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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7

       

       

       

       

       

       167화. 엘프 ( 3 )

       

       

       

       

       

       한참 동안 황금 나무를 껴안고 울던 알랜시아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많은 이들 앞에서 추태를 보였음을 자각했는지 얼굴이 터질 듯 붉었다.

       

       “그으… 괜찮은거요?”

       

       “네, 네에. *크흥* 괜찮고 말고요”

       

       짧은 시간동안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팅팅 부은 알랜시아가 애써 태연한 표정을 만들어 보였다. 저 멀리 엘프들은 황금 나무의 주변을 둘러싸고 빙글빙글 돌며 뭔지 모를 노래와 춤을 부르고 있었다.

       

       “손에 손잡고ㅡ!!”

       

       “더 크게! 오늘은 황금 나무께서 돌아오신 기쁜 날이잖아!!”

       

       “자비롭고 위대한 여섯 번째 신께 노래를!!”

       

       따각따각 나막신 소리가 경쾌하게도 울린다.

       

       …조금 특이한 형태이긴 해도 그들의 신앙심을 표현하는 나름의 방법이리라.

       

       오푸스 팔락은 애써 엘프들을 외면했다. 정체 모를 군무의 가운데에 있는 황금 나무는 기분 탓인지 수치심에 파르르- 떠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그래서 *훌쩍* 이 건물들은 전부 뭔가요.”

       

       얼마나 울었는지 코끝이 달궈진 금속보다 빨갰지만, 오푸스 팔락과 드워프들은 그걸 상대방의 앞에서 대놓고 말할 만큼 배려심이 없지는 않았다.

       

       알랜시아는 황금 나무의 주변, 그러니까 황금 나무를 중심으로 위치한 세 개의 건물을 바라봤다. 

       

       “아, 그건 말이지-”

       

       “위대하신 분께서 그대들의 거처랑 일터를 만들어 주신 거지!”

       

       나서서 설명하려는 오푸스 팔락을 막아선 세듀스 팔락. 맏형 혼자서 잘난 척하게 두지 않겠다는 둘째의 노련한 기지가 돋보였다.

       

       오푸스 팔락의 굵은 눈썹이 파도처럼 꿈틀거렸지만, 세듀스 팔락은 콧방귀만 뀌었다. 아니꼬우면 대장간으로 와서 한 판 붙으면 되는 일이다. 드워프답게 쇠와 망치로 승부를 가릴 테니.

       

       잠시 노려보던 오푸스 팔락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구태여 새로운 식구 앞에서 기싸움하는 모습을 보여서 좋은 건 없을 것이다.

       

       “일터라고 하시면 어떤 일을 하는 거죠? 사냥? 목축? 아니면 재배?”

       

       “어…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위대하신 분께서 당신네들이 잘 할 수 있는 것들로 준비를 해두셨을게요. 직접 들어가서 보는 편이 빠르겠구먼.”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알랜시아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이내 천천히 작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겉으로 보기에는 작은 오두막에 지나지 않았는데, 내부는 놀라울 정도로 넓었다.

       

       구석구석 작게 쌓인 거미줄은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었고, 벽의 곳곳에는 소박하게 먼지 쌓인 연장들이 존재했다.

       

       “이건…”

       

       처음 와 보는 곳임에도 익숙한 기분이 든다. 아주 오래 전에 이곳에 왔었던 것 같은 기분. 이 기분도 그녀의 조상들이 성지에서 일했기 때문인 걸까? 심장이 작게 두근거린다.

       

       묘하게 들뜨는 기분을 품에 안은 알랜시아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건물을 나섰다. 뭐든지 잘될 것 같은 예감이 솟구친다.

       

       틀림없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될 것이다!

       

       위대한 여섯 번째 신께서도 그들을 받아주셨으니까!

       

       

       

       

       

       *****

       

       

       

       

       

       빠밤ㅡ!

       

       《’활’의 무기 제작이 가능해졌습니다!》

       

       ‘드디어!’

       

       엘프 하나가 활 공방으로 들어서자, 곧장 메시지가 나타났다. 이토록 반가운 메시지가 또 있을까.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격의 물결.

       

       눈을 감으니 그동안 원거리 딜러가 없어서 당했던 수많은 억까가 떠오른다.

       

       파티원들이 죄다 뚜벅이 근접이어서 겪었던 많은 아픔과 슬픔은 이제 안녕이다. 나도 이제 당당히 원거리 딜러를 보유한 ‘원거리 오우너’로 나아가는 것이다.

       

       화면에서 무기 리스트를 찾아 미리 해금했던 D등급의 ‘삐걱거리는 활’을 찾았다. 아마 엘프와 드워프들의 매커니즘은 비슷할 것이다.

       

       ‘내가 먼저 만들면, 그다음부터는 엘프들이 알아서 만들 수 있겠지.’

       

       때마침 황금 나무 주변을 미친 듯이 회전하던 엘프 한 명이 비틀비틀 걷다가 작은 숲으로 풀썩 쓰러졌다. 그렇게 엎어져서 잠시 꿈틀거리더니, 손에 작은 나뭇가지 2개를 들고 일어난다.

       

       – “어, ○ㅡ윽. 어ㅈi러워…”

       

       비척거리며 일어난 엘프를 드래그해서 활 공방까지 오도록 안내한다. 나뭇가지를 든 엘프가 활 공방에 들어가고 메시지창이 나타났다.

       

       빠밤ㅡ!

       

       《최초획득! ‘얇은 나뭇가지’ X2 를 획득!》

       

       타이밍이 딱딱 맞아떨어진다. 필요한 재료도 얻었고, 더 이상 망설일 것이 없다.

       

       ‘얇은 나뭇가지’ 2개를 사용해서 곧장 ‘삐걱거리는 활’을 제작한다.

       

       화면에 망치가 나타나더니 잠시 뚱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빠밤ㅡ!

       

       《최초획득! D등급, ‘삐걱거리는 활’ 획득!》

       

       이제 필요한 건 전부 끝났다. 드워프들은 이렇게 한 번만 내가 만들면 알아서 무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잠깐만 기다리면 이제 메시지가 나오겠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뭐야. 왜 메시지가 안 나와.’

       

       화면에 보이는 엘프들은 황금 나무 주변에서 강강술래나 하고 앉아있고, 나머지 놈들은 그저 멍하니 서 있거나 풀을 뜯어 먹고 있… 저걸 왜 먹어?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몰려온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어 가고 있는 느낌. 버스에서 내릴 정류장을 한참이나 지나쳐서 창밖으로 낯선 풍경을 봤을 때의 그것과 비슷하다.

       

       ‘에이, 아니지?’

       

       시뻘건 경고창이 나타나며 현실을 일깨웠다.

       

       삐익ㅡ!

       

       《! ‘알랜시아’가 ‘삐걱거리는 활’의 제작 습득에 실패하였습니다. !》

       

       《※ 실패 원인 : 엘프들의 활 제작 및 사용법의 소실.》

        

       공방에서 나온 엘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경고창에 보이는 단어들이 문어처럼 내 머릿속을 파고든다.

       

       엘프가 활 제작이랑 쏘는 법을 잊었다고?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판타지에서 신궁, 명사수의 대명사가 엘프일 텐데.

       

       “…아니, 아니 잠깐. 잠깐만…”

       

       깊은 한숨과 함께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러면 활을 해금해도 못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하나하나 손으로 직접 만들어서 그걸 언제 팔고 있냔 말이다.

       

       기대감이 컸던 만큼 실망도 크다. 온몸의 의욕이 모조리 사라지는 기분.

       

       부웅ㅡ!

       

       짧은 진동과 함께 메시지가 나타났다. 힘 없이 손을 움직여 대충 눈으로만 읽었다.

       

       《※ 해결 방법 : 지속적이고 꾸준한 직접 제작으로 해결 가능.》

       

       메시지 구석에 작은 케넬름이 화이팅!하는 포즈로 그려져 있다.

       

       …그래도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라니까, 조금이나마 기운이 생긴다. 작은 케넬름의 응원도 조금은 힘이 됐다.

       

       “후우-”

       

       결국 방법은 될 때까지 계속 활을 만들어야 한다는 건데, 당장은 활을 만들 재료가 없다.

       

       곧장 상점창으로 향했다.

       

       부우웅ㅡ!

       

        [WEB발신]  카드 15,000원 일시불 승인.

       

       현금과 맞바꾼 ‘얇은 나무’ 수백 개가 우편함으로 들어왔다. 평소라면 하위 재료를 돈 주고 사는 미친 짓을 하지 않겠지만, 이건 진짜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넉넉하다 못해 넘쳐흐르는 재료로 다시 한번 ‘삐걱거리는 활’을 만든다. 엘프는 또 다시 고개를 저었다.

       

       빠밤ㅡ!

       

       《제작 성공! D등급, ‘삐걱거리는 활’ 획득!》

       

       한 번 더.

       

       빠밤ㅡ!

       

       《최초획득! D등급, ‘삐걱거리는 활’ 획득!》

       

       다시.

       

       빠밤ㅡ!

       

       빠밤ㅡ!

       

       …

       

       빠밤ㅡ!

       

       그렇게 체감상 거의 열 번 조금 넘겼을 무렵.

       

       빠밤ㅡ!

       

       《’알랜시아’가 D등급 ‘삐걱거리는 활’ 제작이 가능해졌습니다!》

       

       메시지의 구석에 나타난 작은 케넬름이 팡파레를 터뜨리며 나를 축하했다.

       

       

       

       

       

       *****

       

       

       

       

       

       “…”

       

       “…”

       

       성지에 적막이 감돌았다. 적어도 드워프들과 알랜시아는 그랬다.

       

       “하하하-! 내 머릿속에, 머릿속에 뭔가 나타나고 있어!”

       

       “더 힘차게 노래 부르자! 여섯 번째 신의 위대한 은총이 우리를 향하고 있잖아!”

       

       엘프들은 더욱 힘차게 노래 부르며 좀 더 빠르게 황금 나무의 주변을 돌고 있었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그려졌던 하나의 형상. 나뭇가지를 구부리고 갈고 이리저리 꼬아서 길게 늘이고 연결한다. 그리하여 활의 형상이 된다.

       

       위대하신 분은 엘프들에게 활을 만들라 하셨다. 그것을 원하고 계셨다.

       

       그분의 종된 입장에서는 당장이라도 움직여서 활을 만들어 바쳐야 함이 마땅했지만ㅡ

       

       “이, 이건… 이건 못 만들어요…”

       

       알랜시아가 울먹이며 말했다. 머릿속에 떠오른 모습을 보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의지와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만들 줄 몰랐다.

       

       엘프의 발이 나무 위에 묶이고, 활시위를 당기지 못하게 된 이후로 까마득한 세월이 흘렀다. 당장 알랜시아만 하더라도 활을 쏘아 본 적이 없으며, 그녀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엘프들은 작은 새싹이 자라나 거대한 고목이 되고, 그 고목이 썩어 쓰러진 자리에서 다시 새싹이 자라는 걸 볼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살았다.

       

       그리고 그만큼의 시간에서 쏘지도 못하는 활은 먼지 쌓인 장식품,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너무나 길고 긴 시간 속에서 다루지도 못하는 활의 사용법과 제작법이 점차 잊히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

       

       그제야 심각한 분위기를 읽은 엘프들은 황금 나무를 돌다가 슬그머니 멈춰서 고개를 숙였고, 풀을 뜯어 먹던 엘프도 똑바로 일어나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그중에서 가장 고개를 들 수 없는 건, 다름 아닌 알랜시아 본인.

       

       밀려오는 수치심, 부끄러움, 자괴감, 후회…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높은 파도처럼 밀려와 그녀를 휩쓸었다. 마음 같아서는 혀라고 깨물고 죽고 싶은 심정이다.

       

       “그, 어- 뭐냐. 허…”

       

       생전 처음 겪어보는 일에 오푸스 팔락도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뭐라고 위로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한 번 보면 자연스럽게 따라 만들 수 있었고, 이것은 드워프들에게 숨을 쉬고 맥주를 마시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그냥 하니까 되는 것인데, 왜 알랜시아는 못 한단 말인가?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졌다. 

       

       침묵도 잠시, 위대하신 분께서는 그들에게 한 번 더 활의 형상을 보여주셨다. 머릿속에 속속들이 떠오르는 나뭇가지와 활의 형상.

       

       “…모르겠어요…”

       

       알랜시아가 터질 듯 붉어진 얼굴로 기어가듯 말했다. 두 번 봤더니 조금은 알 것 같지만, 만들어 보라고 한다면… 아직은 자신이 없다.

       

       한번 더 머리속에 나타나는 활의 형상.

       

       “…하, 한 번만 더…”

       

       한 번 더.

       

       “…진짜 마지막으로 보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다시.

       

       …

       

       그렇게 대략 열 몇 번째의 활이 머릿속에 떠오를 때.

       

       알랜시아가 힘차게 외쳤다.

       

       “아, 아아!! 이제 알 것 같아요!”

       

       비로소 알겠다는 표정. 목구멍을 꽉 막고 있던 무언가가 탁- 터졌을 때의 쾌감과도 비슷했다.

       

       실제로 알랜시아는 더없는 황홀경을 겪고 있었다. 머릿속에 속속들이 새겨지는 활의 모든 것. 그녀가 모르고 있던 지식과 지혜가 샘솟는다.

       

       활을 다루고 관리하는 방법, 바람의 흐름을 읽고 계산하는 법, 속사와 곡사의 방법, 활을 만들 때 목재를 다루는 방법… 활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머리에 새겨진다.

       

       이것은 그녀의 선조들이 누렸던 지식. 그리고 마땅히 되찾아야 하는 엘프들의 본질.

       

       “자, 어서 가시죠! 제가 엘프의 활이 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알랜시아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와 함께 씩씩한 걸음으로 활 공방에 들어갔다.

       

       그녀의 손은 당장이라도 활을 만들고 싶다는 듯,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얼큰한 김치찌개처럼 밥도둑 그 자체인 후원!! 감사합니다!!! 노동…법?? 그런 게 필요할까요? 노동이 자유롭고, 휴식이 자유롭지 못한 이 곳은 노동자들의 락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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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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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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