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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8

     

    “엘프에 눈여겨본 인재가 있다니?”

     

    아셀라는 라스의 뜬금없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우선 용사 파티의 편성을 따져볼까요. 기동성을 위해 1개 모험가 파티는 5인에서 6인으로 짜는 게 일반적입니다.”

     

    “기사단 분대가 열에서 열둘로 편성되는 것과는 다르구나.”

     

    “기사단은 넓은 지역에서 대규모 전투를 전제로 한 명령체계를 따르지요. 파티는 던전 등 소규모 지역에서 싸울 일이 많습니다. 용사 파티도 마족 간부나 마왕을 급습하기 위해선 단독으로 움직여야 하고요.”

     

    라스가 모험가 파티의 정석 전략을 이야기했다. 아셀라는 흥미롭게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여기에는 보통 적의 시선을 끌며 방어를 맡아줄 전위, 연계해 후방을 노릴 근접 전사나 도적, 화력을 맡을 원거리 사수가 둘, 전원을 커버할 치유사가 하나에서 둘 편성됩니다.”

     

    “용사는 성검을 들어야 하니 근접전을 담당하겠네.”

     

    “예. 용사가 전위를 맡고 도적을 편성하기도 하지만 리셰는 공격진에 어울립니다. 그렇지, 단장?”

     

    타냐가 라스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훈련해본 결과 용사님에게 방패는 별로라고 판단합니다. 둔검보다는 쾌검태가 어울립니다.”

     

    “전위가 붙어주는 쪽이 좋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타냐 단장이 서면 더할 나위 없이 고전력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타냐 경은 어찌 생각해?”

     

    라스의 이야기를 들은 아셀라가 타냐에게 고개를 돌렸다. 타냐는 주저하지 않고 강렬한 눈빛으로 의지를 나타냈다.

     

    “기회가 있다면 역량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타냐 경이 제국 월광궁 기사 대표로 연무회에 출전하도록 해. 나머지 자리는?”

     

    “치유사 자리는 인재가 많지요. 제국 내의원 하면 알아주니까요. 일단 한 자리는 성녀로 고정됩니다.”

     

    “성녀. 그러고 보면 곧 선택받겠구나.”

     

    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계시야 금방 내리리라 생각합니다. 그건 저희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니 논외로 치고, 남은 자리는 궁수와 마법사입니다.”

     

    “마법사는 마도국이 유리해. 5위계의 마도사가 몇 명 있어.”

     

    라스도 잘 알고 있었다.

    마도국, 제국 남동부에 위치한 법국에서도 한참을 동쪽 산맥으로 파고 들어가면 숨어있는 비밀스러운 국가다.

     

    오직 마법을 위해 지어진 마법사들의 국가.

    소위 괴짜들의 나라였다.

     

    “마도사들은 네 개의 탑을 맡고 있댔어. 그 탑주들이 나올까?”

     

    “한두 명은 얼굴을 비추겠지요. 제국의 궁정마법사에 4위계까진 있다고 압니다만.”

     

    “전투 마법사는 아니야. 그쪽은 생각한 대응이 있어. 맡겨둬.”

     

    “예. 마지막으로 궁수 자리인데요.”

     

    라스가 본론을 꺼냈다.

     

    “왕국이 압도적으로 유리합니다. 제국 기사단은 궁술을 보조 전투기술로 취급하기에 주력으로 삼아 육성하진 않았죠.”

     

    “반면 모험가엔 평생 활만 당겨 경지에 오른 이들이 많이 있겠구나.”

     

    “왕국민은 다양하게 섞여 삽니다. 종족의 용광로나 마찬가지죠. 장생한 엘프는 특히 활과 단검을 잘 다루기로 유명합니다.”

     

    “같은 엘프를 섭외해 대적하자는 말이구나. 의도는 알겠어.”

     

    아셀라가 라스를 바라보며 턱 끝을 올렸다.

     

    그 반응을 보고 라스는 아셀라가 이 제안을 탐탁잖아 한다고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지금부터 대수해에 들어가 활을 잘 쏘는 엘프를 찾는다 한들 신뢰할 수 있을지, 실력은 어떨지 변수가 너무 많았다.

     

    이미 궁을 오래 비웠다. 시간 낭비일 가능성이 높았다.

     

    ‘엘프의 숲은 리치와의 결전 전에 놈의 언데드 군단에 의해 쓸려나갔지.’

     

    하지만 라스에겐 인상적인 한 명의 엘프 궁수의 기억이 있었다.

     

    그와 리셰의 파티가 도착하기 직전까지 단신으로 스켈레톤과 좀비 3천 구의 이마에 화살을 박아넣은 터프한 모습이었다.

     

    ‘나중에 필요한 인물이긴 해.’

     

     

    [No. 071 : 마지막 방어선 26%]

     

     

    그 엘프가 숲에서 버티지 못하면 리치의 진격이 빨라져 시모어의 무덤에서 최종전을 진행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이러든 저러든 라스가 도착하면 죽는 인물이었기에 많이 교류하진 못했지만.

     

    ‘차라리 지금 섭외하면 이 엔딩 자체를 삭제해버릴 수 있겠지.’

     

    그만한 실력을 지닌 궁수다.

    본래 용사 파티에 들어올 왕국의 모험가에게도 연무회에서 지지 않을 실력을 보여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아셀라가 그 사실을 알 리도 없으니 설득에 한계가 있었다.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데리고 가면 어떨까요. 실력은 보장합니다.”

     

    부디 들어주길. 라스가 속으로 바라기도 잠깐이었다.

     

    “그래, 가자.”

     

    “어, 진짜요?”

     

    의외로 깔끔하게 진로를 변경하자는 아셀라의 대답에 라스는 벙벙해졌다.

    황궁의 일이며 마법이며 중요한 일이 한참 많으니 잡무는 뒤로 넘길 줄 알았다.

     

    “네가 그렇게 소신 있게 보장하니 나도 궁금해졌거든.”

     

    아셀라가 슥, 손을 올려 라스의 정수리를 만지작거렸다. 그의 머리카락이 동그랗게 뭉쳐 우스꽝스러운 모양을 자아냈다.

     

    “네 머리 위에 사과를 올려놓고 걔가 시위를 당기면 어디에 맞을까?”

     

    “허공을 가를 겁니다. 전 진즉 도망쳐서 자리에 안 서 있을 거거든요.”

     

    라스가 받아친 대답이 재미있어서 아셀라는 쿡쿡 웃었다.

     

    ‘기왕 라스랑 밖으로 나왔으니까.’

     

    궁의 업무는 잠시 미뤄두고 조금은 빈둥거리고 싶어진 황녀님이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잖는가. 가끔은 이런 시기가 있어도 좋지 않을까 했다.

     

    궁 밖으로 나올 일이 드물기도 했고, 라스와 이렇게 자유롭게 돌아다닌 경험도 처음이었다.

    후작가를 방문했을 때는 예법의 틀에 갇혀있었고, 야만족 토벌 땐 말할 것도 없다.

     

    시종과 기사들이 함께하지만 아셀라의 입장에선 평소에도 배경이나 마찬가지였고.

     

    마치 둘이서만 여행 나온 기분이랄까.

     

    목적도 달성했겠다, 엘프의 숲으로 가자는 라스의 제안은 마치 그도 이 여행을 함께 즐기는 것만 같아서 오히려 환영이었다.

     

    “기수를 옮기렴.”

     

    아셀라의 명령에 기사들이 고삐를 틀었다.

     

    말들이 힘 좋게 발굽을 박차며 수해가 펼쳐진 협곡을 향해 나아갔다.

     

     

     

    ***

     

     

     

    협곡으로 들어선 우리는 속도를 늦추었다.

     

    사방이 높은 절벽이었기에 어디에서든 습격이 들어올 수 있는 지형이다. 기사들이 경계를 올리고 차분하게 나아간다.

     

    경사가 완만해지고 숲의 입구에 다다를 즈음이었다.

     

    ―쐐애액!

     

    마차 지붕에 팍, 하고 화살이 박히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방어력이 높은 황족 전용이기에 관통되진 않았지만 우리가 긴장하기에는 충분했다.

     

    “적습! 전투태세를 갖춰라!”

     

    호위대장이 외치고 말의 속도가 빨라졌다. 적의 사선에서 벗어나려 마차가 엄폐물을 찾아 바퀴를 내지른다.

     

    “아얏.”

     

    관성에 몸이 쏠린 아셀라가 내 품으로 엎어졌다. 등을 감싸주니 그녀도 반응하며 자연스레 팔로 내 허리를 얽어왔다.

     

    그 와중에도 눈매는 매섭게. 상황 판단에 여념이 없다.

     

    “타냐 경, 우리에게 달려들면 사정 봐주지 말고 베어.”

     

    “예.”

     

    타냐가 검을 뽑아 창밖에 시선을 집중했다.

     

    나 역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화살은 숲의 입구, 무성한 나뭇잎 사이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그림자들이 공중에서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인다. 나무에서 나무로 달리며 이동하고 있다. 엘프들이다.

     

    “생각보다 경계도가 높네요. 다짜고짜 공격할 줄은 몰랐네.”

     

    “몰랐다고? 얘, 나는 네가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 줄 알았지.”

     

    “있기야 있었죠. 말이 통하는 전제였거든요.”

     

    “선생님의 말씀이 저들에게 전해지면 되겠습니까?”

     

    “아마도?”

     

    내 대답을 들은 타냐가 마차의 한쪽 문을 벌컥 열었다.

     

    덜컹거리며 시속 50은 되는 속도로 달리는 마차 밖으로 몸을 내미는 타냐.

     

    순식간에 지붕 위로 올라가더니 챙! 날아오는 화살을 깔끔하게 쳐낸다.

     

    ―화아악!

     

    다음 순간, 그녀의 검에서 돌풍이 일어났다.

    오러, 소드마스터만이 쓸 수 있는 무공이다.

     

    ―파아아앙!

     

    전에 봤을 때보다 예리하게 정제되어 쏘아진 풍압. 숲의 나무를 뿌리째 뽑을 기세로 덮쳐낸다.

     

    바람을 버티지 못하고 쓸어넘긴 머리처럼 입구 부근의 나무들이 기울었다. 나뭇잎이 한 방에 날아가 별안간 겨울철 사시나무가 되어버린 건 덤이었다.

     

    우리를 향해 쏘아지던 화살이 부러지고 나무 위에 서 있던 사수들이 노출됐음은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엘프.”

     

    그들을 목격한 아셀라가 신기해하며 눈을 반짝였다.

     

    “위험합니다, 황녀님.”

     

    나는 그녀의 어깨를 누르며 타냐를 따라 마차 위로 올라섰다. 좋은 기회였다.

     

    흠흠, 가볍게 목을 가다듬고 외친다.

     

    “세계수여! 당신의 아들이 돌아왔소이다!”

     

    내 인사를 들은 엘프들의 반응은 좋진 않았다. 대체 저놈이 무슨 소리를 하나 하는 반응이다.

     

    제대로 고대 엘프어로 했는데 이상하네. 친근하게 생각할 줄 알았는데.

     

    아, 잘 생각해보니 이 대사는 선전포고 용이었다. 문장 뜻만 떠올리고 썼건만 잘못된 접근이었다. 대충 이 문장 다음에는 쇠사슬을 던져 네 목을 졸라 반으로 가르겠다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아앙? 도당체 누구의 아들이냐!”

     

    다행히 대답해준 이가 있었다. 끝이 갈라진 건들거리는 목소리. 들어본 적이 있다. 나무 위에 올라선 엘프 중 한 명이었다.

    내가 섭외하려는 인물이다.

     

    누구 이름을 대볼까.

    엘프는 장생종이니 200년 전 일이라도 시모어가 사악한 연금술사를 퇴치해준 일을 기억하고 있지 싶었다.

     

    “현자 시모어의 아들이오!”

     

    “시모어? 그럼 네가 고트베르크인가?”

     

    오, 내 얘기를 했었어?

     

    그러고 보면 시모어가 이 땅을 마지막 안식처로 삼은 것도 근처의 엘프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나.

     

    “그렇소이다! 내가 의사 고트베르크요!”

     

    내 이름을 들은 다른 남자 엘프가 외쳤다.

     

    “의사! 진작 말을 하지 그랬나! 현자가 자네에 대해 알려줬다! 어떤 병마도 치료하는 기적을 일으킨다지!”

     

    “예, 예, 제가 맞습니다! 그런데 거기로 좀 가도 되겠습니까! 계속 소리 지르니 목이 좀 아픈데요!”

     

    엘프들이 수군수군 상의에 들어갔다.

     

    “…일단 들여보지 않겠나?”

    “현자가 보증했다면…”

    “…말이나 되는 소리야!”

     

    처음 내게 말을 걸었던 여자 엘프만 반발하는 듯했다.

     

    길지 않은 회의가 끝나고, 남자 엘프가 대표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귀 진짜 크네.’

     

    나 역시 타냐와 함께 그에게 한 걸음 다가가 마주했다.

     

    “경비대의 파멜름이다.”

     

    “반갑습니다. 고트베르크입니다. 현자님의 장례식을 치르고 오는 길입니다.”

     

    “우리도 멀리서 확인했다. 대정령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헌데, 무슨 용건으로 우리를 찾아왔는가.”

     

    여기부터는 어떻게 풀어볼까.

    이들은 시모어에게 꽤 신뢰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기왕 덕분에 물꼬를 텄으니 조금 더 이름을 빌려도 괜찮겠지.

     

    “현자님께서 돌아가는 길에 여러분께 도움 드릴 일이 있으면 기꺼이 베풀라 하셨습니다. 그간 진 신세를 갚겠다 하셨지요.”

     

    “신세는 200년 전 우리가 졌거늘. 으음.”

     

    파멜름이 잠시 턱에 손을 짚고 고민했다.

     

    “한 가지, 그대가 치료의 경지에 이른 자라면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다.”

     

    “오, 제 전문이지요. 어떤 환자입니까?”

     

    엘프도 마력회로나 세포분열주기가 다를 뿐이지, 기본적으로 신체구조나 유전자는 사람과 거의 비슷하다. 그래서 혼혈도 나올 수 있고.

     

    어디 아픈 엘프가 있다면 치료할 자신이야 있다.

     

    그 대가로 궁수를 빌리면 더할 나위 없이 예정대로였다.

     

    파멜름이 진중한 태도로 내게 용건을 전했다.

     

    “세계수께서 병마에 드셨다.”

     

    “아, 세계수요.”

     

    흠.

     

    이젠 나무도 진료해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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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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