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68

       빙의자, 혹은 회귀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사실은 에단이 아니라 에단 주변의 다른 누군가였을 가능성.

         

        이론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에단의 외형이 너무나도 많이 바뀌어 있던 것은 물론이고, 바뀐 스토리 대부분이 에단이 속한 블랙우드 가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에 처음에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가설이었지만.

         

        호숫가에서 보았던 에단의 행동으로 인해, 겧뫄조셰기괏은 두 번째 가설에도 제법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에단이 아닌 다른 인물로 빙의한 빙의자가 있고 그가 에단이라는 인물 자체를 비롯하여 스토리에 여러 방면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이틀 전, 무심코 귀에 들려왔던 현대인다운 그 말투를 겧뫄조셰기괏은 절대로 놓치지 않았기에.

         

         

        ‘이걸 사네.’

         

         

        전생에서는 제법 많이 들어왔었던, 10~20대 남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익숙한 말투.

         

        하다못해 평범한 아카데미 남학생이 무심코 내뱉었더라면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역시나 그가 의심을 하게 된 건 그 말투를 꺼낸 장본인에게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런 말투를 사용하리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외형과 직위의 사람이 마치 다른 사람으로 빙의한 것처럼 무심코 중얼거리는 모습이었기에.

         

         

        릴리스 로즈우드.

         

        아니, 어째서인지 지금은 릴리스 블랙우드 로즈우드라는 준남작 영애가 되어있는 그녀가 두 번째 가능성의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생각해 보면, 정황 자체는 가장 그럴듯해.”

         

         

        실버우드 영지에 끌려간 창부인 에이리아가 원작 스토리에서 릴리스를 괴롭히던 악역이었다는 점도.

         

        원래대로라면 원작 줄거리에서 퇴장했어야 할 리지가 살아있는 것은 물론이고, 가끔 묘하게 릴리스를 따르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도.

         

        심지어는 오늘 발표된 세라핀의 학생회 인선에 ‘일개 메이드’인 릴리스가 당당하게 서무 직책을 받고 올라와 있었다는 점까지.

         

        에단만큼은 아니었지만, 릴리스 또한 여러모로 원작 게임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는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를 빙의자라고 생각하기 가장 힘든 이유가 한 가지 남아있기는 했지만.

         

         

        “만약 릴리스가 빙의자라면, 대체 그 돼지 공자 에단을 어떻게 길들였냐는 건데….”

         

         

        어떻게 일개 메이드의 신분으로 해럴드의 감시를 피해 에단을 사람으로 만들어 놓은 건지.

         

        그 부분이 용사 겧뫄조셰기괏의 시선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만약 릴리스가 에단에게 조금이라도 손찌검을 하거나 욕설을 내뱉는 순간 그녀는 해럴드에게 징벌을 받았을 테고.

         

        아마 릴리스와 에단의 관계가 조금만 틀어졌더라도 실버우드 영지에서 에이리아와 함께 나란히 창부 신세를 면치 못했을 터였다.

         

         

        그렇다고 해서 어려서부터 문제아라고 하던 에단의 성격을 폭력이나 폭언 없이 교화시켰다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고.

         

        이미 그 방법이 소용없다는 건 원작 게임에서의 릴리스가 겪은 미래로도 확신할 수 있었다.

         

        에단의 철부지 같은 행동을 거부하지 않고 하나둘 받아들인 릴리스의 결과가 바로 원작 게임에서 에단에게 능욕당하는 ‘미련한 메이드’ 릴리스였으니까.

         

         

        “그 부분만 어떻게 한 건지 알아내면, 릴리스가 빙의자라는 것을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가능하면 그녀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에단은 그의 여자관계가 문란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릴리스의 곁으로 다가올 수 없도록 경계하고 있었으니.

         

        아무래도 진실을 확신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듯했다.

         

         

        “…아직, 시간은 충분해.”

         

         

        2부의 마지막이자 에단이 목숨을 잃는 이벤트는 2학년 2학기 말.

         

        그전까지만 어쩐 정황으로 스토리가 바뀌게 된 건지 확신할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떻게든 그때까지만 알아내고 나면, 나머지는 그 이후에 판단하면 되겠지.”

         

         

        원작 게임에서의 정석적인 플레이를 위해 릴리스를 영입할지, 아니면 조금 다른 방식의 클리어를 고려해야 할지.

         

        판단을 보류할 시간은 충분하고도 남았으니까.

         

         

         

       ⁎ ⁎ ⁎

         

         

         

        검술부의 혼인/약혼 기숙사. 에단과 릴리스의 방.

         

        사흘 만에 에단과 함께 사용하는 기숙사로 돌아온 나는 기숙사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 사람과 두 정령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복귀했다.

         

         

        “릴리스으으~!!!”

         

         

        사흘 만에 마주하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요란한 반응과 함께 내게 달려드는 이사벨.

         

         

        ‘릴리스, 괜찮아?! 이제 멀쩡한 거야? 제대로 나은 거 맞아?’

         

        ‘…릴리스, 안 죽는 거지…?’

         

         

        그리고, 의외로 내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던 샐리와 세이의 적극적인 환영을 받으며.

         

         

        “릴리스으으~!! 이번에도 또 죽을 뻔했다며~!! 왜 자꾸 위험한 일만 하는 거야, 릴리스으으~!!!”

         

        “미안, 이사벨. 괜히 걱정시켰네.”

         

        “괜히 걱정시킨 게 아니라고~!!!”

         

         

        내 가슴팍에 글썽이는 울먹이는 얼굴을 파고들며 나를 꼭 끌어안는 이사벨.

         

        내가 어떻게 잘못되기라도 했으면 이사벨도 아마 여러모로 상심이 컸겠지.

         

        특히 그녀 같은 경우에는 전속 메이드의 전속 메이드라는 어중간한 신분으로 루미노르 아카데미까지 따라온 처지였으니, 에단과의 중간 다리인 내가 사라지면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릴 터였다.

         

        물론, 어떻게든 무사히 생환한 덕에 나나 그녀에게 일어날 뻔한 비극은 전부 취소되기는 했지만.

         

         

        “…나는 먼저 씻도록 하지. 자네들은 그동안 천천히 이야기들 나누도록.”

         

        “아, 에단 도련님. 갈아입을 옷은….”

         

        “내가 챙겨둘 테니 신경 쓰지 말고, 오늘까지는 푹 쉬어, 릴리스.”

         

        -철컥.

         

         

        그 말과 함께 속옷과 침의를 챙겨 탈의실 안으로 들어가는 에단.

         

        덕분에 나는 이사벨의 걱정으로 가득한 잔소리를 거의 10분 내내 들어야만 했다.

         

         

        “…그러니까 위험한 짓 하지 마, 릴리스. 대체 왜 릴리스는 나와 같은 전속 메이드인데 자꾸 어디 가서 위기를 겪는 거야?”

         

        “미안, 변명할 말이 없어.”

         

        “…정말 다음에 또 위험한 짓 했다가 죽을 뻔하면, 그때는 진짜 절교할….”

         

        “…….”

         

        “아, 아니…. 절교까지는 조금 심하니까. 이, 일주일 동안 릴리스랑 말 안 할 거야….”

         

         

        마음이 약해서 차마 절교까지는 말할 수 없는 건지, 아니면 이렇게 말해도 내가 또 위험한 짓을 할 것 같아 급하게 처벌의 강도를 낮춘 건지.

         

        묘하게 귀여운 선언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지금의 나는 이사벨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내가 전생의 기억을 찾기 전부터 이어져 온 유일한 인연인데, 그녀와 사이가 소원해지는 것은 원하지 나로서도 그리 원하지 않는 미래였으니까.

         

         

        ‘릴리스, 릴리스.’

         

        “아, 샐리. 왜 그러시죠?”

         

        ‘혹시, 지금 릴리스 마력 먹어도 돼? 아니면 조금 더 회복해야 해…?’

         

        ‘나도, 릴리스, 마력, 먹고 싶어….’

         

        “아.”

         

         

        하긴, 생각해 보니 이 애들한테 식사를 못 챙겨준 것도 사흘째였네.

         

        물론 계약 관계라고 해서 그녀들이 꼭 내가 지닌 마력만을 흡수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대기 중에 있는 마력만으로도 생명 유지에 관한 마력은 충분히 유지할 수 있었으니까.

         

        다만, 계약자의 마력을 충분히 먹지 못하면 정령 개체의 친밀도라든가 성장 수치가 낮아지기 때문에 꾸준한 공급이 중요할 뿐이지.

         

        지금은 죽을 뻔했던 위기도 완전히 넘겼고 애초에 몸 자체는 어제 전부 회복했었던 만큼 두 정령에게 마력을 챙겨주어도 문제 될 게 없었다.

         

         

        “얼마든지요, 샐리, 세이. 사흘 동안 제대로 못 챙겨드렸으니까, 마음껏 드셔도 된답니다.”

         

        ‘앗싸아~!!’

         

        ‘응, 잘 먹을게….’

         

         

        내 대답에 밝아진 표정과 함께 각각 오른손과 왼손에 붙어 내 마력을 흡수하기 시작하는 두 정령.

         

        고위 정령과 중급 정령이 동시에 내 마력을 빨아들이고 있는 만큼 몸에서 마력이 빠져나가는 감각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12레벨에서 16레벨로 단번에 레벨업하며 마력 최대량이 3천을 넘긴 나에게는 충분히 여유로운 수준의 소모량이었다.

         

         

        ‘릴리스! 왠지 저보다 마력 농도가 더 진해진 것 같은데?’

         

        ‘그리고, 더 맛있어, 으으응….’

         

        “글쎄요. 크라켄을 쓰러뜨리는 과정에서 제가 더 강해진 게 원인이 아닐까요?”

         

        ‘이대로라면 나랑 정식 계약까지도 금방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빨리빨리 팍팍 강해져 봐!’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거든요. 이번에는 정말 우연히 크라켄을 쓰러뜨릴 수 있는 여건이 되었던 덕에 이길 수 있었던 거고요. 그리고 저 실제로 잘못하면 죽을 뻔….”

         

        “으으음…,”

         

        “…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아슬아슬하게 이긴 거니까요. 목숨을 건 위험한 전투는 딱히 더 하고 싶지 않아서요.”

         

        “…휴우.”

         

         

        사실 그대로 말하기에는 이사벨의 걱정 가득한 시선이 묘하게 아팠다. 단순히 심술 같은 것으로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서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점에서 특히 더.

         

        애초에 이사벨처럼 의리파에 마음까지 착한 애가 나한테 화를 낸다는 건 십중팔구 내 잘못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잔뜩 걱정을 시켰으면, 그 대가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나저나, 생각해 보니 샐리도 세이도 얌전히 있으셨네요? 제가 집을 비운 며칠이면 바로 저를 찾으러 돌아다니실 줄 알았는데요.”

         

        ‘릴리스가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잖아. 조금 걱정되기는 했는데, 그냥 기다렸어. 대충 이 방의 다른 인간들이 대화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일단 목숨은 건졌다는 것 같다고도 들었고.’

         

        ‘계약, 되어있으면, 죽었는지, 아닌지, 알 수 있어. …잠깐, 끊겼을 때는, 조금, 불안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계약 정령이라고 계약자가 시킨 말은 잘 듣는다는 건가.

         

        어쨌든, 이 두 정령이 쓸데없이 나를 찾아다니겠다고 밖으로 나돌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괜히 엄한 곳에서 잃어버리거나, 혹은 아카데미 교회에서 샐리와 세이를 상대했더라면 피로 때문에 회복이 조금 늦어졌을 수도 있었으니까.

         

        …그래도 이번의 크라켄 토벌전을 생각하면 아무리 못해도 둘 중 하나는 꼭 데리고 다녀야겠네.

         

         

        “릴리스, 이제 욕실 써도 돼.”

         

        “아, 네. 감사합니다, 에단 도련님.”

         

         

        그런 반성을 하던 도중 때마침 욕실을 사용하고 나온 에단에게 대답하며 나도 침의와 속옷을 들고 기숙사 탈의실로 걸음을 옮겼고.

         

        오랜만에 설비 좋은 기숙사 욕실에서 한 차례 몸을 씻고 돌아오자마자, 나는 곧바로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릴리스, 슬슬 침대 위에 눕는 게 어때? 내일은 나도 릴리스도 오전부터 수업이 있는 날이잖아.”

         

        “…….”

         

        “…릴리스?”

         

        “…아, 네. 그, 그렇, 습니다…. 에단 도련님의 말씀대로, 슬슬 취침에 들어가야겠죠. 네….”

         

         

        에단과 단둘이 한 이불을 덮고 자는 2인용 침대.

         

        매일같이 마음 편하게 잠들었던 그 침대가 왜인지 오늘따라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지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드디어 부끄러움이 뭔지를 안 릴리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망나니 공자의 메이드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transmigrated into a character from my favorite game in my previous life. Moreover, as the character I despise second most in the game. (Not a wasteman) The cover was designed by Deep Dark Wolf, and the typography was done by 유일유화 (Yu Ilyuhwa).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