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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8

     합스베르크는 철저히 능력주의다.

     

     능력이 출중하면 자신을 향해 암살하려고 한 이도 팔신장으로 등용하기도 하고, 능력이 부족하면 자기 핏줄이라고 해도 버리는 인간이다.

     ‘후자는 조금 의미가 없기는 하지만.’

     합스베르크에게 있어, 자식은 그저 한 명의 인재일 뿐이다.

     자기 피를 이어받았으니, 최소한 마스터 급으로는 성장해야 비로소 합스베르크 ‘휘하’에 들어올 수나 있다.

     아스타시아가 유일한 황녀로서 인정받는 이유는 그녀가 다방면으로 자신의 재능을 증명했기 때문.

     

     거기에 덧붙여서 나라는 존재를 유혹하여 이렇게 제국 황궁에 단신으로 들어오게끔 하였으니, 합스베르크로서는 아스타시아만 자식으로 인정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합스베르크 입장으로서는.

     ‘지금 주변이 안 보이시는 겁니까, 폐하.’

     차마 말로는 하지 못하고, 나는 주변을 짧게 훑는 걸로 시선을 보냈다.

     [저 새끼 뭐야?]

     라는 시선은 정상적이다.

     [어째서 폐하께서….]

     라는 시선 또한, 합스베르크가 지금까지 제국에서 보여온 모습을 생각하면-비록 나는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두 팔을 벌리며 누군가를 기쁘게 맞이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들은 난데. 내가 아들인데. 포옹을 받아도 내가 받아야 하는데.]

     라는 시선을 보내는 이들, 합스베르크의 수많은 아들들의 시선은 언제 받아도 그다지 달갑지 않다.

     ‘전생에도 몰래 왕국에 낳아둔 아들 아니냐는 소리 듣고 그랬는데, 이번에는 그보다 더 심하겠군.’

     그때는 졸업식 때 처음 만나서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대륙이 합스베르크가 된 뒤에 지브롤터에 종종 찾아오고는 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숨겨둔 아들 운운할 정도로, 그것도 합스베르크 황제와 그레이 지브롤터 변경백이라는 누가 봐도 그 핏줄이 분명한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루머가 퍼질 정도였다.

     이제는 그 루머가 내가 성인이 되기 2년 반도 되기 전부터 시작되게 생겼다.

     그러나.

     ‘쉽게 당할 수는 없지.’

     

     합스베르크가 저렇게 기뻐하며 포옹하려고 다가오는 모습에 대하여, 그럴싸한 개연성을 부여하는 건 전부 나의 반응에 달려있다.

     “노스트럼 왕국을 대표하여, 인사드립니다.”

     나를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던 이들의 눈에 ‘그러면 그렇지’라는 표정이 살짝 스친다.

     

     노스트럼 왕국의 대표. 이전에 세이레네 영지에서 황태자가 단신으로 왔던 것처럼, 나는 지금 관계가 어느정도 괜찮아졌다고는 하지만 적국에 사실상 홀로 나온 셈이다.

     -노스트럼 왕가에서는 지브롤터의 장남을 제국에 혼자 보낼 정도로 믿고 있는 건가?

     -아니지. 버리는 패야. 다리도 안 좋다며? 그러니까 혹시 인질이 되더라도 가차 없이 잘라낼 수 있으니 저렇게 보낸 거지.

     -차기 여왕이라고 할 수 있는 공주를 보냈다가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적절한 인선이기는 하군.

     사실상 테르시안 제국에 목숨을 걸고 협곡을 넘어온 ‘사신’으로서 보는 관점.

     합스베르크의 제국이 왕국과 평화 분위기를 이끌어나가는데 있어, 노스트럼에서 대표로 지브롤터의 장남을 보냈다는 건 정치적으로 상당한 도움이 된다.

     이게,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하하하! 오랜만에 봤는데 그렇게 딱딱하게 굴 건가?”

     이었는데, 그 개연성이 이 미친 황제에 의해 순식간에 박살 나고 있다.

     “1개월하고도 13일 10시간 37분 21초 만이군.”

     “…예?”

     “자네와 다시 만나는 날을 기약하기 위해, 내가 이 손목시계의 시간을 조정했지.”

     

     합스베르크 황제는 만나자마자 사람의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 소리를 서슴지 않고 토해냈다.

     “이거 보이나? 날짜와 시간, 그리고 시계. 자네와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눴던 날로부터 00시 00분을 맞췄다네. 하하.”

     “…….”

     주변의 시선이 다시 기이해지기 시작했다.

     상식 밖의 미친 짓을 벌이는 것도 놀랍지만, 황제가 지금까지 보여줬던 모습이 아니라는 것도 놀랍지만, 그게 다른 사람도 아닌 적국-노스트럼의 왕자도 아닌 지브롤터 변경백의 장남이라니?

     “어떻게, 하나 필요한가?”

     “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 분위기, 이렇게 된 이상 화제를 돌려야 한다.

     “오. 그대가 이렇게 내 선물을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그런 시계라면 당연히 받아야죠. 그래야 황녀님과 떨어졌을 때 얼마 만에 다시 만나는 건지 확인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음…!”

     합스베르크 황제가 그레이 지브롤터를 각별히 여기는 이유.

     어느 누군가의 시선이 마치 ‘남자끼리 음험한 관계’를 상상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 중간에 한 명의 여인을 끼워 넣고 만드는 건전하고 정치적인 관계로 개연성을 선회한다.

     “반갑습니다, 황녀님.”

     “지브롤터 이사장님.”

     나는 황녀, 아스타시아에게로 바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황제가 두 팔을 벌린 채로 서 있지만, 나는 그 팔 아래로 허리를 크게 숙이며 넘어가 아스타시아를 향해 바로 다가갔다.

     “다시 뵙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예.”

     공식적으로는 내가 아스타시아에게 계속 질척이는 모습을 보이는 걸로 알려져 있다.

     오로솔 아카데미의 일상은 전부 도촬종군기자들에 의해 하루 차이로 제국 전역에 퍼지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자리가 자리인 만큼 아스타시아도 좀처럼 그 연기를 하는데 어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너무나도 아름다우십니다, 황녀님.”

     “어, 음….”

     “인사드리겠습니다.”

     나는 노스트럼의 정통 예법에 따라 황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손을 뻗었다.

     “부디 제게 당신을 위한 입맞춤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레이디?”

     

     테르시안 제국 사람들, 그중에서도 특히 남자들 입장에서는 ‘재수 없는 짓’이라고 불리는 노스트럼의 기사도지만-

     ‘어쩌라고. 내가 노스트럼 사람인데.’

     노스트럼 사람이며 지브롤터의 남자인데, 장소가 어디든 그게 중요하랴.

     ‘사랑에 미친 로맨티스트는 언제든지 먹히는 법이지. 특히 그런 쪽으로 로망을 가진, 레이디가 되고 싶어 하는 여인들에게 있어서는.’

     여자는 누구나 자신만의 백마 탄 왕자를 원하는 법이다.

     그건 남자가 자신을 먹여주고 키워주고 함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어머니 같은 여자를 바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보라.

     “어, 으음….”

     

     아스타시아가 잠시 머뭇거리며 부끄러워하는 동안, 이쪽으로 시선이 집중된 몇몇 여인들의 반응을.

     -어머, 어머. 미쳤어. 사람들 많은 곳에서 저게 무슨 부끄러운 짓이람…!

     부끄럽다고 하지만 어떻게 될지 기대되는 여인이 있고.

     -저 사람이 크림슨 지브롤터의 아들…. 아버지와 닮아서, 쓰읍. 하아, 부럽다….

     크림슨 지브롤터의 미모를 이어받은 미남의 열렬한 사랑 고백을 받는다는 것에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저렇게 손 키스를 요구하다니. 저게 노스트럼 평균…? 하아, 나 어렸을 때 저렇게 프러포즈 받았으면 이혼 같은 건 안 했겠다.

     제국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구시대의 낭만’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된 것에 한탄하는 여인도 있다.

     뭐, 사람마다 감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곳에 모여있는 사람의 수는 대략 2천여 명.

     그중 합스베르크 황제로부터 씨를 받아 아이를 낳은 이들이 수백 명이 될 것이며, 그녀의 후원자이거나 친인척, 관계자, 혹은 동맹이 나머지를 전부 채우고 있다.

     사람마다 이해관계가 다르니, 그레이 지브롤터가 아스타시아 황녀를 향해 연심을 그대로 드러내는 걸 불편해하는 이들도 있고, 낭만이라고 좋아하는 이들도 있고-

     -저게, 감히?

     라면서, 감히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동네 개새끼가 아스타시아를 넘보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하아, 알았어요.”

     아스타시아는 결국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녀의 손등에 가볍게 입술을 맞췄다.

     제법, 긴 시간.

     연회장에 정적이 내려앉고, 누군가가 그 기나긴 침묵을 참지 못해 헛기침할 때까지.

     넋을 잃은 이들 중 몇몇이 ‘특종’의 냄새를 눈치채고 지금이야말로 ‘포토타임’이라는 걸 직감하여, 빠르게 품에서 꺼낸 카메라의 촬영 버튼을 누를 때까지.

     ‘됐다.’

     찰칵, 찰칵, 찰칵.

     마도장치의 셔터음이 세 번 들린 순간, 나는 천천히 입술을 떼어내며 아스타시아를 올려다봤다.

     “아스타시아 황녀. 부디-”

     짝, 짝, 짝.

     “…쯧.”

     그리고 손뼉 치는 소리가 들린 순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그레이 지브롤터. 나의 눈은 틀리지 않았군.”

     

     두 팔을 반기면서까지 환영했는데도 그걸 무시하고 황녀를 향해 직진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황제고 나발이고 왕국 외교관 대표고 나발이고 황녀를 향해 손 키스를 하러 갔다는 것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던 걸까.

     “황녀가 마음에 든다면, 내 적극적으로 추진하도록 하지.”

     “폐하…?”

     “테르시안과 노스트럼. 그 500년 동안 쓰여온 피의 역사가 이제는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장밋빛 미래로 쓰인다면, 이보다도 더 좋은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합스베르크가 시종으로부터 와인잔을 하나 받아 높이 치켜들었다.

     “모두, 잔을 들어라.”

     핏빛처럼 붉게 반짝이는 레드와인이 유리잔 안에서 찰랑거렸다.

     “대륙의 평화를 위하여.”

     짠.

     “연회는 끝났다. 나머지는 그대들끼리 즐기도록.”

     합스베르크는 허공에 혼자 잔을 부딪치며 와인을 단숨에 입 속으로 들이붓고는, 그대로 유리잔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쨍그랑.

     “그레이 지브롤터.”

     황제는 이미, 연회를 즐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테라스에 바람을 좀 쐬러 가지 않겠나?”

     “…….”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연회, 황제의 즉위를 축하하는 연회가 아니었나?

     “폐하.”

     나는 즉답했다.

     “싫습니다.”

     “…뭐?”‘

     “저는 테라스에 간다면, 황녀님과 함께 가는 것뿐이지요.”

     “…….”

     

     잠시 뒤.

     “…응접실에 따뜻한 솜누스 차를 준비해두지.”

     “감사합니다, 폐하.”

     시종 하나가 깨진 유리잔을 주섬주섬 다시 정리하는 사이, 나는 아스타시아 황녀의 손을 잡고 그녀를 회랑으로 이끌었다.

     남들은 오지 못하는 조용한 테라스로.

     * * *

     잠시 뒤.

     “여기면 괜찮을 겁니다, 공주님.”

     “여기는….”

     “조용한 곳을 찾아왔는데, 혹시 처음 오시는 겁니까?”

     “네.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곳이에요.”

     아스타시아를 데리고 그 누구에게도 사진이 찍히지 않고 도청당할 염려가 없는 테라스로 아스타시아를 데려왔더니, 정작 아스타시아 본인이 처음 보는 곳이었다.

     “여기가 어딘지 알고 계신 거예요?”

     “알고 온 건 아니지만, 아마도 황제의 침실로부터 이어지는 테라스가 아닐까 합니다.”

     “…예?”

     “우리가 방금 들어왔던 이 방, 합스베르크 황제께서 즉위 이후에 사용할 침실이 아닐까싶더군요.”

     “…….”

     졸지에 황제의 테라스에 왔다는 사실에 아스타시아는 잠시 사색이 되었으나-

     “그, 그렇군요. 으음….”

     창백해지기만 할 뿐, 그 이후로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저기, 지브롤터 이사장님…?”

     “그레이.”

     “…그레이.”

     아스타시아가 내 손을 꼭 붙잡으며 좌우를 살폈다.

     “여기는…살얼음판 같은 곳이에요.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레이를 향한 시선들이….”

     “결코 고운 편은 아니었죠. 알고, 이해합니다. 저들에게 있어 지브롤터 가문의 핏줄은 오랜 적이었으니.”

     “…….”

     “그러나 오랜 원한보다도 지금 당장은 합스베르크 황제의 총애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저들에게 더 민감할 겁니다.”

     나는 테라스 아래, 미로처럼 넓게 펼쳐진 정원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온 수많은 하얀 머리를 가리켰다.

     “아스타시아. 제가 왜 다른 사람들을 제치고 제가 직접 이곳에 왔는지 아십니까?”

     “지브롤터의 수호자보고 가라는 거 아니었어요?”

     “아닙니다.”

     그건 부차적인 이유다.

     “제국 전체에 공언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공언…?”

     “그 누구도 아스타시아를 넘볼 수 없게. 아스타시아를 가지고 싶으면 저, 그레이 지브롤터를 적으로 둘 생각을 하라고.”

     “그건….”

     “제국의 황녀는 아스타시아. 황녀가 훗날 여황제가 된다면, 그 권력은 자연히 그 반려인 국서의 것.”

     나는 아래, 정원을 기어다니는 흰개미들을 향해 가볍게 목을 그었다.

     “저 벌레들은 아스타시아, 당신을 취해 제국을 물려받을 생각을 하는 쓰레기들입니다.”

     “하지만, 저들은….”

     “예. 아스타시아, 당신의 이복형제들이죠.”

     이복형제?

     그런 건 대륙의 황제라는 자리에 크게 중요하지 않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게 인간 아니겠습니까.”

     누가 합스베르크의 자식 아니랄까봐.

     “합스베르크 황제는 당신의 짝으로 저를 선택했습니다. 가장 재능있는, 가장 우수한 피를 가진 자로서. 하지만 만일 제가 없다면….”

     “잠깐만요. 혹시…?”

     “생각하신 그 혹시, 가 맞습니다.”

     너무나도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생각.

     “합스베르크는 자신의 핏줄끼리 이어지는 것을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차선이라고 생각하죠. 가장 우수한 능력을 가진 종자끼리 교배하는 것이야말로, 우수한 피를 잇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자니까.”

     합스베르크는.

     “그런 의미에서, 공주님과 제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게 정말 다행입니다.”

     필요하다면 근친으로 후대를 이어나가는 것도 염두에 두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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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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