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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8

       다시, 기나긴 침묵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사라는 여전히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전히 내가 망쳐버렸다는 건 변함 없어.”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그게 실수일 수는 없었다.

        

       어머니가 딸에게 그런 감정을 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히 사라는 당사자였다. 어린 시절부터 그 사람을 그저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따랐고, 그랬기에 더욱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없었으리라.

        

       “너를 위험에 빠뜨렸잖아.”

        

       하지만, 뒤이어서 어떻게든 사라를 위로하려던 나는, 사라의 그 말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내가 몸으로 나온 게 전부 다 너를 위한 거였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네가 해결할 수 없는 건 전부 내가 다 해결해버리고, 그다음에 너한테 다시 돌려주면 되는 거라고.”

        

       “…….”

        

       “그래서 나한테 잘못한 사람들과의 관계도 전부 해결해버리고, 어머님하고도…….”

        

       “…….”

        

       전부 나를 위해서.

        

       사라는, 그저 나를 위해서 그렇게 행동한 것이다.

        

       나는, 그저 사라가 자신이 살아갈 이유를 찾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미안.”

        

       사라는 나에게 그렇게 사과했다.

        

       “미안해. 결국에는, 또 너한테 다 떠넘겨버리고 말았네.”

        

       “…….”

        

       사라의 그런 말을 듣고, 수많은 감정이 가슴속에서 마구 섞여들었다.

        

       처음으로 느낀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사라의 그 행동이 너무 따뜻해서, 그리고 사라의 그런 마음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내가 너무나 부끄러워서.

        

       그리고 그다음은 슬픔.

        

       사라의 그 행동이, 여전히 자기 삶에 큰 미련을 가지지 못한 것 같아서.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든 감정은 분노.

        

       사라를 이렇게 만들어버린 세상에 대해. 그리고 사라의 생각을 제대로 알지도 못했으면서, 그저 사라의 기억을 조금 읽었다고 사라를 제대로 다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던 것.

        

       그 분노는 나를 향한 것이었다.

        

       “…….”

        

       하지만, 그 감정을 사라 앞에서 터트릴 수는 없었다. 내 잘못 때문에 생긴 감정인데, 그걸 사라한테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아냐.”

        

       그저, 나는 분을 삭이면서 말했다.

        

       “너 때문이 아니야. 너는 사과할 필요 없어.”

        

       “하지만…….”

        

       “아냐.”

        

       하지만 아무리 감정을 숨기려고 해도, 결국에는 말투에 그 감정이 묻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

        

       “잘못한 건 그 사람이지.”

        

       나는 최나경을 떠올렸다.

        

       “납치당한 게 잘못한 거야? 아니잖아. 그런 건 납치한 사람 탓을 해야지. 자신을 지키지 못했으니 잘못한 거라는 말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야. 잘못한 건 잘못한 사람한테 따져야지, 그 피해자한테 따져도 될 일이 아니잖아.”

        

       “…….”

        

       사라는, 그저 나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네가 그런 상황에 있었는데도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고. 최나경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너를 그 사람이랑 단둘이 둔 것도 나니까. 도와줄 수 있었는데도 도와주지 못한 건 나였어. 그러니까, 잘못한 건 나야.”

        

       “아냐.”

        

       내 말에, 사라가 반박했다.

        

       내가 이야기하는 사이에, 사라는 무릎에서 고개를 들고 있었다.

        

       눈 주변이 축축했다. 바로 조금 전까지 울고 있었던 모양이다. 눈도 빨갛게 충혈되어있었다.

        

       하지만, 사라는 그 흔적이 거짓말인 것처럼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너는 그때 내 안에 잠들어있었잖아. 너를 불러오지 않았던 건 나고. 너라면 그 사람을 보고 제대로 경고했을 거야. 나처럼 지나친 자신감에 막 행동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건 내가 그 자리에 없었으니 알 수 없는 일이야. 나라도 너처럼 납치당했을 수도 있어. 실제로 나는 최나경을 보고 겁에 질려서 아무것도 못 했으니까.”

        

       “아니,”

        

       사라의 미간이 답답하다는 듯 모였다.

        

       “그건 전부 내가 너한테서 정보를 차단한 것 때문이잖아. 내가 계속해서 너한테 이야기를 해줬으면, 너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을 거야.”

        

       “…….”

        

       “나는, 나는…….”

        

       사라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이내 마음을 굳게 먹은 듯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내 쪽으로 살짝 몸을 돌리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너한테 숨긴 것들이 아주 많아. 특히 내가 몸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던 최근에는, 너한테 좋은 이야기들만 해줬으니까—”

        

       “알고 있어.”

        

       “—그러니까……어?”

        

       내가 사라의 말 중간을 끊어버리자, 사라는 순간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네가 신체의 대표로 나간 이유가, 개인적인 상황을 정리하려고 나간 거잖아. 학교 애들이나 선생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건 둘째 쳐도, 당장 내가 고민하고 있던 양혜인과의 관계 같은 것에 변화가 있긴 했겠지.”

        

       “어, 어어…….”

        

       나의 말에, 사라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하나도 안 했으니까. 당연히 행복한 이야기만 골라서 했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겠어?”

        

       물론 확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머리 한구석으로 어림짐작만 하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사라를 탓하고 싶지 않았다. 원래 아이들은 부모 앞에서 어려운 일에 관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법이니까.

        

       그게 부끄러워서건, 그저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건. 어쩌면 자존심 때문에 어떻게든 혼자 처리하고 싶은 걸지도 모르고.

        

       이유가 어찌 되었건, 아이들의 그런 태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건 당연히 듣는 쪽의 잘못이다.

        

       “…….”

        

       아무래도 사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사라는 다시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

        

       다시 한번 침묵.

        

       “그러니까, 괜찮아.”

        

       “…….”

        

       “결국에는 다 좋게 끝났으니까. 너는 구조되었고, 최나경도 도망갔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쁜 일은 이미 지나갔으니까.”

        

       “…….”

        

       “사라야.”

        

       나는 몸을 살짝 일으켰다. 그리고 기어서 사라의 옆에서부터 사라의 앞으로 몸을 옮겼다.

        

       우리는 이제 마주 보는 자세가 되었다.

        

       무릎을 끌어안고 있는 사라와, 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침대를 짚고 있는 나.

        

       아마 사라가 고개를 들면, 얼굴이 무척 가까운 곳에 있겠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지금은 사라에게 하고자 하는 말이 있었으니까.

        

       “그동안 불안했지?”

        

       “…….”

        

       “내가 함께하자고 하면서도, 표정은 계속 그런 표정이었으니까.”

        

       실제로도, 나는 사라 옆에 영원히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사라에게 사라의 삶을 온전히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의 사라에게 있어서 나는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저 친구, 그러니까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그사이가 벌어져서 얼굴 한 번 보는 것도 힘들어지는 그런 친구가 아니라, 사라의 가족으로서.

        

       잃어버린 부모님이 아니라. 자신을 딸이 아닌 욕정의 눈으로 보고 있던 ‘어머님’이 아니라—

        

       음,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오빠? 언니?

        

       아무래도 상관없다. 사라가 생각하는 관계라면 뭐든지.

        

       사실 원래 몸을 잃어버린 지금 와서 성별이 뭐가 중요하다고.

        

       중요한 것은 사라였다.

        

       나도 모르게, 너무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나는 사라에게 너무나 중요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며, 몇 번이고 나에게 떠나지 말라며 조르는 사라를 보았다.

        

       나는 전부 기억하지도 못하는 그 나날들이, 사라에게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지도.

        

       그러니까.

        

       그러니까…… 뭐, 이제 책임은 져야겠지.

        

       도망가는 건 이만하면 충분하다.

        

       “사라야.”

        

       나는 사라를 부드럽게 불렀다.

        

       “이제는, 그런 표정 짓지 않을게.”

        

       나의 말에, 사라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계속 함께 있어 줄게.”

        

       “……어?”

        

       나의 말에, 사라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 흘린 눈물이 아무래도 상관 없을 정도로, 사라는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놀란 표정에 슬픈 감정이 다 날아가 버린 것 같아서.

        

       “네가 바라던 대로, 평생 함께 해줄게.”

        

       이제는 떠나라고 해도 떠나지 않을 거다. 집요하게 사라 곁을 맴돌면서, 정말로 내가 필요 없어졌냐고 계속 물어볼 거다.

        

       그야 당연히, 사라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원래 가족이라는 존재는, 이제 그만 좀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도 막상 멀어지면 슬퍼지는 존재니까.

        

       “네가 말했던 대로, 평생 여기 함께 있어 줄게.”

        

       “어어……?”

        

       사라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런 사라의 머리에 손을 살짝 얹고, 나는 살짝 쓰다듬어주었다.

        

       “어때, 지금 내 표정? 지금도 보면서 불안해?”

        

       나는 사라에게 환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지금은 확신한다. 내 표정에는 아마 어떤 그늘도 없으리라.

        

       고민하던 것은 다 치워버리기로 했다.

        

       내가 이 몸에 들어오게 된 이유는 모른다. 원리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이게 우연이 아니라 이유가 있다면.

        

       그건 아마, 이렇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자책하지 마. 혼자 다 해결하려고 하지도 말고. 계속 함께, 같이 나아가자.”

        

       “……치사해.”

        

       사라가 토라진 듯 말했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내가 거절할 수가 없잖아.”

        

       그 말을 들은 내가 여전히 생글생글 웃고 있자, 사라는 화가 났다는 듯,

        

       짝!

        

       하고 소리가 날 정도로 양손으로 내 양 볼을 잡았다.

        

       “흐에?”

        

       사라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나는 순간 그런 소리를 내버렸다.

        

       “……그렇게 말했으니까, 이제는 정말로 안 놔줄 거야. 놔달라고 애원해도 안 놓아줘. 만약에 떠나면 따라가서 다시 잡아 올 거야.”

        

       사라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저, 잠깐, 사라야.”

        

       사라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내 얼굴을 거의 짜부시킬……정도의 힘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양쪽에서 볼이 눌려서, 아마 나는 거의 붕어 같은 얼굴이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사라는 양손을 자신의 쪽으로 끌어오고 있었다.

        

       당연히 잡혀있는 내 얼굴도 점점 가까워지는 중이었다.

        

       어어, 잠깐, 이거 너무 가까운……?

        

       “말했잖아.”

        

       사라는, 내 얼굴 바로 앞에서 말했다.

        

       “절대로 안 놔준다니까?”

        

       그리고, 그대로,

        

       내 입술 위에 자기 입술을 겹쳤다.

        

       “…….”

        

       시간이 영원히 멈췄다.

        

       ……적어도, 그 순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영원의 시간 끝에, 사라가 나에게 겹쳤던 부드러운 입술을 떼고는 말했다.

        

       “구원하러 왔으면, 끝까지 확실히 구해.”

        

       “…….”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나에게,

        

       “나의 흡혈귀 씨.”

        

       …….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오그라드는 말을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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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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