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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8

        아니지. 로즈마리는 그렇게 멍청한 애가 아니다.

       

        로즈마리는 나와 로테 사이의 관계 파악을 끝마쳤는지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요, 웬만하면 안 가는 게 좋아요. 반파된 아카데미에 가서 공부해봤자 마음만 싱숭생숭하고 제대로 배우지도 못할 거예요. 그럴 바에야 내년을 기약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어, 아니, 그게…….”

       

        로즈마리 입에서 예상외의 제안이 나왔다. 당연히 로테는 놀랐고, 솔직히 나도 의외라고 생각했다.

       

        누가 나라 셋 박살 낸 녀석 아니랄까 봐. 머리 돌아가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로테는 입을 우물거리며 손가락을 책상에 톡톡 두들겼다. 명백히 고민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왜 그러니, 살리에르? 교환학생 취소하려고?”

        “아뇨, 갑자기 그런 소식을 들으니까 뭔가 가면 안 될 것 같기도 해서…….”

        “솔직히 얘기해서, 선생님도 너희를 일리야드에 보내기가 꺼려져. 아무래도 위험한 곳이 되어버렸으니까.” 

       

        헤를라인은 씁쓸하게 웃으며 로테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이 점은 이사회에서도 검토하고 있어. 원하면 전날이라도 취소할 수 있으니까 잘 생각하고 결정하렴.”

        “……네.”

       

        폭풍과도 같던 화요일 조례는 그렇게 끝났다.

       

        그 뒤로는 언제나 같은 일상이었다. 가끔가다 로테가 질투를 뿜어낸 적이 있었지만, 뭐랄까.

       

        조례 전보다는 그 강도가 확연히 약해졌다.

       

        아마 교환학생 건으로 고민하고 있는 거겠지.

       

        애착 욕구가 심해졌다고는 해도 로테는 로테였다. 기본적으로 학업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정령마도 아카데미는 신기한 경험이 될 터였다. 무엇보다, 그녀의 아버지가 정령마도사 아니던가.

       

        기왕이면 로테도 정령마도를 배우고 싶을 터였다.

       

        하지만 일리야드 아카데미가 일부 파괴되었고, 이곳 틸레트에는 로즈마리라는 적수까지 나타났다.

       

        로테로서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떠난 사이에 학교 잘 다닐 수 있겠어?”

        “뭐야, 내가 애도 아니고.”

        “하는 거 보니까 걱정돼서 그러지….”

        “그 정도는 알아서 해. 노예로 구르던 시절에도 누구 도움 안 받고 했었어.”

       

        사실 로테도 알고는 있다. 내가 아무리 서툴더라도 기본은 할 줄 안다는 것쯤은.

       

        “너도 졸업하면 귀족이니까 지금부터 몸에 배야 해. 일어나자마자 이부자리 개는 것부터 시작해서, 옷차림이라든가 식사 예절, 그리고 또…. 또오…….”

        “로테.”

       

        나는 그녀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아직 시간은 많아.”

        “…….”

        “너도 알잖아. 졸업까지 3년 남았어.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한 뒤에 배우더라도 늦지 않을 거고. 우리가 한 학기 떨어진다고 해서 내가 그런 걸 못 배우거나 할 정도로 타인에게 의존적이지는 않아.”

       

        내 말에 로테는 고개를 푹 숙였다.

       

        ‘에테르는 학교를 졸업하면 곧바로 귀족이 될 테니까, 내가 예절이나 이런 것들을 미리 알려줘야 한다.’

       

        로테는 지금 틀림없이 그리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그런 건 방어기제에 불과했다. 어떻게든 합당한 변명거리를 만들어,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것이다.

       

        속으로는 두려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로즈마리가 나타나서 나를 ‘집’으로 데려갈까 봐. 그리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까 봐.

       

        물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는다. 설마 그러겠어? 과대망상 아니야? 이러고 넘어가지.

       

        로테는 달랐다. 그녀에게는 남다른 육감이 있었다.

       

        아카샤와 내 정체를 직감으로 의심한 것도 로테였다. 그땐 술로 어떻게든 넘기긴 했지만.

       

        어쨌거나, 단짝을 잃는다는 건 사교성 좋은 그녀에게 있어도 두려운 일이다. 얘랑은 특별하게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데, 누군가가 빼앗아 간다고 생각해 보라.

       

        심지어 로즈마리는 정말로 그럴 계획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여러모로 로테를 속이고 있었다. 그런 게 미안해서 그저께 이틀 치 자유이용권을 준 것이다.

       

        하지만 이건 이것대로 문제가 된 듯하다.

       

        ‘에테르 2일 자유이용권’은 결과적으로 서로의 정신건강에만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이러다간 로테에게 의존증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친구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단호한 투로 입을 열었다.

       

        “로테.”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무언가를 중얼거리던 로테는 황망한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친구는 여러 명 사귀는 게 중요하지 않겠어?”

        “…그렇지?”

        “반 다른 친구들이나 공녀님하고도 친하게 지내. 교환학생으로 올 엘프 애들하고도 두루 사귀고.”

        “그럴 거야. 그래도….”

        “그래도?”

       

        로테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을 이었다.

       

        “너 같은 친구는 헤어지면 두 번 다시 못 사귈 거야.”

       

        그리 말하는 로테의 눈동자는 우울했다. 예상치 못한 그녀의 언행에 내 눈매가 가늘어졌다.

       

        아무래도 가설을 정정해 볼 필요가 있겠다.

       

        로테가 로즈마리의 정체를 어림짐작하고 있다는 쪽으로 말이다.

       

        학교가 끝난 뒤. 평소보다 일찍 침대에 누운 나는 생각을 퍼즐처럼 이리저리 꿰맞추며 머릿속을 정돈했다.

       

        여기서 의외의 활약을 한 존재가 있었다.

       

        바로 양장본이었다.

       

        [생각해보면 답 나오지 않나요? 로즈마리가 왜 주인님을 언니, 언니 하면서 따라붙는지 일반인 입장에서는 전혀 모른다고요. 요 빨간 머리 소녀가 거기까지 유추하고 이런 행동을 보이는 거 아니겠어요?]

       

        뭐야. 그러면 집착하는 것도 아니고, 진짜로 나 떠나갈까 봐 로즈마리를 견제한다는 거야?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뜬금없다. 로즈마리는 이번 학기 초부터 있었는데.

       

        [기감을 알아차리는 건 생각보다 늦어요. 최상급 정령이라도 마수가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지 않으면 탐색과 특정에 시간이 걸리죠.]

       

        그런 건가? 양장본이면서 정령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네.

       

        [당연하죠. 여신님께서 손수 빚어내신 인공지능이 바로 저라는 존재인데.]

       

        양장본의 말대로라면 로테에게 이미 정령이 들어가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뛰어난 기감으로 나와 아카샤는 물론, 로즈마리의 정체까지 알게 모르게 판단해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큰 위협을 느낀 거지.

       

        “…그러면 이해가 돼.”

       

        이제야 무언가가 딱딱 맞물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건 나에게도 문제가 있었구나.

       

        어떻게든 로즈마리와의 관계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었다. 로즈마리는 나를 잘 따르니까 어떻게든 구슬려서 인간 편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내가 마수 진영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솔직히, 전자보다는 후자가 편했다.

       

        그러고 보니 내 원래 목표가 모든 마법을 익히는 거였잖아. 그러면 세상의 모든 마법을 유실시켜 버리면 자동으로 돌아가는 거 아닌가?

       

        [어… 그거 편법이긴 한데.]

       

        그래서 되냐고 안 되냐고.

       

        [돼요. 마탑 몇 개 날려버리면 배워야 하는 게 수십 개씩 뭉텅이로 깎여나갈걸요?]

       

        “오.”

       

        그러면 공계마도로 유명한 일리야드 주변을 전부 쑥대밭으로 만들면….

       

        “…같은 소리 하네.”

       

        내가 미친 사이코패스 새끼도 아니고, 뭔 그런 일을 벌여? 아무리 그래도 그런 짓을 벌이면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지.

       

        [저도 별로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아니네요. 어쨌거나 지구에 돌아가긴 돌아가겠지만….]

       

        알지. 뒤탈이 안 좋을 거라는 것쯤은.

       

        머릿속에 한숨 소리가 울렸다. 양장본은 잠깐 쉬러 가겠다고 말하며 블루투스 연결을 끊어버렸다.

       

        때마침 덜컥, 하고 화장실 문이 열렸다. 로테는 수건으로 머리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며 입을 열었다.

       

        “들어가도 돼.”

       

        로즈마리만 안 엮이면 여전히 좋은 친구다. 순수하고, 배려심 깊은 아이.

       

        나는 로테에게 로즈마리 정체를 아냐고 물으려다가 관뒀다. 아마 본인은 모르겠지.

       

        혹여나 알았다고 한다면 나에게 왜 거짓말했냐고 따지고 들었을까? 거기까진 잘 모르겠다.

       

        나는 옷을 대충 벗어 던지고 샤워기에 몸을 파묻었다. 물을 급탕으로 돌려도 뜨겁다거나 하는 느낌은 거의 없었다. 이 몸은 그런 몸이었다.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유지하기 위해 험난한 방식으로 핵개발을 하고 돌아갈 것이냐.

       

        아니면 효율을 위해 마왕군 편에 붙어 다 조져버리고 지구로 돌아갈 것이냐.

       

        1년 전까지만 해도 후자를 골랐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런 선택을 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입장이 되어버렸다.

       

        생각이 깊어지는 날이었다.

       

       

        **

       

       

        시간은 느릴 땐 느리게 가더니, 빠를 땐 하염없이 빠르게 간다.

       

        시험 기간이 딱 그랬다.

       

        조금 있으면 중간고사인데, 그 와중에 예술제까지 겹쳐 있다. 덕분에 여러모로 바쁜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연구? 당연히 계속하고 있고. 어제도 카이뤼삭 교수 연구실에서 늦게까지 연구하느라 로테에게 한 소리 들었다.

       

        나도 시간이 그렇게 될 줄은 몰랐지. 그런 변명을 해 보았으나 무용지물이었다.

       

        그러면서 며칠이 지났다. 백야는 거의 다 완성되었고, 남은 건 스크롤을 깎아 온전히 만드는 것뿐이다.

       

        조만간 재밌는 걸 구경할지도 모르겠구나. 그리 생각하던 참이었다.

       

        “자, 다들 인사하렴. 이번에 반 학기 동안 너희들과 같이 공부하게 된 엘프 친구들이야.”

       

        조례 시간에 난데없는 서프라이즈가 열렸다.

       

        헤를라인 선생님은 한껏 상기된 얼굴로 분필을 집어 들었다. 탁, 타탁, 하며 그녀가 재빠른 손놀림으로 하얀 가루를 칠판에 묻혀내기 시작했다.

       

        평소 수식이 빼곡하던 칠판에는 엘프어로 된 네 명의 이름이 차례대로 적혔다.

       

        메릴다, 에리카, 제롯, 로멜. 

       

        네 학생을 차례대로 훑어보던 내 눈이 마지막에 가서야 멈췄다.

       

        “…오.”

         

        가장 오른쪽에 있는 녀석, 꽤 잘생겼네.

       

        패 죽이고 싶을 정도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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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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