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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8

       라자는 절대 건드려선 안 될 역린을 건드리고 말았다.

         

       크게 부릅뜬 프란체의 눈에서 살기가 일렁인다.

         

       감정이 요동쳐 응접실 안에 존재하는 모든 그림자가 꿈틀거리고 당장이라도 어둠이 드리울 것 같은 서늘함이 휘몰아쳤다.

         

       “…….”

         

       참아야 한다. 아무리 데카르트의 권위가 높다고 한들, 상대는 제국의 황제. 서로 협력해야 하는 시기이기에 더욱더 조심해야 한다.

         

       또한, 진은 프란체와 혼인할 예정이라는 건 마지막까지 숨겨야 한다. 그러는 편이 계획에 차질이 없으면서 견제도 받지 않을 테니.

         

       프란체는 숨을 내뱉으며 심신을 안정시키곤 라자에게 되물었다.

         

       “왜 그렇게 되는 것인지요?”

       “무엇이 말인가?”

       “진 바렌베르크의 정략혼 말입니다.”

         

       라자는 아, 하고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실은, 레일리아가 황실 파티에서 본 진 바렌베르크의 외모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했네. 무려 금안의 소유자가 아닌가? 능력 또한 확실하고 말일세.”

         

       비슷한 색의 눈동자를 가진 사람은 있지만, 진 바렌베르크처럼 빛나는 금안을 가진 사람은 없다.

         

       오직 바렌베르크의 왕족에게서만 볼 수 있는 특색이다.

         

       “황실의 상징인 백금발과 보석안. 그리고 바렌베르크 금안의 조합. 그렇게 된다면 아이는 어떨지 레일리아가 굉장히 기대하고 있더군. 그래서 이참에 그를 이뤄주려 하는데…….”

         

       말을 이어가던 라자는 프란체에게서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

         

       “…내가 무언가 실수했는가?”

       “아닙니다. 그래서요?”

         

       왠지 모르게 살기를 느낀 라자는 크흠, 하면서 하던 설명을 이었다.

         

       “바렌베르크가 제국에 지방 세력으로 편입되면 왕족이었던 진 바렌베르크에겐 후작위가 내려질 걸세. 그러면 정략혼으로 제국의 권위도 상승시킬 수 있고, 그와 돈독한 사이를 유지할 수 있지. 레일리아에게도 좋을 거라 생각하는데…….”

         

       말을 이어가던 라자는 순간적으로 입술을 다물었다. 살갗이 찢어지는 듯한 서늘함이 전신을 감싸고, 목덜미가 떨려올 정도로 오싹함이 몰려와 더 이상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황녀님께서 진을 많이 좋아하시는가 봅니다.”

       “그, 그렇네. 호감보다는 호기심 쪽이 더 큰 거로 보이지만…….”

         

       왜 식은땀이 흐르는 거지? 라자는 시선을 내려봤다. 손끝이 떨리고 있다. 어째서? 본능이 무언가를 감지한 건가? 혼란으로 가득했다.

         

       “아무튼… 해방된 진 바렌베르크는 이제 그대의 손에서 벗어나 제국의 귀족이 될 터인데….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는가?”

         

       프란체는 그늘진 얼굴로 라자를 조용히 응시했다. 눈에 생기가 없다.

         

       “…….”

         

       꿀꺽. 어째서 이리 긴장되는 건지. 무언가 실수라도 한 것인가? 라자의 눈이 연속으로 깜빡여졌다.

         

       “정략혼에 대한 건은 나중으로 미루시는 게 어떠신지요? 그도 이젠 노예나 전쟁 포로의 신분이 아닙니다. 제국의 귀족이지요. 의견은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심기가 불편해도 한참 불편했던 프란체는 그리 말하며 애써 미소 지었다.

         

       “의견이라니? 황족과의 정략혼은─”

       “그만.”

       “…….”

         

       프란체의 단호한 목소리. 라자는 적잖게 당황스러웠다.

         

       “그 문제는 나중에. 지금은 다른 중요한 것들이 있잖아요?”

       “아, 음. 그렇네, 그렇지. 그럼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지…….”

         

       라자가 꺼낸 안건들은 꽤 복잡한 내용들이었다.

         

       제국 전체에 일으킬 마도 혁명과 군사 개편. 해외로 진출하는 상업과 대륙의 관리, 귀족 질서 등등.

         

       “이게 전부일세.”

       “확인했습니다.”

       “…….”

         

       냉랭한 분위기. 라자는 전신이 오소소 떨려왔다.

         

       ‘뭐지?’

         

       봄이 끝나가 추운 날씨는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아까부터 이렇게 추위가 느껴지는 건지…….

         

       ‘아니지, 추위보단 서늘함이야.’

         

       마치 기가 약한 사람이 망령들로 가득한 공동묘지를 걷는 듯한 느낌. 그래, 오싹하다.

         

       ‘최근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몸상태가 영 아니군.’

         

       대화가 끝날 때까지 프란체의 불편함을 눈치채지 못한 라자였다.

         

         

       * * *

         

         

       만찬의 자리가 끝나고 황제가 돌아간 늦은 밤. 프란체는 집무실에 홀로 앉아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그 황녀가 진을 노리고 있었을 줄이야.’

         

       황실 파티에서 만났을 당시에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그저 노예에 불과했던 신분이라 그랬던 걸까?

         

       ‘짜증나.’

         

       프란체는 라자와 만난 이후 온종일 미간을 찌푸린 상태다.

         

       생각하지 않으려도 해도, 상상하지 않으려고 해도 프란체의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한 장면.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레일리아와 연미복을 입은 진.

         

       정략혼에 불과하지만, 상상 속의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그럴 것이, 외모와 능력이 완벽한 진이 아닌가? 누가 그런 신랑과 이어지는데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후로는 초야를 위해 침대로 직행하겠지. 프란체는 진과 눈을 마주하며 숨을 헐떡이는 레일리아의 얼굴을 상상했다. 사랑이 가득한 눈빛.

         

       사아악-

         

       프란체 자신도 모르게 손끝에서 소멸의 특성이 발현됐다. 덕분에 책상 위에 있던 펜이 가루로 변했다.

         

       ‘거기에 있을 사람은 나란 말이야.’

         

       당연히 진이 황녀에게 마음을 줄 일은 없다. 그는 누구보다 프란체를 사랑하니까. 그런데도 심기가 불편한 이유는, 황족의 정략혼 제안은 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 해방 후 작위가 내려지는 즉시 황족의 정략혼을 제안할 터. 그럼 귀찮은 스캔들에 휘말린다.

         

       “쯧.”

         

       기분이 확 나빠진 프란체는 자리에서 일어나 등잔을 들었다. 계획을 앞당겨야 한다.

         

       진이 오로지 프란체만을 바라보도록, 프란체가 아니면 만족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계획이다. 원래라면 이 모든 걸 완성하고 혼인으로 이어가려 했지만, 달리 방도가 없다.

         

       그를 위해서…….

         

       프란체는 공작저 안에 있는 카자르의 공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똑똑-

         

       ─네?

       “카자르, 들어가도 되겠니?”

       ─아, 들어오세요!

         

       덜컥. 문을 열고 들어서자 카자르는 늦은 밤에도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전에 말한 건 잘 되어가고 있니?”

       “아… 그거요…….”

         

       시선을 돌려 피하는 카자르.

         

       “그, 만들고 있긴 한데. 조금 그렇지 않을까요…?”

         

       프란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뭐가?”하고 묻자 카자르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사람과의 관계를 그런 거로는…….”

         

       카자르가 이렇게 곤란해하는 이유. 다름 아닌 프란체가 부탁한 연금술 영약 때문이었다.

         

       섭취하면 욕구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폭발시키는 미약.

         

       소위 말해서 ‘정력제’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카자르가 묻자 프란체는 픽 웃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나는 진을 위해서 하는 거야.”

         

       그게 어딜 봐서 진을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카자르는 애써 의문을 삼켰다.

         

       “아무튼, 내가 찾아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고. 시일을 앞당겨야 할지도 모르겠어.”

         

       카자르는 “앞당긴다고요?”하고 물었다.

         

       “그래. 진은 이제 공식적으로 내 소유에서 벗어날 거야. 바렌베르크가 해방될 테니까. 그럼 온갖 곳에서 진을 노리겠지.”

         

       …어차피 진은 공작님만 바라보니 문제없지 않나? 이번에도 카자르의 머릿속에 의혹이 가득했지만, 구태여 묻진 않았다.

         

       이 공작님이 원래부터 좀 이상한 구석이 있는 건 알고 있었으니.

         

       “…알겠어요. 어차피 곧 완성이니까요.”

       “그래, 고마워.”

         

       대답을 들은 프란체는 싱긋 웃곤 자리를 옮겼다. 이젠 진을 찾아갈 차례다.

         

       “흥~ 흥~”

         

       콧노래를 부르며 지하실의 열쇠를 꽂고 어두운 계단을 내려간다. 스산함으로 느껴지는 소름은 프란체에겐 설렘으로 다가왔다.

         

       또각. 또각.

         

       계단을 내려오자 보이는 철문. 저 안에 진이 있다.

         

       “진?”

         

       프란체는 생글생글 웃으며 철창 사이를 바라봤다. 진은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작님?”

       “프란체라고 부르기로 했잖니?”

       “…프란체.”

       “들어갈게.”

         

       철컥. 오로지 프란체의 마력으로만 열 수 있는 철문. 마탑의 보안 마법이다.

         

       “자고 있었니?”

       “아니요, 생각을 좀 하고 있었습니다.”

       “흐응…….”

         

       프란체는 털썩, 하고 진이 누워있던 침대에 걸터앉았다.

         

       “많이 힘드니?”

       “…힘들죠.”

       “어떤 점이?”

         

       진이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힘이 계속 빠지는 것도 모자라, 너무 답답해서요. 외롭기도 하네요. 아까는 성녀가 찾아와서 대화 상대를 해줬지만… 답답함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힘없이 축 늘어지는 진.

         

       “미안해, 진. 다 너를 위해서란다.”

         

       프란체는 그리 말하곤 싱긋 웃으며 양팔을 벌렸다.

         

       “이리 오렴.”

       “…….”

       “외롭다고 했잖니?”

         

       수척한 얼굴로 다가와 프란체에게 안기는 진. 프란체는 진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꼬옥 안았다.

         

       “그런데, 절 감금시킨 이유를 말씀해주시면 안 됩니까? 저는 어차피 프란체의 곁에서 벗어날 수 없잖습니까.”

         

       진중한 진의 물음. 계획을 말해줄 순 없는데…….

         

       “사실 불안할까 봐 말은 안 했는데, 너는 아직 존재가 불안정한 상태란다. 안정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어.”

         

       프란체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거짓말을 했다.

         

       “조금만 참아주렴. 곧 약이 완성된다고 해. 지금 체력도 없지 않니?”

       “맞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몸이 약합니다. 무언가에 힘을 뺏기는 거 같고요.”

       “그게 다 존재가 불안정해서 그래. 어딘가로 힘이 빠져나가는 거지.”

         

       그 말에 진은 납득한 듯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그렇군요.”

       “그래, 나는 언제나 너만 생각한단다.”

         

       프란체는 축 늘어진 진을 보곤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천천히, 조금씩, 차근차근.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선 참아야 한다.

         

       “아, 그러고 보니 얘기해줄 게 있어.”

       “무엇입니까?”

       “바렌베르크가 무사히 해방될 거 같아.”

       “…다행이군요.”

       “별로 기뻐 보이진 않네?”

         

       프란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딱히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요. 이전에 프란체가 바렌베르크의 백성들은 영토를 따로 받아서 잘살고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 그러고 보니 진도 알고 있었지.

         

       “그것도 있지만, 너는 이제 전쟁 포로의 신분이 아니야. 당연히 노예도 아니고. 제국에서 작위도 하사할 거란다. 그것도 후작위야.”

         

       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후작위요?”

       “그래. 지방 세력의 왕족이니까.”

         

       그래서 말인데, 하고 말을 잇는 프란체.

         

       “만약 정략혼이 들어오면 어떡할 거니?”

       “정략혼이요?”

       “그래. 이젠 진 바렌베르크 후작이니까.”

       “당연히 거절해야죠?”

         

       즉답에 프란체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략혼이라니,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사실 제3 황녀님께서 네게 관심이 있으시다고 하셨어.”

         

       진이 화들짝 놀라며 “제3 황녀님이요?”하고 물었다.

         

       “그래. 그런데 호기심이 더 큰 것 같아. 페델리안 황실의 상징인 보석안, 백금발과 바렌베르크의 상징인 짙은 금안의 조합이 궁금하다던가?”

         

       프란체는 슬쩍 말하곤 진의 반응을 살폈다.

         

       “저를 그저 도구로 보고 있군요.”

       “그래, 맞아.”

       “그다지 좋은 기분도 아니고요.”

         

       반응이 마음에 든 프란체는 진의 뺨을 어루만졌다.

         

       “맞아. 너를 제일 사랑하는 건 나라는 걸 알아두렴. 알겠지?”

       “예.”

         

       씨익 웃는 프란체. 이런 와중에도 그녀는 미약에 저항할 수 없도록 진의 힘을 약화시키고 있었다.

         

       “그래, 그래야지.”

         

       애정은 멈추지 않고 진에게 서서히 스며들고 있다.

         

       이대로만 가면 진이 자의적으로 프란체의 곁을 떠날 일은 없을 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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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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