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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8

       이 세상에는 더러운 환상마법이 참 많다. 

       

       사랑을 원망으로 바꾸기, 특정 트리거를 만족하면 주체할 수 없는 도파민이 흐르도록 개조하기, 기억 흐리기, 연인을 원수로 보게 만들기, 성격을 폭급하게 부추기기, 최면에 세뇌, 온갖 야시시한 태그들⋯⋯.

       

       개중에는 상대의 정신방벽을 우회하기 위해서 까다로운 수작을 부리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얼굴흉터 선배의 『꼭두각시』다. 이 마법은 ‘저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선량한 데이터인데 들여보내 주실래요’ 하고 파고든다.

       

       그런 흉흉한 환상마법들을 TRPG 구현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공부하던 나는, 마법에 한 번 잘못 걸리면 그대로 통 속의 뇌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문득 두려움을 느꼈다.

       

       어떤 미친 마법사가 나를 납치해서 영원한 환상 마법에 가둔다든가, 눈 시뻘건 닌자가 세계 전체에 환상 마법을 걸어버릴 줄 누가 알겠는가.

       

       내가 파이어볼에 웰던으로 구워질지언정, 환상마법에 당해서 나를 잃지는 않겠다. 그 일념으로 정신방벽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

       

       처음에는 모듈을 하나씩 추가하는 방식을 택했다.

       

       주기적으로 블랙박스에 저장된 백업-정신을 불러오는 최면 / 인식개변 대책 모듈. 인공 두뇌를 만들어 프로세스에 따라서 감각을 판단하는 시청각 개변 대책 모듈 등.

       

       그렇게 하나둘 추가하다 보니 내 정신방벽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따로 없었다. 누더기처럼 붙어 있는 꼴이 볼품도 없었고, 가끔씩 오류도 났다.

       

       “아, 옛날에 그, 양고기 구워서 가져가니까 오이 앞의 고양이처럼 자지러졌던 게⋯⋯?”

       

       “양고기를 환상 마법으로 인식해서, 주인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필터를 씌우더라고요.”

       

       어떤 정신방벽 모듈이 그런 찐빠를 냈는지 찾느라 고생 좀 했다.

       

       나는 이 환상마법 경찰들을 내 머릿속에서 어우러지게 할 방법이 필요했고, 그 돌파구는 TRPG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이과적으로 접근해서 풀릴 문제가 아니라면, 문과적으로 접근하자. 세계 하나를 만들어서 모듈들을 자유롭게 풀어놓도록 하자.

       

       내게 가장 친숙한 현대 맵을 뼈대로 삼아 머릿속에서 가상세계를 구축했다.

       

       예상한 것은 아니지만, 이 구조가 정신-실체를 넘나드는 계열에게 효과가 참 좋았는데. 

       

       -날, 나를 여기서 꺼내줘⋯⋯,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

       

       쾌락에 굴종한 자들의 정신을 엮어 만든 아늑한 둥지가 있다. 정신의 저편에 지어진 환락의 궁전, 이곳은 서큐버스의 낙원이다.

       

       바라기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정기를 취할 수 있으며, 하루 종일 몸을 섞고도 지치지 않는다. 그뿐인가? 궁전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레 힘이 쌓이고 실력이 늘어난다.

       

       정신계 마법의 극치(極致)를 온몸으로 느끼는 것만으로도 깨달음이 쌓이기 때문이다.

       

       어느 누가 인간의 정신을 엮어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겠느냐. 그 어떤 마법사가 이러한 대위업을 달성할 수 있겠느냐. 오직 여왕뿐이시다. 우리들의 여왕께서는 뭇사람의 정신을 번롱하는 꿈의 지배자이시다.

       

       그러한 풍요에 질려, 좀 더 특별한 『자극』이 필요하다면 여왕에게 고개를 조아리면 되었다. 

       

       무구한 순백의 여왕께서는 수십 년을 1초에 쑤셔 넣어 태워버리는 듯한 아찔한 쾌락을 나누어주실 터다.

       

       “아, 아아⋯⋯!!”

       

       그것은⋯⋯ 형언할 수 없는 쾌락의 정점이다.

       

       서큐버스 이사벨라 또한 여왕의 은혜를 온몸으로 느껴본 자로써, 그날 이후로 그녀의 모든 인생은 또 한 번의 쾌락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었다.

       

       사랑도, 웃음도, 배부름도, 오르가즘도, 모조리 무가치하다. 인세의 것을 뛰어넘는 쾌락의 극한을 맛본 이상, 현실의 그 어떤 행복도 칙칙한 잿빛으로 보였다.

       

       이사벨라는 훌륭한 쾌락의 노예였다.

       

       어느 날, 여왕께서는 이사벨라를 부르셨다. 그녀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설렘을 억누르며, 벗은 몸으로 이마를 땅에 붙이며 기었다. 개만도 못한 굴종이었으나,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고개를 들어도 좋아요.”

       

       목소리마저 어찌나 고우신지.

       

       벅차오르는 감정으로 고개를 든다. 희다. 여왕께서는 백옥과 같은 피부를 지니셨고, 비단결 같은 흰 머리카락으로 그 나신을 가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뇌가 욱신거리고 코피가 흐른다. 뇌가 망가진 것처럼 쾌락에 관여하는 물질들을 쏟아낸다. 행복하다. 행복해서 죽을 것 같다.

       

       서큐버스 이사벨라는 거의 눈을 까뒤집은 채로 덜덜 떨며 절을 올리며, 여왕에게 인사를 올렸다.

       

       “이, 이사벨라가⋯⋯ 주인님을 배알하나이다⋯⋯!”

       

       “나는 당신이 아카데미로 가 줬으면 좋겠어요. 당신도 그렇죠?”

       

       “물론입니다, 물론이에요⋯⋯! 저도 마침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무슨 일인지 듣지도 않고 고개부터 끄덕이는 이사벨라를 향해, 여왕께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천천히 일러 주었다.

       

       3황자를 손아귀에 넣고, 아카데미에 약을 풀어라.

       

       아카데미 방면을 담당하는 것은 『공포 먹는 시체꽃』이었지만, 그녀는 계략보다는 무력이 뛰어난 쪽이다. 그러니 이렇듯, 뒤에서 밀어줄 필요가 있었다.

       

       『쾌락 마시는 숫처녀』는 자신의 하수인에게 명령을 내렸고.

       

       이사벨라는 낙원으로부터 쫒겨나 아카데미에 파견되었다. 

       

       ===============================================================

       

       마음에 균열이 난 이들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주무를 수 있다. 그들은 결핍을 무언가로 채우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기에, 그것이 설령 달콤한 독이더라도 망설이지 않고 삼킨다.

       

       서큐버스 이사벨라는 3 황자 스레도 크라운을 유혹했고, 그의 마음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 뒤로는 쉬웠다. 3황자의 이름 뒤에 숨어서 암약하며, 덫을 놓고 차분히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욕망을 이겨내지 못하고 약을 삼키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난다. 복용으로 인하여 정신과 정신 사이에 연결고리가 생기면, 서큐버스는 머릿속에 숨어들어 교묘하게 꼬드긴다.

       

       그렇게 아카데미 내부에 흑마법사들을 잔뜩 늘려 놓았건만.

       

       “그 미친 새끼는 어떻게 학생들을 상대로⋯⋯!!”

       

       ‘미친 마법사의 악몽’ 사건으로 대부분 쓸려나가고야 말았다. 분명 계획대로 잘 풀리고 있었는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기분이었다.

       

       이렇게 어긋나면, 여왕님이 포상을 내려주시지 않을 텐데.

       

       이사벨라는 분노와 초조함이 한데 뒤섞인 마음으로 손톱을 씹었다. 그 자색 마탑의 마법사에게, 언젠가 지독하게 복수하리라.

       

       자탑의 환상 마법사라고 한들 어차피 수컷이다.

       

       이사벨라는 거울 앞에 섰다.

       

       밸런스 있는 아름다운 나신 위로, 연분홍색 머리카락이 날개뼈 언저리에서 흔들렸다. 폭력적인 몸매는 아니라지만 충분히 육감적이다.

       

       이 도도한 시선으로 얼마나 많은 수컷들을 홀려 타락시켰던가.

       

       또한, 서큐버스는 본래부터 환상과 현실 사이를 넘나드는 종족. 아무리 날고 기는 마법사라도 정신 분야에서는 따라올 수가 없다.

       

       그러니 몽마를 내쫒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환상 마법 대신에 신성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한 번의 기회였다.

       

       어떻게든 그 마법사의 머릿속에 파고들기만 하면⋯⋯!

       

       “나는 30미터 밖에서도 심장 박동을 들을 수 있어. 실랑이하기 싫으니까 솔직하게 말해. 내 예비 플레이어는 어디에 있지?”

       

       왔다. 기회가 왔다.

       

       자탑의 마법사는 자신의 제자를 구하기 위해서 지하 시설에 발을 들였고, 이사벨라는 은밀하게 그의 옷에 약물을 뿌렸다. 

       

       성욕을 부추기고 성질을 폭급하게 하여, 정신의 틈을 열어 몽마가 침입하기 쉽도록 만들어 주는 약물이었다. 여왕께서 중요한 타이밍에 쓰라며 내려 준, 여왕의 꿀을 이용한 약이다.

       

       성불구자가 아니고서야⋯⋯ 아니, 성기능에 장애가 있더라도 먹힌다. 미친 마법사는 서서히 호색한이 될 것이다.

       

       이는 침입을 예비한 것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마법사의 사회적인 입지를 깎아내려는 수작이기도 했다. 

       

       효과가 충분히 들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그리고 바로 오늘⋯⋯ 이사벨라는 조용히 미친 마법사의 꿈속에 숨어들었다.

       

       ===============================================================

       

       인간의 꿈속은 애매모호하다. 약간의 자극으로 전혀 상관없는 기억이 떠오르거나 하며, 개연성 없이 무작위로 얽힌다. 혼돈의 구름투성이다.

       

       자신의 머리를 온전하게 통제하는 인간이 어디에 있겠는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기에 보통은, 인간의 머릿속으로 침입하면⋯⋯ 그곳에는 희뿌연 안개가 가득한 어두운 공간이 나오게 된다. 설치된 정신방벽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는 그렇다.

       

       서큐버스는 이 공간을 『정신계』라고 불렀다.

       

       이 위에는 깨어난 의식이 있고, 이 아래에는 가라앉은 무의식이 있다.

       

       여기서 집도를 시작하는 것이다. 감춰 둔 비밀을 끄집어 올리고, 나쁜 기억을 엮어서 위로 띄워 올리며, 행복한 기억을 가라앉힌다.

       

       특정 암시를 무의식에 심을 수도 있고, 직접 꿈속에 등장하여 유혹해 정기를 뽑아갈 수도 있었다. 

       

       대부분의 정신방벽은 벽이나 자물쇠 같은 무기물의 형태를 띤다. 들어가면 안 되는 공간을 막거나 잠그고, 혹은 감춘다.

       

       좀 더 공격적인 정신방벽의 경우에는 함정의 형태를 띤다. 몽마가 건드리면 위협적인 공격이 쏘아지도록.

       

       그런데. 그래야 할 텐데⋯⋯?

       

       빵빵-!!

       

       “아이씨, 아저씨 좀 비켜요! 지금 빨간불인 거 안 보여?”

       

       “누가 누구더러 아저씨래, 야! 너 연식 몇 년이야?!”

       

       “아니, 빨간불이니까 액셀 밟고 좀 쳐 가시라고! 당신 어쩔티비 모듈이야?!”

       

       “⋯⋯⋯⋯?”

       

       왜 생전 처음 보는 도시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 거지.

       

       또한, 기이하다. 이상한 기구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과, 이상한 탈것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과,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건물이 빼곡하다.

       

       그리고⋯⋯ 도시의 중심부. 커다란 흑색의 돔이 있었다.

       

       모든 색채를 빨아들이는 것 같은 새까만 반구가,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이. 이사벨라는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축되는 기분을 느꼈다.

       

       서큐버스 이사벨라는 눈을 깜빡이다가, 자기 뺨을 꼬집어서 쭉 늘렸다. 찹쌀떡처럼 주우욱 늘어나는 것이 확실히 꿈이 맞았다.

       

       이사벨라는 주먹을 쥐어 표면 기억을 끌어당겼다. 잠깐 힘을 주자, 미친 마법사가 자색 마탑주에게 무릎베개를 받는 기억이 손아귀에 잡혔다.

       

       권능의 행사도 가능. 여기는 『정신계』가 맞다. 하지만,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어떻게, 인간 따위가 제 머릿속에 세계를 만들어놓을 수 있다는 말이냐. 

       

       여왕께서도 수백 명의 사람들을 간신히 엮어 만드셨거늘, 어떻게?

       

       애초에 만들 재주가 있다고 해도, 머리가 먼저 터져버리고 말 거다!

       

       “⋯⋯아니, 아니야. 괜찮아.”

       

       중요하지 않다. 잠깐 놀랐을 뿐이다. 이사벨라의 목적은 미친 마법사의 정신을 망가뜨려 지배하는 것. 정신 조작만 제대로 먹힌다면, 내부가 어떻게 생겼든 상관이 없다.

       

       이사벨라는 두 손을 뻗어 미친 마법사의 아픈 기억부터 끄집어내려 했다. 손에 무언가가 잡히는 느낌이 든다. 아주 순조롭다.

       

       “⋯⋯⋯⋯.”

       

       그녀는 문득, 등골이 쎄한 느낌에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도시의 소란이 멎어 있었다. 시끄러운 엔진음과 말소리, 전광판에서 흘러나오던 광고, 발걸음, 모두. 시간이 얼어붙은 듯이 조용하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움직임을 멈춘 채로 고개를 꺾어, 이사벨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뭐예요. 뭐야.”

       

       “────.”

       

       “나, 날 그렇게 보지 마. 저, 저리 안 꺼져?!”

       

       섬뜩하다. 악몽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 같았다. 수백, 수천 명이 밀랍인형처럼 그녀를 응시한다. 

       

       그리고, 개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몽마.”

       

       번진다.

       

       “몽마다.”

       

       “몽마야.”

       

       “안에 몽마가 들어왔어.”

       

       들불처럼 번진다. 이사벨라를 바라보며 재차 확인하듯, 몽마라고 부르는 소리가 거듭 겹친다. 귀가 웅웅 울릴 정도의 소음이 도시를 가득 메웠다.

       

       꿈틀.

       

       얼어붙어 있던 이사벨라는,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시선을 내렸다. 분명, 방금 뽑아 낸 미친 마법사의 기억이었을 텐데.

       

       어느새 기억의 표면에 입이 돋아나, “몽마다.” 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히, 히이⋯⋯!”

       

       타앗.

       

       이사벨라는 벌레를 털어내는 것처럼 다급하게 기억을 버렸다. 기억 뭉치가 아스팔트 위를 데굴데굴 구르며 연신 “몽마”를 중얼거렸다.

       

       도망가야 한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당장 도망가지 않으면 안 된다!

       

       가엾은 서큐버스는 공포에 질려 뛰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일찍 왔어요. 이야, 이게, 날이 진짜 좋지 않나요?
    좋은 하루 보내길 바라요, 마이 프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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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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