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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7

<4월 2일 기준으로 연재되었던 159화 ~ 163화 내용이 수정되어 159화 ~ 167화까지 연재되었습니다. 완전히 다른 내용이기에 4월 2일 이전에 읽으셨던 분들은 159화부터 다시 읽으시거나 168화 초반에 적어놓은 요약본을 읽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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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넘실거리는 불길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다급히 그 안으로 몸을 밀어 넣으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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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 – 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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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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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위기가 갑작스럽게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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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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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쿵! 털썩, 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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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쪽에서 거친 신음과 함께 사람들이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리안은 마른침을 삼킨 채 코앞에 있는 불길한 불꽃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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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르간도아.. 이거 정말 겉모습만 화려한 마법… 맞아?’
    [ …아니, 이젠 아니다. ]
    ‘그게 무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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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말이 끝을 맺기도 전에 ‘무언가’가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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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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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중력이 주변을 짓누르는 것처럼 땅이 우지직하고 갈라지고 리안의 두 발이 땅에 박혀 들기 시작했다. 몸이 천근만근처럼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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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중력을 이용한 공격 따위가 아니었다. 오로지 ‘존재감’하나 만으로 중력이 변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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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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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가 환희에 잠긴 목소리로 신음을 뱉어냈다. 익숙한 목소리, 신관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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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광,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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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격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과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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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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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관의 머리가 그대로 터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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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꺼억…끄어억…”
   “끄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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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에 납작하게 엎어진 마을 사람들은 얼굴 위로 쏟아지는 따뜻한 핏물과 살점으로 범벅이 된 채 숨이 넘어갈 듯한 소리만 뱉어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어 오로지 눈동자만이 공포에 덜덜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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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기사나 마법사라고 해서 달라질 거 없었다. 모두 공평하게 땅에 납작하게 엎어져 꿈틀꿈틀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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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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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마 공작과 노아,아이리스 정도만이 엎어지지 않고 무릎만 꿇은 채 일어나려고 버둥거렸다. 제스는 으르릉거리며 몸에서 우두둑 소리가 나든 말든 짐승 같은 자세로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가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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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공작이나 노아 정도의 무력을 갖춘 건 아니지만, 몸속에 남아있는지 알 수 없는 어떠한 ‘존재’로 인해 버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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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발로 서서 버티고 있는 건 리안이 유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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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르간도아…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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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개그 필터 덕분에 가볍게만 느껴지던 주변 상황과 분위기가 지금만큼은 전생의 한장면처럼 섬뜩하고, 오싹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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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작동하지 않았던 ‘생존본능’이 지금은 무서울 만큼 선명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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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마법을 매개로 무언가가 이곳에 소환되었다. 젠장, 미친놈들이 숭배하던 것들과 비슷한 존재로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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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배라는 말에 리안은 ‘외신’의 존재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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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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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게 이어지려는 생각을 마검이 싹둑 잘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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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트너, 당장 이곳을 벗어나라. 아무리 내가 강해졌다고 해도 격이 다른 존재는 벨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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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강자를 부르짖던 마검이 이번만큼은 진지하게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가라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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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력을 다한다면 이곳을 벗어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다. ]
    ‘다른 사람들은…?’
    [ … ]
    ‘내가 도망치면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데?’
    [ 죽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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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의 말에 리안은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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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안가.’
    [ 하지만… ]
    ‘여기서 도망치면 어차피 멸망밖에 답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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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사가 없는 세계에 희망이 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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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 이대로 도망치는 건 너무 꼴사납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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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을 꼬시는 말을 슬쩍 속삭이자, 곧바로 감성에 취한 마검이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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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흐흐, 확실히 그건 너무 멋이 없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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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트너의 동의까지 얻었겠다. 이젠 남은 건 저 밑도 끝도 없이 무서운 존재를 떨쳐내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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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러뜨리는 것까진 바라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 있다. 놈은 저 마법을 매개로 이곳에 제 일부를 소환한 상태이니 저 안으로 들어가 마법을 파훼하면 된다. 다만 이건 놈의 위장에 들어가 내부를 엉망으로 만들자는 말이나 다를 바 없다. ]
    ‘죽을 수도 있다는 거네?’
    [ 확실하게 죽을 거다. 그저 얼마의 시간이 걸리냐의 차이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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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죽게 되면 개그 세계에 돌아가지 못하고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압도적인 존재감 앞에 권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는 짐작일 뿐 정말 그럴지는 죽기 전까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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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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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개그 주민다운 긍정적인 사고로 저릿한 공포를 털어내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마검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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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적지는 변함이 없네.’
    [ 흠, 이런 최후도 나쁘지 않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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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은 여전히 감성에 취한 건지 그도 아니면 정말 리안과 함께하는 죽음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지 평온한 목소리로 제 죽음을 쉽게 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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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큿…리,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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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불길한 불꽃 안으로 발을 밀어 넣으려는 순간 억눌린 목소리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자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문 채 땅에 처박은 검 손잡이를 지팡이 삼아 일어나고자 버둥거리는 노아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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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걱정이 가득 담긴 노아의 얼굴을 보자 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태연한 말이 툭 튀어 나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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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방 다녀올 테니까 피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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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별거 아니라는 말투로, 평소처럼 금방 모든 일을 해결하고 돌아오겠다고 말한 후 불길한 불꽃 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화르륵거리는 소리 사이로 어쩐지 누군가의 비명 따위가 들려온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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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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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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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의 내부에 들어온 순간 리안은 정신이 아찔해지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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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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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인간 따위가 마주할 수 없는 지고한 존재였다. 인가의 사고로 정리할 수 없으며 정의할 수 없으며 인지할 수 없으며 인지해서도 안 되는 -…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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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만났던 그 어떤 외신과도 격이 다른 ‘존재’가 리안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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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는 리안을 알고 있었다. 리안이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존재라는 것도 다크 판타지 세계의 신이 선택한 존재라는 것도, 감히 인간이 품을 수 없는 권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전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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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이 세상 모든 벌레를 찾아 죽이지 않는 것처럼, 존재 또한 리안을 내버려 뒀다. 그에겐 별 위협이 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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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존재가 굳이 막대한 인과율을 지불하여 리안을 찾아온 이유는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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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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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적합한 육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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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는 정신을 놓아버린 것처럼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리안을 내려다보았다. 신의 손에 정성스럽게 빚어진 육체는 신을 받아들이기에 적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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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는 흡족해하며 앞으로 자신이 쓰게 될 육체를 촉수 같은 손으로 휘감아 제 구역인 마왕성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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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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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하게 풀려있던 리안의 눈이 섬뜩하게 굴러 존재를 직시했다. 감히 인간의 영혼이 행할 수 없는, 행해서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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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자연재해가 지능을 가지게 되는 것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높은 격을 가진 존재조차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존재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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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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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찰나의 순간 마검이 그림처럼 움직여 존재의 일부를 ‘베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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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적’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존재는 재차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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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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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의 격이 현저히 낮은 인간 따위가 격을 넘어 우주의 일부나 다름없는 ‘존재’를 베어내는 건 그 어떤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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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는 혼란스러웠으며 당황스러웠고 호기심을 느꼈으며 즐거움을 느꼈고 분노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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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나 생각의 종착점은 처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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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탐이 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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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특별한 육체를 제 것으로 사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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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는 한껏 들뜨는 기분을 느끼며 리안을 데리고 그대로 마왕성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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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르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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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분 나쁘게 불타오르던 불길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고 대지를 내리누르던 존재감이 순식간에 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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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챙그랑!
    풀썩, 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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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가 사라지기 무섭게 겨우 몸을 가누던 이들이 바닥을 뒹굴거나 검을 떨어뜨렸다. 손에서 검을 놓는 걸 수치라고 생각하는 기사들이었지만 그 누구도 검을 놓친 이를 욕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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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아악!”
   “히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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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겪은 일이 꿈이 아니라는 것처럼 처참하게 머리가 터진 신관의 시체가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기절하지 않고 용케 깨어있던 마을 사람 중 일부가 기겁하며 기절하거나, 쓰러진 제 친인척을 챙기기 위해 풀린 팔과 다리로 바닥을 엉금엉금 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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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관을 제외한 모두가 생존했다는 사실에 마을 사람들이 안도하고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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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 리안님은 어디에 계신 거죠?”
    “거짓말이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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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늦게 리안의 희생을 알아차린 공작가 사람들은 죄악감과 절망 속을 허우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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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아니야! 거짓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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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덜덜 떨리는 다리로 달려 나가 불길이 넘실거리던 곳을 미친 듯이 헤집기 시작했다. 기사단장이 그런 아이리스를 말리려 했지만 공작이 입술을 깨물며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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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이 풀릴 때까지 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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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작은 소중한 존재를 잃었을 때의 상실감을 알고 있기에 아이리스를 차마 말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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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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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는 완전히 표정을 잃은 채 말없이 넘실거리던 불꽃이 있던 곳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분노가 일정 이상을 넘어서자 도리어 머릿속이 차갑게 가라앉아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생각이 깊어져 갔다. 그녀는 끝없이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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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주인이 살아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와 다시 제 곁으로 돌아오게 할 방법을. 붉은 눈동자 속에 살기가 넘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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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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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제 머리를 콱 틀어잡은 채 제대로 된 말조차 잇지 못했다. 눈앞에서 그를 잃게 된 것에 대한 충격과 분노가 숨통을 조여왔다. 눈물이 시야를 흐리다 못해 후두둑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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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릿한 시야 너머로 씁쓸한 표정을 한 채 다가오는 레인저 부대 단장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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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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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그제야 그가 해줬던 조언을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제 욕망이 죄악인지 숭고한 희생인지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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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켜줘야 할 존재가 사라졌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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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저 ‘존재’는 최종보스라고 보시면 됩니다. 능력이 통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죠.

168화(최신화)는 6일 새벽에 업로드 예정입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4월 2일 기준으로 연재되었던 159화 ~ 163화 내용이 수정되어 159화 ~ 167화까지 연재되었습니다. 완전히 다른 내용이기에 4월 2일 이전에 읽으셨던 분들은 159화부터 다시 읽으시거나 168화 초반에 적어놓은 요약본을 읽어주세요 >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넘실거리는 불길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다급히 그 안으로 몸을 밀어 넣으려는 순간.

쿠 – 웅.

“…?!”

분위기가 갑작스럽게 바뀌었다.

“커헉!”

쿵! 털썩, 털썩!

뒤쪽에서 거친 신음과 함께 사람들이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리안은 마른침을 삼킨 채 코앞에 있는 불길한 불꽃을 바라보았다.

‘가르간도아.. 이거 정말 겉모습만 화려한 마법… 맞아?’

[ …아니, 이젠 아니다. ]

‘그게 무슨 -…’

리안의 말이 끝을 맺기도 전에 ‘무언가’가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허억…!”

거대한 중력이 주변을 짓누르는 것처럼 땅이 우지직하고 갈라지고 리안의 두 발이 땅에 박혀 들기 시작했다. 몸이 천근만근처럼 무거워졌다.

이는 중력을 이용한 공격 따위가 아니었다. 오로지 ‘존재감’하나 만으로 중력이 변해버린 것이다.

“아,아아…”

누군가가 환희에 잠긴 목소리로 신음을 뱉어냈다. 익숙한 목소리, 신관의 목소리였다.

“영광, 영광입니다..!”

감격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과 동시에.

콰직.

신관의 머리가 그대로 터져버렸다.

“꺼억…끄어억…”

“끄으윽…”

바닥에 납작하게 엎어진 마을 사람들은 얼굴 위로 쏟아지는 따뜻한 핏물과 살점으로 범벅이 된 채 숨이 넘어갈 듯한 소리만 뱉어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어 오로지 눈동자만이 공포에 덜덜 떨렸다.

이는 기사나 마법사라고 해서 달라질 거 없었다. 모두 공평하게 땅에 납작하게 엎어져 꿈틀꿈틀할 뿐이었다.

“커헉..”

그나마 공작과 노아,아이리스 정도만이 엎어지지 않고 무릎만 꿇은 채 일어나려고 버둥거렸다. 제스는 으르릉거리며 몸에서 우두둑 소리가 나든 말든 짐승 같은 자세로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가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아이리스는 공작이나 노아 정도의 무력을 갖춘 건 아니지만, 몸속에 남아있는지 알 수 없는 어떠한 ‘존재’로 인해 버틸 수 있었다.

두 발로 서서 버티고 있는 건 리안이 유일했다.

‘가르간도아…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언제나 개그 필터 덕분에 가볍게만 느껴지던 주변 상황과 분위기가 지금만큼은 전생의 한장면처럼 섬뜩하고, 오싹하게 느껴졌다.

언제부턴가 작동하지 않았던 ‘생존본능’이 지금은 무서울 만큼 선명하게 느껴졌다.

[ 저 마법을 매개로 무언가가 이곳에 소환되었다. 젠장, 미친놈들이 숭배하던 것들과 비슷한 존재로군. ]

숭배라는 말에 리안은 ‘외신’의 존재를 떠올렸다.

‘설마…’

길게 이어지려는 생각을 마검이 싹둑 잘라냈다.

[ 파트너, 당장 이곳을 벗어나라. 아무리 내가 강해졌다고 해도 격이 다른 존재는 벨 수 없다. ]

언제나 강자를 부르짖던 마검이 이번만큼은 진지하게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가라 단호하게 말했다.

[ 전력을 다한다면 이곳을 벗어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다. ]

‘다른 사람들은…?’

[ … ]

‘내가 도망치면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데?’

[ 죽겠지. ]

마검의 말에 리안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안가.’

[ 하지만… ]

‘여기서 도망치면 어차피 멸망밖에 답이 없어.’

용사가 없는 세계에 희망이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 이대로 도망치는 건 너무 꼴사납잖아.’

마검을 꼬시는 말을 슬쩍 속삭이자, 곧바로 감성에 취한 마검이 반응했다.

[ 푸흐흐, 확실히 그건 너무 멋이 없지. ]

파트너의 동의까지 얻었겠다. 이젠 남은 건 저 밑도 끝도 없이 무서운 존재를 떨쳐내는 것뿐이었다.

‘쓰러뜨리는 것까진 바라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 있다. 놈은 저 마법을 매개로 이곳에 제 일부를 소환한 상태이니 저 안으로 들어가 마법을 파훼하면 된다. 다만 이건 놈의 위장에 들어가 내부를 엉망으로 만들자는 말이나 다를 바 없다. ]

‘죽을 수도 있다는 거네?’

[ 확실하게 죽을 거다. 그저 얼마의 시간이 걸리냐의 차이뿐. ]

이번에 죽게 되면 개그 세계에 돌아가지 못하고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압도적인 존재감 앞에 권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는 짐작일 뿐 정말 그럴지는 죽기 전까진 알 수 없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리안은 개그 주민다운 긍정적인 사고로 저릿한 공포를 털어내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마검을 들어 올렸다.

‘목적지는 변함이 없네.’

[ 흠, 이런 최후도 나쁘지 않지. ]

마검은 여전히 감성에 취한 건지 그도 아니면 정말 리안과 함께하는 죽음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지 평온한 목소리로 제 죽음을 쉽게 입에 담았다.

“큿…리,안!”

“…!”

막 불길한 불꽃 안으로 발을 밀어 넣으려는 순간 억눌린 목소리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자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문 채 땅에 처박은 검 손잡이를 지팡이 삼아 일어나고자 버둥거리는 노아의 모습이 보였다.

걱정이 가득 담긴 노아의 얼굴을 보자 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태연한 말이 툭 튀어 나가고 말았다.

“금방 다녀올 테니까 피해 있어!”

정말 별거 아니라는 말투로, 평소처럼 금방 모든 일을 해결하고 돌아오겠다고 말한 후 불길한 불꽃 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화르륵거리는 소리 사이로 어쩐지 누군가의 비명 따위가 들려온 것만 같았다.

구르륵.

‘아.’

‘그것’의 내부에 들어온 순간 리안은 정신이 아찔해지는 걸 느꼈다.

‘아아…’

‘그것’은 인간 따위가 마주할 수 없는 지고한 존재였다. 인가의 사고로 정리할 수 없으며 정의할 수 없으며 인지할 수 없으며 인지해서도 안 되는 -… ‘존재’였다.

지금까지 만났던 그 어떤 외신과도 격이 다른 ‘존재’가 리안을 내려다보았다.

존재는 리안을 알고 있었다. 리안이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존재라는 것도 다크 판타지 세계의 신이 선택한 존재라는 것도, 감히 인간이 품을 수 없는 권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전부 알고 있었다.

인간이 이 세상 모든 벌레를 찾아 죽이지 않는 것처럼, 존재 또한 리안을 내버려 뒀다. 그에겐 별 위협이 되지 않으니까.

그런 존재가 굳이 막대한 인과율을 지불하여 리안을 찾아온 이유는 간단했다.

구르륵.

‘역시 적합한 육체군.’

존재는 정신을 놓아버린 것처럼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리안을 내려다보았다. 신의 손에 정성스럽게 빚어진 육체는 신을 받아들이기에 적합했다.

존재는 흡족해하며 앞으로 자신이 쓰게 될 육체를 촉수 같은 손으로 휘감아 제 구역인 마왕성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 순간,

도르륵.

멍하게 풀려있던 리안의 눈이 섬뜩하게 굴러 존재를 직시했다. 감히 인간의 영혼이 행할 수 없는, 행해서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 자연재해가 지능을 가지게 되는 것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높은 격을 가진 존재조차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존재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서걱.

그 찰나의 순간 마검이 그림처럼 움직여 존재의 일부를 ‘베어냈다.’

‘기적’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존재는 재차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 무슨…?’

영혼의 격이 현저히 낮은 인간 따위가 격을 넘어 우주의 일부나 다름없는 ‘존재’를 베어내는 건 그 어떤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었다.

존재는 혼란스러웠으며 당황스러웠고 호기심을 느꼈으며 즐거움을 느꼈고 분노를 느꼈다.

허나 생각의 종착점은 처음과 같았다.

‘더 탐이 나는군.’

이 특별한 육체를 제 것으로 사용하자.

존재는 한껏 들뜨는 기분을 느끼며 리안을 데리고 그대로 마왕성으로 이동했다.

화르릇!

기분 나쁘게 불타오르던 불길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고 대지를 내리누르던 존재감이 순식간에 지워졌다.

챙그랑!

풀썩, 털썩!

존재가 사라지기 무섭게 겨우 몸을 가누던 이들이 바닥을 뒹굴거나 검을 떨어뜨렸다. 손에서 검을 놓는 걸 수치라고 생각하는 기사들이었지만 그 누구도 검을 놓친 이를 욕할 수 없었다.

“으아악!”

“히익!”

그들이 겪은 일이 꿈이 아니라는 것처럼 처참하게 머리가 터진 신관의 시체가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기절하지 않고 용케 깨어있던 마을 사람 중 일부가 기겁하며 기절하거나, 쓰러진 제 친인척을 챙기기 위해 풀린 팔과 다리로 바닥을 엉금엉금 기었다.

신관을 제외한 모두가 생존했다는 사실에 마을 사람들이 안도하고 있을 때.

“리안, 리안님은 어디에 계신 거죠?”

“거짓말이지? 아니지?”

뒤늦게 리안의 희생을 알아차린 공작가 사람들은 죄악감과 절망 속을 허우적거렸다.

“아니, 아니야! 거짓말이야!”

아이리스는 덜덜 떨리는 다리로 달려 나가 불길이 넘실거리던 곳을 미친 듯이 헤집기 시작했다. 기사단장이 그런 아이리스를 말리려 했지만 공작이 입술을 깨물며 막았다.

“…속이 풀릴 때까지 둬라.”

공작은 소중한 존재를 잃었을 때의 상실감을 알고 있기에 아이리스를 차마 말릴 수 없었다.

“…”

제스는 완전히 표정을 잃은 채 말없이 넘실거리던 불꽃이 있던 곳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분노가 일정 이상을 넘어서자 도리어 머릿속이 차갑게 가라앉아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생각이 깊어져 갔다. 그녀는 끝없이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했다.

..제 주인이 살아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와 다시 제 곁으로 돌아오게 할 방법을. 붉은 눈동자 속에 살기가 넘실거렸다.

“아아..아아악!”

노아는 제 머리를 콱 틀어잡은 채 제대로 된 말조차 잇지 못했다. 눈앞에서 그를 잃게 된 것에 대한 충격과 분노가 숨통을 조여왔다. 눈물이 시야를 흐리다 못해 후두둑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씁쓸한 표정을 한 채 다가오는 레인저 부대 단장의 모습이 보였다.

‘아아…’

노아는 그제야 그가 해줬던 조언을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제 욕망이 죄악인지 숭고한 희생인지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지켜줘야 할 존재가 사라졌으므로.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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