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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7

   시간은 계속해서 빠르게 지나간다.

     

   어느덧 중간시험이 정말 코앞에 온 시기.

     

   크라슈는 간간이 들려오는 펠레이의 소식을 확인하며 훈련에 집중했다.

   펠레이는 크라슈의 부탁대로 제니칼렌을 괴롭히던 귀족들에게 맞섰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그의 성격이다.

   그러니 그의 맞섬은 다른 이들이 보기에도 새삼스러울 필요가 없었다.

     

   덕분에 펠레이는 한바탕 소란에 휩싸였다.

   제니칼렌을 괴롭히던 귀족 마법사들이 펠레이를 아니꼽게 보고, 시비를 걸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펠레이다.

   그들로서는 펠레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창공의 세대에 펠레이가 괜히 속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크라슈는 자신이 개입할 것 없이 해결된 일에 만족했다.

   단, 제니칼렌의 눈에 담긴 원한은 역시 아직 지워지지 못한 듯하였다.

     

   ‘씨앗은 뿌려뒀다.’

     

   이 건의 해결은 펠레이에게 귀띔만 해줘도 되겠지.

     

   “어이, 이번에는 확실하다!”

     

   그사이에 바이오렌의 결계 연구는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매번 가져올 때마다 결계는 확실히 개량되고 있었다.

     

   “아직이다.”

     

   그래도 시간은 좀 더 걸릴 듯싶었다.

   그러니 그는 분한 얼굴을 하는 그녀를 돌려보냈다.

     

   밤에는 독혈전의 연구가 다시 본격화되었다.

   도르마에게 빌린 저주를 통해 크라슈는 스스로 몸에 몇 가지 실험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이그니스가 있는 만큼 저주의 영향은 걱정 없었다.

   위험하다 싶으면 불태워 버리면 그만이었으니까.

     

   거기에 더해 순간 강화 영약의 2차도 받아내어 시험했다.

   확실히 이전보다 성능적인 부분이 잘 개량되었다.

     

   달링다운 솜씨였다.

     

   그렇게 하루하루 자는 시간을 쪼개가며 일들을 반복한 결과.

     

   “당신 얼굴이 왜 그 꼴이 된 거야?!”

     

   크라슈는 왜인지 핀잔을 듣고 있었다.

   그 핀잔을 준 당사자는 다름 아닌 성녀 아스트리아였다.

     

   식당을 가던 도중 여느 때와 같이 꽤 많은 양의 음식을 들고 가던 아스트리아와 마주친 순간.

   그녀는 다짜고짜 비명부터 내질렀다.

     

   그녀가 비명을 지른 이유는 단 하나.

   크라슈의 얼굴이 피로가 가득 묻어나 곧 죽을 꼴이었기 때문이었다.

     

   매일 같이 훈련과 일을 해결하기 위해 사방팔방을 뛰어다니던 크라슈다.

   그가 피로를 풀 시간은 당연히 없었고, 그 꼴이 나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결국 아스트리아에게 병실로 끌려간 크라슈는 강제로 그녀에게 병상에 눕힘 당했다.

     

   “아스트리아, 나 멀쩡한데.”

   “멀쩡하기는 무슨! 당신 얼굴이 지금 어떤 꼴인지 알아? 당장 쓰러져서 죽어도 다들 납득할 모습이라고!”

     

   오늘따라 유달리 아스트리아는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화낼 일인가.

     

   크라슈는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힐끗 보았다.

   확실히 다크써클이 이제 턱까지 내려와 인사를 할 지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제대로 잠을 잔 일이 드물었다.

   독혈전 연구에 심취해 매일 밤을 지새웠으니 말이다.

     

   아니, 최근만이 아니다.

   그동안의 피로는 강제로 기절할 때를 빼면 사실상 푼 적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최근 기절할 일이 없었으니 쉴 일도 없었고, 덕분에 매일 무리를 반복했던 것이다.

     

   ‘기절해야 쉴 수 있다니. 이게 무슨 미친 생각인가 싶긴 한데.’

     

   스스로가 이러고 있으니 할 말이 없었다.

     

   “이거 먹고, 당장 눈부터 감아.”

     

   그러는 순간 물과 영양제를 챙겨온 아스트리아가 보였다.

   아래에서 봐서 그녀의 얼굴이 절반만 보인 탓에 크라슈는 몸을 일으켰다.

     

   “그냥 신성력으로 치료하면 되지 않냐.”

   “신성력이 무슨 만능인 줄 알아? 육체적 피로감은 줄여 줄 수 있어도 정신적 피로는 별개야. 그건 잠이 답이야.”

     

   부정하지 못한 크라슈가 얌전히 영양제를 받아 물과 삼켰다.

     

   그러자 크라슈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아스트리아가 보였다.

   그녀의 눈에는 근심걱정이 가득했다.

     

   “저 얼굴을…….”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얼빠였지.

     

   그녀가 유달리 더 화를 냈던 것도 얼굴에 예민한 탓일지도 몰랐다.

     

   “다 먹었으면 얼른 누워.”

     

   아스트리아는 크라슈에게서 물잔을 빼앗곤 그를 눕혔다.

   그러자 침대에 얌전히 눕자 물컵을 갖다 놓은 그녀가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보고 있을 거냐.”

   “당신이라면 내가 가자마자 바로 다시 일어나서 나갈 거잖아.”

     

   눈치가 빠르군.

   크라슈는 딱히 부정할 수 없었기에 얌전히 눈을 감았다.

     

   어느새 조용해진 병실 안.

   크라슈는 아스트리아의 옅은 숨소리를 들으며 침묵했다.

     

   “……정말 왜 이렇게까지 무리를 하는 거야?”

     

   그러는 순간 아스트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라며.”

   “혼잣말이야.”

     

   혼잣말을 다 들리게 한다.

     

   크라슈가 잠시 침묵했다.

   아스트리아의 말마따나 크라슈는 매일 무리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아니, 그의 삶에 무리란 단어가 곧 정의일 만큼 크라슈는 이리 살았다.

     

   오히려 쉰다는 말이 무엇일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크라슈는 왜인지 아서가 떠올랐다.

     

   아서는 늘 아슬아슬했다.

   쫓기던 그의 사고가 종종 짧아지는 일을 크라슈는 빈번하게 보았다.

     

   알게 모르게 자신도 아서와 같은 절차를 밟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갑자기 이마에 따스함이 느껴졌다.

   부드러운 느낌을 보건대 아스트리아의 손이 분명했다.

     

   “눈 뜨지 마. 그냥 몸의 회복을 복돋아 주는 거니까.”

     

   손을 안 대고도 할 수 있는 거 다 알지만.

   크라슈는 토를 달지 않았다.

     

   그녀의 손길이 따스하기도 했고, 몸이 편안해지는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당신한테 기댈 곳이 되어줄 수는 없을까.”

     

   또 혼잣말인가.

     

   “이미 충분히 기대고 있어.”

   “내 신성력을 말하는 게 아니란 걸 알잖아.”

     

   아스트리아는 살짝 토라진 듯 크라슈의 이마를 톡하니 때렸다.

   그러는 손짓에도 그녀의 마음속에 담긴 애잔함이 느껴졌다.

     

   “나 말이야. 신성 왕국을 탈출해서 처음으로 내 또래의 아이들과 웃고, 공부하며 지내고 있어.”

     

   성녀라는 직함 탓에 아카데미라 한들 나름의 거리감은 있지만.

   신성 왕국에서만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꽤나 충실한 아카데미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게 참 새롭고 즐거워서 새장을 나온 새의 기분이 이런 거란 걸 알았어.”

     

   어느새 다시금 따스해진 아스트리아의 손이 크라슈의 이마를 감쌌다.

     

   “그리고 그건 다 당신 덕분이었어. 그날 말해준 것들이 나를 여기로 끌어냈으니까.”

   “내가 한 건 별거 없잖으냐. 다 네가 한 거다.”

   “아니.”

     

   아스트리아는 단언했다.

     

   “당신 덕이야. 내가 라헬른 아카데미에 온 건 당신을 또 보고 싶어서였으니까.”

     

   크라슈는 눈을 뜨지 않아도 그녀의 얼굴이 상당히 달아올라 있을 거란 걸 눈치챘다.

     

   회귀 전에 아스트리아는 크라슈에게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얼굴 때문이었든 다른 이유였든 크라슈도 그 마음을 눈치챘었다.

     

   그리고 지금의 아스트리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마음은 결국 어찌 되었든 또 한 번 크라슈를 향해 움직이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다른 이들보다도 아스트리아의 마음만큼은 크라슈는 보다 선명히 느꼈다.

     

   “……그러니까 조금은 기대줬으면 좋겠어.”

     

   부끄러움이 많은 그녀의 진실한 말에 크라슈는 침묵했다.

     

   “싫으면 말아.”

     

   그리고 결국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한 그녀의 토라진 말이 그녀다웠다.

     

   “기대고 있다.”

     

   크라슈는 종종 아스트리아가 또래 아이들과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은 크라슈에게 또한 여러 의미를 부여했다.

     

   그건 자신이 회귀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볼 수 없던 모습이었으니까.

     

   자신의 노력에 따라 이 세상은 분명히 여러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걸 번번이 체감했다.

     

   그리고 그 방향이 크라슈는 아스트리아와 같은 이들에게 좋은 방향이길 바랐다.

   이 녀석들에게는 꽤 빚을 졌으니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여러모로 기대고 있어.”

     

   크라슈가 손을 들어 자기 이마를 감싼 아스트리아의 손을 포개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라. 너만이 아니지만 그래도 너희 덕에 버티고 있는 걸 테니까.”

     

   이건 크라슈가 처음으로 내비친 솔직한 심정이었다.

     

   갉아 먹혀 이제는 남은 것조차 없는 그의 정신이 버틸 수 있었던 건 분명 아스트리아와 같은 이들이 있던 덕분이었다.

     

   그러니 크라슈는 계속 달릴 수 있었다.

   설령, 이 세상에 자신이 없어지더라도 세상은 멈추지 않고 돌아갈 수 있도록.

     

   “…….”

     

   아스트리아가 침묵했다.

   오늘따라 힘없이 진실한 모습을 보이는 그를 보니 마음이 시리도록 아팠다.

     

   그리고 자신에게 그런 모습을 솔직하게 비춘 것에 그녀는 몸 안쪽 어딘가가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 남자는 매번 자신을 이렇게 만든다.

     

   장난치듯 자신에게 웃다가도.

   종종 보여주는 저런 지친 미소가 사람의 애간장을 타게 했다.

     

   매일 강한 척 드센 모습을 보이는 그지만.

   오늘따라 비춘 저 힘없이 진실한 모습이 그녀의 고동 소리를 더 거세게 울렸다.

     

   ‘이런 걸로 왜 좋아하는 거야.’

     

   그가 눈을 감고 있어서 다행이다.

   만약, 눈이 마주쳤다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갈지도 몰랐다.

     

   그의 이마에 닿은 손이 걱정되었다.

   혹여나 열기가 전달되어 자신의 이 부끄러운 감정이 노골적으로 전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스트리아, 이 바보야, 얼굴이 취향이니까. 자주 보이지 않던 약한 모습을 보니까 좋다거나 그런 거야?’

     

   차라리 그런 거였다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쿵쾅거리는 심장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처음에 호감이 갈 만큼 취향이었던 얼굴도 이제는 그 중요성이 멀어지고 있었다.

     

   그저 크라슈라는 인물이 자꾸만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했기 때문이었다.

   얼굴이든 뭐든 그였으니까 좋았다.

     

   종종 보이는 심술궂은 면조차 속으로 내심 좋아할 만큼 말이다.

     

   어쩌다 이토록 좋아하게 된 걸까.

   모르겠다.

     

   내심 심술이 났다.

     

   이럴 때만큼은 자신 하나 때문에 버티고 있다고 말해줘도 될 텐데.

   그는 구태여 다른 이들을 포함해 말했다.

     

   ‘다른 이들은 분명히, 그 약혼자겠지.’

     

   그가 끔찍이도 아끼는 그 약혼자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잠재적으로 떠오르는 인물들이 몇 명 더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살짝 화가 났다.

     

   이 남자에게는 왜 그렇게 여자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성격만 보면 심술궂고 못되기만 한데.

   볼 때마다 자꾸 그의 곁에 여자들이 더 늘어나는 느낌이었다.

     

   ‘남 말할 때인가.’

     

   자신도 마찬가지인 주제에 무슨 생각이람.

   스스로에게 어이없는 기분을 느낀 아스트리아가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그의 가슴팍이 반복적으로 오르내리며 새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잠이 든 것이었다.

     

   자신이었으면 그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절대로 못 잤을 텐데.

   이렇게 바로 잠드는 건 또 다른 의미로 화났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이만큼 믿어주니 잠든 거라고 생각 드니 또 기뻐서 짜증 났다.

     

   “……나도 여잔데.”

   

   

   

   

     

   혼잣말을 중얼거린 그녀의 시선이 크라슈의 입술에 닿았다.

   붉은 입술을 오늘따라 유달리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약혼자와 그는 어디까지 나갔을까.

     

   혹시 아직이라면.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아스트리아가 멈칫했다.

   그러고는 다른 손을 들어 자기 입술을 살짝 짝하니 쳤다.

     

   정신 차리라는 의미였다.

     

   “성녀를 이렇게 안 좋은 마음 품게 하는 것도 당신밖에 없을 거야.”

     

   아스트리아는 그리 말하며 한숨을 내쉬곤 크라슈의 이마를 토닥였다.

     

   부디, 이 남자가 힘든 일 없이 언젠가 밝게 웃을 수 있기를.

     

   그녀는 신에게 기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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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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