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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7

       

       

       

       

       그날의 소동이 있던 이후로, 근래 들어 평온하기만 했던 서은우 가족의 삶에 작은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하지만 아이들 쪽은 그리 작은 변화라곤 느낄 수가 없었다.

         

         

       “뭐야… 어떻게 찾았어?”

       “너 따뜻하면서도 어둡고 좁은 곳 좋아하잖아. 뭔가에 집중하고 싶을 때나 혼났을 때 그런 장소를 더 찾지. 집이 넓어서 그런 장소가 워낙 많은 게 문제지만. 아, 그리고 특히……”

       “남매여서 그런가. 역시 그런 부분은 숨기기가 힘들구나.”

         

         

       서준우가 무언가 중요한 말을 꺼내려고 할 때, 서은빈이 말을 끊었다.

         

       뭔가 의도적으로 끊은 느낌이라 서준우는 곧바로 다른 주제로 넘어가기로 했다.

         

         

       “근데 진짜 진심이야?”

       “뭐가?”

       “사실상 배우가 되겠다고 한 말. 그 순간에 너무 감정적으로 말한 게 아닌가 해서.”

         

         

       서준우의 물음에 서은빈은 아까까지 읽고 있었던 책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서준우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응. 진심이야. 내가 왜 엄마랑 아빠한테 그런 거짓말을 하겠어.”

       “……그렇겠지. 너는 거짓말이 조금 서툴렀으니까.”

         

         

       참고로 문맥에서 알 수 있듯이 서준우의 이 말은 과거형이었다.

         

       그 누구보다 서은빈과 함께 지낸 시간이 긴 서준우가 느끼기에, 요 며칠 사이에 서은빈은 몰라볼 정도로 다른 아이가 되어있었다.

         

       지금도 봐라.

       자신을 상대로 능글맞게 표정 연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평소 조용하고, 서다빈과 달리 나서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모습을 떠올리면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엄마는 도대체 이 녀석에게 뭘 가르치고 있는 걸까.’

         

         

       그렇기에 서준우는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서은빈에게 연기를 직접 가르쳐주겠다고 말한 설소영이 과연 어떤 마술을 부리고 있는지를.

         

         

       “그나저나 서다빈… 그 녀석이 많이 심심한 모양이야. 네가 요즘 잘 안 놀아줘서.”

       “다빈이가 그렇게 말했어? 만약 네 말대로라면 곧바로 나한테 와서 투정을 부렸을 것 같은데.”

       “이런 면에서 눈치가 없는 걸까. 뭐… 적어도 이번 건 연기가 아니네.”

         

         

       서준우의 혼잣말에 서은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이번 건, 서준우의 말대로 연기 같은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의문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

         

         

       서준우는 나지막하게 서은빈이 아까까지 읽고 있던 두꺼운 책을 바라봤다. 아니… 정확하게는 설소영이 건네준 연습용 대본을 말이다.

         

       과연 서은빈은 저것을 받고 나서 몇 번이나 완독했을까?

         

       아마 이 부분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서은빈을 계속 곁에서 지켜본 서준우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서준우조차도 자세하게는 모른다.

         

       그야 10번을 넘긴 시점에서 아예 세는 것 자체를 포기했으니까.

         

       평소에는 딱히 흥미가 없는 듯, 책 한 권도 끝까지 잘 안 읽던 녀석이 대본을 받자마자 무언가에 흘린 듯이 계속 읽기 시작했다.

         

       10번이라는 횟수마저도 어제 점심까지의 기준이었으니 저 페이스라면 그 횟수는 이미 배로 뛰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서준우가 아는데 서다빈이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서다빈이 말썽꾸러기는 맞지만, 그렇다고 눈치가 아예 없지는 않다.

         

       적어도 자신의 소중한 친구이자 가족이 무언가에 열심히 몰두하는 모습을 보고, 방해할 아이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오히려 그 모습에 자극을 받았으면 더 받았을 테지.

         

         

       “……?”

         

         

       그때 서은빈은 서준우의 어떠한 행동을 보며 자연스레 의문을 품었다.

         

       그가 자신이 읽고 있던 대본을 들어, 그것을 한 장씩 넘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어느 페이지에 적혀있는 글을 읽어내려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6p에 있는 구월 역의 첫 대사를 말해줄 수 있어?”

         

         

       서은빈이 읽고 있던 대본은 ‘붉은 실’이라는 윤왕조라는 가상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로맨스 작품이었다. 그것도 아직 방영된 적 없는 작품의 대본.

         

       여기서 ‘구월’은 궁녀이자 여주인공이었으며, 6p의 시점은 어린 구월이 한밤중에 우연히 궁에서 3왕자를 다시 마주친 상황을 그리고 있었다.

         

         

       “저번에 제가 저하의 옷을 꿰매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부탁을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서준우의 갑작스러운 요구에도 불구하고 서은빈은 반사적으로 대답이 튀어나왔고, 그것은 글자 하나 틀림이 없는 완벽한 대답이었다.

         

       물론 대답과는 별개로 무슨 의도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기에 서은빈은 해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오늘 밤에 테스트를 본다길래 한번 시험해 본 거야. 근데 기계처럼 대사가 튀어나오는 걸 보면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 보네.”

       “네가 나를 걱정했다고?”

         

         

       서은빈은 약간 의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이에 서준우는 조금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나 서다빈이나 도대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냐? 어쨌거나 걱정될 수밖에 없지. 네가 가고자 하는 길은 정말 어려운 길이니까.”

         

       

       어려운 길.

         

       배우라는 직업이 그리 쉬운 직업은 절대 아니다.

         

       경쟁률이 극악인 것도 그렇고, 어지간한 재능과 노력이 없는 이상 살아남기 힘들다. 애초에 미디어에 자주 노출된다는 것 자체부터가 그것을 증명하기도 한다.

         

       거기에다가 서은빈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시작부터 특이점이 부여되어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굳이 서은빈만이 아니라 서준우와 서다빈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하는 사항이었다.

         

       바로 자신들이 서은우와 설소영, 이다혜의 자식들이라는 특이점.

         

       이것은 매우 좋은 이점이 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서은빈이 진짜로 배우가 된다면, 좋든 싫든 간에 분명 ‘설소영의 딸’이라는 꼬리표가 따라올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서은빈을 평생을 따라다니며 증명해내야만 하는 숙제이자 족쇄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 사실을 먼저 깨달은 서준우의 입장에선 당연히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어쩔 수가 없는걸. 며칠 사이에 마음이 더 확실해졌거든.”

         

         

       서준우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무엇이……

         

       얌전하고, 나서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서은빈을 저렇게까지 욕심쟁이로 만들었을지를.

         

       그때 조금 진지한 서준우의 표정을 본 서은빈은 이어서 말했다.

         

         

       “어제 마지막 화 진짜 재밌었지?”

       “어서오세요 카페 바이올렛을 얘기하는 거야?”

         

         

       서은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1화를 모두 보기도 했고, 이젠 자신들의 작품을 안 보여줄 이유가 딱히 없었나 보다.

         

       그래서 하루에 2화씩만 함께 보는 것으로 정해놓고, 어제 막 어서오세요 카페 바이올렛의 15화와 마지막 화까지 감상을 모두 완료하였다.

       

         

       “뭘 굳이 물어봐? 그런 엄청난 걸 봐버렸는데.”

         

         

       서준우는 자신의 아버지가 왜 이 작품을 가장 의미 있는 작품이라 생각하는지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927 작가로서의 시작을 알리는 첫 작품이기도 하고, 모든 면에서 흠잡을 곳이 없는 완벽한 작품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작품에 있어서 아버지에게 더 큰 의미를 부여해준 것은 아마 자신의 어머니인 설소영이라고 생각했다.

         

       서준우는 그녀가 연기하는 것은 이번 기회에 처음 보았다. 그리고 왜 어머니가 최고의 여배우라고 불리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맡은 배역에 대한 뛰어난 이해력과 보는 이를 자연스레 몰입하게 만들고, 어색함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연기력.

         

       특히 마지막 화의 하이라이트 씬, 설소영이 선보인 원맨쇼는 지금도 서준우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있을 정도였다.

         

       ……그나저나.

         

       서은빈은 왜 이 타이밍에 굳이 저런 질문을 한 것일까?

         

         

       “있잖아.”

         

         

       그때였다.

         

       서은빈이 무언가 재미난 생각이라도 난 듯, 눈앞의 남매를 향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빠에게 있어서 가장 의미 있는 작품, 거기서 여주인공 역을 맡은 엄마는 얼마나 설레고 재밌었을까?”

       “그건 당사자가 아닌 내가 대답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질문인 것 같은데…….”

       “거짓말. 우린 딱 봐도 알 수 있잖아. 아빠의 작품 안에서 엄마가 얼마나 밝게 빛나고 있었는지 정도는.”

         

         

       확신이 담긴 말에 서준우는 차마 할 말을 잃었다.

       

       사실 할 말을 잃은 것과 별개로 어느 정도 녀석의 말에 어렴풋이 공감하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카페 바이올렛, 그곳에서 엄마는 가족들과 있을 때랑은 다른 의미로 정말 행복해 보였으니까.

         

       

       “그러니 엄마의 딸인 나라면 똑같이 빛날 수 있지 않을까?”

         

         

       그건 네가 얼마나 엄마와 아빠의 재능을 물려받았는지에 따라 다르겠지… 라고 냉정하게 대답하면 분명 미움받을 것이기에 서준우는 최대한 말을 아꼈다.

         

       뭐… 조금 솔직하게 말하면 눈앞의 서은빈이 대단하고, 부럽다는 생각도 들긴 했다.

         

       어떠한 변명 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당당히 달려가는 저 모습이.

         

         

       “아, 생각해보면 준우 너도 똑같네?”

       “뭐가?”

       “너도 아빠의 하나뿐인 아들이잖아. 분명 너도 아빠처럼 빛날 수 있을 거야.”

         

       

       서은빈의 어린아이 같은 표현에 서준우는 쓴 미소를 지었다.

         

       ……말은 쉽지.

         

       아빠를 목표로 한다는 건, 아직 어린 서준우에게 조금 무겁고 고된 주제였다.

         

         

         

       ***

         

         

         

       그날 밤.

         

         

       ‘이게 맞는지 잘 모르겠네.’

         

         

       서은우는 눈앞에서 심호흡을 하고 있는 서은빈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오늘은 약속대로 서은빈의 연기 테스트를 보는 날이었다.

         

       사실 테스트라고 해서 딱히 페널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단순하게 딸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진지하게 확인해 달라는 것. 이것은 그날 이후로 서은빈에게 연기를 직접 가르쳐 온 설소영이 먼저 부탁해온 것이었다.

         

       그 부탁을 처음 받았을 때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뭔가 딸이 가진 재능을 평가하기에는 조금 시기가 이른 감이 있기도 했고, 만약 은빈이가 연기에 재능이 없기라도 하다면?

         

       그때는 도대체 아빠로서 어떤 말을 해줘야 하는 걸까…….

         

       어렵다.

         

       이건 자칭 딸 바보인 자신에게 너무 어려운 주제였다.

         

       서은우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뱉고 있던 그때, 옆에서 누군가가 속삭여 왔다.

         

         

       “은빈이보다 당신이 더 긴장한 것 같아.”

         

         

       이다혜.

         

       자신과 마찬가지로 은빈이의 테스트를 봐달라는 부탁을 받은 그녀가 쓴 미소를 지으며 귓속말을 해왔다.

         

         

       “소영이 표정을 보면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다혜의 말에 고개를 돌려 설소영을 쳐다봤고, 시선을 느꼈는지 그녀와 자연스레 시선이 마주쳤다.

         

       설소영은 평소처럼 별말 없이 싱긋 웃을 뿐이었다.

         

       솔직히 그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니 이다혜의 말처럼 걱정보다는 궁금증이 조금 앞서기 시작했다.

         

       은빈이가 자신의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고 선언한 이후로 설소영은 딸의 연기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봐 왔다.

         

       심지어 자신에게 전적으로 맡겨달라고 부탁해서 연습하는 과정 역시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지금부터 눈앞에 무슨 광경이 펼쳐질지는 완전히 미지수.

         

         

       “그럼 시작할까요? 은빈아 준비됐지?”

       “네.”

         

         

       설소영의 신호에 맞춰 서은빈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연습해왔던 ‘구월’역의 연기를 시작했다.

         

       다만.

         

         

       “…….”

         

         

       서은빈이 연기를 펼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은우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아까부터 설소영이 짓고 있던 미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말이다.

         

       그것은 아마 자신이 은빈이의 연기를 보고도 절대 실망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담긴 미소.

         

       이거 아무래도……

       

         

       ‘다행히 소영이의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 같네.’

         

         

       딸이 연기 천재인 것 같다.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인기 여배우에게 집착 받는 천재작가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She likes me enough to win an award. Meet Seo Eun-Woo, a passionate K-Drama fan turned writer, whose life takes an unexpected twist when he awakens in a world of mediocre dramas. Frustrated and desperate for the perfect storyline, he stumbles upon a former actress who sparks his creative genius. Watch as their fateful encounter turns his life into a captivating drama of it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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