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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8

        

         “으음…….”

         “…….”

         

         필터의 인식률을 재조정한다. 내 뒤를 지키고 선 이 시꺼먼 녀석도 덧씌우는 영상 범위에 포함되도록.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니다. 심상에 명확한 그림을 그리고, 문제없이 완성될 수 있도록 넉넉하게 에너지-전력-을 부어주면 장난감 블록이 딱딱 알맞게 조립되어서 쌓아 올려지는 것과 비슷한 감각으로 결과물이 차근차근 출력되니까.

         

         그러니 지금 내가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면 그건 능력을 쓰는 것 때문이 아니라, 필시 언제나 제로가 버티고 서있던 자리를 추적자가 대신하고 있어서 그런 것이리라.

         

         뭐, 아까부터 계속 따라다녔는데 왜 이제 와서 그러냐고?

         일행이 여럿일 때와 단 둘만 남은 경우의 체감은 완전히 다른 법이라고 대답하겠다. 진짜 새삼 불편하네 이거.

         

         “음….”

         

         방을 나서자마자, 별다른 설명도 없이 갑자기 내가 멈춰 섰음에도 그는 질문은커녕 궁금해하는 기색조차 없는 상태로 사주 경계를 지속했다.

         

         신경을 쓰냐 안 쓰냐 정도의 수준을 넘어서, 아예 어떠한 사견도 품지 않는 것이다.

         이상적인 인간 병기이자 살아있는 칼날. 분명 계획서에서는 얘를 ‘차세대 추적자’ 라고 지칭했었지.

         

         그런 고급 인력이, 특수 요원이 밀착 경호를 해주는 거니까 대접받는 기분이 들어서 괜찮지 않냐 하면… 글쎄올시다.

         

         동료나 친구라면 서로가 할 일을 나누고 등을 맞대는 게 자연스러운 관계이니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수행원은… 뭔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이것 또한 저들에게는 업무의 연장선이기는 하겠다만.

         

         쟤는 단순한 월급쟁이가 아니니까.

         

         “…가죠. 우선 저택 구조도를 바탕으로 메인 프레임을 통해 공유되는 CCTV는 우리 형체를 못 찍게 만들었으니까. 카사네 사장 휘하 임직원이나, 그녀의 편을 들어줄 일부 참석자만 조심하면 돼요.”

         

         “그것 참 편리한 비책이구료? 명심했소이다.”

         

         거기서도 발언권이 없는 수준의 말단 인물들은 만들어낼 흐름에 방해조차 안 될 것이다.

         

         쫄 것 없다. 여기까지 대비했으면 실패하는 게 오히려 더 힘들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다리를 움직였다.

         비교적 의식이 온전한 사람들은 다 개회식에 참석하고자 자리를 비웠고, 진짜 약에 거나하게 취한 군상들만 남은 프라이빗 에어리어를 빠져나가기 위해.

         

         “그나저나, 최대한 열심히 인적이 드문 통로만 골라가도. 결국 그녀의 개인실 앞에서는 필연적으로…….”

         

         우뚝, 바쁘게 지면을 차려던 발이 멈췄다.

         몇 걸음 떼지도 못한 채로. 실질적인 무력을 담당하는 그에게 어떤 방식으로 최후 방어선을 돌파할 거냐고 물어보려던 나는, 다른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달이 넘어가도록 지긋지긋하게 부대끼고, 무려 두 번이나 싸워본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이 추적자… 그러니까 쇼우 휘하에서도 꽤나 신임받는 이 녀석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을.

         

         “어….”

         

         …지금이라도 살짝 물어볼까? 되려 그게 더 무신경해 보이려나. 그냥 마리나처럼 형씨 형씨~ 하면서 붙임성 있게 대할 걸.

         

         안에 들어있는 얼굴도 모른다는 이유와 수많은 추적자 중 한 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겹쳐져, 이 시대극 말투를 고집하는 별종에 대한 구별이 조금 부족했다.

         

         적의 개인신상에 집착해서 뭐하겠냐는 냉정한 생각도 있긴 했지만… 적어도 지금은 더할 나위없이 든든한 아군.

         친근하지는 않더라도, 잘 부탁한다는 제스쳐 정도는 건네서 나쁠 건 없겠지.

         

         “저기, 조금 많이 늦은 것 같기는 한데. 이름 좀 알려주겠어…? 명색이 내 안전을 책임져준다는 요원이 누군지도 모르는 건 너무 미… ”흐핫…! 거기, 마담이 보내서 왔지이…! 기다리다가 지쳐서 먼저 시작해버렸다고?? …딸꾹!” …안해서.”

         

         지그시.

         강제로 말이 끊어진 김에, 분위기도 뭣도 없이 갑자기 끼어 들은 남자를 노려보았다.

         

         아니, 저기요 시발.

         거 사람이 기껏 수치를 무릅쓰고 관계 개선을 시도하느라 바쁜데, 뜬금없는 걸 넘어 모욕감마저 주는 미친 소리는 뭡니까.

         

         아직 이 끈적거리는 뒷 사교회장 내부인 만큼 사리분별 못하고 덤벼드는 놈이 있는 건 딱히 이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다짜고짜 대충 보이는 사람을 출장 매춘부 취급해?

         

         한껏 짜증을 담아. 대체 얼마나 높은 인간이길래 이렇게 무례한가 싶어서, 신원을 특정할 요소가 있는지 살펴보려 했거늘.

         …아, 이거 자세히 보니 완전 카사네 표 마약에 쩔어서 눈이 풀렸다.

         

         이 정도면 사물이 제대로 보여서 나를 붙잡고 늘어진 게 아니라 그냥 아무나 지나가는 이를 대충 물은 거라 보는 게 더 설득력 있었다.

         

         딱히 불쾌해할 이유도, 의미도 없는 술주정꾼 겸 약쟁이의 잠꼬대.

         그냥 무시하고 가도록 하자. 잠시라도 진지하게 고민한 시간이 아깝다 시간이. 안 그래도 카사네가 침실에서 나온 사이에 끝내는 타임 어택 미션인데.

         

         “하아… 어디의 누구신지는 모르겠으나 많이 취하셨습니다. 그런 문제가 있다면 마담이라는 알선자 분과 통화부터 해보시는 게 좋겠네요.”

         

         어처구니없는 시비를 걸렸어도 최선을 다해 예의 바르게.

         조용히 응대하며 손을 내저었지만, 이 몽롱한 중독자는 그 와중에도 나풀거리는 유카타 옷자락만 간신히 구분한 듯 또 다시 딴소리를 일삼았고.

         

         “어으…! 아?? 내가 에나마 전통복 코스프레를 요청했었나…? 아무렴 어때….”

         

         빠각—!!

         ……쿵!

         

         “…….”

         

         사람이 신경 쓰고 있던 부분을 지적한 걸로도 모자라.

         이쪽을 향해서 붙잡으려는 의도가 담긴 남자의 팔이 예고도 없이 펴지자마자 번개 같은 손날치기手刀가 그의 의식을 베어냈다.

         

         꼴 좋다고 비웃기에는 무참하게 바닥에 쓰러진 모양새를 보면 의식이 아니라 다른 게 베어져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것 같기도 한데… 어….

         

         “잠깐, 설마 죽였어…?”

         

         이런 식으로 벌써 첫 사망자가 발생한다고? 그것도 심지어 지나가다가 잘못 걸린 멍청이로?

         

         황당함을 가득 담아 범인에게 따지니, 처벌 수위는 확실하게 분별했다고 한다.

         

         “척수에는 일절 손상이 없게 조절했으니 안심을. 본 에나마 사의 차장 이상 직급자에 대한 미허가 신체접촉은 정당방위 사유로 채택될 수 있으며, 소인은 즉결처분 권한을 가지고 있기에 대응한 것뿐. 아무 문제없소이다.”

         

         “……내 선임 연구원 딱지가 본사 차장급 지위인지는 그렇다 치고, 아직 그 접촉이란 부분조차 성립 안 한 것 같은데?”

         

         분명 이 모략 작전을 수립할 때만 해도 무죄 추정의 원칙을 고려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뒤집어쓰는 사람이 얼마나 거물이냐에 따라 적용하는 강도도 달라지는 거려나… 하는 한탄이 절로 나왔다.

         

         “이사님께서 아나스타샤 연구원 공을 전속 상담사로 등재하셨기에… 그걸 고려하면 이건 자비로운 처사에 속하오. 또한 즉효성 독극물의 위험이 있는 만큼, 시도를 한 시점에서 이미 변명의 여지는 없소이다.”

         

         “아… 그래….”

         

         ‘쇼우 녀석… 잘도 가져다 붙였네.’

         

         미묘한 불만이나 탄식은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논리가 준비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악질이었지만,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 이상까지 고려해서 대응하는 게 호위의 본질이라는데 내가 어쩌겠나?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지.

         

         괜한 시간 낭비를 당했다는 마음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그렇게 대강 순응하고 지나치려던 내 뒤통수에, 추적자는 밀린 질문에 대한 답변을 가볍게 내던졌다.

         

         “차세대(Next Generation) 추적자 프로젝트 1기 소속, 핫토리服部 가의 유전체 지도(Genome Map)를 토대로 육성된 청령聽令 병과반의 마사나리 감마(正成 Gamma)가 인사드리오. 정 독립된 호칭을 쓰고자 하신다면 마사나리라 불러 주시면 되겠소이다.”

         

         “마사나리…라고.”

         

         입안에서 네 글자를 굴려본다. 남의 이름을 가지고 하기엔 실례되는 감상이겠지만, 왜 일본 이름들은 이렇게 하나같이 복잡한 걸까.

         

         일단 나의 뇌내 네오 헤이븐 백과사전에는 없는 이름이다. 워낙 등장인물이 많아서 깜빡 잊었을 수도 있기는 한데, 적어도 특수 요원이나 기업에 연관된 사람 중에는 떠오르는 게 없었으니.

         

         대신 추적자와 관련된 배경설정을 더듬어서 녀석의 말을 해석하는데 몰두했다.

         

         ‘1기’라는 건 아마 시험관에서 집단 배양되기 시작한 추적자 무리에게 공통으로 붙는 대분류이자 넘버링. 이어지는 핫토리는 모태가 된 유전자의 근간을 말하는 거겠지.

         

         청령…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몰라도, 병과반 개념은 상기되는 게 좀 있었다.

         자라난 추적자가 주로 맡을 업무에 있어서 강점을 가지도록, 세분화된 교육 과정에 따라 그룹을 나누는 소분류 체계였던 것 같다.

         

         그렇다면 마사나리라는 건 개인의 명칭이 아닌, 반 전체가 공유하는 성에 더 가까운 물건이고. 외려 순서대로 할당된 기호인 감마가 진짜 이름인 게 맞지 않나? 아니면… 그런 식으로 불리는 건 역시 싫었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사소한 의문이 우리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는 게 티가 났을지도, 혹은 스스로를 마사나리가 자칭한 그는 이미 여러 번 유사한 물음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추가적으로 캐물어볼 필요조차 없이.

         녀석은 알아서 내 궁금증을 해소시켜주었다.

         

         “안심을. 소인이 속했던 무리에서 완성되고 서임에 성공한 개체는 하나뿐인지라, 그렇게 불러 주셔도 혼동할 여지는 전혀 없소이다.”

         

         “…….”

         

         어조는 평이했다. 헬멧 등의 여러 장비로 빈틈없이 가려져서 표정을 정확히 알 순 없었지만 감정의 기복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래서 더 이상했다.

         설령 성장 촉진제를 쓰지 않는 보통 사람보다 훨씬 유소년기가 짧다고 해도. 함께 태어났던 이들이 전부 사라지고 혼자만 남았다는 걸 무덤덤한 수준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완전히 객관화해서 말할 수 있는 건가?

         

         최초로 조우했던 추적자와의 기억을 떠올렸다.

         판단력, 전투 능력, 그리고 내가 유발했던 분노와 발생했던 빈틈.

         

         고작해야 1년쯤 지났다고 예전 연구소에서 봤던 그들보다 훨씬 완성된 면모를 보여주는 걸 두려워해야 할지, 아니면 조금만 더 있으면 원작 시기가 되겠구나 하고 좋아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

         

         씁쓸하지만 결론은 그런 거다.

         아무리 개성적인 말투를 쓰고, 가슴에 약간의 호불호쯤은 품었어도. 애당초 명령에 혼선을 초래할 수 있는 마음을 근본적으로 배제당한 무기와 사적인 친분 같은 게 성립할 리가 없었던 것이리라.

         

         이들에게는… 주어진 명령과 에나마가 세상의 전부니까.

         

         ……좋아. 그럼 나는 내가 맡은 필드 엔지니어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해 보일 테니까, 어디 네 솜씨도 한 번 보자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현재 피해자 목록 : 경추 골절 성희롱범 1명
    청령 = 심부름. 우수한 인형 군대를 만들기 위한 이런저런 시범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정도로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항상 재밌게 읽어주시고~! 추천 눌러주시고~! 댓글 달아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독자 여러분들은 저랑 다르게 시원한 곳에서 지내고 계시다면 좋겠네요. 요즘 날씨가 정말 숨 넘어가는데 최적화된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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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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