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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7

        토, 일, 월, 그리고 화요일까지.

       

       로테의 집착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로테는 내가 어딜 가더라도 따라왔다. 예전부터 함께 돌아다니긴 했지만, 24시간 붙어 다닌 건 처음이다.

       

        그래도 대부분의 시간 동안에는 평소대로의 그녀였다. 순진하고, 착하고, 학업에 몰두하길 좋아하는 아리따운 백작 영애의 모습이었다.

       

        본성이 이런 아이였다. 이것이 내가 아는 로테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라도, 누구만 만나면 전혀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게 된다.

       

        로즈마리였다.

       

        “언니, 목도리 정말 예뻐요.”

       

        로즈마리의 칭찬이 사탕발림이라고 생각했는지, 로테가 인상을 팍 구겼다. 반면에 로즈마리는 승리자라도 된 것처럼 쿡쿡 웃으며 제 입가를 부채로 가렸다.

       

        나와 로즈마리를 번갈아 보던 로테가 한 마디 꺼내들었다.

       

        “오늘 일기예보 보니까 날이 풀렸대. 목도리 하나 정도는 벗어도 괜찮지 않아?”

        “그렇게 더운가요? 더우면 두 개 다 벗는 게 맞지.”

       

        또 시작이다.

       

        로테가 보이는 애착 증세의 대부분은 로즈마리가 원인이다. 로즈마리가 없었더라면 로테가 나에게 이런 반응까지 보이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 정도로 로테는 로즈마리를 경계하고 있었다. 여기까진 나도 알았다.

       

        하지만 로테가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에 로즈마리를 경계하는지를 몰랐다.

       

        단순히 단짝을 빼앗기는 것이 싫어서? 아니면 로즈마리가 실은 마수라는 걸 알아서 그런 걸까?

       

        적어도 후자는 아닌 듯하다.

       

        로테는 로즈마리가 마수라는 건 모르는 듯했다. 그랬다면 ‘위압’ 기술이 진작 먹혔어야지.

       

        결국 답이 안 보이는 문제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기싸움을 벌이는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난 추운데.”

        “춥다고? 몸살이라도 걸린 거 아니야?”

        “에이, 언니가 무슨 몸살이에요.”

        “공녀님께서 잘 모르시나 보다. 제 친구가 잔병치레가 꽤 있어요.”

        “아 그래요?”

       

        로즈마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픽 웃었다. 네까짓 게 뭘 알겠냐는 듯한 태도였다.

       

        로즈마리야 그렇다 쳐도, 로테가 왜 이러는지 확신할 수단은 전무하다. 이유를 알기 위해선 세피아 선생님께 부탁하여 정신 검사를 받게 하거나, 버멜을 찾아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엘프 이 새끼…. 진짜 어디 갔어?

       

        슬슬 얼굴 비춰줄 때 되지 않았나? 로즈마리는 내가 착실히 묶어주고 있는데 말이야.

       

        “언니, 정말로 추워요?”

        “어, 추워.”

        “이따 선생님께 히터라도 틀어달라고 부탁하자.”

        “굳이 히터까지 필요 없어요. 제 집에 개인용 라디에이터가 있거든요. 내일 가져올게요.”

        “…개인용이라고?”

       

        로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주제를 전환했다.

       

        “그래도 목도리를 두 개 다 두르고 다니는 건 외관상으로 보기 안 좋아.”

        “맞아요. 굳이 두를 거면 검정 하나만 두르는 게….”

        “무슨 소리예요, 공녀님. 에테르는 검은 머리라서 핏이 살려면 하양 목도리를 해야 해요.”

       

        거 시발 스트레스 존나 쌓이네. 기계인데도 짜증나서 고혈압 걸릴 것 같다.

       

        “살리에르 영애님이 뭘 잘 모르시네. 요즘 황도에선 한 가지 색으로 통일해서 입는 게 유행이랍니다.”

        “색조가 있어야 멋이 산다고 생각하는데요? 모노크롬 패션이라고 온통 검정으로만 물들이면 보기 싫어요.”

        “후흐, 영애님.”

        “무슨 일 있나요, 공녀님?”

       

        나는 깍지 낀 손을 이마에 갖다 댔다. 갑자기 편두통이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칼로 찌르기라도 한 듯이 머리가 아려왔다. 몇 번이고 숨을 가다듬어 보았으나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목 근처도 답답했다. 나는 두 사람이 싸우는 사이에 목도리 두 개를 한꺼번에 풀어 무릎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옥신각신하던 두 소녀가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왜 그래? 어디 아파?”

        “…후우.”

       

       가마솥처럼 부글부글 끓는 한숨을 내쉰다. 내 입에서 두통을 그대로 표현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터질 것 같아.”

       

        말 그대로다. 푹 익은 머리가 곧바로라도 타버릴 것 같았다. 그 정도로 극심한 통증이었다.

       

        여름방학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러지 않았다. 형용하기 어려운 어지러움을 느끼며, 나는 앞머리를 쓸어올리고 내리길 반복했다.

       

        “…터질 것 같다니, 뭐가?”

        “그냥….”

        “어, 언니.”

       

        로테의 눈빛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로즈마리는 겁에 질린 채 슬며시 물러났다.

       

        기기묘묘한 감각이었다. 순간적으로 내 몸이 내 몸이 아니게 되는 듯한, 그런 기분.

       

        그 뒤로 두 사람은 싸우기를 멈췄다. 로즈마리가 먼저 물러나면서 조례시간에 다시 평온이 찾아왔다.

       

        그동안 나는 헤를라인을 기다리며 오늘 할 연구를 메모해 두었다.

       

        “안녕, 얘들아! 간밤에 잘 지냈… 너희들 혹시 싸웠니?”

       

        졸지에 조례하러 들어온 헤를라인만 얼타고 있다. 그녀는 학급의 공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직감으로 알아채고는, 교실 전경을 둘러보며 침음을 삼켰다.

       

        헤를라인의 얼굴은 저번 주보다 한층 밝았다. 황궁에서 나와 나눴던 대화가 도움이 된 모양이었다.

       

        평온해진 은사의 얼굴을 보니 뿌듯함이 올라왔다. 그리 생각하니 아프던 머리도 천천히 낫기 시작했다.

       

        “싸운 애들 있으면 나와. 선생님이 지도 좀 하게.”

        “클리온 황자님이랑 류스틸라 양이 싸우긴 했어요.”

       

        헤를라인의 요구에 반장인 메이릴이 답변했다. 헤를라인은 고개를 까딱이며 물었다.

       

        “뭐 때문에?”

        “황자님이 대쉬했는데 찼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젯밤 공터에서 내기 겸 결투를 벌였다고 들었어요.”

        “저, 저 무례한 것 봐라! 과인이 언제 그랬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반장의 폭로는 줄기차게 이어졌다.

       

        황자는 노기 섞인 목소리로 항변하려 했지만, 그의 말을 진심으로 듣는 이는 많지 않았다. 로즈마리는 좋은 구경거리라도 본 것처럼 소리 죽여 웃었다.

       

        사정을 들은 헤를라인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두 사람은 조례 끝나고 내 연구실로 와. 아, 그리고 또 싸운 사람들 없지?”

       

        문득 헤를라인의 시선이 나와 로테가 있는 방향으로 다가왔다. 조금 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씁쓸한 미소였다.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웬만하면 싸우지들 말렴. 선생님 승진에 방해되니까.”

       

        괜히 틸레트에서 학생들을 아끼는 선생님 TOP1 소리를 듣는 게 아니다. 귀신같이 알아차리는 거 봐.

       

        “그리고 말이야, ‘결투’는 너희들 연애 상대 정하는 곳이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야. 어디까지나 정당한 방법으로 대련을 벌이고 싶으면 그때만 선생님 허락을 맡고 하렴. 너희끼리 멋대로 하다가 다치면 위험하잖니.”

       

        다른 누구도 아닌, 헤를라인 선생님의 말씀이다. 학생들은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자, 주목! 오늘 공지가 하나 있어.”

       

        헤를라인 선생님은 들고 온 신문을 흔들었다. 학생들의 이목이 한곳으로 집중됐다.

       

        “다들 아침 신문 봤니?”

        “봤어요.”

        “역시, 반장은 성실하구나. 무슨 일 있었는지 아니?”

        “일리야드 아카데미에 문제가 생겼다고 알고 있어요.”

       

        헤를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절멸급 마수의 습격을 받아서 아카데미 일부가 파괴되고 수많은 사람이 죽었어. 신문에 나온 것도 아직 집계 중인데, 지금까지 교직원만 40명 남짓에 학생 사상자도 100명에 가깝다고 하네.”

       

        메이릴을 포함한 몇몇 학생을 제외하곤 다들 놀란 얼굴이었다. 나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이 세계는 스마트폰처럼 새 정보를 즉각적으로 접할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틸레트에 온 이상 공부하느라 바깥세상에 관심을 가질 시간이 부족했다.

       

        설마 엘프 쪽 아카데미에 문제가 생겼을 줄이야. 이러면 내 계획에 금이 갈지도 모르겠는데.

       

        “일리야드 아카데미가?”

        “터졌어?”

        “프레이, 터졌다는 표현은 실례야….”

       

        아직 정보가 부족하다. 나로서는 이어지는 헤를라인의 말을 계속 경청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래서 일리야드에선 예정보다 일찍 교환학생이 오기로 했어. 우리는 예정보다 늦게 출발하기로 했고.”

        “그러면….”

        “그렇지. 예술제가 끝날 무렵까지는 모두가 교환학생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거란다.”

       

        교실 곳곳이 파도처럼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기대하는 학생도 있었고, 일리야드 아카데미의 상태가 어떤지 걱정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로테는 후자에 가까웠다. 내 말을 듣고 교환학생을 가기로 했는데, 의도치 않게 일정이 꼬여버린 것이다.

       

        꾸욱. 로테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에테르, 나 그냥 교환학생 안 가면 안 돼?”

        “갑자기 왜.”

        “그냥…. 이러니까 시간만 날리는 게 아닐까 해서.”

       

        아이고야. 혹시나 했는데.

       

        가장 최악의 말이 로테 입에서 튀어나오고 말았다.

       

        로테를 교환학생으로 보내려는 이유는 하나. 그녀가 없어진 사이 내게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그 상황에 로테가 끼어 있으면 득보다 실이 많아지고, 그녀의 정서에도 좋을 거 하나 없으니까.

       

        그야 그렇다. 엘프 중에는 인성과는 무관하게 상위 정령을 데리고 다니는 애들이 많으니까.

       

        인간과는 달리 엘프는 대부분의 개체가 정령 친화력을 타고난다. 즉, 금안족을 카운터 치는 종족이다.

       

        괜히 로즈마리가 버멜을 잡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게 아니었다. 그만큼 이번 학기 후반부는 고난의 시기가 될 예정이다.

       

        그런데 로테가 교환학생을 안 가겠다니. 이러다가 잘못하면 친구 하나 잃어버릴 수도 있다.

       

        “어라, 교환학생 안 가시게요?”

       

        그때 로즈마리가 불쑥 들어왔다.

       

        설마 이번에도 방해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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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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