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167

        

       저질렀다. 혁기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시원한 감정도 들었다. 이 감정을 모른 척 하며 흑묘와 즐겁게 낙양 관광을 즐기는 지금의 상황 자체에 혁기린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뭐, 선배가 좋은 사람이긴 하지요.”

         

       흑묘는 아직 혁기린이 말하는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는지 찻잔을 입에 가져가며 가볍게 대꾸했다. 혁기린이 호천안을 좋아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 그런 흑묘의 모습에 혁기린은 강한 죄책감을 느꼈다.

         

       혁기린은 용기를 짜내 입을 열었다.

         

       “하, 한명의 여자로서…호 무사님을 마음에 품었다는…말입니다.”

         

       흑묘의 눈이 커지는 것을 보며 혁기린은 흑묘의 시선을 피했다.

         

       두 사람만을 위한 다실에서는 침묵만이 맴돌았다.

         

       혁기린은 평소부터 흑묘를 고양이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때로는 엉뚱한 모습을 보이고 호기심이 들면 집요하게 파고들고 가끔 바보 같은 짓이나 순수한 모습을 보여도 도도하고 아름다운 외관과 어우러지는 모습은 영락없는 고양이 그 자체였다.

         

       그런 흑묘가 고요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늘 호감 가는 미소와 태평하며 나른한 모습이 사라진 흑묘의 모습은 위협적이었다.

         

       고양이는 어디까지나 작은 맹수. 사냥감을 발견했다는 듯이 감정을 배제하고 투명한 눈길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는 흑묘의 시선에 혁기린은 마른침을 삼켰다.

         

       “깨달음을 받았기 때문인가요?”

         

       “그것만은…아닙니다.”

         

       혁기린은 호천안을 떠올렸다. 호천안에게 감정이 있다는 것은 유경의 주책으로 자각했지만 정작 어느 순간 반했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없었으니까.

         

       “그저…그래요. 제 처지가 얼마나 복잡한지는 이제 흑묘님도 잘 아시겠지요. 황실 혈통에 가문에는 문제가 있으며 남장 여자에 무림인이기도 하지요.”

       

       말로는 내뱉어 본 적이 없는 고민에 혁기린은 좀 더 자신의 마음이 구체화되는 것을 느꼈다.

         

       “이런 저라도 어쩌면 호 무사님이라면 받아주실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제 가문 사정이 아무리 복잡하고 어떤 문제가 산재해 있더라도 호 무사님이라면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함께해 줄 것이라고…”

         

       “그렇군요.”

         

       흑묘는 길게 아주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혁기린과의 인연은 짧지 않았다. 그리고 그 밀도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사천성에서 호위 의뢰가 시작된 이후 거의 매일같이 얼굴을 보고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점창파까지 가는 길에는 마차에서 종일 이야기꽃을 피웠고 점창파에서도 거의 하루 종일 붙어 있었으며 이 황도에 오늘 길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혁기린에게 호천안을 좋아한다고 직접 말한 적은 없었지만 그 감정을 숨긴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호천안에게 특별한 감정이 있다고 말하니 당연히 충격적일 수밖에는 없었다.

         

       흑묘에게 있어 혁기린은 아주 특별한 사람이었다.

         

       태음기는 남성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기운은 아니었다. 흑묘가 태음기를 흩뿌리는 것은 하나의 현상이었고 누구나 평등하게 영향을 받았다.

         

       그저 남성에게 극적인 효과가 나타났을 뿐.

         

       남성이 태음기에 홀리듯이 여성 역시 태음기에 적대감을 나타내곤 했다. 물론 남성만큼 극적인 효과는 없었기에 여성들과는 적당하게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경우가 많기는 했지만 정말 거리감 없이 친밀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친구…’

         

       혁기린은 흑묘가 처음으로 사귄 동성 친구라 할 수 있었다. 양의 기운을 뿜어내는 황실의 기진이보와 초절정이라는 경지. 두 가지 요소로 인해 태음기를 극복하고 흑묘 자체를 봐 줄 수 있는 사람.

         

       무엇보다 흑묘는 혁기린에게 동질감을 품고 있었다. 태음기를 지니고 있기에 고생하는 흑묘는 남장여자로서 무림을 살아가는 사연을 지닌 혁기린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가까운 사람 하나 없었던 흑묘가 혁기린에게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하필이면 호천안을 좋아한다 말하다니.

         

       흑묘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처음으로 접하는 감정들이 마음 속에서 샘솟았다.

         

       “왜 그걸 지금 말하는 걸까요. 호 선배를 좋아한다고 해도 곧 폐관에 든 척 황실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헤어질 것 아니였나요? 혹시 그것도 거짓말인가요.”

         

       “아닙니다! 정말로 폐관에 든 척 하고 본래의 신분으로 돌아가 이런 저런 일을 처리할 겁니다. 그 과정에서 흑묘 소저와 호 무사님과도 헤어져야 하겠지요…”

         

       “만약 그렇다면 헤어지는 마지막 날 말해도 괜찮을 이야기였잖아요?”

         

       “처음에는 그리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쉽지 않더군요. 모른 척 하고 흑묘 소저와 웃고 떠들고는 마지막 날에 그리 한다는 것이..”

         

       혁기린은 쓰게 웃었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닌가 봅니다.”

         

       요령없는 사람. 흑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요령이 없는 것이 아니다. 흑묘가 여태 보아온 혁기린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이득과 편안함보다 양심과 흑묘의 마음을 더 중하게 여길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런 애매한 자리에서 어설프게 심경을 고백했겠지.

         

       혁기린의 그런 마음을 생각하니 흑묘는 더욱더 심경이 복잡해졌다.

         

       차라리 속 시원하게 화를 낼 수 있었다면 지금의 감정이 정리될 수 있었을까.

         

       ‘나는…어떻게 해야 하지..?’

         

       흑묘는 진심으로 혼란스러웠다. 평생을 고독하게 살아오다가 간신히 몇 달 전 마음을 열기 시작한 흑묘에게 있어 지금의 사태는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흑묘는 그저 혼란스러웠고 혁기린은 그저 죄스러웠다.

         

       혁기린은 바닥을 보았고 흑묘는 그런 혁기린을 바라보며 망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

         

       “실례합니다. 어느 무인 분이 두 분을 찾고 계신 것 같습니다만.”

         

       그런 상황에서 호천안이 찾아왔다.

         

       *** ***

         

       호천안은 오만상을 찌푸렸다.

       

       금의위 제독 송창식의 태도가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매 시험마다 부적격자를 몰아 탈락시키는 일은 늘 있어왔을 것이고 그의 경험상 이번 시험에서 호천안의 부대가 합격할 확률은 거의 없다고 판단했을 일이었다. 그에게는 매 시험 있을 법한 일에 불과했다.

         

       “끄응.”

         

       호천안은 인상을 찡그렸다. 결국 원 역사에서는 플레이어가 특별히 건드리지 않는 이상 각자 제 갈길 찾아가는 자들. 송창식의 예상대로 그냥 금의위 시험에서 탈락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호천안은 걱정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저 드림팀이 환경과 상황이 조금 불리하다고 알아서 전복해 줄 것이라는 건 너무 낙관적인 생각이야.’

         

       그렇게 불안감에 시달리다보니 문득 호천안은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미래 지식을 가지고 있기에 아무도 이해 못할 불안감에 홀로 시달리고 있자니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그러니 그냥 쓸데없는 걱정은 집어 치우고 기분 전환이나 하기로 했다.

         

       어차피 며칠 여유가 있으니 내 부대에 대한 고민은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은 혁기린과 흑묘랑 낙양 관광이나 하자.

         

       고민은 미래의 내가 하겠지.

         

       호천안은 깔끔하게 다음날의 호천안에게 고민을 유기하고는 낙양 관광을 즐기기 위해서 업무가 빨리 끝나면 합류하기로 약속한 찻집으로 향해 혁기린과 흑묘를 찾았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침울한 안색으로 바닥을 보고 있는 혁기린.

         

       “….”

         

       그리고 서늘한 눈으로 호천안과 혁기린을 바라보는 흑묘. 호천안은 반사적으로 마른침을 꿀떡 삼켰다. 흑묘가 화를 내는 것은 많이 보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투정에 가까운 일이었지 이렇게 가라앉아 있는 모습은 처음 보았으니까.

         

       “뭐해요? 앉아요.”

         

       “어? 어…그럴까? 하하.”

         

       흑묘는 눈치를 살피며 찻잔에 차를 따르는 호천안을 바라보았다.

         

       하여간 잠깐 눈만 뗐다 하면 바로 사고였다. 사천성에서는 같이 날뛰었지만…애들 당과 줄 때 신이 나서 손기술을 부리더니 선사님들이 붙어버렸고 그렇게 또 선사님들 가르치면서 열을 올리다보니 깨달음까지 방출해버렸지.

         

       ‘그러더니 정신 못 차리고 황실에서도 사고를 쳐?’

         

       흑묘의 시선이 절로 날카로워졌고 호천안은 움찔했다. 사실 흑묘는 호천안이 황실에서 어떤 일을 벌였는지 듣고 나서 꽤 화가 났었다.

         

       만사가 잘 풀리기는 했지만 듣기만 해도 가슴 철렁한 부분이 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흑묘가 별다른 말 없이 넘어간 것은 그 대상이 혁기린이었기 때문이다.

         

       흑묘는 여일예를 돕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혁기린을 바라보며 돕고 싶다고 생각했다. 혁기린은 사람과 어울리지 않았던 외톨이 흑묘조차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황궁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혁기린을 도울 수 있는 것은 호천안 뿐이었고 호천안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테니 무리해서라도 나설 수밖에 없었을 일이었다.

         

       “정말…”

         

       흑묘는 눈에 힘을 풀고 의자에 기댔다. 입에서 긴 한숨이 절로 나왔다.

         

       호천안의 행동에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지만…이런 호천안이기에 함께 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저런 호천안이니 동료가 되어주고 화경에 오를 때까지 같이 노력해 주겠다 말하며 함께하는 즐거움을 알려주겠다 말해준 것이다.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할 답답한 상황에 흑묘는 바깥바람이라도 쐬고자 창문을 활짝 열었다. 이제는 제법 찬 기운이 도는 바람이 흑묘를 한번 스치고 지나가며 바깥의 소음이 들어왔다.

         

       흑묘는 바깥의 풍경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충동의 발현이었다.

         

       그러던 흑묘의 눈길이 어느 한 곳에 멈추었다.

         

       “자자! 돈 놓고 돈 먹기! 맞추면 두 배! 아무 잔에나 거시면 됩니다!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에요!”

         

       창문 밖, 어느 골목의 진입로에서 야바위 판을 벌이고 있는 자와 그런 야바위꾼을 둘러싸고 구경하고 있는 구경꾼들이 눈에 잡혔다.

         

       “도박.”

         

       “음?”

         

       흑묘의 중얼거림에 호천안이 움찔했다. 흑묘는 그런 호천안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손재주를 부리는 광경은 많이 보았지만…진짜 호천안이 도박판에 앉은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가.

         

       무공을 익힌 세월보다 도박을 익힌 세월이 더 긴 호천안이었다.

         

       “…어쩌면 그래서일지 모르겠군요.”

         

       무인으로서의 호천안은 많이 보았다. 그러나 도박사로서의 호천안은 어떤가. 그저 사람을 속이는 손재주를 부분부분 운용하는 것은 많이 보았지만 고작 그 정도를 보았다고 도박사로서의 진면목을 보았다 할 수 있는가.

         

       여일예에게 쫒길 때 영상루에서 큰 판을 벌였다는 소문은 접했다. 그리고 성락루에서 유지경의 재산을 털어먹었을 때도 결과만 보았다. 천상루에서 황실이 판 함정을 박살냈다는 사실 역시 듣기만 했다.

         

       흑묘는 생각했다.

         

       무인 호천안의 모습은 익히 안다 자부할 수 있지만 과연 도박사로서의 호천안 역시 안다 자부할 수 있는가.

         

       “혁기린 대협. 혹시 호 선배가 진짜 도박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요?”

         

       혁기린은 고개를 저었다. 혁기린이 본 호천안의 도박기술은 다 마술을 위한 응용에 불과했다.

         

       “흐응.”

         

       혁기린 역시 본 적이 없는가.

         

       흑묘는 도박사 호천안의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

         

       어쩐지 흑묘는 도박사로서의 호천안의 모습을 보는 것이 돌파구처럼 느껴졌다.

         

       정보를 다루는 자 특유의 직감인지 지금의 상태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발악인지 헝클어진 마음으로는 결론을 내릴 수 없었지만…손해볼 것 없는 일이였다. 어차피 지금 상태로 낙양 관광을 해 봐야 즐거울 리가 있겠는가. 말없이 객잔으로 돌아가 틀어 박혀 있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겠지.

         

       “가죠.”

         

       “그, 흠…어디를 말이냐?”

         

       호천안이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발을 빼려 했으나 흑묘는 단호하게 호천안의 뒷목을 잡았다.

         

       “도박장.”

         

       흑묘는 서늘한 기운이 섞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디 도박의 신 호천안의 진짜 실력 좀 한번 보여주시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갑분 도박!

    *필명을 ‘0382’에서 ‘검은주사위’로 변경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필명변경에 대해서 걱정해 주셨는데 신경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벨피아측과는 합의 하에 변경했으니 별다른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크리슴]님이 [30코인]을 후원해주셨네요.

    무언의 후원 잘 받았습니다. 0382가 아닌 검은주사위도 응원해 주세요!

    후원 감사합니다!

    [최신화]님이 [50코인]을 후원해주셨네요.

    캣파이트?! 흑묘가 싸우면 캣파이트지만 그 캣파이트가 말씀하신 그 캣파이트일것인가!

    후원 감사합니다!

    구와악 몇자 적다보니 업로드 시간이 넘었군요! 호다닥!

    다음화 보기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