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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7

       창문 하나 없어 빛이 들지 않는 침실.

       

       아니, 침실로 위장한 감옥. 나는 여기에 갇혀있다. 그것도 탈출은 꿈도 꾸지 못할 만큼 힘이 빠진 상태로.

       

       “…….”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아무리 한 번 도망을 쳐서 신뢰가 무너졌다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절대 그녀의 곁을 떠날 수 없다.

       

       내 존재 자체가 프란체에게 귀속된 거니까.

       

       ‘뭔갈 준비하고 있나?’

       

       아까 철창 사이로 봤던 프란체의 얼굴이 묘하게 붉었다. 숨도 거칠었고. 내가 볼 땐 뭔갈 꾸미고 있는 거 같은데…….

       

       ‘모르겠다.’

       

       유추도 정보가 있어야 하지. 대화 상대도 없는데 뭘 어찌 하겠나. 나는 그냥 이불을 뒤집어 쓰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샹들리에 예쁘다.”

       

       새하얀 수정으로 이루어진 샹들리에가 반짝인다.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모양도 완벽하다.

       

       “음. 벽지도 멋있군.”

       

       일정 패턴으로 이뤄진 황토색의 벽지. 딱 봐도 여기가 귀족의 거처라는 고풍스러운 느낌을 준다.

       

       “…….”

       

       이게 사람이 미쳐가는 과정인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입을 벌린 채 정신을 놓고 있자니 들려오는 반가운 소리.

       

       덜컥.

         

       또각. 또각.

       

       누군가 이곳으로 들어왔다. 나는 서둘러 몸을 일으켜 문을 바라봤다. 창살 사이로 비춘 얼굴은 다름 아닌…….

       

       “잘 지내고 계신가요?”

       

       소미레였다.

       

       “…소미레.”

       “이젠 달리아라고 해요. 달리아 샤스타.”

       “이름을 바꾼 건가?”

       “네. 공작님께서 신분을 새로 만들어주셨거든요.”

       

       소미레… 아니, 달리아는 그리 말하고 쿡쿡거리며 웃었다.

       

       “정말 감금당하고 계실 줄은 몰랐네요.”

       “너는 혹시 이유를 알고 있나?”

       “모르죠? 저는 외부인이니까요.”

       

       하긴, 아무리 지금까지의 기억이 있다고 한들 내가 왜 갇혀있는지는 알 수 없겠지. 프란체가 알려줬을 거 같지도 않고.

       

       “공작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당신은 평범한 인간과는 다르니 또 어떠한 방법을 사용해서 자신을 벗어날 수도 있다고.”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떠날 이유가 어딨다고. 소미레는 눈썹을 들썩이곤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데 저는 다르게 생각한단 말이죠. 무언가 준비하고 계신 거 같아요.”

       

       내가 “준비?”하고 묻자 소미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확히는 모르겠네요. 아무튼, 당신에게 뭔가 큰일이 벌어질 거라는 건 알고 계세요.”

       

       그리 말하니 뭔가 불안하잖아…….

       

       “크흠, 그래서 찾아온 이유는? 우리 인연에 단순히 얼굴 보러 온 건 아닐 거 같은데.”

       

       내 물음에 달리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지금 공작저에 제2 황자… 아니지. 이젠 황제 폐하라고 해야 하나? 저를 알고 있는 사람이 방문했거든요.”

       

       아, 그 얘기인가. 그거라면 프란체에게 들었다. 공작저로 직접 온다고 했지.

       

       “그래서 피신할 겸 안전한 지하로 왔어요. 당신 심심할 거 뻔히 알아서 대화 상대도 해주러 왔고요.”

       

       싱긋 웃는 달리아. 저 얼굴을 보면 죄책감이 든다. 지금이 어찌 되었든 죄 없던 그녀를 고통 주고 죽였던 기억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생각해줘서 고맙군.”

       “아니에요.”

       

       철창 사이에서 달리아의 얼굴이 사라지고 드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계속 서 있을 순 없으니 앉아서 말할게요.”

       “마음대로.”

       

       굳이 대화 상대를 해주러 왔는데 누워서 말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작해야 침대에 걸터 앉는 게 전부지만.

       

       “정말 후회하지 않으시나요?”

       “후회?”

       

       갑자기 뭔 소릴 하는 건지. 지나간 얘기 아니었나?

       

       “이 세계의 사람은 여신님의 뜻으로 끝없는 윤회를 반복하죠. 물론, 기억은 잊힌 채요.”

       

       그런데, 하며 말을 잇는 달리아.

       

       “당신은 달라요. 기억은 유지되고 윤회하지 않죠. 공작님의 소환수로서 끝도 없이 곁에 있을 뿐.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나요?”

       

       당연히 알고 있다. 라드리엔이 받았던 저주와 비슷한 맥락이잖나. 나는 그녀의 소환수 같은 존재가 되어 주변을 끝도 없이 맴돈다.

       

       내가 프란체와 같이 있기 위해, 프란체의 욕심으로 인해 저주 그 자체가 된 것이다.

       

       “알다마다.”

       “…이건 가볍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에요.”

       

       드르륵, 의자에서 일어난 건지 철창 사이로 달리아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진중한 시선을 보냈다.

       

       “정신력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인간을 초월한 존재라 한들 사람인 이상 마모되기 마련이에요.”

       

       그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악령이라도 된다는 소리인가?”

       “그럴 수도 있다는 거죠.”

       “좋은 말은 아닌데.”

       “주의하는 거예요.”

       

       솔직히 말하자면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아니다. 그 라드리엔도 정신이 버티지 못해서 천체 마법에 그토록 매달렸던 거잖나.

       

       나는 그녀와 다르게 해방이 없는 셈이다.

       

       “제가 이렇게 만들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정말 죄송하지만, 저는 솔직히 걱정이 더 크네요. 당시에는 시간도 없었고, 저도 감정적으로 변해 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달리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네?”

       

       내 대답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눈썹을 일그러트린 채 눈을 동그랗게 뜨는 달리아. 나는 픽 웃었다.

       

       “변하지 않으면 마모되는 건 사실이지. 그런데 네가 놓친 게 하나 있어.”

       

       달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놓친 거요?”하고 되물었다.

       

       “라드리엔과 다르게 나는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점. 내가 변하지 않더라도 처한 환경이 변하고 시대가 변해. 프란체도 매번 달라지겠지. 내가 새롭지 않아도 주변이 새롭잖아?”

       

       눈을 얕게 뜬 채 나는 째려보는 달리아.

       

       “말은 잘 하시네요.”

       “틀린 말은 아니니까.”

       

       달리아는 한동안 철창 사이로 내 얼굴을 지켜보더니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알겠어요. 이 이상으로 쓸데없는 오지랖은 부리지 않을게요. 후회도 없다고 하셨으니.”

       

       한숨까지 내쉰 달리아는 다시 의자에 앉았는지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대답은 들었으니 됐어요. 이제 가볼게요.”

       “…가는 건가?”

       “아쉬우세요?”

       “그렇지 않다면 거짓말이지.”

       “많이 심심하신가 보네요.”

       

       피식 웃는 달리아. 웃음이 나오나? 이런 곳에서 혼자 있으면 진짜 미쳐버릴 거 같다고.

       

       “그래요. 어차피 오늘 하루는 숨어있어야 할 거 같으니 더 있을게요. 곧 케일 씨도 오실 테고.”

       

       다행이다. 다시 천장이랑 벽지 패턴 분석해야 하는 줄 알았잖아.

       

       “뭐 더 말씀하시고 싶으신 건 없으신가요? 대화 주제가 떨어져가는데.”

       

       확실히 그렇긴 하다. 내가 달리아와 친분이나 인연이 있던 게 아니니…….

       

       “부탁할 건 있네.”

       “뭔가요?”

       “공작님께서 뭘 하시려는지 알아─”

       “안 돼요.”

       

       단호한 그녀의 목소리가 내 말을 끊었다.

       

       “공작님께서는 저를 은인이라고 하시지만, 외부인인 건 다름이 없어요.”

       “그래도 조사 정도는 해줄 수 있잖나. 이대로 있으면 불안하다고.”

       

       하아, 창살 틈으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거라면 모를까, 당신과 관련된 문제에는 절대 엮이지 않을 거예요. 저도 생각이란 걸 할 줄 아니까요.”

       

       매정하군…….

       

       “그래도 당신 마음은 이해해요. 근데 어쩌겠어요? 다들 말하는 거 보니 당신의 업보라던데. 그냥 얌전히 받아들이세요.”

       

       남의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마른세수로 얼굴을 쓸어넘겼다.

       

       ‘다 끝인 줄 알았는데,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 * *

       

       

       데카르트 공작저의 정문.

       

       제국의 문양이 새겨진 화려한 마차가 황실 기사단의 호위를 받으며 입장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척! 공작가의 기사단이 검집으로 땅을 찍으며 웅장한 소리를 내었다.

       

       이어 마차가 멈추고, 황실 기사단장이 마차의 문을 열자 새로운 황제, 라자 페델리안과 제국의 재상이 내렸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반갑군, 데카르트 공작.”

       

       프란체는 황실 예법으로 인사한 뒤 라자와 시선을 마주했다.

       

       눈 밑이 시커멓고 퀭한 얼굴에서 피곤함이 엿보인다. 아무래도 밀린 일 처리와 제국의 혼란을 잠재우느라 고생을 많이 했나 보다.

       

       “일이 바쁘셨을 텐데 공작령까지 직접 방문하게 만들어 송구할 따름입니다.”

       “아닐세. 그간의 일이 있었으니 내가 찾아오는 게 도리에 맞지.”

       

       라자는 꽉 막힌 사람은 아니었다. 언제나 권위보단 효율을 중시했으니.

       

       “공작과 할 얘기가 많군. 어서 들어가지.”

       “그럼 응접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라자와 프란체를 중심으로 주변에 사용인들과 기사단장이 붙었다. 그에 라자는 뒤를 돌아보며 손을 내저었다.

       

       “그대는 기사들과 쉬고 있게.”

       “예? 하지만…….”

       “공작저인데 별일이야 있겠나?”

       “…명, 받들겠습니다.”

       

       황실 기사단장은 고개를 숙인 뒤 뒤로 물러섰다. 그렇게 응접실에 도착하고.

       

       “헬레나? 차를 부탁해.”

       “네…!”

       

       황제를 봐서 잔뜩 긴장한 헬레나가 다기를 준비했다. 차를 우리고 잔에 따른 뒤 은수저를 사용해 검사까지. 연습한 성과가 있던 완벽한 응접이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제국의 안위에 대한 문제인데.”

       

       라자는 미간을 팍 찡그린 채 테이블에 팔을 걸었다.

       

       “초월 마법사와 성녀를 동시에 잃었네. 의도치 않게 공작에게 피해도 끼쳤고 말이야. 염치가 없지만, 제국을 위해 공작에게 의지해야 할 것 같네. 괜찮겠나?”

       

       정중한 물음이었다. 제국을 지키기 위해선 데카르트의 도움이 필수니 말이다.

       

       “물론입니다. 어떤 걸 원하시는지요?”

       

       라자는 재상에게 눈짓해 서류들을 받았다.

       

       “우선 군사적 문제일세. 제국은 초월 마법사와 성녀를 잃어서 큰 타격을 입었지. 이미 타국에서 이 정보를 듣고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르네.”

       

       지금으로서 가장 큰 숙제다.

       

       “그거라면 문제없습니다. 데카르트 마탑이 건재하고, 초월 마법사인 수석 교수 카자르 유플레인이 있으니까요.”

       

       프란체는 또한, 하며 말을 이었다.

       

       “기사들에게 양산형 마도 무구가 배치될 예정입니다.”

       

       라자는 “마도 무구…?”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마탑에서 개발한 특별한 무구입니다. 검과 지팡이에 마법식을 새기고, 마석의 마력을 이용하는 것이지요. 이러면 평범한 사람도 하급 마법사 수준이 될 겁니다.”

       

       그 말에 눈이 휘둥그레진 라자.

       

       “…그게 사실이라면 제국은 전보다 강력해진 걸 수도 있겠군.”

       

       전력이 단번에 압도적으로 상승했다. 거기에 라드리엔의 대체자, 카자르 유플레인도 존재하니.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데카르트에는 진 바렌베르크가 있습니다.”

       

       라자는 아, 하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대의 호위가 진 바렌베르크였지.”

       

       진 바렌베르크. 이름만 들어도 그 압도적인 제국이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존재. 전쟁이 일어났던 날, 그가 인질을 무시하고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골치깨나 아팠을 거다.

       

       “그를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나?”

       “그렇습니다.”

       “호오…….”

       

       천천히 고개를 주억이는 라자. 프란체는 진에게 배운 대로 거래를 시도했다.

       

       “그래서 폐하께 요청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엇인가?”

       “바렌베르크의 지방 세력 편입입니다.”

       

       바렌베르크의 편입. 원래라면 전쟁이 끝난 날부터 이행되어야 했지만, 진 바렌베르크를 극도로 싫어하는 레제프 때문에 막힌 안건이다.

       

       “그의 호감을 얻자는 생각인가? 그거라면 문제없네. 어차피 해야했던 일이었으니. 그럼 왕족이었던 진 바렌베르크에게 작위를 내려야겠군.”

       

       작위라는 말에 프란체는 속으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강대한 지방 세력의 왕족이니 후작위가 내려지겠지. 그럼 혼인에도 차질이 없을─

       

       “진 바렌베르크와 황녀 레일리아의 정략혼도 괜찮겠군. 황실에 묶어둘 수 있으니 말이야.”

       

       행복한 망상을 이어가던 프란체의 눈이, 라자의 말 한마디에 뒤집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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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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