 꼭 저희에게 도움을 요청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그럴게요.”

     

    결국 이사벨과 지젤의 걱정까지 사고 말았다.

    이 사고뭉치 유령 같으니.

     

    “너 정말 이럴래? 너 때문에 주변에서 사람들이 자꾸 이상하게 생각하잖아.”

     

    가짜 린은 말없이 쭈그려 앉아 사슬을 주워 흔들며 꼬우면 사슬을 풀라는 항의를 했다.

    묶여있어도 이렇게 사고를 치는데 무언의 항의를 한다고 들어줄 리가 없지!

     

    “흥이다. 절대로 안 풀어줄 거다. 메롱!”

    “…”

     

    그 도전을 받아주겠다는 것처럼 주인을 빤히 쳐다보는 건방진 고양이마냥 눈을 똑바로 뜨고 마주보며 시선을 피하지도 않는 유령.

    마치 서로의 서열을 정리하려는 짐승처럼 나와 가짜 린의 기싸움이 시작되었다.

     

     

    * *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초저녁.

    모험가의 야간행동 강의를 듣기 위해 강의실로 향하던 즈앙과 티토소가.

    평소에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이었지만 대체로 상대적으로 더 겁쟁이인 티토소가가 수다를 떨던 평상시와 달리, 오늘은 즈앙이 먼저 말을 꺼냈다.

     

    “요즘 오크노디 주변에 이상한 일이 부쩍 많이 일어나지 않아?”

    “아, 그거? 나도 들었어. 도로시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오크노디랑 주말에 마차 타고 깊은 숲에 갔다 왔대. 근데 거기서 이상한 물건을 주웠대.”

     

    흠칫.

    안 그래도 무서운 강의를 들으러 가는 길에 나온 무서운 이야기에 즈앙의 어깨가 작게 떨렸다.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앞만 보고 걷던 티토소가는 미처 즈앙이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이상한 물건?”

    “저주받은 물건일지도 모른대.”

    “저주는 단검으로 찔러서 죽일 수 없잖아.”

    “…무서워하는 포인트가 이상하지 않아?”

    “그래도 무서운걸. 암살자를 막으려고 저주를 쓰는 표적들도 많으니까.”

    “헤에. 그런 것도 있구나.”

    “티토소가의 파파도 시장대리라고 했지? 미리 주변에 저주로 방어수단을 마련해두는 게 좋아. 실력 있는 마녀가 보호하는 표적은 암살자도 저주를 받기 두려워서 건들지 않거든.”

    “무슨 저주에 걸리는데?”

    “저주야 많지. 장님이 되는 저주도 있고 외형이 추하게 변하는 저주도 있고.”

     

    암살자의 업계에서 저주가 무서운 이유다.

     

    “그런 무서운 저주가 있어?”

    “흔하지는 않아. 강력한 저주는 발동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도 까다롭다고 알고 있거든. 재료가 무지 비싸거나 조건이 아주 까다롭거나 들이는 정성이 굉장히 많아야 하거나.”

    “다른 분야랑 다를 건 없네. 으. 그래도 좀 무섭다. 그런 저주로 보호받으면 실수로 자기가 저주에 걸릴까봐 무서울 것 같아.”

     

    팔뚝에 돋은 소름을 쓸어내리던 티토소가.

     

    “오크노디도 그런 저주에 걸렸을까?”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뭔가에 걸린 느낌은 있지. 오크노디도 일단은 암살자이고.”

    “의무실에 가면 저주도 풀어줄까?”

    “비싸겠지.”

    “저주는 어떻게 하면 풀린대?”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풀리는 경우도 있고, 특별한 해주절차를 거쳐야 하는 경우도 있고. 독한 저주일수록 그 해주절차가 우연으로는 해내기 힘들 정도로 어렵고 까다로운 편이지.”

    “하긴. 밥 많이 먹으면 풀리는 저주에 걸리면 오크노디는 하루 만에 나을 거야.”

     

    저주에 대한 화담을 나누며 어느덧 도착한 강의실.

    먼저 와있던 오크노디가 안녕! 하고 교수님 옆에서 인사했다.

     

    “…안녕.”

    “교수님도 벌써 와계셨구나…”

     

    즈앙과 티토소가의 눈이 흐려졌다.

    오크노디가 무슨 저주에 걸렸든 저 꿈에 나와도 무서울 사다코 교수님의 실물을 영접하는 것보다 무서운 저주는 아니겠지.

     

    “…저주에 관심이 생겼나보네.”

    “네에… 오크노디가 저주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안 걸렸어. 저주받은 물건의 근처에 있어서 저주의 기운이 조금 옮았을 뿐이야…”

    “그, 그렇구나아… 근데 교수님은 그걸 어떻게 아세요?”

     

    입을 꾹 다문 즈앙과 달리 은근 눈치가 없는 티토소가는 교수와 사담을 나눈다는 위험한 시도를 했다.

    사다코 교수는 뭣 모르는 1학년의 소극적인 대화시도가 퍽 마음에 들었는지 대화를 받아주었다.

     

    “오크노디가 옮았을 저주가 내 강의시간에 사용한 저주폐기물의 잔여저주일 테니까…”

    “사다코 교수님의 강의시간이요?”

    “흑마법과 저주는 떼놓을 수 없는 관계… 어둠의 길에 입문한 너희들도 2학년에는 배워야하겠지…”

    “저희 모험가의 야간행동 강의 듣는 거 맞죠?!”

    “…강의를 시작할까…”

    “얼버무리지 말아주세요…”

     

    짧은 사담은 장래(2학년)에 대한 불안만을 낳았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자 티토소가는 지난 대화가 꼭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학년 여러분에게 알립니다. 현재 교내에 전염성이 있는 저주가 도는 관계로 외출 시에는 방문 앞에 놓아둔 <호신부>를 꼭 소지하기 바랍니다.

    호신부를 소지하지 않아 생기는 모든 불상사에 대해서는 아카데미 측에서 책임지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해당 공지사항에 대해서는 1층 게시판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확인 바랍니다.

    이상 1학년 여자기숙사 사감실에서의 알림이었습니다.”

     

    딩동댕동.

    알림방송이 끝나는 종소리에 티토소가의 새가슴에 엄청난 불안이 엄습했다.

    대체 어떤 저주가 떠도는 걸까.

    이럴 땐 저주에 대해 잘 아는 친구가 필요하다.

    즈앙과 오크노디.

    암살자인 두 사람은 분명 잘 알겠지.

     

    “즈앙, 나야! 문 좀 열어봐. 저주에 대해 더 알려줘. 나 너무 무서워!”

    “…부르지 마. 저주에 감염되고 싶지 않으니까. 저주에 대해 알고 싶다고 했지? 너도 방에 틀어박혀있어. 주말엔 방에서 꼼짝도 안 할 거야.”

     

    즈앙과의 상담은 도리어 불안만 더 커졌다.

    이젠 정말 오크노디뿐이야!

     

    “저주가 걱정된다고?”

    “응응.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방문 사이로 고개를 삐죽 내민 오크노디가 잘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걸리면 되잖아. 그게 왜 무서워?”

    “…뭐어?”

    “저주는 한 번 걸렸다가 이겨내면 저주내성이 올라가. 그래서 많이 걸릴수록 좋아!”

     

    이게 뭔.

    티토소가는 오크노디의 해맑은 이야기에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재단은 오크노디에게 그런 짓까지 시킨 거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의문의 업보스택이 늘어난 와이히엠하이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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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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