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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7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기억은 막상 떠올리려고 하면 잘 떠오르지 않는 법이다. 예를 들어 출퇴근길에 교통카드를 제대로 찍었는지 찍지 않았는지, 내가 제대로 환승을 했었던 건지…… 그 모든 것 중 하나에 특이한 변화가 생기지 않는 이상, 자기도 모르게 반복적으로 그런 일을 하고 있게 되는 것이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똑같다.

        

       유독 특이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웃기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면, 그런 기억은 어쩌면 평생 추억으로 남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기억은 언제나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학교 친구라면 방학이 아닌 이상 매일 만나 대화하게 될 거고, 거기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닌 그저 일상의 대화도 섞여 있을 테니까.

        

       반복되고 반복되는 대화는 점차 다른 기억들 밑에 묻혀 천천히 잊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라에게 미안하게도—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기억도 그랬다.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복장을 보면 사라의 기억 안에서도 극히 ‘최근’으로 분류될만한 기억이었다.

        

       나와 대화를 나누는 사라는 어리고 작은 사라였지만,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이니까.

        

       기억을 바탕으로 한 공간에서 대화를 나눈 새로운 기억.

        

       “하아…….”

        

       내 무릎을 베고 누운 사라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 몸집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마치 어른들의 한숨을 힘껏 따라 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귀엽다.

        

       과거의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대로 자기 무릎 위의 사라의 머리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왜, 힘든 일이라도 있어?”

        

       그렇게 묻는 ‘나’의 목소리에는 웃음이 묻어나 왔으니까.

        

       “그냥. 이대로 계속 자고 싶어서.”

        

       “말이 자는 거지, 깨어있는 거나 다름없잖아.”

        

       “그래도 일어날 때는 개운하거든.”

        

       ‘나’의 말에, 과거의 사라가 입을 삐죽거렸다.

        

       그리고 갑자기 머리를 돌려 ‘나’를 올려다보는 자세로 바꾸고는,

        

       “내가 여기 있는 게 싫어?”

        

       그렇게 물어보는 것이다.

        

       “……아냐. 나도 같이 있는 게 좋아.”

        

       “정말? 진짜로?”

        

       어린아이의 몸이라서 성격도 다소 어려졌던 걸까, 아니면 사라는 그저 평소대로 말하고 있는데 몸이 어려서 그렇게 보였을 뿐일까.

        

       아니면 그저, 내 앞이라서 그런 솔직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걸까.

        

       마치 꼭 그렇게 확인이라도 받고 싶다는 듯, 사라는 몇 번이나 나에게 물어왔다.

        

       “정말로. 진짜로.”

        

       그 모습에 내가 웃으면서 대답하자, 사라는 환하게 웃었다.

        

       “진짜다? 약속했다? 평생 같이 있기로?”

        

       사라의 그 순수한 표정에,

        

       “……그래.”

        

       나도 웃으며 대답했다.

        

       아마 그렇게 노력하긴 했을 것이다.

        

       ……나와 사라는 이런 대화를 이미 몇 번이나 나누었기에, 나는 이때의 기억이 정확히 언제의 기억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동안 나는 사라에게 대답하면서, 사라가 나에게 몇 번이고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그만큼 불안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그랬다고 생각했다.

        

       몇 번이고 그러겠노라 대답하더라도, 그런 양어머니를 가진 사라의 시야에선 그 대답을 믿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지만.

        

       “……연기 진짜 못하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내가 중얼거린 것처럼, 사라를 바라보면서 대답하는 나의 미소는 굉장히 불안정했다.

        

       눈물을 쏟을 것 같다……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마치, 그 대답을 하는 것을 몹시 주저하는 듯, 그 말을 하기가 괴롭다는 듯, 표정을 몇 번이나 바꾼 뒤에야 사라에게 어색한 웃음을 웃어주는 것이다.

        

       “그러네. 하긴 나는 원래도 연기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어.”

        

       쓰게 중얼거린다.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사라를 불안하게 한 것은 주변 환경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나였다.

        

       사라에게 대답해주면서도, 사실상 매일같이 거짓말을 했고,

        

       동시에 그 거짓말을 제대로 숨기지도 못했다.

        

       그래서 사라는 매일같이 나에게 물었다.

        

       함께 있어 줄 거냐고.

        

       평생 같이 이어줄 거냐고.

        

       ……자기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줄 거냐고.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사라에게 확신을 주지 못했다.

        

       “…….”

        

       하지만, 그런데도.

        

       사라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기억’은, 나와의 이 대화들이었다.

        

       눈을 감고, 다시 집중한다.

        

       아직 사라를 찾지 못했다. 나는 사라를 찾아야 했다. 아직 사라에게 못다 한 말들이 있었으니까.

        

       *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비슷한 기억이 반복된다.

        

       어린 사라는 나를 만나서 이런저런 두서없는 이야기들을 건넸다.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 친구들과 나눈 평범한 나날들에 관한 이야기. 선도위원에게 괜히 지적받거나, 한가람 팀장에게 관심도 없는 주식 이야기를 들었던 얘기.

        

       학교 선생들은 오늘도 얼마나 개념이 없었고, 오늘도 모르는 학생들이 인사를 건넸고, 그래도 그중 몇 명의 얼굴 정도는 외웠다는 이야기.

        

       어두운 이야기는 없다.

        

       마치 나를 안심시켜주겠다는 듯, 사라는 언제나 밝은 이야기를 웃으며 건넸다.

        

       그 미소에 어둠은 없었다.

        

       그리고, 언제나 대화의 마지막은 사라의 애원으로 끝난다.

        

       나를 떠나지 말아줘.

        

       내 곁에 있어 줘.

        

       평생 같이 있자.

        

       그리고 나는, 언제나 그 말에 그러겠노라 대답했다.

        

       언제나 슬피 웃는 얼굴로.

        

       이 멍청이가.

        

       사라는 나에게 계속 말하면서 바랬다.

        

       내가 제대로 된 대답을 해주기를. 진심 어린 표정으로 나도 사라와 함께 있어 주기를 바란다고 말해주기를, 사라는 계속 기다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해주지 못했다.

        

       ……진짜 못났다.

        

       몇 번이고 자책하면서도, 나는 계속 사라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그리고, 마침내, 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사실, ‘한 방’이라고 표현하긴 했어도, 결국 내가 매일 보던 방과 다를 것이 없었다.

        

       혼자 지내기에는 너무 넓은 방. 사라의 유년기 대부분을 외롭게 지낸 그 방.

        

       ……내가 매일같이 사라를 만나던 방.

        

       그 방 안에, 지금의 나와 같은 모습의 사라가,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침대 위에 앉아있는 사라는 무릎에 얼굴을 완전히 묻고 있어서 그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

        

       이 사라는, 사라의 기억 속의 사라일까?

        

       아니면 내가 제대로 찾아온 걸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무 말 없이, 그 사라의 옆으로 다가간다.

        

       사라는 내가 가까이 가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무릎을 끌어안고 있을 뿐이었다.

        

       “사라야.”

        

       “…….”

        

       대답이 없다.

        

       혹시 이 사라도, 내가 찾고 있는 사라가 아닌 걸까? 사라의 기억 속의 사라인 걸까?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방의 구조는 내가 알고 있는 최근의 방의 구조였다. 침대가 두 개 있고, 소희가 쓰는 옷걸이가 있는 그 구조. 다만 주변에 친구들이 없었다.

        

       최근의 사라라면, 분명히 친구들이 같이 있어야 했는데.

        

       그러니까, 여기는 사라가 구현한 의식 속의 장소.

        

       그리고 여기 앉아있는 사라는, 내가 찾던 ‘사라’였다.

        

       나는 사라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침대는 내 기억 속처럼 푹신했다. 내가 사라 옆에 앉아도 사라의 몸이 내 쪽으로 기울어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

        

       한동안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찮아? 같은 말은 묻지 않는다. 사라가 괜찮을 리가 없으니까.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사라는 최나경에게 납치당한 뒤였다.

        

       그러니까 무서웠겠지. 내 시점에서도 아주 무서웠으니, 사라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엄청나게 무서웠을 것이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라였지만, 나는 끈덕지게 기다렸다.

        

       내가 지금 사라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기에.

        

       “……내가 다 망쳤어.”

        

       한참을 침묵하던 사라가 입을 열어 제일 먼저 꺼낸 말은 그것이었다.

        

       “망치다니?”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 여자가 원하는 것이 뭔지 몰랐으니까. 내 멋대로 판단하고, 재단하고, 결과적으로는 다 틀렸어. 내 생각이랑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일이 터졌어.”

        

       “…….”

        

       사라에게 뭐라고 해줘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냐, 결국에는 다 잘 끝났어.”

        

       “……정말로?”

        

       사라가 되물어왔다.

        

       사라의 얼굴이 살짝 올라왔다. 내 쪽으로 사라가 얼굴을 살짝 돌리고, 그 덕분에 무릎과 얼굴의 틈으로 사라의 눈이 살짝 보였다. 다만 표정 자체는 잘 보이지 않아서, 여전히 나는 사라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말로, 모두 무사하게 끝났어?”

        

       “…….”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왜냐하면, 나도 그 일의 끝을 보지 못했으니까.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양혜인의 모습이었다.

        

       차 창문을 깨부수고 들어와서, 나에게 손을 올려두고 괜찮다고 해주던 양혜인의 모습.

        

       어쩌면 그 뒤를 다른 친구들도 따라왔을지도 모르고.

        

       그렇기에, 그저 괜찮다고 추측할 뿐이었다. 당연히 자세한 것을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미안,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결국, 나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

        

       사라의 얼굴이 다시 무릎에 딱 닿았다. 틈으로 살짝 보이던 사라의 눈은 다시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잘 끝났을 거야. 구해주러 온 사람도 있고.”

        

       어떻게든 사라를 위로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해봤지만, 어째서인지 그 말은 사라를 더 우울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나의 말을 들은 사라는 오히려 어깨를 움츠리고, 무릎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그렇구나.”

        

       사라가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이제 어떻게 말을 걸어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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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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