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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7

       빠앙.

       홉스가 나팔을 불었다.

       그것은 휴식을 마치고 훈련에 들어가라는 신호였다.

         

       파파엘 서커스의 단원들은 각자의 자리로 향했다.

         

       휴게실에 남은 것은 홉스와 카렌뿐이었다.

         

       둘은 오늘 개별적인 일정이 있었다.

       외출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두 사람 다 옷을 벗으면서도 고개를 돌리거나 몸을 가리는 등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서로 알몸을 보이거나 보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대수롭지 않은 일에 속했다.

         

       “당신 오늘 뭐 한다고 했지?”

         

       카렌의 질문에 홉스는 셔츠의 단추를 맞추며 대답했다.

         

       “오랜만에 학교 왔으니 교수님들 뵙고 인사드려야지.”

         

       그는 이곳의 학생 출신이었다.

       도시를 방문했는데 얼굴 한 번 비추지 않는다면 교수님들이 섭섭해하실 것이다.

       어차피 시험 접수도 해야 했기에 한 번은 학교를 찾아야 했다.

         

       정장을 입은 그는 7기 졸업생 펜던트를 목에 걸고는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여동생이 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색 전신 타이츠를 입고 있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너 정말 그렇게 나갈 생각이냐?”

       “당연히 아니지.”

         

       그녀는 바닥에 너부러진 반 바지를 주워 입고 가슴 부위만 간신히 가리는 짧은 조끼를 위에 걸쳤다.

       그리고 너덜너덜한 때 탄 운동화를 신는 것으로 외출 준비를 완료했다.

         

       카렌은 꺼림칙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오빠를 올려다보며 시큰둥한 목소리로 답했다.

         

       “새삼스럽게 왜 이래? 원래 이렇게 입었잖아.”

       “그렇긴 한데……예전에야 머리를 짧게 쳤으니까 다들 남자애겠거니 했지. 지금은 머리를 길렀잖아. 여자애라는 게 다 드러나는데?”

       “어쩔.”

         

       홉스는 무신경한 그녀의 반응에 속으로 탄식을 토했다.

         

       장미 풍차의 대결을 계기로 그는 그녀에게 그 나이대 여자애다운 복장을 입히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다.

       그러나 늘 입던 타이츠가 편하다는 이유로 매번 저렇게 입고 거리를 쏘다니는 그녀였다.

         

       홉스는 자신이 남녀유별에 엄격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건 남녀의 문제가 아니었다.

         

       젊은 남자 단원들도 저렇게 하고 밖에 나가라고 하면 다들 기겁할 것이다.

         

       그녀가 10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별난 남자애로 취급받고 말았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었다.

         

       관리도 안 해서 여기저기 뻗친 머리에 건들건들한 걸음걸이 같은 행동거지는 여전했지만, 예쁘장한 본바탕은 숨길 수 없었다.

         

       그녀의 미모는 최근 1년 새 급격하게 발전했다.

       거기다 머리카락까지 길렀으니, 이제는 누가 봐도 여자였다.

         

       차라리 그녀의 타이츠가 새까맣고 두꺼운 재질이라면 그나마 곡예사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사람들이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평소에 입고 다니는 것은 스타킹처럼 얇고 살이 반쯤 비쳐 보이는 물건이었다.

         

       그녀의 이런 복장에 대해 아이 때부터 그녀를 봐온 어른들은 그러려니 했지만, 어린 단원들은 얼굴을 붉히며 민망해하곤 했다.

         

       그러나 그들이 항의해 봤자 그녀는 ‘나는 5살 때부터 저 아저씨들 쫄쫄이에 고추 튀어나온 것도 봐왔다’라는 식의 논리로 맞받아쳤다.

         

       홉스는 단원들 앞에서 대범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러나 여동생 관련 일에는 그것을 지키기 힘들었다.

         

       원래 두 사람은 함께하던 순간부터 서로의 일에 간섭을 안 하는 주의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로 홉스의 가슴 속에 그녀에 대한 책임감이 자리 잡았다.

         

       그래서 요즘 들어 여동생의 장래에 대한 그의 염려가 더욱 깊어졌다.

         

       그녀는 이제 막 17살이었다.

       떠돌이 곡예사보다 훨씬 더 나은, 훨씬 더 좋은 기회가 그녀에게 있을 수 있었다.

         

       이대로 계속 자신을 따라다니게 해도 될까?

       쫄쫄이를 입은 남정네들 틈에서?

         

       그는 여동생을 이렇게 키워도 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오늘 그녀를 데리고 나가는 것에는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내가 학교 안에서 볼일을 보고 오는 동안, 너는 교복을 맞추는 거다.”

       “아, 귀찮게. 내가 왜 학교에 나가야 하는데.”

         

       그녀의 투덜거림에 홉스는 당황한 눈빛을 그녀에게 던졌다.

         

       “안 좋냐? 애들이랑 어울려 놀고 싶다고 징징거릴 때는 언제고.”

       “씁, 언제 적 소리를…….”

       “원하면 널 레카체프에 입학시켜 줄 수 있어. 꼭 서커스가 아니라 다른 학교에도 넣어줄 수 있고. 아니면, 후원자한테 부탁해서 다른 길을 알아볼 수도…….”

         

       홉스는 말을 멈췄다.

       그의 동생이 인상을 찌푸린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뭘 잘못 처먹었나? 갑자기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지랄? 계약서 가지고 사람을 부려먹던 건 언제고.”

         

       계약서라는 말에 홉스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4살 때 작성했던 그 계약서는 노예 계약에 가까운 것이었다.

       단장의 명령에 무조건 따르고, 보수는 단장 주머니에서 여유 나는 대로 지급하는 등 온갖 불공정한 규정이 들어가 있었다.

         

       물론 홉스가 진짜 그녀를 노예처럼 부려먹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서커스단을 만들어나가는 힘든 과정에서 그녀를 통제할 구실이 필요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가 요즘 종종 말하길, 힘들어서 칭얼대는 어린애 앞에 계약서 운운하며 다그치는 그의 모습이 그렇게 악랄해 보일 수가 없었단다. 배신감에 뒤에서 많이 울기도 했단다.

         

       그래서 계약서 얘기만 나오면 홉스는 그녀에게 할 말이 없어졌다.

         

       “이제 와 무슨 다른 일을 하라는 거야? 내가 여기서 배운 거라고는 아저씨들 냄새나는 가랑이 사이에 고개를 처박는 일뿐인데.”

       “커흠.”

         

       마부가 헛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탄 것은 평범한 여객용 마차라 방음이 형편없었다.

         

       “야, 오해할 말 하지 마.”

         

       홉스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카렌은 킬킬거렸다.

         

       “어쨌든 이번 청강은 나갈 테니 걱정하지 마. 후원자가 요청한 거라며. 어지간히 화제가 된 게 반가웠나? 마치고 보자. 나 간다.”

         

       카렌은 마차 안에 비치된 막대사탕 하나를 뜯어서 입에 물고 다소 급하게 마차에서 내렸다.

         

       “우와앗, 손님!”

         

       마부가 놀라서 소리쳤으나, 그녀는 뒤로 공중제비를 한 바퀴 돌아 앞으로 나아가려는 관성 에너지를 회전 에너지로 소모하고는 땅에 가볍게 착지했다.

       그녀 정도 되는 재주꾼에게 있어서 이 정도는 가뿐한 일이었다.

         

       그녀는 마부에게 괜찮다는 손짓을 해주었다.

       그녀는 입안에 사탕을 굴리며 마차가 학교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봤다.

         

       억지스럽게 끝맺긴 했지만, 오빠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그녀가 눈치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서커스단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왜 유랑 곡예단에 딸을 데리고 다니는 아버지가 많겠는가?

         

       남자와 달리 여자가 맨몸뚱이로 사회에 나가서 할 일이 마땅히 없었기 때문이다.

       서커스단에 붙어서 어릴 때부터 배운 곡예로 돈 버는 것이 안전하고 보장된 길이었다.

         

       “갑자기 부모 노릇 하려 들기는. 지 걱정이나 할 것이지. 내일모레면 40대인 홀아비가.”

         

       그녀는 복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골목 안으로 걸었다.

         

       생각보다 그녀를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일반인들이 북적거리는 곳이라면 그녀의 복장은 대번에 시선을 끌겠지만, 이곳은 레카체프 앞 골목이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의 대부분은 서커스 학교의 학생 아니면 외부 곡예사였다.

       그녀보다 더 요란하고 괴상한 차림을 한 사람들이 많았다.

       덕분에 그녀는 평소보다 좀 더 자유롭게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교복 가게를 발견한 그녀는 자연스럽게 건물 안으로 입장하려 했다.

       그러나 젊은 직원이 그녀를 발견하더니 소리쳤다.

         

       “여학생 교복은 반대편입니다!”

         

       아.

       카렌은 주변을 둘러봤다.

       어른들 몇 명 빼고는 대부분이 남자애였다.

         

       평소 버릇대로 남자들 쪽에 섞이다 보니 이곳으로 들어온 곳이다.

         

       그녀는 가게를 나오긴 했지만, 선뜻 여학생 가게로 들어가지 못했다.

         

       어디서나 당당하던 그녀가 약한 게 딱 하나 있었다.

         

       바로 또래 여자아이들이었다.

         

       카렌은 여자였지만, 어릴 때부터 남자들 틈에서 자랐다.

         

       그래서 남자들과 부대끼는 데는 스스럼 없었지만, 여자들을 대하는 건 매우 어색해했다.

       괜히 얼굴이 붉어지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특히 예쁜 애들을 보면 시선 둘 곳을 못 찾고 말을 더듬었다.

       그녀의 사나운 입담과 거침없는 태도는 남자들 앞에서만 힘을 발휘했다.

         

       “너, 뭐하니? 안 들어가?”

         

       고학년으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그녀의 바로 등 뒤에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

         

       카렌은 놀라서 화들짝 옆으로 물러났다.

       그녀는 자신을 쳐다보는 여자 선배들의 눈동자에 바짝 얼었다.

         

       “머, 먼저 들어가세요.”

         

       긴장해 있는 그녀를 보고 그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입생인가?”

       “글쎄. 입학시험에서는 못 봤는데? 청강생 아냐?”

       “추천 입학생일 수도 있잖아.”

       “그건 그렇고 복장 특이하네.”

         

       카렌은 귀를 쫑긋거렸다.

       그녀들이 자신에 대해 한 마디 던질 때마다 심장이 쿵쿵거렸다.

         

       하지만 그들은 그녀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게 아니었다.

       몇 마디 주고받으면서 가게 안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카렌은 그녀들이 남기고 간 분 냄새와 향수 냄새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녀는 머리를 쥐어뜯고 싶어졌다.

         

       난 여자애들한테 왜 이렇게 약하지?

       아, 서커스단에서 애들 몇 명 끼고 올걸.

         

       그때였다.

       골목 한쪽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황금 천칭이다!”

       “뭐?”

       “황금 천칭이라면…….”

       “로드 판타스틱의 딸!”

       “레이나 마기어다!”

         

       그녀의 이름은 카렌도 몇 번 들어봤다.

       그만큼 유명인사였다.

         

       그녀도 청강을 들을 준비를 하러 온 모양이었다.

       그녀는 사람들 틈에서 레이나가 지나가는 것을 지켜봤다.

         

       황금색의 풍성하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 사이로 빙하처럼 차가움녀서도 눈부신 얼굴이 드러났다. 마치 모델을 연상시키는 큰 키와 성숙한 몸매를 보고 카렌은 기가 팍 죽었다.

         

       뭐가 ‘파파엘의 미소녀 곡예사’야.

       쫄쫄이 아저씨들 사이에 있으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지.

       아, 쟤가 내 기사를 안 읽었어야 하는 건데.

       쪽팔려.

         

       카렌은 근처에서 몇몇 레카체프 재학생들이 레이나를 보고 빈정대는 것을 보았다.

         

       “왜 어기적어기적 안 걷는 거지?”

       “기저귀를 찼겠지 뭐, 킥킥.”

         

       분명 레이나 본인도 들었을 텐데, 그녀는 싸늘한 미소를 한 번 지어보일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고고한 태도를 유지하며 가던 길을 당당히 걸어갔다.

         

       ‘와, 끝내준다. 자존감 엄청 높아 보여. 절대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 안 하는 타입.’

         

       외모면 외모, 몸매면 몸매, 기술이면 기술, 정신력이면 정신력.

       모든 면에서 자신은 그녀와 비교해 밀렸다.

         

       그녀는 학교 안에서 레이나와 마주치는 일이 없기를 빌었다.

         

       그렇게 그녀는 골목에서 조금 더 서성거렸다.

         

       오후가 지나가면서 아이들의 수가 줄고 있는 게 보였다.

       그녀는 이것보다 더 줄어들면 옷가게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북적거리는 탈의실에 들어가 서로 벗은 몸을 볼 생각을 하면 부끄러웠다.

       특히 자신의 빈약한 몸을 보이는 것은 더욱더.

         

       그때, 골목 한쪽이 소란스러워졌다.

         

       “엘라다!”

       “그게 누구야?”

        “있잖아. 입학시험에서 레이나랑 호각을 다툰 애.”

       “와, 걔도 청강을 들으러 오는 건가?”

         

       사람들의 시선이 또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그곳에는 보호자로 보이는 남자와 함께 걸어오는 검은 머리카락의 소녀가 있었다.

         

       그녀의 걸음은 레이나와 다른 의미에서 당당했다.

       레이나가 주변에 아무도 접근할 수 없게 만드는 기세를 내뿜는다면, 그녀는 누구든 올 테면 와 보라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카렌은 오늘 아침 기사에서 그녀에 대한 소식을 들은 것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단원들이 다들 ‘파파엘의 미소녀’ 가지고 장난을 치느라 제대로 내용을 못 들었지만 분명 레이나와 쌍벽을 이룬다고 했다.

         

       엘라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에게 능숙하게 대답을 해주고 가볍게 장난도 쳐가며 길을 헤쳐나갔다.

       대중을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녀는 물론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행복한 파랑새네. 부럽다. 부모님에게 사랑 잔뜩 받고 자라서 힘든 일은 한 번도 안 겪어 본 타입.’

         

       다른 여자들은 엘라의 뒤를 따라다니는 남자를 주목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에 대해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원더스타인을 본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주변 남자들의 것과 비슷했다.

         

       오, 잘생겼네. 부럽다.

         

       그렇게 두 차례 폭풍이 지나고 나자 골목은 상당히 한산해졌다.

         

       가게 안을 보니 손님은 상당히 줄어 있었다.

       어느 직원은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기도 했다.

         

       카렌은 기회다 싶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그녀의 옆으로 한 명이 따라 들어왔다.

         

       카렌은 그 아이를 보고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귀, 귀여워. 완전 인형 같아.’

         

       하얀 머리카락에 하얀 피부.

       신이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빚은 듯한 이목구비.

       커다란 눈과 차분하게 반짝이는 붉은 눈동자.

         

       카렌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에게 불쑥 말을 걸고 말았다.

         

       “아, 안녕?”

         

       마야는 갑자기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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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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