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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7

       진동, 땅의 흔들림은 거세져만 갔다. 공동의 천장에서 쩌적거리는 불길한 소리가 나며, 흙먼지가 틈 사이로 후두둑 떨어졌다. 선명한 붕괴의 징조였다.

       

       “무너진다! 우리를 생매장시킬 셈이야!”

       

       “계단을 타고 올라가! 어서!”

       

       “잠깐, 제단 주변의 시체가 이상합니다⋯⋯!!”

       

       끽. 끼긱.

       

       따다다다닥!

       

       제단에 남은 붉은 기운이 시체들에게 빨려드는가 싶더니, 삐그덕대면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형제는 동시에 외쳤다.

       

       “저건, 사령술인가?!”

       

       “저건, 강시 아니오⋯⋯?!”

       

       “둘이 공명하지 마!”

       

       “⋯⋯이상한 곳에서 질투하지 말고 뛰어라, 김루, 수도기사단장! 무너지기 전에 여길 탈출할 거니까!”

       

       돌입조 인원들은 달음박질을 시작했다. 매장당하기 전에 지하 4층에서 지상까지 올라가려면 시간이 촉박하다. 사력을 다해 뛰어야 했다.

       

       “최후방에는 내가 설게! 뒤는 신경 쓰지 말고 올라가!”

       

       “나도 돕겠어!”

       

       “나 또한 남겠소. 도움이 될 거요!”

       

       “둘이 공명하지 말라니까! 그리고, 나 혼자서도 충분⋯⋯!”

       

       그어어어어-!!

       

       시체가 활동하기 시작했다. 사방에 빼곡하게 널브러져 있던 미라의 수는, 언뜻 보기에도 백 명이 넘는다. 파도처럼 보일 만큼의 물량 앞에서, 김루루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까짓 놈들, 단번에 일소(一消)할 수 있다.

       

       키이이잉──!!

       

       호흡 한 번을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찬란한 광휘가 손아귀에 모인다. 이대로 흩뿌리는 것만으로도 시체들은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겸사겸사 지하 시설도 박살 나 무너질 터.

       

       “⋯⋯앗차!”

       

       무너지면 안 되잖아.

       

       김루루는 다급하게 손을 털어 내 마력을 흩어 놓았다. 그렇게 날아간 마력의 파편만으로도 되살아난 시체 두엇이 휘말려 소멸했다.

       

       까딱 힘조절을 잘못했다가는 생매장의 주범이 된다. 김루루 자신은 한참 지하에 파묻히더라도 충분히 혼자 빠져나올 수 있다. 마력대폭발을 일으켜 흙을 쓸어버린 뒤에 유유히 올라가면 되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버틸 수 없을 거다. 그러니 출력을 제한하고 조심조심 싸워야 할 텐데⋯⋯.

       

       “아잇, 아── 매달리지 마!”

       

       느리다.

       

       전신에 마력의 불길을 휘감아 손에 닿는 족족 시체를 녹여버리고는 있으나. 고작 3미터의 거구에서 펼쳐지는 근접전으로는 모든 방위를 커버할 수 없었다.

       

       수도기사단장을 우회해서 본대를 노리는 시체들이 생긴다. 

       

       김루루는 솔직히 인정했다.

       

       “⋯⋯충분 안 하네!”

       

       “그럴 줄 알았어! 『리본 로프』!”

       

       퓨어 나이트가 뛰어들었다. 그녀의 레이피어로부터 마력의 붕대가 수십 갈래로 뻗어 나갔다. 이번에는 제압이 아닌 이동의 방해에 초점을 두었다.

       

       쿠당탕!

       

       시체들은 서로 엇갈려 넘어지며 스스로 장애물이 되었다. 그러나 뒤엉켜 어딘가 부러진 상태로도, 그것들은 표독스럽게 두 팔로 땅을 기어서 다가오려고 했다.

       

       그 위로 칼날이 번뜩인다.

       

       “흐읍!”

       

       거리를 좁힌 시체들에게 남궁세가의 창궁무애검법이 날아든다. 강직하되 자유로운 검로가 하늘을 누비고, 금세 목이 잘려 떨어졌다.

       

       충분하다. 시체들의 스펙이 그렇게 높지 않다. 저급한 흑마술로 부활한 좀비 정도로, 마력을 불어넣지 않은 공격으로도 목을 잘라낼 수 있을 정도였다.

       

       이미 죽은 것들이니, 머리가 잘린다고 해서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움직임이 굼떠지기는 했으니 효과가 있었다.

       

       퓨어 나이트가 흩어 놓고, 엔버스가 마무리한다. 그들의 합격은 긴 세월을 넘어서 펼쳐졌으나, 어색함이 없이 잘 맞물려 돌아갔다. 

       

       엔버스는 위기 상황에서도 약간 들뜬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우리, 생각보다 합이 잘 맞는 것 같소⋯⋯ 언젠가 형님과도 이렇게 함께 싸워보고 싶구려!”

       

       “⋯⋯그럴 수 있을 거다.”

       

       안정적이다. 아군의 전력은 충분하고, 적들의 방해는 빠르게 소거되고 있었다.

       

       이렇게 모두 해치워버리고, 빠르게 지상으로 올라가면⋯⋯.

       

       후두둑. 투둑.

       

       내리는 흙의 빗속에서, 퍼억, 하고. 둔탁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으엣?!”

       

       “⋯⋯뼈? 하늘에서?”

       

       퓨어 나이트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균열이 일며 흙무더기가 떨어지는 와중, 땅에 묻혀 있었던 뼈 무더기가 하나둘 함께 낙하하고 있었다.

       

       뼈들은 제단의 영향권에 들어오자, 그들 또한 되살아나 스켈레톤이 되어 망자들의 군세에 합류했다. 김루루는 짜증과 함께 외쳤다.

       

       “⋯⋯이만한 사람들이 묻혀 있었다고?! 공동묘지 하나를 만들지 그냥!”

       

       “뼈들의 흔적을 보건대, 최근이 아니라 한참 전에 묻힌 것들이다!”

       

       “그럼, 이 시설은 아주 옛날부터 존재하고 있었다는 거요?!”

       

       “아마도!”

       

       고대 유적이나 고대 흑마법사의 공방을 발견해서 사용한 걸까. 수를 줄여도 줄여도 하늘에서 증원이 떨어진다. 이대로 좀 더 시간이 끌리면 생매장이다.

       

       “⋯⋯다른 사람들은, 탈출했나?!”

       

       “아직 한참 남은 것 같소! 파워 아머가 커서⋯⋯!!”

       

       통로가 생각보다 좁다. 또한 붕괴 때문에 실시간으로 장애물이 추가되는 도중이었다. 파워 아머를 입은 수도기사단은 옆으로 넓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정체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내려오는 길에 처리했던 놈들의 시체까지도 부활해 덮쳐오기 시작했다.

       

       수도기사단 단원들은 중후한 마력 엔진의 힘으로, 중병기를 이용하여 언데드들을 뭉개다시피 후려쳐 길을 뚫었다. 그런 동작 하나하나가 숨통을 조여오는 시간 낭비였다.

       

       자색 마탑의 환상 마법사 루체는 눈물을 머금고, 그녀의 연인과 작별 인사를 준비했다.

       

       “마이 달링⋯⋯ 여기서 끝인가 봐.”

       

       -마이 허니, 걱정하지 마. 내게 방법이 있어. 내가 저 망자들을 유인할 테니까⋯⋯ 너라도 살아 줘.

       

       “그런, 나는 당신을 두고 떠날 마음의 준비가⋯⋯!!”

       

       “제발 혼자서 염병하지 말고 뭐라도 해 보라는 말입니다!!”

       

       쯧.

       

       루체는 방위국 요원의 지적에 혀를 차고 주문을 외웠다. 

       

       죽고 되살아난 시체들은 어떻게 생자들을 감지하는가? 적어도 시각은 아니다. 눈은 쉽게 썩어 없어지니까, 네크로맨서들은 다른 감각 기관을 사용하는 편이다.

       

       마력의 잔향이나 생명력을 추적하는 고급-언데드도 물론 있지만, 저가형 언데드들은 주로 후각을 쓴다. 그러니 달링에게 부여하는 것은 달콤한 살내음이다.

       

       냄새 구현에 집착한 보람이 있었달까.

       

       “굿바이, 마이 달링. 『루체의 체향 부여』.”

       

       -굿바이, 마이 허니⋯⋯.

       

       우어어어어어-!!

       

       탈출로를 가로막는 언데드들은 피리 부는 사나이를 쫒아가는 쥐들처럼, 수상할 정도로 좋은 냄새가 나는 홀로그램을 쫒아 달려갔다. 

       

       앞길이 뚫렸다. 시설 탈출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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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 4층, 지하 3층, 그리고 지하 2층.

       

       최후미에서 몰려드는 시체들을 가로막던 세 사람은 방어전을 펼치며 조금씩 위로 향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탈출한 것 같았다.

       

       도중, 김루루는 손톱만큼의 피해도 입지 않았지만⋯⋯.

       

       “⋯⋯끝이 없군.”

       

       “그리고, 젠장, 붕괴가 머지않은 것 같소!”

       

       형제는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시체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붕괴가 절정에 이르며, 위에서는 커다란 흙더미나 암석 덩어리가 떨어졌다.

       

       그것을 막아내는 것도 일이다. 퓨어 나이트는 잽싸게 피해내고, 엔버스는 흘려 냈다. 그러나 한 손으로는 파도를 막을 수 없는 법이다.

       

       이대로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안다. 이성적으로 이해한 퓨어 나이트와, 직감적으로 이해한 김루루. 두 사람은 몇 번의 과감한 돌파 시도를 했었다.

       

       그러나── 우연인가, 운명인가.

       

       “『블루밍 엄브렐라』⋯⋯ 큭?!”

       

       “대수야, 괜찮아?!”

       

       돌파하려고 승부수를 내건 타이밍마다 기묘한 악운이 찾아왔다. 필살기를 준비하면, 그 순간 하늘로부터 암석과 뼈다귀가 정확히 정수리를 향해 떨어진다.

       

       김루루가 주의를 집중하여 화력을 투사하려고 하면, 어김없이 퓨어 나이트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숨겨진 함정이나 마법진이 작동하여 목숨을 노려오기 때문에,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는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보이지 않는 등롱이 흔들린다.

       

       레드번 공작 막시무스의 『예지등롱(豫知燈籠)』은 2단계에 걸쳐서 작동한다. 정보를 바탕으로 모략을 준비하는 계획 단계와, 계획을 바탕으로 운명을 조종하는 실행 단계다.

       

       계획에 빈틈과 변수가 없을수록, 강요되는 운명은 가혹해진다.

       

       거미줄처럼 뻗은 정보망으로 『푸른 장미』가 어떤 공격 수단을 갖고 있는지 알아냈고, 수도기사단장의 제어 능력이 형편없다는 사실 또한 안다.

       

       적들의 능력을 대부분 파악한 상태에서, 생매장과 언데드 대군이라는 함정을 준비한 상태로 실행된 계획이다. 행운의 여신은 준비된 자를 향해 웃는다.

       

       쿠르르르르──!!

       

       시설 전체가 크게 비명을 질렀다. 끼기기기기. 아찔한 죽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붕괴 직전이다. 김루루는 크게 외쳤다.

       

       “너희라도 먼저 나가!”

       

       “⋯⋯너는 어떡하고?!”

       

       “나는 강해! 혼자서 빠져나갈 수 있으니까, 내가 막고 있는 사이에. 어서!”

       

       합리적이다. 합리적이지만⋯⋯.

       

       시설이 무너지기 시작한 순간부터 따라붙은 지독한 불운이, 퓨어 나이트를 망설이게 했다. 만약, 김루루의 말을 듣고 전력으로 바깥으로 달려 나간다고 했을 때.

       

       그녀와 충분히 거리가 벌어진 상태에서 피할 수 없는 붕괴가 시작된다면. 김루루의 보호를 받지 못한 퓨어 나이트는 확실하게 깔려 죽는다.

       

       그렇다고 그녀의 주변에 남아 있을 수도 없다. 시체들은 지워도 지워도 바퀴벌레처럼 나타나고 있었으니까.

       

       결국은, 자신의 약함이 문제다. 퓨어 나이트는 입술을 꽉 물었다. 자신이 김루루에게 짐이 되고 있었다.

       

       타개책은 없는가.

       

       몰아붙여진 상황에서, 엔버스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말을 꺼냈다.

       

       “⋯⋯수도기사단장! 내가 어쩌면, 시체들의 발을 묶을 수도 있소!”

       

       “묶으면 묶는 거고 아니면 말고지, 왜 어쩌면이야?!”

       

       “내 우화가 시체들에게도 통할지 알 수가 없어서 그렇소!”

       

       죽은 자들에게도 제왕의 엄숙함이 통할 것인가? 써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쓰지 않았으나⋯⋯ 그 외에 다른 길이 없는 상황이라면 걸어볼 수밖에 없다.

       

       발을 묶어서, 시간이 생긴다면⋯⋯.

       

       퓨어 나이트는 레이피어로 뼈다귀들을 후려쳐 걷어내며, 루루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그리고 말했다.

       

       “김루루, 내게 마력을 건네줘! 내가 컨트롤한다!”

       

       “⋯⋯다른 사람의 마력을 받으면, 호환 안 되는 거 아냐?! 그리고, 못 버틸 거야!”

       

       “이대로라면 어차피 죽어! 그리고, 네 마력이라면 받아들일 자신이 있으니까!”

       

       “⋯⋯으, 으아. 그거 되게 이상하게 들리는데⋯⋯.”

       

       이 상황에 막연하게 야리꾸리한 기분을 느끼는 김루루에게 퓨어 나이트의 사자후가 작렬했다.

       

       “야!!”

       

       “아, 알았어! 해보자고⋯⋯!”

       

       “그럼, 가겠소! 우화(羽化), 『제왕검형』──!!”

       

       하늘을 쥔다.

       

       쿠웅⋯⋯!!

       

       하늘을 쥐고, 내리누른다. 보이지 않으나 확실하게 존재하는 제왕의 존재감이 공간 전체에 퍼져나갔다. 

       

       시체들에게도 먹혔다. 그들은 위협적인 공격이 사방에서 날아온다고 인식하여, 움직임이 눈에 띄게 굼떠졌다. 그리고.

       

       쩌엉-!

       

       정보의 과부하에, 보이지 않는 등롱이 터져나갔다.

       

       퓨어 나이트는 숨통이 트이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운명의 길을 파멸로 이끄는 불빛이 꺼지니, 이제는 희망의 불꽃이 타오른다.

       

       “⋯⋯지금이야!”

       

       김루루는 갑옷에 두른 마력 불길을 끄고, 파워 아머의 오른팔을 퍼지했다. 철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갑옷이 후두둑 떨어진다.

       

       그리고 자그마한 손을 퓨어 나이트의 등에 얹었다. 조심스럽게 마력을 불어넣는다. 아주, 일부만.

       

       “⋯⋯⋯⋯!!”

       

       마그마가 혈관에 흐르는 감각. 인간이 통제할 수 없을 만큼의 막대한 마력이 흘러들어오자, 퓨어 나이트는 불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움찔거렸다.

       

       타인의 마력을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한 행위다. 

       

       운명을 조종하는 『예지등롱(豫知燈籠)』이 여전히 켜져 있었더라면, 이 시도는 끔찍한 파멸로 유도되었을 것이다. 

       

       퓨어 나이트는 마력을 통제하지 못하고 죽었을 테고, 김루루는 사랑하는 사람을 제 손으로 죽인 꼴이 되었을 터. 그러나 등롱은 제왕검형으로 인해 막혔다. 마법소녀는 가닥을 잡았다.

       

       고통의 뒤에는 전능감이 찾아왔다.

       

       이런 마력을 갖고 있으니, 기술이 없어도 무식하게 강하구나!

       

       퓨어 나이트는 평생 다뤄본 적 없는 대해와도 같은 마력을 간신히 유도했다. 이미지하는 것은 드릴. 시설이 무너지기 전에 빠져나갈 수 없다면, 지면을 그대로 뚫고 날아오르리라.

       

       “『그레이트 엄브렐라』!!”

       

       세 사람을 감싸는 커다란 우산이 나타나, 고속으로 회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쿠르르── 우르르르르!!

       

       시설이 완전히 붕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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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장님은, 빠져나왔나?!”

       

       “단장님을 걱정할 때가 아니야. 함께 들어간 『푸른 장미』와, 협조자가⋯⋯.”

       

       “잠깐만, 땅이 들썩거리는⋯⋯ 더 거리를 벌려! 뛰어!”

       

       “왜 거리를 벌리라는 말입니까? 이 정도면 충분히 안전거──”

       

       콰아아아앙──!!

       

       새파란 청광(靑光)과 함께 지면이 폭발했다.

       

       후두두둑. 후두둑.

       

       하늘로 비산한 흙알갱이들이 비처럼 지면을 두드리고, 커다랗게 뚫린 구덩이 아래에서 세 사람이 기어 나왔다. 흙으로 전신이 더러워진 꼴이었다.

       

       “⋯⋯살았군.”

       

       “사, 살았구려. 먹혀서 다행이었소.”

       

       살았다. 

       

       퓨어 나이트는 지면에 엎어져 숨을 헐떡거리고, 골골대면서 생각했다. 목숨은 건졌지만, 시큰거리는 불안이 마음 한구석을 찌르고 있었다.

       

       레드번 공작은 무슨 생각이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과, 그 아웅마저도 안 하는 것은 분명하게 다르다.

       

       레드번 가문으로부터 흘러들어온 마법 시약이 도달한 곳에서, 명백한 함정과 흑마법사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건. 공작의 정치력이라도 충분히 책잡힐 정도의 안건이다.

       

       또, 모조리 살인멸구할 정도의 함정은 아니었다. 아무리 일이 안 풀려도, 승화에 도달한 김루루만큼은 확실하게 생존한다.

       

       그러면, 수도기사단 측에 정보가 확실하게 들어갈 텐데.

       

       둘 중 하나이리라.

       

       공작에게 그만한 여유가 없거나, 아니면⋯⋯.

       

       그래도 상관이 없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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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스판이 쪼개졌다. 흑색 말들은 반으로 갈라져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고, 흰색 퀸은 고고하게 서 있다.

       

       공작은 주먹을 쥐어, 퀸을 가루로 만들었다.

       

       “⋯⋯실패했다는 말인가?”

       

       “예, 올가미 님.”

       

       “⋯⋯⋯⋯.”

       

       레드번 공작 막시무스는 잠깐 인상을 찌푸렸다가, 애써 표정을 풀었다. 무언가 커다란 변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자신의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은 것은 몹시 불쾌하지만, 중대 변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면 실패에도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치명적인 실패도 아니었다.

       

       이미 준비는 끝났으니까.

       

       그는 시선을 돌려, 새까만 금속으로 이루어진 석상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불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성함을 느끼게 하였다. 이것이야말로 흑마법사들의 우상(偶像)이었다.

       

       “──절망하는 악신상의 완성이 머지않았다.”

       

       모략도, 정치도, 모두 소용없다.

       

       인간이 인간의 범주를 넘어설 수 있는 이 세계에서, 오직 힘만이 명확하다.

       

       네 명의 흑마법사들은 각자의 미학이 있고, 미학으로부터 별명을 정했다.

       

       『절망 새기는 올가미』, 막시무스 레드번은 농장을 운영한다. 인간의 몸과 마음에 노예의 낙인을 새겨, 그의 확고부동한 통제 아래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절망 속에서 비명을 지르기를 소망한다.

       

       변하지 않는다. 내일은 나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는다. 영원히 절망 속에서 허덕일 뿐이다.

       

       최면 석상까지 끌어모아 사람을 모으고 환경을 조성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가 영혼을 쥐어짜 마력을 수급하기 위해서는, 『지배』의 가치가 중요했다.

       

       악신상(惡神像), 네 명의 흑마법사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추구하는 비의. 수많은 영혼에게 고통을 주어 만들어내는 아티팩트의 극치.

       

       그 위력은 승화(昇華)까지 닿는다.

       

       악신상이 완성되면 레드번 공작의 능력은 한 단계 진화할 것이다. 우화(羽化) 단계에서도 타인의 운명을 지배하는 힘을 갖고 있으니, 그 너머라면 대체 어떤 권능을 부릴 수 있을 것인가?

       

       공작은 조용히 웃었다. 때가 오면, 그는 전능해지리라.

       

       “⋯⋯『시체꽃』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들었고, 『어린양』 또한 완성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지. 그렇다면, 나를 제하고는 『숫처녀』가 가장 빠른가?”

       

       “예, 올가미 님.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게으른 잡것들도 어서 완성했으면 좋겠군. 기다림이 쉽지가 않아.”

       

       공작은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두드렸다.

       

       다른 세 명의 흑마법사 또한 각자의 악신상을 만들고 있다. 모든 준비가 끝나는 순간, 제국이 맞이해야 할 것은 전례 없는 파멸이다.

       

       어떻게 감히 버텨낼 수 있겠는가?

       

       커다란 변수만 없다면⋯⋯ 마지막에 웃는 것은 그들이 되리라.

       

       ===============================================================

       

       “핑발레즈야, 바뻐?”

       

       “아뇨, 미친 마법사님. 왜 그러십니까?”

       

       “아니, 별건 아니고⋯⋯ 내 정신방벽 안에 서큐버스 한 마리 가둬놨거든. 큰 놈은 아닌 것 같고, 작은 놈. 구경 갈래?”

       

       “아주 좋습니다. 팝콘을 속히 챙겨가도록 하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두둑하게 담았습니다요. 이걸로 후일담은 끝입니다.
    그러면 마이 프렌즈, 내일 만나요!
    다음화 보기


           


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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