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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7

       

       

       

       

       

       “오셨습니까! 레키온 단장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데보라 부단장님도 고생하셨습니다!”

       

       레키온과 데보라가 성에 돌아오자 주둔지 병사들은 경계 근무 중인 인원들을 제외하고 전부 달려 나와 그들을 맞이했다. 

       

       레키온은 그간 하무트교의 지부와 산하 세력들을 무찌르고 그들이 행했던 악행을 낱낱이 밝혀 낸 공로로 작은 기사단의 단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항상 레키온의 옆에서 그를 도와 온 데보라 역시 부단장으로 임명되었다. 

       

       아직 황실 기사단의 기사단장이 되려면 멀긴 했지만, 이미 평민 출신으로 견습 기사, 정식 기사를 거쳐 기사단장까지 온 것만 해도 엄청난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특히 이렇게 단시간에 견습 기사부터 기사단장까지 온 경우는 카란트라 제국의 역사를 뒤져 봐도 거의 없었다. 

       

       천 년에 한 번 나타날까말까 하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용사.

       

       그가 하무트교를 처단하고 사람들을 구하기 시작하자, 이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진짜 ‘용사’라고 부르고 있었다. 

       

       “하하, 별것 아니야. 제국을 위해, 아니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지.”

       

       레키온은 짐가방에서 커다랗고 투명한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에는 불길한 자줏빛 표지의 낡은 책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건…!”

       

       레키온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하무트교가 악마의 사주를 받아, 아니 정확히는 악마를 숭배하여 지금까지 악행을 저질렀다는 증거가 될 책이야. 놈들이 증거 인멸을 시도하기 전에 겨우 손에 넣었지.”

       

       겉보기엔 평범한 유리병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유리병은 황실에서 제공 받은 고가의 아티팩트로, 안에 든 것을 마법이나 여타 불가사의한 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죽기 직전까지도 손가락을 튕겨서 이걸 불사르려고 하더라고. 이런 일이 있으면 즉시 없앨 수 있도록 역시 미리 장치나 마법을 걸어 둔 모양이야.”

       “그렇군요. 역시 레키온 님이십니다!”

       “사실 이번 일에서는 나보다 데비의 공이 컸지. 이걸 직접 아티팩트에 가둔 게 데비니까.”

       

       레키온은 데보라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뭐, 뭐야. 갑자기? 기회는 전부 네가 만들어 놓고 나는 틈을 봐서 아티팩트를 쓴 것밖에 없는데.”

       “무슨 소리야. 애초에 혼자 혹은 둘이서만 가야 되는 잠입 임무였는데 네가 나랑 같이 가 준 것만으로도 네 공이 절반 이상은 되지. 이번에도 정말 고생 많았어, 데비.”

       

       레키온의 다정한 말에 데보라는 빨개진 얼굴을 홱 돌렸다. 

       

       “그,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내 공으로 하지 뭐! 그래, 네 말대로 다 내 공이다. 그럼 난 쉬러 간다!”

       “그래, 네 공이야. 아 참, 데비!”

       

       레키온은 황급히 자리를 뜨려는 데비를 불러 세웠다. 

       

       “또 왜?”

       “이제 위치를 알고 있는 지부는 다 처리했기도 하고, 이 증거를 황실에 보내서 검증 받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어차피 스케줄 없으니까 좀 쉬다 올래?”

       “쉬, 쉬다 오자고?”

       

       그 말에 데보라의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

       

       “둘이?”

       

       그러자 레키온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남아서 처리할 서류가 있거든. 그래도 너 휴가 보내 줄 정도의 여유는 나니까 다녀오라는 거지.”

       “아….”

       

       데보라의 얼굴이 원래 색을 되찾았다. 

       

       “됐어. 너 혼자 서류 작업 한다는 소리잖아. 나도 같이 할게.”

       

       하지만 레키온은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나는 정말 괜찮아. 그리고 데비, 너 할머니가 기사 하는 거 걱정한다고 하지 않았어? 가끔씩은 찾아 뵙고 해야지.”

       “가끔 찾아 뵙고 있거든?”

       “너 휴가 안 간 지 며칠 됐는지 내가 다 아는데 무슨 소리야. 어쨌든 너 휴가 처리 해놓을 테니까 편하게 쉬다 와. 이건 기사단장으로서 하는 지시야.”

       

       레키온이 단호하게 말하자, 데보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너도 그…. 너무 일 다 해치워 놓지 말고 내가 할 것도 좀 남기고 그래. 갔다 와서 할 일이 있어야지, 나도.”

       “알았어, 알았어.”

       “올 때 기념품만 사 와. 무슨 뜻인지 알지?”

       

       레키온은 데보라를 보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

       

       데보라는 그 길로 휴가를 떠났다. 

       

       ‘얼마 만의 휴가인지…. 이젠 쉬는 게 더 어색하네.’

       

       정의감 넘치는, 그리고 재능 넘치는 레키온의 옆에 있는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뭐든 자신이 해야 하는 정의로운 일이 있으면 손해를 보더라도 나서서 해야 하는 레키온의 옆에서 데보라는 그 손해를 최소한으로 줄여 주는 역할을 했다. 

       

       ‘사실 제일 힘든 건 실력 따라가는 거지만.’

       

       레키온의 미친 재능을 따라잡고, 그의 옆에 당당히 서기 위해서 데보라는 피 나는 수련을 해야 했다. 

       

       ‘그래도 점점 차이가 벌어지는 게 참…. 하하.’

       

       순수한 검술 실력 자체는 어떻게든 크게 뒤처지지 않게 수련할 수 있었다.

       

       다행히 데보라 역시 검술에 대한 재능만큼은 어디 가서 천재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있는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마나, 즉 오러를 다루는 능력이나 오러 자체의 순도, 밀도 등은 레키온의 성취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뭐, 어차피 나 말고 누가 와도 레키온의 성장 속도를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리고 레키온의 성격대로라면 데보라가 지금보다 경지가 떨어지고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데보라를 내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레키온을 지켜봐 온 데보라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안일한 마음가짐으로 옆에 있을 수는 없지.’

       

       그렇게 부족한 모습으로 레키온의 옆에 서는 것을 데보라 자신이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데보라는 더더욱 열심히 수련에 임했다.

       

       덜그럭, 덜그럭.

       

       ‘…평화가 적응이 안 돼.’

       

       데보라는 결국 흔들리는 마차 속에서도 마나를 컨트롤하는 연습을 했다. 

       

       그렇게 며칠 뒤. 

       대륙 동부에서 남부를 향해 달리던 마차는 작은 마을에서 멈추었다.

       

       이 마을은 데보라의 유일한 가족, 할머니가 사는 마을이었다. 

       

       피가 이어진 할머니는 아니었다. 

       데보라는 고아원에서 자라 가족이라고 부를 사람이 없었으니까. 

       

       한편 레키온은 그나마 어렸을 때에는 부모님이 계셨지만, 아버지가 매일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렸으며 그를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집을 나갔다. 

       

       듣기로는 레키온이 기사가 된다고 할 때 아버지가 ‘그래, 넌 가서 기사나 해서 번 돈 좀 나한테 보내 줘라. 지금까지 내가 키워 준 값을 해야 할 거 아니야?’라고 하면서 기사단에 보내 줬다고 들었다. 

       

       착한 레키온은 기사가 되고 정말로 아버지에게 돈을 꼬박꼬박 보냈고, 아버지는 그 돈으로 더 진탕 술을 마시고 돌아다니다가 실족사를 했다.

       

       레키온은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에 매우 슬퍼했다.

       

       어머니는 레키온이 정보부 암살자인 알렉스한테 부탁까지 해서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알 수 없는 걸로 보아 집을 나가고 오래지 않아 사망한 것으로 추측되었다. 

       

       레키온이 데보라한테만 휴가를 준 것도, 자기는 어차피 볼 가족이 없으니 할머니가 있는 데보라에게 뵙고 오라는 뜻에서 준 것이었다. 

       

       ‘레키온, 이 착해빠진 녀석 같으니라고.’

       

       데보라는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가 하고 있는 가게로 찾아갔다. 

       

       <마글렛의 인형 가게>

       

       “진짜 오랜만에 오네.”

       

       데보라가 어렸을 때 인형을 팔아 데보라를 먹여 살렸을 정도로 솜씨가 좋은 할머니는 결국 이런 작은 마을에 인형 가게를 차렸다. 

       

       데보라는 문을 열며 외쳤다. 

       

       “할머니! 저 왔어요!”

       

       그 말에 안쪽에서 곧바로 의자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구, 우리 손녀딸 왔어?”

       “네,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이에요.”

       “홀홀홀. 우리 손녀는 어쩌다 이렇게 반쪽이 됐어. 어서 이리 들어오려무나. 안 그래도 지금 치킨을 싸게 팔길래 좀 많이 사 왔는데, 잘 됐구나.”

       “저 살 쪘는데….”

       

       올 때마다 반쪽이 됐다고 뭐라도 사 먹이려는 할머니를 보니 데보라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와, 치킨도 그렇고 왜 이렇게 진수성찬이에요?”

       “이 할미가 다 손녀딸 올 거 알고 미리 사 왔지.”

       “에이, 진짜로요. 할머니 저번엔 손님 별로 없는 시기라고 제가 돈 보내 드려도 혼자 계실 땐 엄청 아껴 쓰셨잖아요. 지난번 왔을 때 샌드위치 하나 드시고 있었던 거 다 기억하는데. 웬일이에요?”

       

       안 그래도 인사만 하고 빨리 할머니 모시고 나가서 외식을 시켜 드리려고 했던 데보라는 마음 놓고 치킨을 뜯으며 물었다.

       

       “홀홀. 사실은 말이다, 최근에 온 손님들이 인형도 사 가고 가장 비싼 원단도 주문을 해 가지고 돈을 좀 많이 받았어.”

       “오, 진짜요?”

       

       데보라는 바깥쪽을 내다보았다. 

       

       “어! 그러고 보니 그 비싼 곰탱이 인형 누가 사 갔네요?”

       

       70실버짜리라 아무도 안 사 갈 것 같은 커다란 곰 인형이 진열되어 있던 걸 기억하고 있는 데보라가 눈을 크게 떴다.

        

       “홀홀. 그렇단다. 아주 귀여운 사역마를 데려 온 부부 손님이었는데, 그 사역마를 모델로 해서 인형을 만들고 싶다면서 원단을 가장 비싼 걸로 주문했지. 마지막엔 곰 인형까지 사 가면서 3골드나 주고 가더구나. 허허.”

       “3골드를요?”

       

       인형 가게에서 턱턱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아니, 그거 위조 화폐 아니에요?”

       “홀홀홀. 확실한 금화였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단다. 덕분에 요즘에는 풍족하게 생활하고 있고, 원단 걱정 없이 인형도 만들고 있단다.”

       “다행이네요. 정말 잘됐어요.”

       “이 할미가 열심히 인형을 만들고 있으니 귀인이 찾아온 게지. 홀홀.”

       

       할머니와 데보라는 맛있게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사를 마친 데보라는 일어나서 진열대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곰인형이 있던 자리에 놓인 웬 와이번 인형을 집어 들었다. 

       

       “이거예요? 아까 그 사역마 어쩌고 하던.”

       “홀홀. 그렇단다. 사 갈 건 직접 만들겠다고 해서 내가 시범으로 만든 인형을 거기에 진열해 두었단다. 이름이 아르라고 했던가. 참 귀여운 아이였지.”

       

       데보라는 집어 든 인형을 관찰했다. 

       뭉툭하게 튀어나온 입, 똘망한 붉은 눈동자. 뚠뚠한 배. 짧뚱한 팔다리와 손바닥, 발바닥에 있는 핑크색 젤리. 그리고 통통한 꼬리까지.

       

       ‘…이거 완전 레키온 취향인데.’

       

       -올 때 기념품만 사 와. 무슨 뜻인지 알지?

       

       데보라는 레키온이 마지막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레키온도 데보라의 할머니가 인형 가게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귀여운 인형이 있으면 사 오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을 것이다. 

       

       ‘뭐가 귀여운 거고 뭐가 안 귀여운 건지 잘 모르겠어서 할머니한테 추천 좀 받으려 했는데.’

       

       아무래도 추천을 받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할머니, 나 이거 사 갈게요.”

       “어이구. 귀여운 거 모르는 우리 손녀가 웬일이야?”

       “…친구 선물 주려고요.”

       “홀홀. 그래, 그때 말했던 남자친구?”

       “나, 남자친구 아니라니까요!”

       “그려, 그려. 홀홀홀. 아직 사이가 좋은가 보구나.”

       

       할머니는 흐뭇한 표정으로 인형을 들고 있는 데보라를 바라보았다.

       

       “우리 손녀가 사 가면 아르 인형을 또 새로 하나 만들어서 진열해 둬야겠구나. 아무래도 행운을 부르는 인형인 모양이니. 홀홀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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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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