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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7

    이럴 수가 내가 하늘을 날 수 없다니.

    미니 사신이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진 않을 테니, 높은 확률로 그럴 것이다.

    사실은 날면 좋고 아니면 말고 수준이었지만, 날 수 없다는 소리를 듣고 나니 너무너무 날고 싶어졌다.

    딱히 내가 이상한 게 아니다.

    누구나 하지 못하게 하는 규칙이 있다면 어기고 싶어 하니 말이다.

    나는 슬픔과 분노를 가득 품에 안고 하얀 아귀를 마구 뜯어먹었다.

    뀨힝힝.

    내 슬픔에 동감하는 것처럼 하얀 아귀도 같이 울어주었다.

    그나저나, 내 아이들도 엄청나게 많아졌네.

    황금색, 푸른색, 남색, 검은색, 빨간색, 주황색, 거기에 나보다 큰 거대 입양아까지!

    특히 거대 입양 소녀와 검은 요원의 관계가 흥미진진했다.

    지금은 어딘가로 나가버렸지만, 어서 빨리 돌아와서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침대 위에 기습적으로 눕자, 내 밑에 깔린 황금 사신들이 꿈틀거리면서 내 밑에서 빠져나왔다.

    히히.

    조그마한 주먹으로 뚜시뚜시 거리는 황금 사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더니, 뉴스에서 내가 관심 있어 할 만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오브젝트가 등장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사이비 종교가 횡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특히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단 며칠 사이에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사이비 종교가 있으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눈동자가 5개인 눈을 상징으로 하는 종교이니, 발견하신 분은 오브젝트 협회로 신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사이비 종교인가.

    오브젝트가 등장한 뒤로 수많은 사이비 종교들이 나타나고 사라졌지만, 이번 종교는 왠지 심상치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TV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더니, 검은 사신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약간의 미안한 감정이 느껴지는 검은 사신들.

    마치 자기가 한 말 때문에 무기력해 보이는 줄 알고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슬픔과 분노를 뿜어내면서 ‘너희들 때문이야!’라고 의지를 전달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

    분명 슬라임으로 변해서 구슬프게 울겠지?

    분명 재미있을 텐데….

    그래도 저번에 검은 사신이 매우 아팠었으니까, 아쉽지만 이번에는 봐줘야겠지.

    역시 나는 너무 착한 엄마야.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더니, 황금 사신들과 검은 사신들이 모여서 뭔가를 쑥덕거리더니 격리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깜박 잠든 나는 볼을 부드럽게 꾹꾹 누르는 감촉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얼굴 위에 검은 사신들과 황금 사신들이 잔뜩 올라와 있었다.

    내가 눈을 뜨자, 미니 사신들은 내 새끼손가락을 잡아당기며, 어딘가로 나를 이끌었다.

    도착한 곳은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운 세희 연구소 안뜰이었다.

    그림자를 보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커다란 구름 고래가 세희 연구소 상공 위로 둥실둥실 떠올라있었다.

    미니 사신들은 폴짝폴짝 뛰면서, 고래 위로 올라가자고 보챘다.

    검은 펭귄의 순간이동 능력으로 고래 위로 올라서자, 그 위에는 미니 사신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솜사탕으로 만들어진 구름 고래 위에 미니 사신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해맑은 표정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내가 고래 등위에 도착하자, 고래는 빠른 속도로 하늘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는 못 날아도 괜찮아!’

    ‘고래를 타면 돼!’

    미니 사신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서 나를 둘러싸고, 위로 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 기운이 없어 보였나? 

    나는 기특한 미니 사신들을 잔뜩 끌어안고 마구 쓰다듬어 주었다.

    어느새 고래는 구름을 뚫고 하늘로 올라섰고, 구름으로 이루어진 바다가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졌다.

    수많은 구름 고기들이 우리들을 따라와서 구름바다를 헤엄치고 있었다.

    작은 구름 고기 위에는 미니 사신이 하나씩 올라타서 해맑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미니 사신다운 이벤트였다.

    나는 구름 고래의 꼭대기에 서서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매혹적인 하얀 구름이 바다를 이루고 있었고, 구름 고기가 우아하게 미끄러지며 솜털 같은 파도 사이를 헤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선물로 받은 풍경은 꽤 괜찮은 풍경이었다.

    ***

    창밖으로 한국과는 다른 이국적인 풍경이 어둠 속에 잠겨 들어가고 있었다.

    로키산맥 인근 특유의 상쾌하고 건조한 공기 그리고 소나무와 흙의 은은한 향기가 열린 창문 사이로 천천히 불어 들어오고 있었다.

    활짝 열린 창문으로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점점 가까워지다가 점차 멀어지는 사이렌 소리는 어두운 거리와 골목을 가로질렀다.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무장한 협회 소속의 차량이 마을 내부를 가로지르며 돌아다니는 소리였다.

    그런 골목을 내려다보는 창문에 어떤 여성의 실루엣이 비치고 있었다.

    그녀는 사색에 잠긴 채, 이 마을의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주기적으로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 때문에 약간 짜증이 섞여 있었다.

    “흠, 아직도 협회 차량이 이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네.”

    창밖을 바라보던 붉은 머리의 여자는 골목을 통과하는 협회 차량을 보며 투덜거렸다.

    드르륵.

    사이렌 소리가 성가셔진 그녀는 창문을 아래로 내려서 닫아버렸다.

    ‘탁’하는 소리와 함께 완전히 닫혀버린 창문은 조금 전까지 들리던 시끄러운 소리를 효과적으로 차단했다.

    마지막으로 커튼까지 쳐서 외부와 내부를 완전히 차단한 그녀는 짜증스러운 표정을 완전히 지우고 식탁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 식탁 위에는 통통해진 배 위에 손을 올리고, 누워있는 황금 사신이 있었다.

    통통.

    볼록 튀어나온 뱃살을 살살 두들기며, 붉은 머리 여자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었다.

    “배불러?”

    황금 사신은 그녀의 물음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행복한 표정으로 배시시 웃었다.

    탁자 위에는 피자나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의 잔해들이 잔뜩 놓여있었는데, 전부 황금 사신이 먹은 것으로 보였다.

    여자는 감자튀김을 하나 손에 쥐더니, 황금 사신의 입 근처로 내밀었다.

    옴뇸뇸.

    작게 끊어가면서 오물오물 감자튀김을 씹어먹는 황금 사신.

    여자는 그런 황금 사신을 보면서 왠지 행복한 감정을 느꼈다.

    다이어트 중이라 먹지는 못하지만, 먹고 싶은 음식들을 황금 사신에게 먹이는 것이었다.

    그녀는 신기하게도 황금 사신이 먹는 것만 봐도 식욕이 가시고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천천히, 많이 먹어.”

    후후, 작게 웃으면서 밀크셰이크를 황금 사신의 입에 물려주던 도중, 가정의 행복을 부수는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쿵.쿵.쿵.

    “오브젝트 협회입니다. 문 좀 열어주세요. 레이첼 씨.”

    ‘설마 황금 사신이를 잡으러 온 건가?’

    화들짝 놀라 현관문을 바라봤던 그녀는 배가 통통한 황금 사신을 대피시키려고 했지만, 이미 황금 사신은 사라진 상태였다.

    잘 도망갔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현관으로 다가가서, 문을 열었다.

    철컥.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열린 현관 너머로 굉장히 피곤해 보이는 협회 소속 직원이 보였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레이첼.”

    “아뇨. 괜찮아요. 무슨 일이죠?”

    협회 직원은 종이 하나를 건넸다.

    커다란 눈에 눈동자가 5개가 들어간 상징이 그려진 종이였다.

    ***

    강남구 트리니티 싱크홀.

    최근에 발생한 그 싱크홀 주변에는 높은 벽이 주변을 빙 둘러서 세워져 있었다.

    새롭게 세운 벽이 아니라, 원래부터 존재했던 트리니티 제1 연구소의 벽이 남아있는 것이었다.

    자로 잰 것처럼 정확하게 벽만 남기고 내부에 있는 모든 것들을 삼켜버린 싱크홀이었다.

    “인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현장이야.”

    트리니티 제2 연구소장은 하얗게 칠해진 벽에 손을 대며, 착잡한 것처럼 말했다.

    분명히 ‘회색 사신’이 한 짓이겠지.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오브젝트는 달리 없으리라.

    협회의 조사로는 회색 사신은 계속 세희 연구소에 격리 중이었다는 보고서가 있었지만, 제2 연구소장은 그것을 믿지 않았다.

    설령 그 보고서가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회색 사신 정도면 세희 연구소를 속이는 일은 간단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 저주받은 액체는 제대로 써먹을 수 없는 물건인데, 이 나라의 권력자와 연구소가 이상하게 원하는 액체였다.

    지금도 제2 연구소장에게는 ‘진화액’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는 요청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물질을 사용하려고 하다니?

    이거야말로 정신 오염이 아닐까 싶은 정도였다.

    영화로 치면 외계 기생충이 몸에 좋다는 단편적인 증거만 가지고 배 속에 직접 쑤셔 박는 정도로 멍청한 짓이었다.

    아니지, 그 기생충이 배를 찢고 나온 사례가 있는데도 자기 배 속에 집어넣는 짓이었다.

    그래도 이해가 가는 점도 있었다.

    민간에 숨겨진 정보를 아는 자들은 두려울 것이다. 

    인류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특히 한국의 종말은 가까웠다.

    서울과 부산 등 몇몇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통제권을 상실한 지 오래였고, 인류의 땅보다는 오브젝트의 땅이 더 많으니 말이다.

    그러니 서둘러서라도, 오브젝트를 제거할 방법을 무턱대고 손에 집어 드는 것이었다.

    그래도 ‘진화액’은 안된다.

    제2 소장은 품속에서 노트를 하나 꺼내 들었다.

    제3 연구소장 노트의 필사본.

    진화액의 제조 방법과 여러 데이터가 적혀있는 노트를 들어 올리더니,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이런 노트는 없었던 셈 치는 게 좋겠지.”

    활활 타오르는 노트를 바닥에 던져버린 제2 연구소장은 터덜터덜 걸어서, 자신의 차에 올라타서 떠나버렸다.

    바닥에 버려진 노트는 끊임없이 활활 타오르며 재로 변해, 하늘로 흩어져 버렸다.

    ***

    똑똑똑.

    고급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나무 문 위를 검은 요원이 정중하게 두들겼다.

    금발 소녀는 층계참에 마련된 창문을 열고 태양 빛을 맞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상하군요. 탐정 사무실에 아무도 없습니다.”

    한 손에 휴대전화를 든 검은 요원은 의아한 표정으로 금발 소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적어도 ‘후배 3호’라고 불리는 직원은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지만, 사무실은 인기척도 없이 고요 속에 잠겨있었다.

    “휴대전화도 꺼져있는 것을 보니,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아가씨.”

    “뭐, 어쩔 수 없네요. 다음에 다시 와요. 아저씨.”

    금발 소녀는 태양 아래를 걷게 해준 탐정에게 감사 인사를 하러 왔지만, 탐정은 자리에 없는 것으로 보였다.

    금발 소녀는 올라왔던 계단을 다시 내려가며 말했다.

    “그 탐정 아저씨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 건 아니겠죠?”

    “아마, 괜찮을 겁니다. 감이 무척이나 좋은 녀석이니까요.”

    검은 요원과 금발 소녀는 사소한 잡담을 나누며, 세희 연구소로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떠나가자, 탐정 사무소는 다시 불길한 고요 속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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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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